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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 십자가 옷의 비밀 (요 19;23-25)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23-25)
중세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서 유명한 화가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화가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세밀하게 연구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화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모습을 그려서 교회에 가지고 갔습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까무라칠 뻔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완전 나체였습니다. 도저히 그 그림을 벽에 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완전 나체로 그렸습니까?>
화가가 대답하였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완전 나체로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대중 앞에 벌거 벗겨 놓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수치가 없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할 때 임신한 여자들을 발가벗겨 행진하게 한 후 죽였습니다. 발가벗고 대중앞에 걷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이었습니다.
고리덴 붐 여사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독일 병사들이 그를 수용소에서 발가벗겨 대중앞에 세운 적이 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1942년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아주 좋은 모험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죽은 지 꼭 50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4일 콜럼버스에 대한 문서가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 지역의 시만카스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3가지 증언이 들어있는 문서입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콜럼버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하류 계급 아들이다.>
이 말 한 마디가 모욕스럽다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 여자 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발가 발가벗겨서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길거리를 돌았습니다. 그리고도 성이 차지 않아서 잔혹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부흥회를 마치고 이스라엘에 들러서 성막 자료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종종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비행기만 한번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검색이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다니는 40대, 50대 남자는 무조건 밀실에 들어가서 팬티만 입고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그런 일에 익숙합니다.
목사라고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여러 번 다녔다고 하여도 통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나는 너무나 모욕스러워 물었습니다.
<꼭 이렇게 하여야 합니까?>
그 때마다 공항 관리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하여서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입고 있는 옷 모두를 벗김을 당한 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겼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23)
예수님 당시 옷은 그대로 돈이었습니다. 직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한 올 한 올 짜야 합니다. 그래서 옷은 너무나 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아침 9시 정도까지 계속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옷은 찢겨지고 피가 낭자하게 묻었습니다.
그래서 옷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병정은 네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수입이 생겼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다 벗긴 후에 나누어 가지면 술값정도는 나올 것같았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을 벗겨서 네 조각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한 깃씩 가졌다고 한 것을 보면 네 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옷 조각도 돈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피가 묻었어도 빨면 됩니다.
지금 성경 학자들은 네 조각으로 예수님의 나눈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복음이 퍼져 나갈 것에 대한 예표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겉옷을 벗기고 나서 속옷을 벗기려고 할 때 로마 병정들은 놀랐습니다. 속옷은 보통 옷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원문에는 <키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키톤이라는 말은 놀라운 단어입니다. 직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이지만 모두 한 조각입니다. 한 통으로 짠 옷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23)
이런 옷은 보통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제사장들만이 특별히 입는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이렇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출 39;1)
제사장들은 성소를 섬기기 위하여 <정교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겉옷은 잘라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정교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쉐라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정교하여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제조된 옷입니다. 꿰메지 않은 옷입니다. 천을 잇지 않은 옷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는 요세프스입니다. 요세프스는 이 옷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었다고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성경 기록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옷은 너무나 비싼 옷이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 채로 한 사람이 가져야 제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가졌습니다.
흔히 겉옷이 비쌉니다. 속옷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겉옷을 잘라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속옷은 나누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키톤 이 옷을 입고 계셨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옷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 가요?
1. 예수님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이 키톤 제사장 옷을 입으셨습니다.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지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복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라틴어로 폰티텍스라고 합니다. 폰티텍스라는 말은 <다리는 놓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예수님의 겉옷을 벗기고 나자 키톤 제사장 옷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로마 병정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야! 돈이 되겠다.> 일반 사람들은 말하였을 것입니다.
<제사장 옷을 입었네.>
그러나 영적인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다.>
그래서 로마 병정들이 이 옷을 나눌 때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와 사람들이 있는 성소 사이를 막고 있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래서 제사장 옷을 입고 죽으셨습니다.
미국 아칸소주의 주 도시 리틀록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심각하고도 큰 인종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백인 학생들은 교문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습니다. 계속 무력 충돌로 심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흑인과 백인 사이에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었습니다.
온갖 공포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보고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받았습니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여야 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직접 그 곳으로 가겠소.>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무릎쓰고 그 곳으로 그 것도 혼자 갔습니다. 그리고 한 흑인 학생의 손목을 잡고 교문으로 들어 섰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들어가지 못 들어 가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흑인과 백인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죄인은 천국 문으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신 중보자이십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는 놈위에 걷는 놈이 있고, 걷는 놈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고,나는 놈위에 붙어 다니는 놈이 있다.>
우리 성도는 <붙어 다니는 놈>입니다.
