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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열쇠(6) (마 16 : 13 - 20)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과 삶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천국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아주 건강한 것입니다. 천국과 천국에서의 삶에 대한 욕심과 관심이 없다면 그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국의 문을 열고 천국에 들어가 천국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열쇠’라고 설교의 제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주는 열쇠인가에 대해서 궁금해 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열쇠일 것이라고 가장 많이 믿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에 돈처럼 좋은 것이 그다지 많지 않고 돈보다 힘이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은 참 대단한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의심치 않고 돈을 천국을 열고 닫는 천국의 열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천국을 열기 위하여 열심히 돈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주에 걸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돈은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복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저와 여러분은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세상과 세상의 돈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돈이 많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얻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오직’이라는 말씀은 예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외에는 전혀 딴 길이 있을 수 없다는 단정적인 말씀입니다. 오직 사람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고, 여기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는 사실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저는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고 할 때 도대체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믿음이지만 정작 믿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믿음을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죄입니다. 저는 죄를 ‘자기 자신은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매사 자신의 욕심과 뜻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면 삽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매사 자기 욕심을 따라 살게 되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잘 살게 되려면 나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무지무능한 존재입니다. 무지 무능한 존재가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그 결과는 빤할 것입니다. 그것은 죽고 망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많이 타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는 하지만 한번도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비행기를 조정 할 줄 아는 지식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비행기를 직접 조정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저도 비행기는 비행기를 조정 할 줄 아는 조정사가 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똑같은 이치로 저는 저와 세상을 직접 조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와 세상은 하나님이 조정하실 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날 새벽 저는 저 다리를 운전하여 건넜습니다. 성수대교가 오전 7시 경에 무너졌는데 저는 새벽 4시 30분경에 그 다리를 지나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찬송을 부르며 지나갔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는 한남대교를 지나 왔습니다. 자동차가 한남대교에 올라 선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멀쩡한 다리는 부들부들 떨며 운전을 했고 무너질 다리는 찬송을 부르며 건넜습니다. 이게 바로 저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가 바로 김동호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비행기도 아닌 자기 자신과 세상의 조정간을 스스로 쥐고 제 마음대로 인생과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면 망하고 추락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미숙한 어린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고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숙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아톰, 마징거 제트, 슈퍼맨과 같은 만화 영화가 상영되면 다음 날 골목에 목에 보자기를 걸치고 날아다니는 아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온 골목을 두 손을 벌리고 ‘나는 아톰이다’ ‘나는 슈퍼맨이다’라고 뛰어 다닙니다.
아이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이면 어른들은 아파트 베란다 문을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아이가 베란다에서 뛰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슈퍼맨이기 때문에, 목에 보자기를 묶었기 때문에 자신도 슈퍼맨과 똑같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들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톰이 아니며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목에 보자기를 묶고 뛰어 다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바로 성숙과 미숙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나는 아톰이다’이라는 말과 똑같은 수준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톰이다’라는 놈이나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분이나 그 분이 그 놈입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나폴레옹이 살던 궁전을 돌아 본적이 있었습니다. 방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보니 목에 보자기를 묶고 있는 그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아 나폴레옹이 바로 저 보자기 때문에 죽고 망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여 자신이 전능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전능은 하나님만이 쓸 수 있는 개념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과 세상과 주인이 되어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살면 얼마든지 승리하고 성공하고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바로 그와 같은 어리석음 때문에 실패하고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실패의 원인은 단 하나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여 자기 스스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세상은 과연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만일 여러분과 여러분 세상의 주인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여러분은 죽고 망할 사람입니다.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고 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여러분 세상의 주인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은 살 사람입니다. 성공할 사람입니다. 아니 이미 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저는 ‘누가 주인인가’를 묻고 확인하는 일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삶의 성공은 하나님으로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성공은 하나님으로 교회의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틈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살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고 성공하고 구원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는 믿음이 천국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시편 7편은 다윗이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시편입니다. 그 시편에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떨지 아니하고 당당하던 다윗이 어떻게 별것도 아닌 구시라는 사람 앞에서 저렇게 벌벌 떨 수 있을까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 같았으면 구시 정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 정도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지만 구시 정도라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내가 직접 처리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떨지 아니하였던 다윗이 구시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윗의 이중성과 불일치성을 발견하였던 저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골리앗과 구시 앞에서 일관된 다윗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자신 부인과 하나님 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골리앗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구시도 무서웠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 훌륭한 것은 구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윗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과 아주 대조되는 사람입니다. 나폴레옹은 그 인생에서 패배하였고 다윗은 그 인생에서 성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 이유와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았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신뢰한 나머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시라고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골리앗에게는 승리하고 구시에게 패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많습니다. 어떻게 골리앗에게 승리한 사람들이 구시에게 패배하는 것일까요? 골리앗은 너무 크고 강해 보여서 자기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때문에 승리합니다. 그러나 구시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서 하나님까지 의지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신뢰하고 직접 구시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패배합니다.
