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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영생을 주노라 (요한복음 10:22-42)
영생의 가치
여러분,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이들은 신나게, 폼나게 열심히 모래성을 쌓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애들아 이젠 가자!”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아무리 멋있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다 그냥 내버려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세 역사를 보면 약 8세기경에 서부유럽의 국가들을 통일하여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샤를마뉴라는 황제가 있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몸에 거머쥔 이 황제는 죽을 때 참 희한한 유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를 무덤에 묻을 때, 로마 황제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 꽂꽂하게 앉히고, 머리에는 왕관을, 손에는 황제의 홀을 쥐인 채로 장사지내라! 또 잊지 말 것은 내 몸과 어깨에 황제의 망토를 걸치고 내가 원하는 책 한권을 펴 놓은 상태로 내 무릎위에 올려놓도록 해다오!” 죽어서도 그 영광을 빼앗기지 않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샤를마뉴 황제가 원했던 그 책 한권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죽고 나서 약 200년 후, 오토 대제가 그의 무덤을 열어젖혔습니다. 그의 해골에는 여전히 왕관이 씌워 있었고, 그의 무릎에는 책이 한권 놓여 있었는데, 그 책은 다름 아닌 성경책이었답니다. 그리고 뼈만 남은 손가락이 성경의 한 구절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빨리 깨달아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후회하게 되는 진리! 곧 어제에 붙들려 사는 삶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명성을 날리고 권력을 휘둘렀어도, 지금 죽고 나면 끝입니다. 지금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으면 이전에 누렸던 그 어떤 영광도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아프고, 지금 죽겠는데, 과거의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영광으로 끝인 것입니다. 이 세상으로 끝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이 세상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 영원한 나라가 있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하는 영생의 문제입니다. 니고데모에게도 영생을 얻기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도 내가 주는 영생의 샘물을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도전하십니다. “지식을 앞세우는 바리새인들아, 권력을 앞세우는 사두개인들아, 명예를 가지고 거룩함을 뽐내는 제사장들아, 예루살렘에 산다고 우쭐대는 너희 유대인들아, 너희가 영생을 가졌느냐?” 이것이 요한복음의 큰 주제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셔서 이 책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시고, 나는 바른 목적, 바른 방향을 가지고 내 인생을 바르게 살고 있는가? 과연 나는 영생을 소유했는가? 점검해 보시고 도전받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수전절 :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절기는 수전절입니다. 이 수전절이라는 배경이 중요합니다. 헬라제국으로 전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습니다. 그러자 그가 정복했던 나라들은 장군들의 권력다툼으로 네 조각이 나고 맙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는데 그는 참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을 약탈하였고, 유대인만의 독특한 신앙생활을 모두 금지시키고, 예루살렘의 번제단의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금지되었던 돼지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 유다스 마카비우스라는 사람이 일어나 무력으로 안티오쿠스 4세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B.C. 164년, 성전에 제단을 다시 쌓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이었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항거하여 힘으로 이룬 독립!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에 의해 침략당하고 지배당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수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치적 독립, 무력 항쟁, 독립 국가를 꿈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 일에 앞장설 것인가?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그 일에 대장이 되어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따르고 있는데 정작 예수님은 자기들이 기대하는 독립전쟁은 생각도 안하고, 가난한 자 병든 자나 찾아가고, 귀신이나 쫓고, 세리나 창녀들하고만 어울리니, 긴지 아닌지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면 우리가 당신을 따라 로마와 한판 붙어볼 거니까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들은 영원의 귀중함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우리 인생에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고대합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면 당신이 메시야인지 믿겠습니다. 병을 고쳐주시면 당신이 메시야인지 믿겠습니다. 복권을 사면서 기도합니다. 땅을 사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부~자되게 해주세요! 주님, 성공하게 해주세요! 주님,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이 메시야인줄 믿겠나이다! 현실 문제에, 기득권에, 명예와 부와 권력에 눈이 가려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25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란 사실을 안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지만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믿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여러 번에 걸쳐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니고데모에게 네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를 통한 영생의 길을 알려주셨는데,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관원이요, 부자였던 니고데모는 믿지 않았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후에, “나는 생명의 떡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영생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얻는 영생이 지금 뭐 어쨌냐는 것입니다. 