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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마음으로 출발을 (마 18:1-4)
오늘은 일년52주 가운데 첫 주일 입니다. 이제 한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시작의 시간은 참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첫 발작이 중요하고 첫 단추를 잘 끼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시작이 반입니다. 첫 단추를 잘 끼우면 다른 단추는 문제가 없습니다. 한해의 시작을 예배로 시작하고 예배로 이 한해를 끝낼 수 있기를 바랍니다. 2004년도의 시작을 어린 아이 마음처럼 신선하게 시작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설교제목을 “신선한 마음으로 출발하자” 라고 붙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려면 몇 가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순수한 마음”
어린 아이는 마음이나 생각이 아주 순수합니다. 깨끗합니다. 맑습니다. 순진합니다. 아이들은 교회에서 하라면 그대로 실천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어린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마음이 순수하고 깨끗하고 맑아야 한다는 말일 것입니다. 여러분 한해를 이렇게 어린 아이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과 생각과 뜻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그 순수한 마음을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신앙인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가 있다면 그것은 이 순수함입니다. 이것이 순수함의 삶이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하늘을 감동시킵니다.
1886년 겨울 정동에서 살던 언더우드 선교사 집에 낫선 사람들이 들어왔습니다. 황해도 솔개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이 와서 언더우드에게 세례를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를 믿고 성경도 여러 번 읽었으니 세례를 받고 싶어 왔다고 합니다. 그런데 언더우드는 그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 줄 몰라 망설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옷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등을 보였습니다. 등에는 조그만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그것을 등에 지고 있었습니다. 성경을 읽다가 보니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해서 이렇게 십자가를 지고 다닌다고 말했습니다. 얼마나 순수한 사람들입니까. 그 모습이 얼마나 진지합니까. 그래서 언더우드가 감동을 받아서 세례를 주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순수한 마음을 기뻐하시고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이 좋아하시고 기뻐하시면 그만 아닙니까.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합니까. 이것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린다는 말입니다. 사람들이 감동하면 하늘도 감동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감동시키려고 하지 말고 세상에서 사람들을 감동시키려고 힘써야 합니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것이 곧 하늘의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일입니다.
또 1900년 강화의 북부 해안의 홍의마을에 종순일이라는 지주가 살았습니다. 그분은 한학자이고 지주였습니다. 이 분이 동네사람들에게 빚을 많이 놓았습니다. 이 분이 마침내 신앙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성경을 읽다가 마태복음 18장을 읽게 됩니다. 임금이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에게 빚을 모두 탕감해 주었습니다. 이 빚쟁이가 기분이 아주 좋아서 나가다가 자기에게 100데나리온 빚진 사람을 만납니다. 그에게 당장 빚을 갚으라고 윽박지릅니다. 갚지 않으니까 감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 소식을 들은 임금이 그를 다시 불러서 탕감한 빚을 갚으라 하고 갚기까지 감옥에 있으라고 가두어 버립니다. 이 분이 그 성경을 읽다가 고민을 합니다. 그리고 어느 날 결단을 내립니다. 마침내 동네의 빚쟁이들을 모두 불러 모읍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마태복음 18장을 읽었소. 여기 무자비한 종이 바로 나요. 내가 은혜로 구원받은 것만도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 받은 것 보다 크다고 생각하오, 그래서 나는 여러분의 빚을 오늘부로 탕감하기로 했소, 자, 여기 여러분의 빚 문서를 모두 불에 태우겠소". 그리고 부자는 빚 문서를 모두 불태워 빚을 탕감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순수한 마음입니까. 그러니까 사람들이 감동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감동하면 하늘도 감동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이 세상에서 그런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일생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우선입니다. 새해에는 한번 그렇게 신선하고 참신하게 살아가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어린 아이 같은 마음과 생각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함”
어린 아이는 사욕이 없습니다. 내일에 대한 걱정이 없습니다. 내일의 문제는 부모를 믿고 따릅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는 내일에 대해나 걱정 없이 그날을 살아갑니다. 그것이 어린 아이의 삶의 태도입니다. 어떤 아이가 내일을 염려하여 밤잠을 설치며 걱정하고 근심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것이 어울리는 모습입니까. 때로 우리는 그렇게 장래와 미래에 대해서 너무 많이 걱정하고 불안해하고 그래서 신경안정제를 과다 복용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 보내실 때 모두 계획이 있으셨고 섭리를 가지고 계셨는데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불안해하고 걱정을 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염려해도 일이 되는 법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나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무엇인지를 구해야 합니다.