이스라엘은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성을 무너트립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여리고 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대패를 하게 됩니다.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던 이스라엘이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는 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승리하고 아무리 만만해 보이고 쉬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패배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되면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입니다. 성경은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된 욕심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과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힘들고 어렵게 합니다.
천국의 열쇠를 얻으려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싸워야만 합니다.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과 죄와 욕심과 싸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생활이 아닙니다. 자신과 죄와 욕심과 싸우는 것이 없다면,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 싸움이 없다면 백날 교회를 다녀도 헛일입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마지막 날 부인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라고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큰 교회의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였다고 하여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지만 그냥 자기를 부인하고 죄와 싸우는 생활 없이는 절대로 교회생활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힘든 싸움은 하지 아니하고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천국의 열쇠를 얻고 구원을 얻을 줄로 착각하시는데 그것은 정말 착각입니다.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오늘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에게 교회는 일종의 부적입니다. 이번 주일도 교회를 나왔기 때문에, 헌금을 좀 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좀 했기 때문에 장사도 잘 되고 몸도 건강하고 차도 안 뒤집히고 불도 안 나겠지 생각합니다. 미신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착각입니다. 정말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믿음은 교회에 나오는 것에서 시작이 되지만 그곳에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정말 잘 살기 원하십니까?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의 열쇠를 얻고 싶으십니까?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살기를 원하십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예수를 믿으세요. 자기를 믿지 마세요. 신뢰하지 마세요. 부인하세요. 그리고 철저히 죄 된 욕심과 싸우세요. 피 흘리기 까지 싸우세요. 하나님을 인정하세요. 믿으세요. 주인으로 영접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저와 여러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실 줄 믿습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은 꽤 힘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별것 아닙니다. 그와 같은 것들에게는 천국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믿음에는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누차 말씀을 드리지만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말 믿음을 소유한 믿음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진검승부를 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하러 이곳 높은 뜻 숭의교회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전에 다니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높은 뜻 숭의교회는 마음에 드십니까? 높은 뜻 숭의교회가 마음에 드신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교회만 바꾼다고 수가 날 줄 아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력 없는 사람이 밤낮 연장 타령만 하듯 믿음 없는 사람들이 밤낮 교회 타령만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제가 너무 정곡을 찔렀습니까?
처음에는 높은 뜻 숭의교회가 좋은 것 같더니 이제 한 2년 쯤 되다보니 슬슬 또 교회가 싫증이 나지는 않으십니까? 못 마땅해 보이지는 않으십니까? 슬슬 떠나고 싶고 다른 교회를 찾아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예, 교회가 문제가 있으면 개혁해야 하고 고쳐야만 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걱정하시기 이전에 여러분 자신 걱정부터 먼저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교회는 교인입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사실 제도도 아닙니다. 교회는 교인입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교인이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교인이란 세상적인 지위가 높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교인이란 믿음이 좋은 교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밤낮 교회 타령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여러분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윗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여 믿음으로 구원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고 닫으며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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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관심과 삶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천국에 대한 관심과 욕심은 아주 건강한 것입니다. 천국과 천국에서의 삶에 대한 욕심과 관심이 없다면 그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천국의 문을 열고 천국에 들어가 천국의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천국의 열쇠’라고 설교의 제목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이라면 과연 무엇이 우리에게 천국을 열어주는 열쇠인가에 대해서 궁금해 해야만 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천국의 열쇠일 것이라고 가장 많이 믿고 생각하는 것이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것이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세상에 돈처럼 좋은 것이 그다지 많지 않고 돈보다 힘이 있는 것이 그다지 많지 않기 때문입니다. 돈은 참 대단한 것입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대개 의심치 않고 돈을 천국을 열고 닫는 천국의 열쇠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생각하고 천국을 열기 위하여 열심히 돈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몇 주에 걸쳐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돈은 천국의 열쇠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가 복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사랑하셔서 저와 여러분은 천하보다 크고 귀하게 창조하셨기 때문에 사람은 세상과 세상의 돈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돈에 인생을 걸고 사는 사람은 절대로 천국의 문을 열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사실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고 하는 사실입니다.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었던 까닭은 그가 돈이 많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이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얻게 하였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오직’이라는 말씀은 예외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믿음 외에는 전혀 딴 길이 있을 수 없다는 단정적인 말씀입니다. 오직 사람은 믿음으로만 삽니다. 여기서 산다는 것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고, 여기서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는 사실을 찾아 낼 수 있습니다. 저는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는 사실을 믿습니다.