지금 쓸모없는 구원, 지금 쓸모없는 천국,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영생! 관심이 딴데 가 있으니 말을 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관심이 딴 데 가 있을 때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내가 하는 일이라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표적이 됩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를 세례 요한에게 말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그러니 이런 표적을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냐? 그러므로 표적을 보고서라도 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메시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고, 또 메시야가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믿지 못하였습니까?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결국 그들이 왜 말해줘도 못 믿고, 보여줘도 못 믿었습니까?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기로 작정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축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을 예지예정이라고 합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 누구를요? 구원받을 자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누구, 누구를 구원해야겠다” 미리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너 예수 믿어라!” 이렇게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요?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 믿겠습니다!”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믿음을 보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시키셔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내가 예수님 믿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하고 결단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결단이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로 미리 결정하시고, 내가 태어났을 때, 예수 믿어라하며 부르신 것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아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닌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아무리 말해 줘도 못 믿고, 보여줘도 못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못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면 거꾸로,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구원 요절!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의 근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구원의 확신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근거가 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십자가! 내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 그 십자가 때문에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 예수님 말고 누가 나를 대신해 죄값을 치러주신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찬송가 403장. “나위하여 십자가의 중한고통 받으사/ 대신죽은 주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흘려 영영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우리 어찌찬양 안할까”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얻게 되는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첫째,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한번도 죽었다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잔다!” 왜요? 곧 일어날 거니까! 다시 부활해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니까! 믿으십니까? 둘째,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멸망이 무엇입니까? 죄값을 지고 영원한 지옥 형벌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셋째, 영원히 예수님 품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합니다. 왜요? 29-30절.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품안에 안겨 주셨는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이길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먼지 하나라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 품 안에 있는 우리를 빼앗아 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결 론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찌 인간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느냐! 신성모독이라 이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말씀에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잡지 못했습니다. 아직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요단강 저편에 요한이 처음 세례 주는 곳으로 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하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멸망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영원히 참목자되신 예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것입니까? 영생입니다. 그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에 낙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영생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이 선물을 여러분 모두가 받으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영생을 선물로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선물로 받으신 분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그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왜 이 영생을 주셨는가? 그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말씀 위에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김성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영생의 가치
