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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이름을 주자 (행3:6-10)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 : 6-10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름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일본 상표가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쏘니라는 상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미주와 동남아 어디를 가보아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쏘니라는 상표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물건에다 쏘니 상표를 붙여서 비싸게 팔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과 내용이 다르지만 이름 때문에 내용이 좋지 않아도 잘 팔립니다. 이와 같이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름에 의해서 그 존재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달에 소련 침례교 총회장 초청으로 인해 모스크바 시와 알마 아타 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감격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일본 상표로 뒤덮여 있어서 언제나 일본에게 뒤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만은 한국 상표가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삼성, 쌍용, 대우에서 이미 진출하여 상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호텔에는 다른 나라 국기는 없고 태극기만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름은 알려져야 합니다. 이름이 있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름이 알려지되 좋은 의미로 알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이름, 존경받을 만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소녀는 독립운동가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완용하면 도둑놈으로 기억됩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가져도 좋은 이름을 가져야 하고, 좋은 의미로 기억되도록 해야 합니다.
1.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자.
작명가에 의하면 사람은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름만 잘 지으면 고생할 것도 없고, 일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름대로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기입니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해서 잘 되어야지 일을 하지 않고 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훈이요 축복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광역의회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전혀 모르던 사람도 이름을 내놓습니다. 저마다 주민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겠다고 하나 정말로 이름을 위한 이름을 내놓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으로 인해서 한 달밖에 장관을 할 수 없었던 사람도 자기의 이력서에다 장관이라는 이름을 내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이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회장이다 구역장이다 각 기관의 임원을 맡은 성도들이 임기 동안에는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아예 손을 떼는 경우가 있습니다.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봉사는 새로운 일꾼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일을 맡아서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는 임기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뒷전으로 물러앉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가시노릇을 합니다. 다른 성도가 봉사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름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라는 이름도 이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장로도 이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직분, 곧 이름이 이름될 때는 문제만 생기지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름은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일을 위한 이름이 되자.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 임기가 끝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합니다. 농촌 출신이면 농촌으로 돌아갑니다. 직장 생활을 했으면 직장으로 돌아가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면 강단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가 끝났을 때 본래 자기가 경영하던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있을 때나 그 자리에서 떠나 있을 때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갑니다. 특별히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임기가 끝난 후에나 변함없이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름을 위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일을 위해서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즈음 저는 교역자 집회를 자주 나갑니다. 근래 들어서 교역자 집회 인도를 많이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다 보면 교역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 목회자들이 말하기를 안수 집사나 장로를 세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저들이 평신도로 있을 때는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더니 직분을 맡게 되면, 다시 말해서 이름을 얻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뒷짐이나 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시키기나 하고,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대한 일이 있어도 쳐다보고만 있지 앞에 나서서 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접을 받는 자리엔 먼저 가서 앉습니다. 이런 일들로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게들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고 일을 위한 이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집사'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일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일을 위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집사를 세운 것은 일을 위해서 였습니다. 구제하는 일로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꾼을 세우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6 : 3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일을 맡기기 위해서 집사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집사의 직분은 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이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역사는 불과 15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름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일하는 교회로 알려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강남중앙침례교회는 기도 많이 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복음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학교가 부흥하는 교회요 남자 구역이 잘 모이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순종을 잘하고 열심히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며느리를 찾되 우리 교회에서 찾겠다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담임 목사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대단히 흐뭇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서 봐야 정확하게 드러나겠습니다마는 인간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쁘게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자만하거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철저하게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여러분의 직분이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고 일을 위한 이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일을 위해서는 이름이 없는 자가 되자.
우리가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양수리 수양관에서 교역자 집회와 각종 세미나, 개교회 수련회가 많이 열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수양관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강남중앙 교회가 이루어 놓은 일이라고 하면 믿지를 못합니다. 저 큰 공사가 어떻게 이루어진 줄 아십니까? 이름 없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성도들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름답고 훌륭한 수양관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마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뜨겁게, 그야말로 눈물겹게 헌금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이름 없는 자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누가복음 10장 보면, 칠십 명의 제자가 둘씩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17절에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20절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위해서는 이름 없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찬송 355장의 가사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하늘에서 알아주는 이름이라면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성도 한 분이 양로원을 짓는 일에 써달라고 하면서 오천만 원을 헌금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 분이 하는 말이 양로원을 짓게 되면 그 건물에다 자기 이름 석자를 넣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오천만원이 아니라 오억 원을 준다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 후 그는 실족했는지 우리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를 하되 이름 없이 해야 할 줄 믿습니다.