믿음이 천국의 열쇠라고 할 때 도대체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고 이야기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우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단어가 바로 믿음이지만 정작 믿음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우리는 잘 모르고 사는 것 같습니다.
저는 믿음을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믿음의 반대는 죄입니다. 저는 죄를 ‘자기 자신은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매사 자신의 욕심과 뜻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하겠습니다.
성경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매사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살면 삽니다. 구원을 얻습니다.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매사 자기 욕심을 따라 살게 되면 죽습니다. 망합니다.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핵심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아도 잘 살게 되려면 나 자신이 전지전능한 존재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아니라 무지무능한 존재입니다. 무지 무능한 존재가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산다면 그 결과는 빤할 것입니다. 그것은 죽고 망하고 실패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행기를 많이 타는 사람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기는 하지만 한번도 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려고 하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제가 비행기를 조정 할 줄 아는 지식과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비행기를 직접 조정 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누구나 다 그렇지만 저도 비행기는 비행기를 조정 할 줄 아는 조정사가 조정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똑같은 이치로 저는 저와 세상을 직접 조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저와 세상은 하나님이 조정하실 때 가장 안전하다는 사실을 저는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날 새벽 저는 저 다리를 운전하여 건넜습니다. 성수대교가 오전 7시 경에 무너졌는데 저는 새벽 4시 30분경에 그 다리를 지나갔습니다. 아무것도 모르고 찬송을 부르며 지나갔습니다. 저녁에 돌아오는 길에는 한남대교를 지나 왔습니다. 자동차가 한남대교에 올라 선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핸들을 잡은 손이 떨렸습니다. 멀쩡한 다리는 부들부들 떨며 운전을 했고 무너질 다리는 찬송을 부르며 건넜습니다. 이게 바로 저입니다. 자신과 자신의 앞날에 대하여 정말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무지하고 무능한 존재가 바로 김동호라고 하는 존재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한계를 알지 못하고 비행기도 아닌 자기 자신과 세상의 조정간을 스스로 쥐고 제 마음대로 인생과 세상을 살아가려 한다면 망하고 추락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미숙한 어린 아이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고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미숙의 가장 중요한 특징입니다. 텔레비전에서 아톰, 마징거 제트, 슈퍼맨과 같은 만화 영화가 상영되면 다음 날 골목에 목에 보자기를 걸치고 날아다니는 아이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는 온 골목을 두 손을 벌리고 ‘나는 아톰이다’ ‘나는 슈퍼맨이다’라고 뛰어 다닙니다.
아이들이 이와 같은 행동을 보이면 어른들은 아파트 베란다 문을 조심해야 합니다. 잘못하면 아이가 베란다에서 뛰어 내릴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자기들이 슈퍼맨이기 때문에, 목에 보자기를 묶었기 때문에 자신도 슈퍼맨과 똑같이 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숙한 어른들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습니다. 어른들은 자신이 아톰이 아니며 슈퍼맨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때문에 목에 보자기를 묶고 뛰어 다니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한계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가 바로 성숙과 미숙의 중요한 차이입니다.
나폴레옹은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저는 그 말을 ‘나는 아톰이다’이라는 말과 똑같은 수준의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톰이다’라는 놈이나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라는 분이나 그 분이 그 놈입니다.