여러분, 바닷가에서 모래성을 쌓아 보신 적 있으십니까? 아이들은 신나게, 폼나게 열심히 모래성을 쌓습니다. 그런데 아빠가 “애들아 이젠 가자!”라고 말하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아무리 멋있게 만들었다 할지라도, 다 그냥 내버려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중세 역사를 보면 약 8세기경에 서부유럽의 국가들을 통일하여 신성로마제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을 이룬 샤를마뉴라는 황제가 있습니다. 부와 명예와 권력을 한 몸에 거머쥔 이 황제는 죽을 때 참 희한한 유언을 했습니다. “내가 죽고 난 후 나를 무덤에 묻을 때, 로마 황제의 보좌에 앉아 있는 모습 그대로 꽂꽂하게 앉히고, 머리에는 왕관을, 손에는 황제의 홀을 쥐인 채로 장사지내라! 또 잊지 말 것은 내 몸과 어깨에 황제의 망토를 걸치고 내가 원하는 책 한권을 펴 놓은 상태로 내 무릎위에 올려놓도록 해다오!” 죽어서도 그 영광을 빼앗기지 않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샤를마뉴 황제가 원했던 그 책 한권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죽고 나서 약 200년 후, 오토 대제가 그의 무덤을 열어젖혔습니다. 그의 해골에는 여전히 왕관이 씌워 있었고, 그의 무릎에는 책이 한권 놓여 있었는데, 그 책은 다름 아닌 성경책이었답니다. 그리고 뼈만 남은 손가락이 성경의 한 구절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마태복음 16장 26절.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이 세상에서 우리가 빨리 깨달아야할 진리가 있습니다. 늦으면 늦을수록 후회하게 되는 진리! 곧 어제에 붙들려 사는 삶이 아니라, 내일을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아무리 잘 먹고 잘 살고, 명성을 날리고 권력을 휘둘렀어도, 지금 죽고 나면 끝입니다. 지금 시한부 인생의 선고를 받으면 이전에 누렸던 그 어떤 영광도 다 쓸데없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아프고, 지금 죽겠는데, 과거의 영화가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그러므로 누구든지 영생을 소유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서 영광으로 끝인 것입니다. 이 세상으로 끝이라면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보이는 이 세상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 영원한 나라가 있다고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어떻게 그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가하는 영생의 문제입니다. 니고데모에게도 영생을 얻기 위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고,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에게도 내가 주는 영생의 샘물을 마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예수님은 바로 이 문제를 도전하십니다. “지식을 앞세우는 바리새인들아, 권력을 앞세우는 사두개인들아, 명예를 가지고 거룩함을 뽐내는 제사장들아, 예루살렘에 산다고 우쭐대는 너희 유대인들아, 너희가 영생을 가졌느냐?” 이것이 요한복음의 큰 주제입니다. 사도 요한이 이 책을 기록한 목적입니다.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통해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얻기를 원하셔서 이 책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다시 한번 여러분의 삶을 되돌아보시고, 나는 바른 목적, 바른 방향을 가지고 내 인생을 바르게 살고 있는가? 과연 나는 영생을 소유했는가? 점검해 보시고 도전받는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수전절 :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오늘 말씀의 배경이 되는 절기는 수전절입니다. 이 수전절이라는 배경이 중요합니다. 헬라제국으로 전세계를 통일한 알렉산더 대왕은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갑자기 죽습니다. 그러자 그가 정복했던 나라들은 장군들의 권력다툼으로 네 조각이 나고 맙니다. 그 중에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통치를 받게 되는데 그는 참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의 기물을 약탈하였고, 유대인만의 독특한 신앙생활을 모두 금지시키고, 예루살렘의 번제단의 자리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유대인들에게 금지되었던 돼지를 희생 제물로 드리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이 때 유다스 마카비우스라는 사람이 일어나 무력으로 안티오쿠스 4세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B.C. 164년, 성전에 제단을 다시 쌓고 희생 제사를 드림으로 완전한 독립을 이루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수전절이었습니다. 외세의 침략에 항거하여 힘으로 이룬 독립!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이스라엘은 다시 로마에 의해 침략당하고 지배당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수전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치적 독립, 무력 항쟁, 독립 국가를 꿈꾸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 일에 앞장설 것인가? 메시야가 오시면 그가 그 일에 대장이 되어 로마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회복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24절. “유대인들이 에워싸고 가로되 당신이 언제까지나 우리 마음을 의혹케 하려나이까 그리스도여든 밝히 말하시오 하니”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메시야로 알고 따르고 있는데 정작 예수님은 자기들이 기대하는 독립전쟁은 생각도 안하고, 가난한 자 병든 자나 찾아가고, 귀신이나 쫓고, 세리나 창녀들하고만 어울리니, 긴지 아닌지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당신이 그리스도면 우리가 당신을 따라 로마와 한판 붙어볼 거니까 분명히 밝혀 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인간의 어리석음입니다. 사람들은 영원의 귀중함을 모릅니다. 영원한 생명의 소중함을 모릅니다. 우리 인생에 죄와 사망의 문제를 해결하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가를 모르기 때문에, 지금 당장의 현실 문제를 해결해 주기만을 고대합니다. 우리를 해방시켜 주시면 당신이 메시야인지 믿겠습니다. 병을 고쳐주시면 당신이 메시야인지 믿겠습니다. 복권을 사면서 기도합니다. 땅을 사면서 기도합니다. 주님, 부~자되게 해주세요! 주님, 성공하게 해주세요! 주님, 주세요~ 주세요~ 주세요~ 그러면 내가 당신이 메시야인줄 믿겠나이다! 현실 문제에, 기득권에, 명예와 부와 권력에 눈이 가려 예수님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그래서 25절 보십시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란 사실을 안가르쳐 주신 것이 아닙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으되 믿지 아니하는도다.” 예수님은 자신이 메시야라고 분명히 가르쳐 주셨지만 그들의 어리석은 마음이 믿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까지 예수님께서 영생을 주시는 메시야이심을 여러 번에 걸쳐 말씀해 주시는 것을 보아왔습니다.
