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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복된 3대 관계 (빌4:14-20)
< 선교하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
요새 미션퍼블릭에서 저의 책을 출판하면서 보람된 일이 참 많습니다. 지난 2월 말, 몽골의 임준호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얼마 전 몽골의 교정국장이 저에게 4천 명이 넘는 몽골 죄수들의 정신교육을 부탁했습니다. 그들에게 목사님의 책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를 번역해 공급하고 싶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형수도 많고 장기수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기쁘게 그 책의 몽골 판권을 드리고 이윤이 생기면 전액 선교비로 쓰도록 허락해드렸습니다. 한국 서점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많이 팔리다가 이제는 몽골까지 그 책이 대량으로 보급된다고 생각하니까 책을 발행한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틀 전에는 안양에서 몽골의 임병철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이상하게도 몽골에 저의 책이 큰 인기가 있어서 이번에는 저의 책을 대량으로 사가려고 준비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몽골에 한국인 사역자가 400명 정도 있는데 그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대량으로 주문했습니다.
제가 책값을 안 받겠다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먼저 주문했고,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고 사역비에서 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책값을 지불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문제로 임병철 선교사님과 식당에서 5분쯤 “받아라! 안 받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제가 이겨 안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날 김정효 목사님과 교회로 돌아오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책을 몽골로 시집을 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처럼 선교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들뜨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 선교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선교에 중독 되고, 선교하면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왜 선교합니까? 돈이 있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주님의 명령이고,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에 선교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문형준 감독님이 우리 집에서 10일 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감독님은 제가 선교사님들을 많이 돕고, 미션퍼블릭에서 많은 수입이 있으니까 제가 아주 여유 있게 사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너무 딴판이어서 정길진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목사님이 그렇게 검소하게 사는 줄 몰랐어요.” 좋게 말해서 검소하게 산다는 것이지 너무 초라하게 산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며칠 전에 정길진 목사님으로부터 듣고 얼마 전에 문 감독님이 했던 잔소리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때 문 감독님이 계속 저에게 여러 번 잔소리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 어떻게든지 작은 집이라고 집을 마련할 궁리를 해보세요. 나중에 후회해요.” 저는 그것이 그냥 하는 잔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저의 사는 모습을 보고 정말 안타까워서 하는 목회 선배의 진심 어린 애정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검소하게 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절약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있으면 그냥 쓰는 스타일입니다. 선교사님도 개인적으로 많이 돕습니다. 사실 미션퍼블릭 수입으로 매월 적금을 부으면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해서 월세 생활을 청산하고 내 집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수입보다 헌금을 더 하니까 돈을 벌면서도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제가 잘사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문 감독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제가 집도 없이 작은 빌라에서 초라하게 사니까 생각과 너무 달라 조금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어떻게 생각해도 저 자신은 마음이 행복합니다. 저는 스스로 누구보다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선교하는 사람은 이미 부자인 줄 믿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선교하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 가장 복된 3대 관계 >
요새 여승훈 선교사님은 ‘3.3.5. 운동’을 하면서 ‘300명의 기도후원자, 30개의 협력교회, 50명의 개인 물질후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이주비용만 421만원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인터넷을 통해 2분이 헌신했습니다. 이제 10여일 후에는 선교지로 떠나게 됩니다. 초기 이주비용에도 조금 더 헌신해야 되고, 무엇보다 매달 꾸준히 헌신할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오늘 나눠드린 ‘여승훈 민경선 선교사 후원’이라고 쓴 봉투에 드린 모든 선교헌금은 전액 선교사님에게 드릴 것입니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의 관계처럼 가장 복된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복된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요? 본문을 통해 3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
사도 바울은 거룩한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떳떳하고 꿋꿋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11절 말씀처럼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했고, 12절 말씀처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실천했고, 13절 말씀처럼 주님 안에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사도 바울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며 살았지만 사실 차가운 로마 감옥에서 지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마음과 형편을 빌립보 교인들은 알아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 사도가 저렇게 기뻐하니까 그냥 놔두자!”고 하지 않고, 그 기뻐하는 이면에 있는 어려운 형편을 알아주고 사도 바울의 옥중수발을 하도록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보내고, 또한 헌금도 보냈습니다.
그 모습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평가합니까?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의 어려움에 같이 동참하려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것에 대해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처럼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남의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교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선교사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면 그 필요를 채워보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와 선교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함께 참여한다!”는 말은 행동하는 믿음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미국에 빌이라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원하는 것은 다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철저히 신뢰하며 살겠다.” 그리고 믿음으로 꽤 큰 회사의 매니저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그 도시의 할렘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첫째 날 밤, 그는 배가 고파 하나님께 음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음식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날도 하루 종일 음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날 그는 더욱 간절히 음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시험하지 마시고 이제 저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보내주세요.”
다음날, 그는 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약속한 대로 음식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마음에 분노를 품고, 또 한편으로는 비탄의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두드리면서 침대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음식을 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지난 4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후에 현기증이 나서 침대에 쓰러져 천장을 봤습니다. 그때 조금 후에 귀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빌!” 그는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어요. 마침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군요.” 그때 계속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내가 네게 기도 응답을 했는데, 너는 항상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더구나!” 빌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잘 이해가 안 돼요.”