프랑스에 갔을 때 나폴레옹이 살던 궁전을 돌아 본적이 있었습니다. 방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가 있었습니다. 나폴레옹의 초상화를 보니 목에 보자기를 묶고 있는 그림이 많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보면서 ‘아 나폴레옹이 바로 저 보자기 때문에 죽고 망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나폴레옹은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교만하여 자신이 전능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전능은 하나님만이 쓸 수 있는 개념입니다. 그는 자신이 전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존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이 자신과 세상과 주인이 되어 자기 생각과 마음대로 살면 얼마든지 승리하고 성공하고 잘 살 줄 알았습니다. 그것이 치명적인 어리석음이었습니다. 나폴레옹은 바로 그와 같은 어리석음 때문에 실패하고 망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나폴레옹 실패의 원인은 단 하나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너무 과신하여 자기 스스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의 주인은 누구이십니까? 여러분과 여러분의 세상은 과연 그 주인이 누구입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이십니까?’ 만일 여러분과 여러분 세상의 주인이 여러분 자신이라면 여러분은 죽고 망할 사람입니다. 죽고 망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죽고 망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러분과 여러분 세상의 주인이 정말 하나님이시라면 여러분은 살 사람입니다. 성공할 사람입니다. 아니 이미 살고 성공한 사람입니다.
저는 ‘누가 주인인가’를 묻고 확인하는 일이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삶의 성공은 하나님으로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목회의 성공은 하나님으로 교회의 주인이 되시게 하는 것입니다. 틈만 있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교회의 주인이 되려고 하는 자기 자신을 경계하고 살펴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살고 성공하고 구원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는 믿음이 천국을 여는 유일한 열쇠입니다.
시편 7편은 다윗이 베냐민인 구시의 말에 대하여 여호와께 한 노래라는 표제가 붙어있는 시편입니다. 그 시편에 보면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주께 피하오니 나를 쫓는 모든 자에게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건져낼 자 없으면 저희가 사자같이 나를 찢고 뜯을까 하나이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저는 이 말씀이 참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골리앗 앞에서도 떨지 아니하고 당당하던 다윗이 어떻게 별것도 아닌 구시라는 사람 앞에서 저렇게 벌벌 떨 수 있을까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나 같았으면 구시 정도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골리앗 정도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했을 것이지만 구시 정도라면 하나님께 기도하지 아니하고 내가 직접 처리하려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골리앗 앞에서 떨지 아니하였던 다윗이 구시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것을 보면서 다윗의 이중성과 불일치성을 발견하였던 저는 성경을 깊이 읽으면서 골리앗과 구시 앞에서 일관된 다윗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절대적인 자신 부인과 하나님 신뢰였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골리앗도 무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구시도 무서웠습니다. 골리앗을 이긴 것은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골리앗도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면 이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더 훌륭한 것은 구시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다윗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윗은 절대적으로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절대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뢰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내 사전엔 불가능이란 없다는 나폴레옹과 아주 대조되는 사람입니다. 나폴레옹은 그 인생에서 패배하였고 다윗은 그 인생에서 성공하고 승리하였습니다.
그 이유와 차이가 무엇입니까? 다윗은 하나님을 신뢰하였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신뢰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을 삼았고 나폴레옹은 자기 자신을 신뢰한 나머지 자기 자신이 스스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 되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이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시라고 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골리앗에게는 승리하고 구시에게 패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 많습니다. 어떻게 골리앗에게 승리한 사람들이 구시에게 패배하는 것일까요? 골리앗은 너무 크고 강해 보여서 자기 스스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때문에 전능하신 하나님께 의존합니다. 때문에 승리합니다. 그러나 구시는 별것 아닌 것 같아 보여서 하나님까지 의지할 마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신뢰하고 직접 구시의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다가 패배합니다.
이스라엘은 난공불락과 같은 여리고성을 무너트립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적과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어처구니없게도 여리고 성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 대패를 하게 됩니다. 여리고성과의 전투에서는 철저히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였던 이스라엘이 아이 성과의 전투에서는 자만하여 하나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승리하고 아무리 만만해 보이고 쉬어 보이는 상황이라고 하여도 자기 자신을 신뢰하고 의지하면 패배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어느 한 순간이라도 자신이 자신의 주인이 되고 하나님이 되면 망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살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는 죄인입니다. 성경은 죄의 뿌리가 욕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죄된 욕심을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과 주인으로 인정하는 일을 본능적으로 힘들고 어렵게 합니다.