예수님에게 붙어 다니는 놈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중보자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2.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제사장 옷은 제물을 다루기 위하여 입는 옷입니다. 전투복은 전투하기 위하여 입는 옷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제물이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동물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제사장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나는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우리나라를 섬기러 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곳에 와서는 하룻밤에 1,000만원 하는 호텔방에서 최고의 대접만 받고 떠나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자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의 충실한 종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동시에 모든 이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모차르트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그의 묘지를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모짜르트가 음악의 천재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8살에 왕앞에서 연주할 정도였고 어떤 음악이든지 한 번만 들으면 악보로 그려낼 정도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할 때 사람들은 환호하였습니다. 교황에게 훈장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35세에 요절하였습니다. 그 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나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 한 명이 귀챦은 표정으로 시신을 혼자 묻었을 뿐입니다. 명성은 얻었으나 존경을 얻지 는 못 하였습니다. 도도하게 자기만을 위하여 거만하게 살아간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늘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고 대속물로 주시며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세례요한도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 1;29)
예수님은 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옛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걱정만 하였습니다.
<함께 가자고 하시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그는 천사를 따라 가면서 계속 입으로 뇌까렸습니다.
<나는 죄가 많은데,... 나는 죄가 많은데.....>
어느 덧 천국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혼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제물이십니다. 그 분 때문에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3.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겉옷은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았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24)
시편은 이미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실 때 옷을 나누기도 하고 제비도 뽑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22:18)
예수님은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그래서 레위인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이 옷을 이 날을 위하여 준비하여 두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이 그렇다면 그렇게 사시고 성경이 안 그렇다면 안 그렇게 사신 분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말씀으로 사신 분이셨습니다.
어느 대학교 졸업식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노교수 한 분이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위험한 바다에 배를 띄워 항해를 떠난다는 것을 자네들은 알겠나?>
이 말을 듣자 학생들은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 학생 하나가 그 교수님 가까이로 가서 말했습니다.
<위험한 바다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수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그 학생은 주머니에서 성경책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위험한 바다로 막연하게 떠나는 것 같으나 나침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나침반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나침반삼아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옷을 준비하여 입고 죽으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옷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가요?
1.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2.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3.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
예수의 십자가 곁에는 그 모친과 이모와 글로바의 아내 마리아와 막달라 마리아가 섰는지라>(요 19;23-25)
중세기에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서 유명한 화가에게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모습을 그림으로 그려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화가는 성경을 열심히 읽었습니다. 세밀하게 연구하였습니다. 오랜 세월이 걸렸습니다. 화가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모습을 그려서 교회에 가지고 갔습니다. 그림을 보는 이들은 까무라칠 뻔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완전 나체였습니다. 도저히 그 그림을 벽에 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이렇게 완전 나체로 그렸습니까?>
화가가 대답하였습니다.
<성경대로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완전 나체로 십자가에 못박혔음을 증언하여 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대중 앞에 벌거 벗겨 놓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수치가 없습니다.
히틀러가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할 때 임신한 여자들을 발가벗겨 행진하게 한 후 죽였습니다. 발가벗고 대중앞에 걷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큰 모욕이었습니다.
고리덴 붐 여사가 복음을 증거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독일 병사들이 그를 수용소에서 발가벗겨 대중앞에 세운 적이 있습니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1942년 미국 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를 아주 좋은 모험의 사람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콜럼버스는 1506년 5월 20일 5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니까 콜럼버스가 죽은 지 꼭 500년 되는 해입니다. 그래서 스페인에서는 각종 행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7월 14일 콜럼버스에 대한 문서가 스페인 북부 발라돌리드 지역의 시만카스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되었습니다. 23가지 증언이 들어있는 문서입니다. 나는 그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기사가 있습니다.
어떤 여자가 콜럼버스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였습니다.
<하류 계급 아들이다.>
이 말 한 마디가 모욕스럽다고 그런 말을 하였다고 그 여자 혀를 잘랐습니다. 그리고 발가 발가벗겨서 당나귀에 태웠습니다. 그리고 길거리를 돌았습니다. 그리고도 성이 차지 않아서 잔혹한 고문을 가하였습니다.
나도 그런 일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 부흥회를 마치고 이스라엘에 들러서 성막 자료를 사오곤 하였습니다. 종종 그렇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구상에서 이스라엘 비행기만 한번도 테러를 당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검색이 철저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다니는 40대, 50대 남자는 무조건 밀실에 들어가서 팬티만 입고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나는 이제 그런 일에 익숙합니다.
목사라고 그래도 소용없습니다. 여러 번 다녔다고 하여도 통하지 않습니다. 무조건입니다. 나는 너무나 모욕스러워 물었습니다.
