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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주시는 복 (민수기 6장 22-27절)
단 한번만이라도 행복하게 살아보는 것을 평생의 소원으로 여기던 한 독신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행복의 작은 조각 하나만이라도 달라고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의 집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누군가? 문을 열어보았더니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여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신 것입니다. 남자는 너무도 기쁜 마음에 행복의 여인을 집안으로 맞이하려 했습니다.
"그대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행복이라고 합니다"
"어서 오시오. 나는 행복을 원했답니다"
그 때 그 여인이 말했습니다.
"잠깐만요. 내게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 데 언제나 함께 여행을 다닌답니다"
남자는 그녀의 여동생을 보고 놀랐습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언니에 비해 동생은 아추 추한 모습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남자가 물었습니다.
"당신의 동생이 틀림없습니까?"
"네, 틀림없는 저의 동생입니다. 이름은 불행이라고 하지요"
남자는 언니만 집으로 초대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행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언니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그건 곤란해요. 동생과 나는 형제이므로 언제나 함께 한답니다. 우리들을 분리해서 생각할 수는 없어요. 내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동생이 함께 해야하니까요. 나만을 원하신다면 나는 더 이상 당신 앞에 나타날 수가 없군요" 사람들은 누구나 복을 원하고 행복해지길 원합니다. 복의 시작이 정초에 있다 생각했기에 신년벽두이면 더 더욱 한 해가 복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혼자 다니는 법이 없습니다. 행복이 있는 곳에는 불행도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새해 시작에 복의 개념을 바로 파악하고 불행 속에서도 어느 곳에 함께 있을 행복을 찾아가며 살아간다면 금년 한 해는 복된 해가 될 줄로 믿습니다.
1. 누가 복을 주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복을 주시는 이는 초월적이거나 신령한 어떤 존재로 생각했습니다.
태양은 초월적인 존재로 보여 일찍부터 숭배의 대상이 되었고 고목나무나 바위 등 조금 이상하게 생긴게 있으면 경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질문명이 발달할 수록 정신적으로는 공허하기에 경배의 대상은 많아져 갑니다.
성경은 하나님만이 창조주가 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신다고 했습니다.
본문에서 "여호와"라는 말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이 복의 주관자임을 믿었습니다.
그것은 막연하게 알고있는 상식이 아니라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사야 45장 7절. "나는 빛도 짓고 어두움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너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복의 주관자임을 알았습니다. 복의 근원을 바로 안 것입니다. 그래서 복의 창조자, 복의 원천, 복의 샘물인 그분을 열심히 신앙했기에 복을 엄청나게 받았습니다.
*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인물들을 배출했으며
* 경제적으로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 그들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 평화를 지키며 사랑하는 예루살렘, 평화의 도성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나라는 어떻습니까?
우리 국민들은 샤마니즘적인 복의 개념을 갖고 살았습니다. 복을 달라고는 했지만 그 복을 주시는 분이 어떤 분이시고 복을 줄 수 있는가를 생각해보지도 않고 조상적부터 그래왔으니... 그냥 아무 생각없이 복을 달라고 합니다.
복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철저히 이 사실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들은 복된 민족이라기보다는 불행한 민족입니다. 유태인이라는 것 때문에 2천년이나 유랑했고 죽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민족적 불행 앞에서도 그들에게는 남이 알지 못하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이시다"
이스라엘은 능력있는 민족입니다. 그들은 광야에서도 살아남은 백성들이고 애굽생활 4백여년, 바벨론 포로생활 70년에도 자기 민족의 정체성을 잃지 않은 강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강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이 세계를 주장하시며 복을 주관하시는다는 사실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시 127편 2절에는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으며 수고의 떡을 먹어도... " 라고 하면서 하나님만이 정녕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습니다.
2. 복받을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인격의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23절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이같이 축복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즉 택한 백성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들은 복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할례를 받고 여호와의 율법과 법도를 지키며 사는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복받기를 사모하기 전에 먼저 여호와의 말씀 대로 살았습니다.
여호와만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복의 근원자 되시고 복의 샘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떤 역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섬기면 복이 오고 복받은 민족이 된다는 것을 알앗습니다. 그들은 바로 섬긴 것입니다.
복의 주관자가 하나님이시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은 왜 중요한가?
그것은 복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을 완전히 다르게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복의 개념을 보세요.