어느 부흥사 지망생이 산 기도를 갔습니다. 가서 기도했습니다. “나에게 아브라함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그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아브라함처럼 아들을 바칠 수 있느냐.” 생각해 보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도를 바꾸었습니다. “그러면 나에게 모세 같은 믿음을 주십시오”. 그때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모세같이 사람들 죽일 수 있느냐..”그것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나더러 어떻게 하라는 말입니까”. 그랬더니 또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너는 너다, 너같이 기도하라”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다 각각 다른 몫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 모세, 바울은 다 그들의 몫이 있었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몫이 그들보다 더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찾아서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한번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조용히 생각하면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몫이 무엇인가 알려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살면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어느 고교생이 고교를 졸업했습니다. 이 학생이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래서 일류 대학으로부터 입학허락을 받았습니다. 이 학생은 아버지가 법률가였습니다. 자신도 법률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크게 성공하고 싶었습니다. 이 아이는 어려서 열심히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때 공부하느라 중단하고 교회와 담을 쌓고 살았습니다. 그날 차를 타고 드라이브를 나갔습니다. 한창 달리는데 지방방송이 들려오더니 어느 무명 목사의 설교가 들려왔습니다. 그날 설교 제목이 “잃어버린 하나님을 다시 찾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젊은이는 그 방송을 듣는 순간 심장이 멈추는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차를 멈추고 몇 시간 동안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그는 장차 나는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하고 고민했습니다. 내가 할 일은 무엇인가, 내게 주어진 사명은 무엇인가를 위해서 고민을 합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그는 마침내 신학교에 가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리고 졸업하고 목사가 되었는데 그분이 바로 미국의 남침례교 지도자인 듀크 맥콜(Duke McCall) 목사입니다. 나의 앞길은 이렇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가장 좋은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여러분, 나의 앞길, 자녀들의 미래와 장래가 걱정될 것입니다. 너무 염려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언제는 그렇게 염려해서 된 일이 있습니까.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길을 열어주셔야 합니다. 사람들이 억지로 앞길을 열려고 애를 쓰는데 그러니까 삶에 부작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억지로 열려고 한다고 열려집니까. 엘리베이터 문은 억지로 열면 안 됩니다. 문은 저절로 열려야 그것이 형통입니다. 가장 안전합니다. 별로 힘도 들지 않습니다. 저절로 문이 열리는 것, 그것이 형통이고 그것이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길이고 방법이고 가장 안전한 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먼저 하나님의 나에 대한 뜻을 묻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 가족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앞길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길일까를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삶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삶이 될까를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앞길을 책임지실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나의 앞길이나, 자녀들의 앞길을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데 참 불투명하고 불확실한 나라입니다. 우리나라는 합리성이 결여되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공부만 잘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아인슈타인이 와도 낙제할 수밖에 없는 그런 아주 복잡한 나라입니다.
어느 과학자가 죽어 천국에 가서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합니다. “한국에는 유능한 과학자 한명도 없어서 강대국이 되지 못하고 있으니 유능한 과학자 다섯 명만 보내 주십시오“ 그랬더니 하나님이 다섯 명의 과학자를 다시 살려서 보내셨다고 합니다. 그 사람들이 퀴리 부인, 뉴턴, 아인슈타인, 에디슨, 갈릴레이 등 다섯 명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모두 직업하나 변변하게 갖지를 못하고 살더라는 것입니다. 에디슨은 발명왕인데 학력수준이 국졸이라 특허심사를 할 때 마다 학력미달로 낙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는데 학력미달로 면접에서 낙방 당했다고 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수학만 잘해서 수능시험에서 번번이 낙방해서 대학 문턱도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뉴턴은 논문을 많이 써 냈는데 대학교수들이 논문을 심사했는데 이 심사위원들이 그 논문이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합니다. 갈릴레이는 우리나라 과학정책을 꼬치꼬치 따지는 바람에 쫓겨났습니다. 그리고 퀴리 부인은 어디 회사라도 가려고 하니까 얼굴이 바쳐주지 않아서 받아주는 곳이 없어서 실업자로 살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가 이런 나라입니다.