4. 예수의 이름을 가지자.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 : 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건강도 얻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천당에 갑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이와 같은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의 이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구원과 영생과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와 해방과 속죄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심판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 : 18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그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전 미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성전에 들어가려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가 무엇을 요구합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돈만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4 : 13에 의하면 본래 학문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의 이름밖에는 구걸하는 자에게 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준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7절 이하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이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 : 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멜산 상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불렀지만 응답은커녕 그들의 몸만 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역사를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셨습니까? 가지지 않았다면 꼭 가져야 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을 가질 때 구원과 영생과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그를 믿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의 이름을 가질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가진 성도는 그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합시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그들에게 줄 때 그들도 구원받는 역사가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보고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사도행전 4 : 10입니다. "너희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 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및 하나님을 찬미함을 보고 그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줄 알고 그의 당한 일을 인하여 심히 기이히 여기며 놀라니라-사도행전 3 : 6-10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름에 따라서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부흥회를 인도하기 위해 세계 곳곳을 돌아다녀 보면 일본 상표가 뒤덮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특별히 쏘니라는 상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합니다. 미주와 동남아 어디를 가보아도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것이 쏘니라는 상표입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물건에다 쏘니 상표를 붙여서 비싸게 팔아먹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름과 내용이 다르지만 이름 때문에 내용이 좋지 않아도 잘 팔립니다. 이와 같이 이름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이름에 의해서 그 존재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달에 소련 침례교 총회장 초청으로 인해 모스크바 시와 알마 아타 시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감격스러운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세계 어디를 가 봐도 일본 상표로 뒤덮여 있어서 언제나 일본에게 뒤졌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스크바만은 한국 상표가 눈에 가장 많이 띄는 것이었습니다. 현대, 삼성, 쌍용, 대우에서 이미 진출하여 상권을 잡고 있었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호텔에는 다른 나라 국기는 없고 태극기만 걸려 있었습니다. 저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름이라는 것이 이렇게 중요합니다.
이름은 알려져야 합니다. 이름이 있어도 알려지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이름이 알려지되 좋은 의미로 알려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훌륭한 이름, 존경받을 만한 이름으로 기억되는 것은 아주 귀한 일입니다. 안중근 의사나 유관순 소녀는 독립운동가로 그의 이름이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완용하면 도둑놈으로 기억됩니다. 왜냐하면 나라를 팔아먹은 역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름을 가져도 좋은 이름을 가져야 하고, 좋은 의미로 기억되도록 해야 합니다.
1.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자.
작명가에 의하면 사람은 이름을 잘 지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름만 잘 지으면 고생할 것도 없고, 일할 것도 없다고 합니다. 이름대로 된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사기입니다. 사람은 일을 해야 합니다. 일을 해서 잘 되어야지 일을 하지 않고 잘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교훈이요 축복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광역의회 선거가 가까워지면서 전혀 모르던 사람도 이름을 내놓습니다. 저마다 주민의 심부름꾼으로 일하겠다고 하나 정말로 이름을 위한 이름을 내놓은 정치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어떤 잘못으로 인해서 한 달밖에 장관을 할 수 없었던 사람도 자기의 이력서에다 장관이라는 이름을 내놓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름이 이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도회장이다 구역장이다 각 기관의 임원을 맡은 성도들이 임기 동안에는 헌신적으로 일하다가 임기가 끝나면 아예 손을 떼는 경우가 있습니다. 봉사를 하지 않습니다. 봉사는 새로운 일꾼들이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자기가 일을 맡아서 할 때에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고 협력하지 않는다고 투덜거리고는 임기가 끝나자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뒷전으로 물러앉는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괜찮은데 어떤 사람은 가시노릇을 합니다. 다른 성도가 봉사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이름을 위해서 일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목사라는 이름도 이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장로도 이름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교회 안에서의 모든 직분, 곧 이름이 이름될 때는 문제만 생기지 부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이름은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2. 일을 위한 이름이 되자.
미국의 대통령들은 그 임기가 끝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서 일을 합니다. 농촌 출신이면 농촌으로 돌아갑니다. 직장 생활을 했으면 직장으로 돌아가고,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면 강단으로 돌아가서 다시 가르치는 일을 계속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 임기가 끝났을 때 본래 자기가 경영하던 땅콩 농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는 대통령으로 있을 때나 그 자리에서 떠나 있을 때 변함없이 열심히 일하며 살아갑니다. 특별히 카터 대통령은 대통령이 되기 전이나 임기가 끝난 후에나 변함없이 교회학교 교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서 그 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대단히 훌륭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름을 위한 이름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일을 위해서 이름을 가진 사람입니다.