<꼭 이렇게 하여야 합니까?>
그 때마다 공항 관리는 말했습니다.
<당신의 안전을 위하여서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정말 그렇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은 입고 있는 옷 모두를 벗김을 당한 채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분명히 예수님의 겉옷과 속옷을 모두 벗겼습니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23)
예수님 당시 옷은 그대로 돈이었습니다. 직조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실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손으로 일일이 한 올 한 올 짜야 합니다. 그래서 옷은 너무나 귀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새벽부터 아침 9시 정도까지 계속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그래서 옷은 찢겨지고 피가 낭자하게 묻었습니다.
그래서 옷은 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로마 병정은 네 명이었습니다. 이들은 부수입이 생겼다고 좋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옷을 다 벗긴 후에 나누어 가지면 술값정도는 나올 것같았습니다.
예수님의 겉옷을 벗겨서 네 조각으로 나누었습니다. 각각 한 깃씩 가졌다고 한 것을 보면 네 명이었음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옷 조각도 돈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비록 피가 묻었어도 빨면 됩니다.
지금 성경 학자들은 네 조각으로 예수님의 나눈 것은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복음이 퍼져 나갈 것에 대한 예표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그런데 겉옷을 벗기고 나서 속옷을 벗기려고 할 때 로마 병정들은 놀랐습니다. 속옷은 보통 옷이 아니었습니다. 요한복음 원문에는 <키톤>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키톤이라는 말은 놀라운 단어입니다. 직조술이 발달되지 않은 시대이지만 모두 한 조각입니다. 한 통으로 짠 옷입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23)
이런 옷은 보통 사람이 입을 수 없는 옷입니다. 제사장들만이 특별히 입는 옷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시내산에서 이렇게 계시하셨습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청색 자색 홍색실로 성소에서 섬기기 위한 정교한 옷을 만들고 또 아론을 위한 거룩한 옷을 만들었더라>(출 39;1)
제사장들은 성소를 섬기기 위하여 <정교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겉옷은 잘라서 나누어 가졌습니다.
정교하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쉐라드>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은 너무나 정교하여 바느질 자국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특별히 제조된 옷입니다. 꿰메지 않은 옷입니다. 천을 잇지 않은 옷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역사가는 요세프스입니다. 요세프스는 이 옷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었다고 기록하여 놓았습니다. 성경 기록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성경도 그렇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옷은 너무나 비싼 옷이라 나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통 채로 한 사람이 가져야 제 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비를 뽑아 가졌습니다.
흔히 겉옷이 비쌉니다. 속옷은 그리 비싸지 않습니다. 로마 병정들은 겉옷을 잘라서 나누었습니다. 그러나 속옷은 나누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키톤 이 옷을 입고 계셨음을 성경은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옷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이유는 무엇이었을 가요?
1. 예수님은 제사장입니다.
예수님이 키톤 제사장 옷을 입으셨습니다. 레위지파가 제사장 지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지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복을 입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입니다. 제사장은 라틴어로 폰티텍스라고 합니다. 폰티텍스라는 말은 <다리는 놓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
<천하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적이 없다.>
예수님의 겉옷을 벗기고 나자 키톤 제사장 옷이 나타났습니다. 그 때 로마 병정들은 말했을 것입니다.
<야! 돈이 되겠다.> 일반 사람들은 말하였을 것입니다.
<제사장 옷을 입었네.>
그러나 영적인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다리를 놓으셨다.>
그래서 로마 병정들이 이 옷을 나눌 때 하나님이 계신 지성소와 사람들이 있는 성소 사이를 막고 있는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중보자이십니다. 그래서 제사장 옷을 입고 죽으셨습니다.
미국 아칸소주의 주 도시 리틀록에서 백인과 흑인 사이에 심각하고도 큰 인종분쟁이 일어났습니다. 백인 학생들은 교문에서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았습니다. 계속 무력 충돌로 심한 부상자들이 속출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도시 전체가 흑인과 백인 사이에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이 되었습니다.
온갖 공포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보고를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받았습니다.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군대를 파견하여야 한다는 보고였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고개를 저었습니다.
<내가 직접 그 곳으로 가겠소.>
아이젠하워는 위험을 무릎쓰고 그 곳으로 그 것도 혼자 갔습니다. 그리고 한 흑인 학생의 손목을 잡고 교문으로 들어 섰습니다. 어느 누구도 대통령을 들어가지 못 들어 가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사건으로 흑인과 백인이 화해하고 하나가 되었습니다.
죄인은 천국 문으로 들어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들어가신 중보자이십니다.