* 복의 사회성이 없어요. - 나혼자 복을 받으면 그만입니다. 이기적입니다.
* 복의 윤리성이 없어요. - 바르게 깨끗하게 정직하게 살면서 복을 받아야 하는 데 그냥 돈만 벌면 그만입니다. 그러니 본인은 복을 받았다고 하는 데 주위에서는 욕해요.
목사가 진심으로 축복의 기도를 할 수가 없어요. 그건 복은 복이지만 하나님을 복의 주관자로 알고 얻는 복이 아닙니다.
* 복의 과정성이 없어요. - 복은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수고와 노력과 땀이 있어야 하는 데 일확천금을 노립니다. 투기합니다. 그래서 복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복은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기에 바람에 나는 겨마냥 오래가지를 않습니다. 자식들에게 놈팽이 기질만 심어주고 오히려 패가망신하는 겁니다.
하나님만이 복의 주관자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
사회성 - 남에게 유익을 주는 복.
윤리성 - 바르게 벌고 바르게 쓰고.
과정성 - 사람들이 인정하는 복.
이게 합쳐져 마음에 떴떳함이 옵니다.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되고 존경을 받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로 부터 오는 복을 받아야 진짜 복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복의 근원에 연결이 되었습니다.
이제 복받을 그릇은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받을 짓만 하면 됩니다.
복받을 짓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 줄 알아 좋아하는 일은 열심히 하고 싫어하시는 일은 하지 않으면 복이됩니다.
목사는 바로 교인들이 참 복을 받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해 있습니다.
구원? 그것은 예수님을 믿으면 단 한번으로 끝납니다.
누구에게나 구원에 관해서는 목사의 역할은 한번 뿐입니다. 그럼에도 목사가 계속 있어야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 바로 믿어 복받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에서 제사장의 역할은 섬김과 축복권입니다.
그들은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대속의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울러 백성들을 위해 축복했습니다.
23절,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27절, "그들은 이같이..."
그래서 옛 히브리 학자들은 "복을 주시는 것은 제사장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에게 있고 제사장은 그 입을 대신하여 전달하는 것이라 하여 제사장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경시하지 말찌니라"고 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 모두가 제사장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나 하나님께 직접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목사를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은 그제나 이제난 동일한 원칙들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복받도록 인도하고 지도하고 기도하는 자로 있는 것입니다.
복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에 복이없어요. 입으로 복을 헐어버려요.
"기도해줘도 안 났던데?"
설교를 하고 나면 금방 설교에 흉을 보아요.
이런 것들에서 바로 되지 못하고 정초에 기도원 찾고 신령한 목사 찾아서 안수받으려 하고...
다 부질없는 일이어요. 내가 복받을 짓만 한다면 하나님은 강목사에게 안수받아도 복을 주셔요. 복받을 일을 해야 합니다.
금년 한 해, 복을 구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이 진정한것인 줄 알고 그 복을 사모해야 합니다.
미국의 정신건강협회가 행복한 생애를 위하여 권고한 5대 원칙이 있다.
1. 너그러워지라.
자기 자신과 남에 대한 태도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져라. 남을 바라보는 눈에 독기들을 빼십시오. 그 눈에 하나님께서 복을 보게 하실 것입니다.
2. 현실적으로 자기를 평가하라.
자기의 능력과 처지에 대해서 현실적이며 정직한 평가와 자기 이해를 하라는 뜻입니다. 공주병 치료하라는 것이지요. 남에 대해서 "제까짓게..." 이런 마음을 품지말라는 것입니다.
3. 자부심을 가지라.
남들의 평가로부터 독립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성취에 대해서 스스로 만족하면 족합니다.
4. 무엇을 하던지 최선을 다하고 그것으로서 만족하라.
후회란 실수에서 오는 것보다는 최선을 다하지 못한데서 옵니다. 결과를 염려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
5. 명랑하게 살라.
밝게 살려고 노력해 보라는 것입니다. 웃으면 복이 와요 라는 말도 있지 않습니까?
이상의 행복의 조건은 돈이나 건강에 필요한 비타민, 운동 같은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마음가짐이나 인간관계에 있어 좋은 태도를 말합니다. 우리는 복의 창조자이시며 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복은 맡아 놓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복을, 행복을 누리지 못하면 그거야 어찌해 볼 도리가 없습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