니고데모에게 네가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놋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하려 하심이라” 십자가를 통한 영생의 길을 알려주셨는데,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관원이요, 부자였던 니고데모는 믿지 않았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신 이후에, “나는 생명의 떡이다!” 말씀하셨습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아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은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니 영생에는 관심도 없었던 것입니다. 나중에 얻는 영생이 지금 뭐 어쨌냐는 것입니다. 지금 쓸모없는 구원, 지금 쓸모없는 천국, 지금 당장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지 못하는 영생! 관심이 딴데 가 있으니 말을 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관심이 딴 데 가 있을 때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교회에 와서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말을 못 믿겠으면, 내가 하는 일이라도 보고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이어늘”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는 가장 중요한 표적이 됩니다. 마태복음 11장에 보면, 세례 요한이 감옥에 갇혔을 때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십니까? 아니만 우리가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합니까?” 물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자신이 어떤 일들을 하시는지를 세례 요한에게 말해주라고 하셨습니다.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마 11:5). 그러니 이런 표적을 과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냐? 그러므로 표적을 보고서라도 나를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면, 우리는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메시야라고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고, 또 메시야가 아니면 하실 수 없는 많은 일들을 분명히 보여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왜 사람들이 믿지 못하였습니까? 여기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간단합니다. 26절.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결국 그들이 왜 말해줘도 못 믿고, 보여줘도 못 믿었습니까?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기로 작정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축복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아십니까?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구원받기로 작정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 진리를 아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29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것을 예지예정이라고 합니다.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셨다.” 누구를요? 구원받을 자들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누구, 누구를 구원해야겠다” 미리 결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30절.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너 예수 믿어라!” 이렇게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요?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그래서 “예수님 믿겠습니다!”하고 하나님 앞에 나오면, 그 믿음을 보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시고 의롭다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회복시키셔서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송하는 하늘나라의 영광스러운 백성이 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 내가 예수님 믿는 것은 내 의지대로 된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예수 믿겠습니다”하고 결단해 믿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실은 그 결단이 있기까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나를 미리 아시고, 나에게 영생을 선물로 주시기로 미리 결정하시고, 내가 태어났을 때, 예수 믿어라하며 부르신 것이 먼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아셨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미리 정하닌 예수님의 양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아무리 말해 줘도 못 믿고, 보여줘도 못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양이 아니기 때문에 못 믿는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27절.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그러면 거꾸로, 우리는 무엇에 우리의 믿음의 근거를 두어야 합니까?
첫째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흔들리지 않는 인생의 구원 요절! 여러분의 구원의 확신의 근거!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 1:12). 구원의 확신은 나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있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근거가 됩니다.
둘째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입니다. 십자가! 내 죄값을 대신 치르기 위해서 주님이 지신 십자가! 그 십자가 때문에 내 죄가 용서받았다는 사실! 예수님 말고 누가 나를 대신해 죄값을 치러주신 분이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찬송가 403장. “나위하여 십자가의 중한고통 받으사/ 대신죽은 주예수의 사랑하신 은혜여/ 보배로운 피를흘려 영영죽을 죄에서/ 구속함을 얻은우리 어찌찬양 안할까”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얻게 되는 세 가지는 무엇입니까?
28절.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첫째, 영생을 선물로 받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죽은 사람을 한번도 죽었다 그러신 적이 없습니다.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잔다!” 왜요? 곧 일어날 거니까! 다시 부활해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 것이니까! 믿으십니까? 둘째, 예수님 믿는 사람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습니다. 멸망이 무엇입니까? 죄값을 지고 영원한 지옥 형벌에 빠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절대로 지옥에 가지 않습니다. 셋째, 영원히 예수님 품 안에서, 주님과 함께 사는 것입니다. 아무도 우리를 예수님의 손에서 빼앗지 못합니다. 왜요? 29-30절.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예수님의 양이 되어 예수님의 품안에 안겨 주셨는데,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이길 자가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서 먼지 하나라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또한 예수님과 하나님은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시기 때문에 아무도 예수님 품 안에 있는 우리를 빼앗아 가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결 론
이 말씀을 듣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돌로 쳐서 죽이려고 했습니다. 어찌 인간이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느냐! 신성모독이라 이겁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그 말씀에 대꾸하지 못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예수님을 잡지 못했습니다. 아직 십자가를 지실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요단강 저편에 요한이 처음 세례 주는 곳으로 가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의 말을 기억하면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영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멸망의 심판을 면했습니다. 영원히 참목자되신 예수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고 가장 소중한 것입니까? 영생입니다. 그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습니까?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와서 묻습니다.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가진 소유를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러나 그 청년은 부자였기 때문에 낙심하여 돌아갔습니다. 영생은 돈으로 살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이 선물을 여러분 모두가 받으실 수 있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영생을 선물로 받으십시오. 그리고 이미 예수님을 믿어 영생을 선물로 받으신 분은,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살 수 없는 그 영생을 값없이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거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왜 이 영생을 주셨는가? 그것을 깨닫고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며 예수님을 따라가시기 바랍니다. 말씀 위에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한 말씀 한 말씀 순종함으로 예수님을 본받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출처/김성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