천국의 열쇠를 얻으려면 자기 자신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싸워야만 합니다. 욕심과 싸워야 합니다. 자신과 죄와 욕심과 싸우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생활이란 교회생활이 아닙니다. 자신과 죄와 욕심과 싸우는 것이 없다면, 피 흘리기 까지 싸우는 싸움이 없다면 백날 교회를 다녀도 헛일입니다. 장로가 되고 권사가 되고 집사가 되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를 마지막 날 부인하실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 한다’라고 부인하실 것입니다. 그가 아무리 큰 교회의 목사와 장로와 권사와 집사였다고 하여도 소용없습니다.
저는 교회생활이 신앙생활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인정하지만 그냥 자기를 부인하고 죄와 싸우는 생활 없이는 절대로 교회생활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많은 분들이 힘든 싸움은 하지 아니하고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니는 것으로 천국의 열쇠를 얻고 구원을 얻을 줄로 착각하시는데 그것은 정말 착각입니다. 매우 위험한 착각입니다.
오늘도 참으로 많은 분들이 교회에 나오셨습니다. 여러분들 중 많은 분들에게 교회는 일종의 부적입니다. 이번 주일도 교회를 나왔기 때문에, 헌금을 좀 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와서 봉사를 좀 했기 때문에 장사도 잘 되고 몸도 건강하고 차도 안 뒤집히고 불도 안 나겠지 생각합니다. 미신적인 사고방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착각입니다. 정말 치명적인 착각입니다.
믿음은 교회에 나오는 것에서 시작이 되지만 그곳에서 완성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정말 잘 살기 원하십니까?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까? 천국의 열쇠를 얻고 싶으십니까?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부터 살기를 원하십니까?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진정으로 원하십니까?
예수를 믿으세요. 자기를 믿지 마세요. 신뢰하지 마세요. 부인하세요. 그리고 철저히 죄 된 욕심과 싸우세요. 피 흘리기 까지 싸우세요. 하나님을 인정하세요. 믿으세요. 주인으로 영접하세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정말 저와 여러분에게 천국의 열쇠를 주실 줄 믿습니다.
돈과 명예 그리고 권력은 꽤 힘이 있어 보이지만 사실은 별것 아닙니다. 그와 같은 것들에게는 천국을 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믿음에는 천국을 열고 닫을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누차 말씀을 드리지만 베드로가 천국의 열쇠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부자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정말 믿음을 소유한 믿음이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진검승부를 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무엇하러 이곳 높은 뜻 숭의교회까지 찾아 오셨습니까? 전에 다니던 교회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오시지 않으셨습니까? 높은 뜻 숭의교회는 마음에 드십니까? 높은 뜻 숭의교회가 마음에 드신다면 그것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 될 것이라고 여러분은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나님은 여러분이 잘 마음에 들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에게 ‘교회만 바꾼다고 수가 날 줄 아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실력 없는 사람이 밤낮 연장 타령만 하듯 믿음 없는 사람들이 밤낮 교회 타령만 하는 것은 아니겠습니까? 제가 너무 정곡을 찔렀습니까?
처음에는 높은 뜻 숭의교회가 좋은 것 같더니 이제 한 2년 쯤 되다보니 슬슬 또 교회가 싫증이 나지는 않으십니까? 못 마땅해 보이지는 않으십니까? 슬슬 떠나고 싶고 다른 교회를 찾아보고 싶지는 않으십니까? 예, 교회가 문제가 있으면 개혁해야 하고 고쳐야만 합니다. 그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걱정하시기 이전에 여러분 자신 걱정부터 먼저 해 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교회는 교인입니다. 교회는 건물도 아니고 사실 제도도 아닙니다. 교회는 교인입니다. 좋은 교회는 좋은 교인이 만드는 것입니다. 좋은 교인이란 세상적인 지위가 높고 물질적으로 부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좋은 교인이란 믿음이 좋은 교인입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자신과 세상의 주인으로 고백하고 철저히 자기 자신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좋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면 교회는 자동적으로 좋아지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밤낮 교회 타령만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교회는 절대로 좋은 교회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마음에 드십니까? 하나님은 과연 여러분을 마음에 들어 하실까요? 말씀이 길어졌습니다. 천국의 열쇠는 믿음입니다. 오직 믿음입니다. 다윗과 같이 자기를 부인하고 철저히 하나님을 신뢰하여 믿음으로 구원 얻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천국의 열쇠를 가지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열고 닫으며 항상 기뻐하고 늘 감사하는 삶을 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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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김동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