히스기야 왕의 기 도  (사38:1-9)  
                                            
오늘 우리는 히스기야 왕의 기도를 생각하면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이스라엘 역대의 왕들 가운데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앞에서 선한 일을 행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솔노몬왕 이후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어 오늘 우리처럼 한 민족이 두 다른 체제 속에서 살게 되었는데, 히스기야 왕은 남쪽 유다 왕국의 13번째의 왕이었습니다.

부친 아하스왕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일을 많이 했지만, 히스기야는 아버지의 악한 길에서 돌이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많이 행하였습니다.
열왕기하 18:3절에 보면 “부친 아하스와는 달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산당을 제하며 주상을 깨트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함으로 그것을 부수었다”고 하였습니다.
또, 18:5절에는 “히스기야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의지하였는데 그후 전후 유다 여러 왕 중에 그러한 자가 없었으니 곧 저가 여호와께 연합하여 떠나지 아니하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계명을 지켰더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히스기야 왕의 통치 기간에 형통의 은혜를 주어 국가 경제를 끌어 올려 나라를 튼튼하게 하였습니다. 그의 행적 중에 지금까지 유적으로 남은 것은 수로를 만들어 요단강의 물을 성안으로까지 끎여 드리는 대 수로(水路)공사의 큰 역사를 마치었다는 사실입니다. 장비도 요즘 같지 않던 그 시대에 그러한 방대한 일을 한 것을 보면 그의 나라 사랑의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예증입니다.
그런데 그의 나이 40세 때에 병들게 되었는데, 선지자로부터 청천벽력(靑天霹靂)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가 그에게 나타나 “너는 이제 죽고 못 살터인즉 집안 사람들에게 유언하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충격적인 말이겠습니까?  당신은 이제 못살고 죽을 터인즉 집안 사람들에게 유언하라고 한다면 누구나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더더욱 이제 한창 나이었습니다. 임금으로서 한창 일할 때이었습니다.
앗수르의 침공을 막기 위하여 국력을 더욱 더 키워 나가야 할 그런 형편에 왕이 죽으면 나라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래서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나아가 ‘나는 죽으면 안 된다’고 간절하게 호소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그는 벽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히스기야 왕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재점검해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1. 히스기야 왕은 죽음이 선고되었을 때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만일 나에게 죽음이 선고될 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번 생각해 볼일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처음에는 충격을 받아 졸도하거나, 아니면 몸부림치다가 결국 체념으로 받아 드린다고 합니다. 이것이 의사들의 말입니다.
그러나 히스기야 왕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로부터 죽음을 선고받은 후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였습니다.
왕으로서의 체면을 무릎 쓰고 벽을 향하여 기도하였습니다.
여러분! 이것은 보통 있을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히스기야는 왕이었습니다. 고대 시대에 왕은 삼권(三權)을 다 검어 쥐고 있었던 신분입니다. 얼마든지 유명한 의사들을 불러서 자신의 병이 정말 죽을병인지 부터 확인하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좋다는 약은 다 써 보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면, 히스기야는 벽을 향하여 하나님께 먼저 무릎을 꿇었다고 하였습니다. 왕이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또 이쯤 되면 낙심했거나, 원망했거나, 불평 불만을 토하였거나, 아마 폭군으로 변했거나  했을 터인데 히스기야는 오직 하나님과 담판을 지으려고 눈물로 진지한 기도를 했습니다.

그가 뭐라고 기도하였는지는 내용을 잘 모르나 오늘 본문을 통하여 엿볼 수 있는 것은 자기 몸 하나 살려 달라고 그런 기도보다는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였을 것이라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히스기야 왕에게 한 말을 보아서 알 수 있습니다.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기도를 했기에 네 기도를 들었다고 했고, 어떤 눈물을 보았기에 하나님이 감동하여 네 눈물을 보았다고 하셨을까? 그것이 궁금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을 자세히 보면,  하나님은 그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였습니다. ① 네 생명의 수 한에 15년을 연장해 준다고 하였고,
② 너와 이 성(城)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져내어 이 성(城)을 보호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증거로 징조를 보여 줄 터인데  아하스의 일 영표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를 10도 물러가게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히스기야는 이미 그 생명의 수 한이 다해 죽을 사람이었다는 말입니다. “네 생명의 수(壽) 한에다 15년을 더 연장해 준다”는 말을 유념해야 하겠습니다. 이미 죽기로 작정된 운명이었는데 거기다 15년을 더 살게 해 주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도 히스기아 왕처럼 비록 죽을 운명에 있었더라도 살길을 찾아야 하겠습니다. 즉 사망 선고 하에 산다고 해도 하나님을 찾아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좀더 넓게는 오늘 우리 가정과 나라가 다시 살려면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 길 밖에 없습니다. 오늘 우리 나라는 총체적 부정직의 중병을 앓고 있습니다. 이 병에서 살아나려면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아 엎드려 자복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눈물로 기도해야 합니다.

죽음이 선고되었는데, 왕의 소유가 무슨 소용이 있었겠습니까?
그의 가진 명예, 그의 가진 지식, 그의 가진 모든 것이 다 쓸데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도 자기의 소유를 더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 가진 소유 때문에 아직도 하나님 앞에 나오지도 못하고, 더더욱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지도 못합니다. 그 가진 것들이 죽을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다 쓸데가 없습니다. 죽을 사람이 살려면 하나님께 나아 와야 합니다.
그렇다고 죽을 사람이 하나님께 나와 기도하면 다 살려 주는가?
아닙니다. 오늘 히스기야 왕에게는 우리와 다른 면이 있었습니다.

