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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 2:11-20.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형통한 복”을 허락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느혜미야2장은 두 부분으로 나눌수 있는데요
2:1-10. 바벨론의 수산궁에서 느헤미야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수가 있습니다.
2:11-20은 예루살렘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수가 있습니다.
1-10절에 나타난 느혜미야의 기도하는 모습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하여 기도할 때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는 상황 가운데 처하게 될 때우리는 쉽게 기도를 중단해 버리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본문은 느헤미야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기도할 것에 대한 힘이 되는 말씀입니다.
이란은 고대 역사에서 페르시아(바사)로 알려진 나라입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술관원으로 일했던 때는 아닥사스다 롱기마누스왕이 다스리던 때입니다
술맡은 관원들은 왕의 면전에서 술을 맛보는 일을 포함하여 왕실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은 페르시아의 왕의 여름궁인 수산궁에서 지금은 12월에 해당하는 기슬르월에 예루살렘 성은 불타버리고 폐허처럼 버려지고 백성들은 도덕적으로 황폐한 상태인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게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예루살렘성을 재건을 할수 있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4개월에 걸쳐서 그는 끈기 있게 기도했습니다
이 느헤미야의 기도는 어떻게 응답되고 있습니까?
8-9절에 나타납니다.
먼저 아닥사스다왕의 즉각적이고 호의적인 반응을 볼수가 있습니다.
또 느헤미야가 왕에게 청원한 모든 것을 다 허락하는 것을 볼수가 있고요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았던 호의까지 배풀어 주었음을 볼수가 있습니다.
왜 이러한 기도의 기적이 일어났습니까?
8절을 보니 “내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셨다”는 고백에서 알수 있는 것은왕이 마음을 바꾼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하셨기 때문인 것을 알수 있습니다.
잠언 21:1절에 보면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제한된 기대를 뛰어넘어서 정부의 고위관리들에게 이르기까지 인간의 전 역사에 개입하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하나님의 섭리다라고 말합니다
“섭리란 하나님의 전능하시고 항존하시는 능력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능력으로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들을 손으로 붙드시며잎과 줄기와 비와 한밭, 풍작과 흉작, 식량과 마실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을 주재하신다
사실 모든 것은 우연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엄청난 재난을 당하고, 어떤 사람을 변화시킬수 없어서 좌절하고 있을때 그 어떤 사람이 나의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골육지친이었을때이 사람이 변화되기를 수년을 기도하지만 전혀 변화으 기미가 없어 좌절하고 싶을때
이 느헤미야의 고백은 우리에게 힘이 됩니다.
우리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개입하실수 있으며예기치 못한 더 좋은 것을 주심으로 우리를 놀라게 하실수 있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에베소3장 20절에서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하나님”이라고 소개합니다.
바라건대 이 사실로 인하여 여러분들이 끈기 있게 기도하게 되고
하나님의 섭리적인 역사를 대망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짧아서 우리들을 구원하실 없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기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손입니다.
느헤미야가 눈에 보이는 왕이라는 세상의 힘을 의지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손을 의지 한 것처럼여러분들이 세상의 끈을 놓고 하나님을 끈을 잡을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에 나타난 11-20절까지는 느헤미야에 예루살렘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수가 있습니다.
일국의 대통령이나 특사가 중동을 방문한다면 보통 군악대, 붉은색 카펫, 국기, 그리고 의전행사가 뒤따를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을때 그를 환영하는 팡파르도 없었지만 이곳에서도 하나님의 손길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그는 삼일동안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의지하며 무엇을 어떻게 할것인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3일째 밤에 하나님의 손은 그를 감동하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손에 의지하여 성을 순시하고느헤미야는 백성들에게 성전재건을 호소합니다.2:17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그리고 느헤미야는 두가를 가지고 설득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선한 손이 지금까지 자신을 도우신 일과 왕이 모든 것을 허락한 사실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합니다
2:18 절을 봅니다.
그런데 여기에 반대자들이 등장합니다.<19절>
느헤미야는 어떻게 이러한 반대자들을 대처합니까?
20절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를 형통케 하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천상을 향하는 믿음을 가지고 지상의 방해물들을 맞설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특별히 느헤미야가 고백하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하늘의 하나님이었습니다.
1장4절에서도 기도를 시작할 때도 “하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1장5절에서도 하늘의 하나님,
2장4절에서도 하늘의 하나님,
본문 2:20절에서도 “하늘의 하나님,
여러분 하늘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상의 왕들이 가진 능력은 불완전하고, 때가 되면 뽑히고, 무너지고, 쇠합니다.
천년의 영화를 누리며 영영히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예루살렘서도 무너지는 것을 경험한 느헤미야는눈앞에 있는 세계의 중심의 지상의 왕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볼수가 있습니다.
하늘은 완전하고 무한하고 전지전능함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완전한 인간의 왕을 신뢰하기 보다는 완전한 하늘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왕을 의지할때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눈앞에 보이는 지상의 거대한 힘에 눌릴때 하늘의 능력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바라기는 하늘의 하나님을 볼수 있는 눈이 열리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바리기는 하늘의 하나님을 의지할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지상의 왕을 바라볼때 걱정과 근심이 일어나지만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볼때 기대와 기적이 일어나고 모든 것을 상대화 시킬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을 바라볼때 하나님의 향통하심을 기대할수 있는 것입니다.
“형통”이라는 말은 “성공하다”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성공과 실패의 열쇠 이십니다.
하나님의 손안에서 형통한 인생, 성공한 인생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런데 형통함은 그냥 따라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늘의 하나님을 신뢰할 때 형통함을 축복으로 누릴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성공의 개념은 하나님을 바라보는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바랄수 없는, 기대할수 없는 그런 환경속에서도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형통케하실수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우리의 입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이 떠나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에게
형통한 삶을 살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요한사도는 성도들이 범사에 형통할 것을 기도하고 있습니다.
바라기는 여러분들이 범사에 형통한 복을 누릴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들의 가정마다 형통한 복이 넘치기를 축복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