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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 33:29
서론
사람이 한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고 성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루 하루를 즐겁고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몇 가지 갖추어져야할 조건이 있습니다. 돈도 있어야하고 지식도 있어야하고 좋은 친구도 있어야하고 사랑하는 아내, 남편, 자녀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건강입니다. 건강을 잃어버리고 병이 들어 있다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고 지식이 아무리 많아서 박사학위가 몇 개씩 된다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물질을 잃으면 조금 잃고 명예를 잃으면 조금 더 잃은 것이며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다 잃어 버리게되는 것입니다.
1.일용할 양식이 있어야 합니다
마 6: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하였습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과 생활에 실제 필요한 내용들이 기도입니다. 그중 첫째가 양식에 관한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날이란 말은 지금이란 뜻으로서 매일 매일 또는 날마다의 의미로 보는 것보다는 그 날 하루의 양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기도문은 우리의 필요에 대한 요구이지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기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실제의 음식물이며 더 나아가서는 우리 인간이 물질 세계에서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의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매일의 생존에 필요를 충족시켜주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일요(日用)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지 월용(月用)할 양식이 아니고 년용(연용年用)할 양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루 굶주리지 않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쌓아 놓는 것으로 만족하면 행복이 아니고 매일 불만스럽고 불행을 초래하는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 마나를 주실 때 하루 것만 거두면 썩지 아니하였지만 이 일 것을 거두면 썩었습니다. 행복의 조건은 오늘 굶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것입니다.
2.마음이 편해야 합니다
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로 마르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 이는 마음의 즐거움과 심령의 근심의 대조로 마음의 평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언 저자는 기록하기를 "마음의 화평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하였습니다(잠 14:30). 본 구절은 전인격이 건전할 때 그의 육체 또한 원기와 생기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로 육체적인 병의 근원이 바로 마음의 근심과 부패에 있음을 암시해주는 말씀입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세상이 주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온전하고도 영속적인 평안을 신자들에게 약속하셨습니다(요 14:27). 본 절에서 윤택한 뼈가 상징하는 것은 건강한 몸을 가리키며 마른 뼈는 건강하지 못하며 생명력이 없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잠 3:8, 15:30, 16:24 겔 37:1-14). 그리하여 잠언 저자는 기록하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얼굴을 빛나게 하여도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느니라"하였습니다(잠 15:13). 이는 얼굴이 빛나는 것은 기쁘고 행복한 모습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따라서 본 구절은 그러한 마음의 즐거움이 영, 육간에 삶에 생기와 평안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음이 편안하지 아니하면 먹는 것도 맛도 없고 몸에 건강을 유지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3.할 일이 있어야 합니다
마 20:7 "가로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섰느뇨 가로되 우리를 품 군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가로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하였습니다. 일은 운동이고 즐거움인 것입니다. 종일토록 놀고 있는데 하루만 노는 것이 아니고 할 일이 없어서 매일 놀고 있다는 것은 즐거움도 아니고 괴로움이 되는 주님은 즐겁고 복되게 노는 것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하였습니다(출 20:9-10).
엿새 동안 힘써 일하고 하루를 노는 것이 가장 아름다운 휴식이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자신에게는 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하는 손을 통하여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신 28:12). 그래서 바울사도는 말하기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하였더니"하였습니다(살후 3:10). 이는 "네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을 수 있고"(창 3:19)한 말씀에 기초한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남께서는 게으르고 나태한 행동을 싫어하신다는 것도 포함 한 것으로 봅니다(시 128:2 잠10:4). 그리고 노동은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창 1:28)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교리로 자신들의 게으름을 합리화시키는 자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교제의 떡을 나눌 자격이 없는 것입니다. 일하면 얻어지는 품삯이 있습니다. 그 받는 대가는 행복하지요 만약에 할 일이 없어서 놀고만 있으면 이는 불행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6일 동안 힘써 이하고 주일날 예배하고 심신이 편안함을 얻으면 재충전하여 또 다시 새로운 기분으로 즐겁게 일할 것입니다.
결론
행복의 조건을 과도한 욕심에서 찾으면 죽을 때까지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루 먹을 양식으로 만족하게 여기고(딤전 6:6-19). 주안에서 마음이 평안하여 매사를 감사하게 여기고 찬송하며 사는 환경이 되며 할 일 있어서 매일 놀지 않고 일하여 풍족한 삶을 살 때 이것이 바로 행복의 조건이 될 줄로 알아야 합니다.
출처/이윤근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