우리의 앞길, 참 불확실합니다. 우리나라에서 미래창조는 참 불확실 합니다. 그래서 오늘 젊은이들이 미래에 대해서 방황 대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것이 먼저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나에게 두고 계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을 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러면 그 분이 나를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와 미래와 장래의 모든 문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고 풀어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그 길이 든든한 길이 됩니다. 새해는 무엇보다도 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한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사랑”
여러분, 금년 한해 예수님을 한번 끔찍하게 사랑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누구를 사랑하면 내 마음에 기쁨이 주어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은 곧 나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내가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예수를 사랑하려면 몇 가지 내용이 따라야 합니다.
하나는 “예수님을 자랑하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이 베드로를 잡아 심문했습니다. “네가 무슨 권세로 이런 권능을 행하느냐”, 그때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행한다”고 대답했습니다. 베드로가 앉은뱅이를 고칠 때 “내가 네게 명하노니 일어나라”하고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일어나라”고 기도할 때 그 앉은뱅이는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자랑하는 일입니다. 예수를 자랑하는 곳에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를 자랑할 때 내 믿음이 성장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 예수를 많이 자랑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예수의 사랑을 입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쁨으로 헌신의 삶 살아가는 일”입니다. 예수를 위해서 수고해 보십시오. 그것이 예수님을 사랑하는 삶입니다. 성가대로, 교사로, 식당에서, 거리에서 차안내로 수고하는 삶, 모두 예수님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일입니다. 주일날 열심히 와서 예배드리는 것도 최고의 예수님 사랑입니다. 새해에 예수님을 위해서 한번 수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도 여러분을 향해서 어떤 행동을 하실 것입니다. 자신의 일만을 위해서 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어느 날 크게 외로울 날이 올 것입니다.
세 번째는 “봉헌의 삶을 살아가는 일”입니다. 새해에는 열심히 11조 생활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11조 생활은 헌신의 표현입니다. 물질은 생명과 같은 것입니다. 피를 흘리고 죽는 것만 순교가 아닙니다. 물질을 바치는 삶도 순교의 삶입니다. 사람들이 물질 때문에 목숨을 버리지 않습니까. 그래서 물질을 아무나 바치는 것 아닙니다. 한번 각오하고 바쳐보십시오. 앞날을 너무 염려하지 말고 하나님이 도우실 것을 믿고 내가 할 일을 먼저 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그만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11조 생활하려면 먼저 마음에 시험이 올 것입니다. 마음의 갈등이 시작되고 용단내리기 까지 갈등이 찾아올 것입니다. 순교하는 삶에 그런 갈등이 없겠습니까. 저는 이 11조 생활을 강력하게 권하고 싶습니다. 내가 모든 유혹과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증표가 내가 11조를 드릴 수 있는 마음입니다. 그러면 하나님도 내게 상응하는 마음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주저하는 생활이 아닙니다. 믿고 나아가는 생활입니다. 믿고 나아가면 믿은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신앙의 생활입니다.
그래서 신앙의 생활은 꾸준히 심는 생활입니다. 심은 사람이 기대가 있고 응답이 있고 거둘 것이 있습니다. 나는 내 자식들이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삶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두 가지를 대답해 주겠습니다. 하나는 “너희들은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일날 예배를 소홀히 하는 일은 없게 하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생활이 아무리 어려워도 11조 드리는 것을 잊지 말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내가 내 아이들의 앞날을 세세히 챙기고 돌보고 인도하고 보살필 수가 없습니다. 더구나 내 자식들의 미래나 장래를 언제까지 내가 만들어주고 길을 열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 맡기는 삶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주일날은 만사를 놓아두고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드리는 일이고 또 하나는 내가 가장 힘들게 벌고 아까워하는 물질을 유감없이 11조로 떼어 하나님께 드리는 일입니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그렇게 하나님 우선주의로 살면 하나님은 나에게 어떤 모습으로 다가오시겠습니까. 사람들이 이 길을 모릅니다. 그것이 가장 근본의 길이고 해결책인데도 그 방법을 모릅니다. 그리고 당장 아까운 것만 생각합니다. 그렇게 아낀다고 더 잘사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길을 알고 살아야 합니다. 새해는 무엇보다도 어린 아이처럼 순박하고 신선하고 예수님을 자랑하면서 살아가는 한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출처/이정익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