2. 히스기아 왕은 자신의 걸어온 삶을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주의 앞에서 진실과 전심으로 행하며, 주의 목전에서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라고 심히 통곡했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고 있습니까?
히스기야 왕은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삶을 하나님 앞에 진실 되게 아뢰는 것입니다. 내가 당신 앞에 진실과 전심으로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그렇게 기도하였습니다. 이런 면에서 히스기야 왕의 눈물은 어떤 통회 자복의 눈물이라기보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 되게(in truth) 그리고 전심으로(with perfect heart)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고 하는 호소였습니다. 즉 평소에 왕으로서 공직에서 행한 진실과 거짓 없는 자신의 삶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이었습니다.

오늘 이 점에서 대통령을 위시하여 공직에 있는 사람들, 특히 우리 크리스천들이 반성해야 할 일입니다. 내 몸에 병이 들었을 때  단순하게 살려 달라고만 하는 것이 보통인데, 히스기야의 눈물은 그런 눈물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정직함을, 그리고 진실하게 행한 최선의 행적을 하나님이 알아 달라고 그렇게 호소하였습니다. 이점에서 우리도 본 받아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아 왕은 역대 이스라엘 왕들 중에서 선한 왕이었다고 하였습니다.
앞선 선왕(先王)들에 비하여 하나님께 정직하고 진실 되게 살아온 왕이었습니다. 그런데 수한이 다해 병들어 죽어 살지 못하겠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하나님께 나아가 구합니다. 자기가 살아야 할 이유를 들어 호소하였습니다.
“내가 당신 앞에서 정직히 행한 것을 기억해 주시 옵소서” 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서도 이러한 기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오늘 우리에게서 문제는 <진실>과 <정직함>이 살아진데 문제가 있습니다.
총체적 부정직과 거짓 속에 살고 있다는 현실이 우리를 슬프게 합니다.
나라의 통계 수치도 믿을 수 없고, 거짓이고, 경제 전망도 허위로 작성되고, 감독자들의 보고도 적당히 꾸며서 올리고, 기업가들의 장부도 항상 부정직으로 작성되고 있으니 우리를 믿을 수 없는 나라라고 한다면, 이것이 죽을 운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아무리 내가 소유한 것이 많다고 해도 그 소유가 나를 살리겠습니까?  우리도 나의 <진실>과 <정직>을 기억해 달라고 하나님께 아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에 기초한 진실 된 신앙들이 아니고, 신비주의 아니면 인본주의 신앙으로 변질된  신앙들이란 말입니다. 모두 <가식>과 <부정직>으로 변질된 신앙이란 말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지난 세월에 내가 정직히 행한 일을 기억하옵소서 라고 히스기야 왕처럼 기도해야 하겠는데, 얼마나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면에서 히스기와 왕을 본받아야 하겠습니다.

3. 결국 히스기아 왕은 하나님으로부터 기도의 응답을 받았습니다.
기도는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이 있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자들에게 응답이 없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무엇인가 아직도 하나님 보다 더 의지하는 바가 있거나, 하나님 앞에 전심으로 기도하지 않거나, 아니면 청산하지 않은 죄가 남아 있거나 이런 이유에서일 것입니다.
성경에 여러 곳에 하나님은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겠다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58:9절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응답 받지 못한 기도가 있다면, ①진실 되게 행하지 않았거나, ②전심으로 구하지 않았거나, ③무엇인가 품고 있는 죄를 내어놓지 않았거나, 바로 그런 이유들 때문인 줄 압니다.

하나님은 히스기아 왕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의 수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었습니다. 이것은 우리 모든 기도 자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문제입니다.
히스기아 왕은 하나님께 자신의 정직함을 아뢰었습니다.
그리고 눈물로 자신의 해야 할 일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기도의 응답은 우리의 마음에 눈물이 있어야 합니다.
그 눈물 속에 자신의 살아야 할 이유(使命)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하겠습니다.
눈물의 기도란 그만큼 진지한 기도란 뜻입니다.
대충 대충하는 기도에는 눈물은 나오지 않습니다.
히스기야 왕의 그 눈물은 억울하여 흘리는 눈물도 아니고, 원망하는 눈물도 아니고, 괴로워 흘리는 눈물도 아니고, 답답해서 흘리는 눈물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향한 자신의 진실을 고하는 눈물이었습니다.

이때 히스기아 왕은 나이 40세였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외침에 위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여야 할 일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기도하였습니다.
그 눈물을 하나님이 보시고 들어 응답하였습니다.
오늘도 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지금 몹시 영적으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모든 나라가 바알 우상 앞에 절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돈이면 다 된다는 바알 신 앞에 모두 부정직해 졌다는 말입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내가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것을 기억해 달라는 그런 기도가 있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내가 여호와 앞에서 최선을 다하였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히스기야 왕처럼 벽을 향하여 눈물의 기도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럴 때, 작정된 운명일 찌라도 해 시계를 10도나 돌려놓는 기적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출처/김이봉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