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10
고미영교수 2004.12.24 조회 : 524
참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성취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고, 또 어떤 사람들은 남들과의 관계 속에서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자기 자신을 보며 자신은 존재한다고 느낀다.
하지만 나는 이 물음에 대해 한 사람이 참으로 존재하기 위해서 그가 살펴봐야 하는 것은 바로 자신이 가진 내면 세계라고 답하고 싶다. 우리는 내면 세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사랑을 하고, 또 행복과 슬픔을 느낀다.
만일 우리에게 내면 이 없다면 우리는 존재 자체를 통째로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걸어야 하는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러나 이 외부 세계라는 것은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제멋대로의 법칙에 의해서 운행되고 있다. 우리가 소중하게 지킬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우리 내면 안에 있다.
어린 아이에게 그가 정복하고 소유하고 싶은 세계는 아직 미지수에 불과하다. 이 세계는 한 사람의 밖에 펼쳐져 있는 듯하다. 외부와의 접촉을 넓혀가면서 아이들은 성장하게 된다.
그러나 자라나고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이런 세계를 내 안으로 끌어들인다. 밖에서 일어나는 외적인 대화들은 성장하면서 내적인 대화로 스며들게 된다. 이것을 보가스키는 내적 지향성, 즉 중심을 향해 뻗어 가는 성장이라고 표현했다. 우리의 내적 지향성은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우리 내면 안의 고유한 영역을 자라게 해준다.
이때부터 우리는 두 세계 사이에서 살게된다. 때로 우리는 존재의 양 비탈 사이에 끼여 불안한 균형을 유지해 가는 곡예사와 같이 우리를 끌어들이는 양 세계 사이에서 고민하고 갈등하기도 한다.
예전에 어느 매맞는 부인이 있었다. 그 부인이 내게 왔을 때는 때리던 전 남편과 헤어져 새로운 가정을 꾸민 후였다. 나는 어떻게 전남편을 떠날 수 있었는지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부인은 학대하는 남편과 살면서 무기력하고 포기한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자신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하고 도저히 어린 젖먹이를 혼자 키워낼 자신도 없었다. 계속해서 맞고 무시를 당하면서도 남편이 자신과 아이를 먹여주는 편안한 가정을 떠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나 어느 날 밤, 그 부인은 갑자기 어떤 생생한 감각이 자신 안에서 떠올랐는데 이것은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었다. 마치 지각 변동이 일어난 것 같은 기분, 망치에 얻어맞아 정신이 멍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 느낌에 대하여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그 부인은 아이와 함께 조용히 집을 떠났다. 무엇이 그 부인으로 하여금 그런 결단을 하게 했던 것일까.
그 부인은 ‘더 이상 이렇게 살수는 없다'‘이것은 사람으로서 사는 삶이 아니다’라는 내면 세계의 부름을 들었다. 자신의 내면의 세계가 눈을 뜨고 그녀에게 대항하여 스스로 일어난 것이다. 편안함을 보장해 주는 외적인 세계에 그냥 눈감고 머물러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의 내면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꾸준히 주장해 온 내면의 세계가 그녀에게 그대로 머물지 말 것을 요구해왔다. 인간의 내면에 스며 있는 이 신비한 세계는 어떤 것에도 그 존엄성을 굴복시키지 않는다. 결국 이 내면 세계는 그 부인으로 하여금 참으로 존재하도록 그녀를 일으켜 세운 것이다.
우리는 일생의 모든 순간마다 내면 세계를 성장시키고 우리 존재와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우리 모두는 이미 존엄성을 지니고 이 땅에 태어났다. 우리에게 부여된 이 존엄성은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내면 세계에 더욱 충실할수록 이 존엄성은 보다 많은 가치들을 우리 삶에 불러올 것이다. 이 존엄성으로 말미암아 우리 존재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져간다.
이럴 때 우리는 비록 짧은 시간을 살다가지만 영원히 지속되는 가치로 빛날 우리의 참 모습으로 존재하게 된다. 우리의 내면 세계는 우리에게 항상 재창조의 가능성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의 외부에 존재하는 세계는 너무나 빨리 우리를 피해서 달아나 버리는 듯하다.
우리의 내부 세계 안에서 그것을 포착하여 재창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우리의 양 세계에 조화와 일치를 가져올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존재의 중심을 향해 자라가는 세계는 점점 더 또렷이 우리의 현실이 되어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