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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으면 응답하리라 (시편 86:1 ~ 10)
성경에 한나라는 여인이 등장한다. 한나는 결혼을 해서 한 맺힌 삶을 살고 있었다. “에브라임 산지 라마디임소빔에 에브라임 사람 엘가나라하는 자가 있으니... 그에게 두 아내가 있으니 하나의 이름은 한나요 하나의 이름은 브닌나라 브닌나는 자식이 있고, 한나는 무자하더라.” 한 지붕 아래서 한 사람은 아이가 있고, 한 사람은 아이가 없으니 얼마나 마음에 고통이 컸겠는가?
요즈음 같으면 아이없이 인생을 즐기자는 사람들도 많다. DINK 족, 즉 Double Income No Kids. 부부가 같이 벌고 아이없이 살아서 즐기면서 살자고하는 DINK 족이 많아진다고 한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도 많고, 어떤 경우에는 입양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자녀에 관한 문제는 축복의 증거로 생각했다. 저 가정에 아이가 있으면 하나님의 축복이요, 하나님이 임재하는 상징이라고 생각했다. 아이가 없어서 심한 괴로움을 앓고 있던 한나를 남편 엘가나가 다른 부인보다 더욱 사랑해 준다. 그러나 한나는 남편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만 아이가 없는 것에 대해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었다. 왜?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것은 아니가?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나의 길을 막지는 않으셨는가?
우리도 살아가면서 이렇게 앞이 캄캄하게 막힌 것 처럼 보일 때가 있다. 어떤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한다. 그래도 앞이 막힌 것 처럼 힘들어 하는 사람도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육신의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한다. 내 인생이 콱 막힌 것 같은 그런 느낌을 경험할 때가 있다. 또한 어떤 사람은 먹고 사는 문제는 그렇게 걱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는 것이 재미가 없다. 그날이 그날이다. 삶에 허무함을 많이 느낀다. 내가 무엇을 위해서 사는가? 이렇게 살면 뭐하는가? 내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앞이 막힌 느낌을 갖는 경우도 있다.
이럴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장 우리 앞에 막힌 것 같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향한 계획, 즉 마스터플랜을 갖고 계심을 고백하자. 40일이면 갈 수 있는 광야의 길을 40년에 걸쳐서 갔다. 이 길이 막혀서 갈 수 없을 때에 하나님은 마스터플랜, 즉 하나님의 계획을 갖고서 40년에 걸쳐서 인도하셨다.
요한복음 9장을 보라. 날 때부터 소경된 자가 있었다. 제자들이 그 사람에 대해서 알고 싶었다. 저 사람이 누구의 죄 값으로 저렇게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 되었는가? 예수님께서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앞을 볼 수 없는 고통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사람에게 마스터플랜,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환난을 당할 때에, 앞 뒤로 꽉 막힌 것 같이 힘이든 시간에 어떻게 그 시간을 뚫고 나갈 수 있겠는가? 이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세상에 드러내야 되겠구나. 하나님이 지금 함께 역사하고 계심을 드러내 보여야 하겠구나.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나간다. 다윗이 나가는 이유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해서 골리앗을 향하여 나갔다. 우리 앞에 골리앗과 같이 큰 산이 있을 때에 어떻게 하겠는가? 이렇게 고백하자.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온 세상에 분명히 보여주리라. 우리가 고통을 당할 때에, 환난을 당할 때에, 괴로움이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떤 책임이 있는가? 이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이곳에서 일하고 계심을 온 세상 사람들로 알게 하리라.
구 동독 한 국민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국민학교에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열 살 난 어린 소녀가 있었다. 하루는 그의 담임 선생이 학생들을 모두 일으켜 세워 놓고는 자기의 말을 따라 하라고 했다. "하나님은 없다!" 그때 그 어린 소녀는 그의 담임 선생에게 "그렇지만 저는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어요."라고 말하면서 그가 시키는 말을 따라하지 않았다. 그 선생은 이 아이의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 놓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 아이에게 집에 가서 "하나님은 없다"라는 문구를 오십 번 써오라고 시켰다. 어린아이는 집에 돌아가 부모님과 이 문제를 놓고 기도한 후 "하나님은 계십니다"라는 문구를 오십 번 써서 가지고 왔다. 그 선생은 그렇게 씌어 있는 종이를 보고는 안색이 변하여 떨리는 목소리로 "좋다. 이제 내가 경찰에 너를 고발하겠다. 네가 믿는 하나님이 너를 도우시나 어디 두고 보자!"라고 했다. 이 말을 하고 그 교사는 학교 운동장으로 내려가서 자전거를 타고 경찰서 쪽으로 달려 나가다가 자전거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는 심장이 마비되어 땅바닥에 꼬꾸라진 채 죽어버린 것이다. 교실 창문을 통해 이 광경을 지켜 보고 있던 아이들이 모두 교실밖으로 뛰어나와 담임 선생의 주검 주위에 모여 들었다. 그 중 한 아이가 큰 소리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계십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다른 아이들도 모두 합세하여 "절대적으로 계십니다"라고 소리쳤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책임이 있다. 특별히 고통을 당할 때에 많은 사람들은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고통은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하시는 좋은 기회이다. 어떻게 하면 고통 중에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확신할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다.
