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고미영교수
말은 단순히 무엇을 표현하거나 무엇을 알려주는 데에만 사용되지 않는다. 그보다 말이란 우리에게 알려진 모든 것에 간섭한다. 우리가 아는 세계에 대한 모든 진실은 우리의 말이 지어 낸 것이다. 말이 없다면 우리의 세상도 없다.
상담자들이 사용하는 말은 매일 생활에서 사용하는 말이 아니라 교육이나 훈련을 통해 새로 배운 말들이 많다. 그러나 이런 말 가운데에는 오히려 상담자를 제한하는 것이 많다. 예를 들면 상담자가 가족을 만날 때 그는 가족을 상담자와 같은 한 사람으로 보지 말라고 훈련받는다. 가족은 하나의 기관차와 같이 서로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집단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기관차를 돌리기 위해 사용하는 엔진은 각 가족마다 다르다. 그것을 작동하는 원리에 대해 수많은 이론이 나와 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원활하게 이 기관차를 돌릴 수 있을 지에 대해서도 자세히 기술되어있다. 가족을 만나는 상담자는 독립된 개인을 보기 보다는 기관차의 부품으로서의 사람을 보라는 요구를 받는다. 이렇게 전문 이론에 묶여 있다보면, 상담자의 말은 매일 일어나는 일에 대한 말이 아니라 거대한 기관차 엔진에 대한 말로 바뀌어 버린다. 이때부터는 사람과 사람의 말이 아니라 사람과 기관차 부품과의 말이 되어 버리는 묘한 상황이 벌어진다.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현실 자체를 바꾸는 힘이 있다. 상담자가 가족과 만날 때 어떤 말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일이 새로 벌어지게 될 지를 결정한다. 상담자의 말은 가족에게 어떤 일을 기대하는 지를 보여준다. 만일 상담자가 가족들이 스스로 해결을 찾으리라고 믿으면 이런 신념은 그의 말에 나타난다. 가족이 능력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면 그가 가족과 만나서 하는 대화에서 이런 신념은 결국 드러난다. 말을 그 사람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말을 사용하는 가에 따라 우리와 만나는 사람들은 바뀔 수 있다. 우리의 말에 상대방은 응답하고 그 기대를 채워간다.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서로의 의미를 보충해서 완성시킨다. 상대방이 없으면 우리의 말은 미완성이다. 우리가 하는 말에 상대방은 큰 영향을 받고, 그리고 반대로 우리 역시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다시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사람들의 어렵고 아픈 경험을 이해하고 그 경험을 다룰 수 있는 것은 우리의 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말은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 통제력을 쥐어주는 열쇠이다. 결국 우리가 우리 상황에 대해 말로써 이해하고 그 의미를 통제할 수 있으면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통제할 수 없다면 그 상황에 대해 말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상담자들은 가족의 상황을 잘 모를 때 그들의 말로써 그 상황을 통제하려 한다. 어떤 가족에 대해 상담자 자신의 의미를 부여하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의 한 사람 한사람은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지니고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사람들은 서로의 의미를 나눌 수 있을 때에만 대화를 할 수 있고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 가족을 기관차처럼 다룬다면 거기에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가족은 다만 대화를 통해 알 수 있다. 모든 현실은 객관적이 아니라 온전히 우리가 해석하는 현실이다. 우리의 해석을 통해 생기는 의미는 우리 삶을 조성하고 우리가 택할 다음 단계를 결정하는데 가장 강력한 영향을 미친다.
상담은 모든 것을 대화를 통해 한다. 상담자들이 자신의 이론에 엄격히 구속되어 일하게 될 때에, 그들과 다른 말을 쓰는 가족의 현실을 읽어낼 수 없다. 기계적인 이론의 적용은 참된 대화를 막는다. 그보다는 가족들의 말을 올바르게 읽어내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가족들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서로의 배경을 이해하며 각자가 지닌 통찰력과 이해가 부분적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서로에게 아직 읽혀지지 않은 텍스트와 같다. 사람들 사이의 이해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의도한대로 읽는 것을 배울 때에만 일어날 수 있는 것이다. 상담자들이 이와 같이 가족들에 대한 유능한 독자가 될 때에만, 서로의 대화가 성립되고, 그들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상담의 성공은 말과 직접 연관된다. 우리의 말과 현실사이에는 서로 뗄 수 없는 연결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