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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민목사 (나성영락교회)
지난주간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겨레가 흥분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 들떠 있었다.
오늘은 저희 교회가 교육주일로 지키는 날이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쑥스러운 것이다. 개인이나 한 국가나 교육이 바로 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교육은 한 국가와 한 사회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는 열쇠이다.
오늘 교육이 너무 지식과 기술을 팔고 사는 교육이 되다 보니까 학교교육에서 참으로 배우고 훈련받아야 할 사람됨의 교육, 인격교육과 도덕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교육은 강도에게 무기를 들려주고 정신병자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교육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교육의 비대와 타락을 교육철학자 이반 일리히(Ivan Illich)는 Schooling Society(학교의 사회화)라고 비판하였다. 세상에 가장 비극적이고 심각한 것이 무엇인가? 올바른 인간을 만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교육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원 중의 의원이 되시고 교사 중에 교사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한 교사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계셨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주님이 산상보훈을 강론하는 것을 듣고 무리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서기관들도 가르치는 일에는 도사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의 가르침을 통해 강조한 것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심오한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소위 이것을 이야기식 교육(Story-telling Education)이라 부른다. 저희도 어려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교육적으로 참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식의 교육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약점을 살펴보면 너무 교리적이고 율법적인 지식전달의 교육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선택하여 먹고 자면서 공동체훈련을 통해 영성훈련과 인격교육, 그리고 제자훈련을 하셨다. 우리에게 이러한 면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너무 ''하지 말라''는 식의 소극적인 교육에서 ''하라''는 식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한 교사였다. 그가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많지만
1)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다. 구약에는 하나님을 보는 자는 죽으리라 했다. 그런데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보여주셨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종교가들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주님처럼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섭리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준 분이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며 그 사랑과 은혜 안에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2) 인간의 실존을 잘 설명해 주셨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시고 알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반면에 죄로 인해 그 인격이 파괴되고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비참한 병든 사회를 만들고 이웃 간에도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적대관계로 전락하게 된 것을 일깨워주셨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되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귀한 신분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3) 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갖게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누군가를 깨닫게 하시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지고 살게 하셨다.
오늘이 아버지날도 되는데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살아야 가정이 살고 사회와 국가가 산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위치에 있지 못하고 아버지의 역할을 바로 감당하지 못할 때 가정은 바로 세워지지 못하며 자녀들도 바로 성장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좋은 교사로서 삶의 모범과 Role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전서 4장 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아버지 같은 교사가 될 것을 말씀하셨다.
지난주간은 우리나라가 분단된 지 55년 만에 처음으로 남북의 두 정상이 만나는 역사적인 사건으로 말미암아 온 겨레가 흥분하고 미래에 대한 기대 속에 들떠 있었다.
오늘은 저희 교회가 교육주일로 지키는 날이기 때문에 교육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교육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말하는 것은 오히려 쑥스러운 것이다. 개인이나 한 국가나 교육이 바로 되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 교육은 한 국가와 한 사회의 미래와 운명을 결정하는 열쇠이다.
오늘 교육이 너무 지식과 기술을 팔고 사는 교육이 되다 보니까 학교교육에서 참으로 배우고 훈련받아야 할 사람됨의 교육, 인격교육과 도덕교육은 거의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늘의 교육은 강도에게 무기를 들려주고 정신병자의 손에 칼을 쥐어주는 것과 같은 교육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대교육의 비대와 타락을 교육철학자 이반 일리히(Ivan Illich)는 Schooling Society(학교의 사회화)라고 비판하였다. 세상에 가장 비극적이고 심각한 것이 무엇인가? 올바른 인간을 만들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할 교육이 병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낙심하고 절망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원 중의 의원이 되시고 교사 중에 교사가 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한 교사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교육의 중요성을 잘 알고 계셨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주님이 산상보훈을 강론하는 것을 듣고 무리들은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하였다. 그의 가르침은 서기관들과 같지 않고 권위가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다.
서기관들도 가르치는 일에는 도사들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권위가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의 가르침을 통해 강조한 것이 비유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과 심오한 진리를 가르친 것이다. 소위 이것을 이야기식 교육(Story-telling Education)이라 부른다. 저희도 어려서 할아버지 무릎에 앉아서 옛날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것이 교육적으로 참 좋은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식의 교육을 회복하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교회교육의 약점을 살펴보면 너무 교리적이고 율법적인 지식전달의 교육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오셔서 제자들을 선택하여 먹고 자면서 공동체훈련을 통해 영성훈련과 인격교육, 그리고 제자훈련을 하셨다. 우리에게 이러한 면이 너무 빈약하다. 그리고 너무 ''하지 말라''는 식의 소극적인 교육에서 ''하라''는 식의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교육으로 탈바꿈해야 한다고 본다.
예수님은 참으로 위대한 교사였다. 그가 세상에 오셔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 많지만
1) 하나님을 우리에게 분명히 보여주셨다.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다고 말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 볼 수 없다. 구약에는 하나님을 보는 자는 죽으리라 했다. 그런데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하나님의 인격과 성품을 보여주셨다. 물론 그 전에도 많은 종교가들이 우리 안에 내재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러나 주님처럼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구원하시고 섭리하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준 분이 없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체험하며 그 사랑과 은혜 안에서 구원받게 되었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다.
2) 인간의 실존을 잘 설명해 주셨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가? 내가 누구인가를 보여주시고 알게 하셨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하셨다. 반면에 죄로 인해 그 인격이 파괴되고 하나님을 떠나 마귀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비참한 병든 사회를 만들고 이웃 간에도 사랑의 관계가 아니라 경쟁과 적대관계로 전락하게 된 것을 일깨워주셨다. 그러나 회개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되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귀한 신분을 회복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3) 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갖게 하셨다.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내가 누군가를 깨닫게 하시고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여 주셨을 뿐만 아니라 바른 가치관과 역사관을 가지고 살게 하셨다.
오늘이 아버지날도 되는데 가정에서 아버지들이 살아야 가정이 살고 사회와 국가가 산다. 아버지가 아버지의 위치에 있지 못하고 아버지의 역할을 바로 감당하지 못할 때 가정은 바로 세워지지 못하며 자녀들도 바로 성장하지 못한다. 아버지가 좋은 교사로서 삶의 모범과 Role을 보여주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도 고린도 전서 4장 15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 말했다. 말하자면 아버지 같은 교사가 될 것을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