한나를 보라. 아이를 낳지 못해서 힘들어 했다. 태의 문이 닫힌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 닫힌 것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의 함께 계시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다. 이렇게 환난을 당할 때에 한나는 어떻게 했는가?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가로되 만군의 여호와여 만일 주의 여종이 고통을 돌아보시고 나를 생각하시고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사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고통을 당할 때에 한나는 부르짖어 기도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한나를 향한 마스터플랜,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깨닫게 하셨다.
본문의 말씀을 보라. “나의 환난 날에 내가 주께 부르짖으리니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리이다.... 무릇 주는 위대하사 기이한 일들을 행하시오니 주만이 하나님이시니이다.” 예레미야서의 말씀을 보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그리고 기이한 일들을 행하신다. 고통을 당하는 자가 있는가? 환난을 당하는 자가 있는가? 이렇게 주저앉아 절망스러운 삶을 살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나타내 보일 것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 생활을 했다.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셨다.” 부르짖으면 고통의 현장에서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신다. 모세를 부르시고, 열가지의 재앙이 일어난다. 부르짖으면 고통의 현장에서 일을 시작하신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광야를 가는 중에 물이 없어서 고통을 당했다. 왜 우리를 이곳에서 죽게 만드는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 그리고 돌을 들어서 모세를 향하여 죽이려고 한다. 그 때에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 하나님께서 즉시 모세에게 네 지팡이로 반석을 치라. 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셨다. 부르짖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온 세상에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우리가 부르짖을 수 있는가? 본문의 말씀을 보니 “여호와여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니 주의 귀를 기울여 내게 응답하소서.” 나는 가난하고 궁핍해야 부르짖을 수 있다. 이 말씀은 곧 내 자신이 철저히 부족함을 인정해야 부르짖을 수 있다. 어린아이는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한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되면 운다.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으면 부르짖을 수 없다. 그러나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고백할 때에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다.
한나는 아이를 갖지 못하자 스스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인정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한계와 자신의 부족함과 자신이 완전하지 못함을 인정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부르짖을 수 있다. 하나님 없이도 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없다. 그러나 주님을 떠나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이 철저히 부르짖을 수 있다. 나의 부족함을 철저히 인정하자. 나의 연약함을 솔찍하게 고백하자. 이것이 바로 부르짖음의 첫 걸음이다. 그리고 주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고백이 있을 때에 우리는 부르짖어 기도하게 된다.
인간이 다급하면 하나님을 향하여 단심가를 열창한다. “이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롤이 진토되어 넋이라도 있고 없고, 임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다급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저마다 정몽주가 되고, 하나님을 향한 충절의 맹세는 분명하다. 그러나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되고 먹고 살만하면 단심가의 마음으로 기도하는 우리의 자세는 하여가로 바뀐다.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나 칡넝쿨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져서 백 년까지 누리리라.”
오직 하나님 만이 내 인생의 대답이십니다. 주님 만이 내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단심가의 마음을 갖고 살자. 그리하면 환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 전에는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고통을 이긴 기억이 있는가? 그것을 다시 회복시키자. 기도하기에 지쳤다고 주저 앉지 말고, 부르짖어 기도하면 환난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예수님께서 비유의 말씀을 전해 주셨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재판장이 있는데 그 도시 한 과부가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이 과부는 번거롭게 원한을 풀어달라고 요청하니까 불의한 재판장도 해결해 준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어떻게 외면하시겠는가? 부르짖음에 응답하신다는 약속의 가르침을 주셨다. 환난을 당할 때에 하나님을 찾으라. 어린아이처럼 부르짖으라. 나의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이 지금 일하고 계심을 드러낼 수 있는 기회요, 나에게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확신케 하여 주신다.
출처/곽주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