요즈음 저는 교역자 집회를 자주 나갑니다. 근래 들어서 교역자 집회 인도를 많이 요청해 오고 있습니다. 집회를 인도하다 보면 교역자들과 이야기할 기회가 많습니다. 그 목회자들이 말하기를 안수 집사나 장로를 세우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왜 그러는지 아십니까? 저들이 평신도로 있을 때는 그렇게 열심히 봉사하고 헌신하더니 직분을 맡게 되면, 다시 말해서 이름을 얻으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뒷짐이나 지고 있고, 다른 사람을 시키기나 하고,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중대한 일이 있어도 쳐다보고만 있지 앞에 나서서 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대접을 받는 자리엔 먼저 가서 앉습니다. 이런 일들로 어려움을 당하기 때문에 그렇게들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고 일을 위한 이름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집사'라는 말은 문자 그대로 '일을 잡는다'는 뜻입니다. 집사는 일을 위해서 세워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집사를 세운 것은 일을 위해서 였습니다. 구제하는 일로 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 일꾼을 세우게 된것입니다. 사도행전 6 : 3에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일을 맡기기 위해서 집사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집사의 직분은 일을 위해서 있는 것이지 이름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강남중앙침례교회의 역사는 불과 15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름을 위한 교회가 아니라 일하는 교회로 알려졌다는 것은 감사한 일입니다. 강남중앙침례교회는 기도 많이 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복음적으로 가르치고 설교하는 교회라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학교가 부흥하는 교회요 남자 구역이 잘 모이는 교회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교인들이 순종을 잘하고 열심히 있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며느리를 찾되 우리 교회에서 찾겠다는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담임 목사 입장에서 이런 말을 들을 때 마음이 대단히 흐뭇합니다. 물론 하나님 앞에 서 봐야 정확하게 드러나겠습니다마는 인간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기쁘게 여겨집니다. 그렇다고 자만하거나 여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더 철저하게 말씀으로 양육하고 훈련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할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이름이, 여러분의 직분이 이름을 위한 이름이 되지 말고 일을 위한 이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일을 위해서는 이름이 없는 자가 되자.
우리가 천국에 가면 깜짝 놀랄 만한 일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양수리 수양관에서 교역자 집회와 각종 세미나, 개교회 수련회가 많이 열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수양관을 보고 깜짝 놀라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강남중앙 교회가 이루어 놓은 일이라고 하면 믿지를 못합니다. 저 큰 공사가 어떻게 이루어진 줄 아십니까? 이름 없이 봉사하고 헌신하는 성도들로 인해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아름답고 훌륭한 수양관을 건축할 수 있었습니다마는 가진 것이 많지 않지만 뜨겁게, 그야말로 눈물겹게 헌금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이름 없는 자가 되어야 할 줄 압니다.
누가복음 10장 보면, 칠십 명의 제자가 둘씩둘씩 짝을 지어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송받은 내용이 나옵니다. 그들이 사역을 마치고 돌아와서 보고를 합니다. 17절에 "칠십 인이 기뻐 돌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이름으로 귀신들도 우리에게 항복하더이다"고 합니다. 그 때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탄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20절에 "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하셨습니다. 일을 위해서는 이름 없는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존귀 영광 모든 권세 주님 홀로 받으소서. 멸시 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라.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라는 찬송 355장의 가사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할 줄 압니다. 하늘에서 알아주는 이름이라면 큰 축복인 줄 믿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중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어떤 성도 한 분이 양로원을 짓는 일에 써달라고 하면서 오천만 원을 헌금하겠다고 한 적이 있습니다. 참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 순간 감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사실은 그 분이 하는 말이 양로원을 짓게 되면 그 건물에다 자기 이름 석자를 넣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거절했습니다. 오천만원이 아니라 오억 원을 준다 하더라도 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 분은 그냥 돌아갔습니다. 그 후 그는 실족했는지 우리 교회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헌신하고 봉사를 하되 이름 없이 해야 할 줄 믿습니다.
4. 예수의 이름을 가지자.
우리는 예수의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마태복음 1 : 21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을 가져야 합니다. 바로 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건강도 얻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천당에 갑니다. 예수의 이름 안에 이와 같은 축복이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의 이름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구원과 영생과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와 해방과 속죄가 들어 있습니다. 또한 심판도 들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3 : 18에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이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면 이제는 그 이름을 주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전 미문 앞에서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사람이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성전에 들어가려던 베드로와 요한에게 그가 무엇을 요구합니다. 그 때 베드로와 요한은 그에게 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줄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이었습니다. 본문 6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돈만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4 : 13에 의하면 본래 학문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오직 한 가지 예수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예수의 이름밖에는 구걸하는 자에게 줄 것이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준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까? 본문 7절 이하에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이와 같은 능력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4 : 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을 없음이니라"고 했습니다. 갈멜산 상에서 엘리야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불이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알 선지자들이 바알을 불렀지만 응답은커녕 그들의 몸만 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만이 역사를 합니다. 왜냐하면 살아 계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의 이름을 가지셨습니까? 가지지 않았다면 꼭 가져야 할 줄 압니다. 왜냐하면 예수의 이름을 가질 때 구원과 영생과 축복을 받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가지는 것은 그를 믿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를 때, 주의 이름을 가질 때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주의 이름을 가진 성도는 그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주도록 합시다. 우리 주변에는 예수의 이름이 필요한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을 그들에게 줄 때 그들도 구원받는 역사가 반드시 있을 줄 믿습니다.
성경 한 구절을 보고 말씀을 맺으려 합니다. 사도행전 4 : 10입니다. "너희와 모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할렐루야!
출처/김충기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