요즈음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기는 놈위에 걷는 놈이 있고, 걷는 놈위에 뛰는 놈이 있고, 뛰는 놈위에 나는 놈이 있고,나는 놈위에 붙어 다니는 놈이 있다.>
우리 성도는 <붙어 다니는 놈>입니다.
예수님에게 붙어 다니는 놈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우리는 중보자되신 예수님에게 붙어 있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 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2.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제사장 옷은 제물을 다루기 위하여 입는 옷입니다. 전투복은 전투하기 위하여 입는 옷입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이자 제물이십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구약의 제사장은 동물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앞에 나갔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제사장 예수님은 자기 몸을 제물로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가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늘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20;28)
나는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에 우리나라를 섬기러 왔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습니다. 이 곳에 와서는 하룻밤에 1,000만원 하는 호텔방에서 최고의 대접만 받고 떠나는 것만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종교 개혁자 말틴 루터는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보다도 자유로운 자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은 모든 사람의 충실한 종이며 누구에게도 종속되어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의 피로 구원받았기에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인 동시에 모든 이들을 섬기는 종이 되어야 함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음악가로서 모차르트를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나는 그의 묘지를 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 곳에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모짜르트가 음악의 천재라는 사실은 누구나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8살에 왕앞에서 연주할 정도였고 어떤 음악이든지 한 번만 들으면 악보로 그려낼 정도였습니다. 유럽 전역을 돌며 연주할 때 사람들은 환호하였습니다. 교황에게 훈장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35세에 요절하였습니다. 그 날은 진눈깨비가 내리는 나쁜 날이었습니다. 그의 장례에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유족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만 묘지에서 일하는 인부 한 명이 귀챦은 표정으로 시신을 혼자 묻었을 뿐입니다. 명성은 얻었으나 존경을 얻지 는 못 하였습니다. 도도하게 자기만을 위하여 거만하게 살아간 그를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처럼 늘 자신을 희생하고 섬기고 대속물로 주시며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롬 3;25)
세례요한도 말했습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라>(요 1;29)
예수님은 제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으로 오셨습니다.
옛켈트 족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천사가 한 영혼을 인도하여 하늘나라로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혼은 천사를 따라가면서 걱정만 하였습니다.
<함께 가자고 하시니 따라가기는 합니다만 나같이 죄많은 영혼이 감히 그 거룩한 나라에 어찌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워낙 더럽고 죄가 많은 놈입니다.>
그는 천사를 따라 가면서 계속 입으로 뇌까렸습니다.
<나는 죄가 많은데,... 나는 죄가 많은데.....>
어느 덧 천국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그 토록 송구스러워하던 영혼이 자신을 보니 아주 깨끗해져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영혼이 이상하여 물었습니다.
<나는 죄 많은 사람인데 어떻게 해서 이처럼 깨끗하게 되었지요?>
천사가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흘리신 피로 다 덮으셨기 때문에 당신의 죄가 가리워져서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은 담대한 마음으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짊어지신 제물이십니다. 그 분 때문에 우리는 <용서받은 죄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3.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예수님의 겉옷은 나누고 속옷은 제비뽑았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습니다.
<군병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저희가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병들은 이런 일을 하고>(24)
시편은 이미 분명하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실 때 옷을 나누기도 하고 제비도 뽑게 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뽑나이다>(시22:18)
예수님은 이 예언을 이루시기 위하여 사셨습니다. 그래서 레위인 제사장이 아니면서도 이 옷을 이 날을 위하여 준비하여 두었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성경이 그렇다면 그렇게 사시고 성경이 안 그렇다면 안 그렇게 사신 분입니다. 오직 성경, 오직 말씀으로 사신 분이셨습니다.
어느 대학교 졸업식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노교수 한 분이 사회로 나가는 제자들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위험한 바다에 배를 띄워 항해를 떠난다는 것을 자네들은 알겠나?>
이 말을 듣자 학생들은 모두가 숙연해졌습니다. 졸업식이 끝난 뒤에 학생 하나가 그 교수님 가까이로 가서 말했습니다.
<위험한 바다를 향해서 출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수님!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그리고 그 학생은 주머니에서 성경책을 꺼내면서 말했습니다.
<위험한 바다로 막연하게 떠나는 것 같으나 나침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은 나침반입니다. 예수님은 성경을 나침반삼아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래서 제사장 옷을 준비하여 입고 죽으셨습니다.
참으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제사장 옷을 입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 의미는 무엇일가요?
1. 예수님은 제사장이십니다.
2. 예수님은 제물이십니다.
3. 예수님은 말씀이십니다.
출처/강문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