그때 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밖으로 걸어 나가 보라.”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현관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전히 음식은 없었습니다. 그때 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또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구나! 위를 보라.” 빌은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큰 광고판이 보였습니다. 그 광고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낮일을 할 사람 구함. 점심 제공됨(DAY LABORERS WANTED! LUNCH WILL BE PROVIDED).”
하나님께서 일하는 사람에게 식사를 주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말씀을 보면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이란 환상적인 모험도 아니고, 자주 입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14년 전에 한번 입신을 했어도 결코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14년 만에 교훈적인 목적상 부득불 그 입신한 얘기를 했었습니다(고후 12:1-5). 입신하려는 생각은 최대한 멀리할수록 좋고, 실천하려는 생각은 최대한 가까이할수록 좋습니다.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보여주는 3대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천, 행동, 참여’라는 단어입니다. 인간관계를 잘하고 교회생활에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길은 실천하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2.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형편과 사정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알아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당시 많은 교회들은 “바울 사도님이 선교하면서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 그 힘든 형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교회는 빌립보 교회뿐이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많은 교회들이 혀끝의 사랑은 많았지만 손끝의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은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손을 펴서 사도 바울의 필요를 실제로 채워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필요를 한번 채우는데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그런 관심과 사랑에 대해 칭찬하면서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그 행위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행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어느 날, 인색한 한 부자가 천국에 가자 천사가 그를 위해 예비된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많은 아름다운 맨션을 통과해서 마침내 그의 집으로 인도되었는데, 그의 집은 천국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있는 작고 낡은 집이었습니다. 그가 항의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 있어요? 왜 제 집은 이렇게 초라해요?” 그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보낸 물질로는 이만큼밖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인색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무엇인가를 주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되돌려줍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도 드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주어집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물질적 헌신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구약의 제사의 의미를 사용해서 그들의 물질적인 헌신은 단순히 돈이 빌립보에서 로마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옮겨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물질적인 헌신은 교회와 사역자와 선교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고, 우리가 교회와 선교 공동체의 한 가족이 되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그의 책 ‘하나님을 바라는 삶(Desiring God)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여러분의 행복을 영원히 만들 수도 있고 혹은 깰 수도 있습니다(Money can make or break your happiness forever).” 우리의 헌금생활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고, 우리의 장래의 축복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물신주의를 버리고 교회와 선교사의 필요를 채우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큰 축복으로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서로를 축복하는 관계
사도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힘써 축복합니다.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 19절 말씀은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구절을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백지수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축복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분은 가난해야 영성이 깊어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에덴동산은 원래 풍요로운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 사이에서 가난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원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의 풍요를 주시고, 그 마음의 풍요는 언젠가 물질적인 풍요도 불러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난을 극복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 성도들과 우리 선교회 후원자들의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 교회와 저희 선교회 후원자들 중에 거룩한 큰손이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욕심 없이 드리는 물질훈련을 하면서 이 축복의 기도와 말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하면 점차 창대하게 될 것이고, 때로 어떤 필요가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채워주시는 역사도 있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 저희 교회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본부에서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년에 선교헌금이 예상보다 90만 불 이상이 적게 들어와 할 수 없이 미국 본부직원 사례비를 10% 삭감하고,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선교헌금도 7%를 삭감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전례 없는 결정에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본부 직원에게는 몰라도 복음의 첨병으로 전 세계에 나가 있는 1200명의 선교사들에게 못할 행동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 문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선교사님들의 생활비를 7% 삭감한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선하게 해결해주시고 앞으로 이런 결정이 없도록 해주소서!”
그 뒤 며칠 후, 교단본부로 체크(check, 수표) 두 장이 배달되었습니다. 한 장은 100만 불(10억원)짜리 체크였고, 또 한 장은 60만 불(6억원)짜리 체크였습니다. 두 체크 모두 무명으로 드려진 것이었습니다. 그 무명으로 드려진 체크를 보고 모든 교단 관계자와 선교사들은 90만 불의 문제를 통해 160만 불을 주신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자에게 결코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할 때마다 항상 이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헌신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헌신하십시오. 또한 어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서로를 축복해주고 나눔을 도전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 주는 삶이 받는 삶입니다 >
어제는 가수 기부왕 김장훈 뉴스가 화제였습니다. 그는 매달 1500만원씩 보육원 등에 기부하고, 일산의 청소년을 위한 교회 설립에는 12억원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를 산다고 합니다. 가끔 그도 “가수 수명이 짧은데 노후 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 “아니다! 행복은 돈이 있지 않다. 가수 생명이 끝나면 포장마차를 해서라도 먹고 살자!”라고 생각하고 계속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입니까? 자녀가 그렇게 사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겠습니까? 부모가 나누고 베풀며 사는 모습은 최대의 자녀교육입니다. 그 자녀에게는 결코 걸식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가정에는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임병철 선교사님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습니다. 임병철 선교사님은 그 동생들에게 만날 때마다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동생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돈을 벌게 했었습니다. 결국 바로 밑의 남동생이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밑의 여동생은 옷 회사를 경영하면서 더 큰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동생 부부가 얼마나 선교에 많은 헌신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 여동생에게 우 집사라는 화교 출신의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계 은행의 부사장까지 하다가 지금은 아내 회사의 자금관리를 해주고 있는데, 그가 얼마 전 단기선교로 몽골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임 선교사님 집에서 와이셔츠를 직접 다림질하는데 그 와이셔츠를 보니까 다 낡아서 10년도 더 입은 와이셔츠였습니다 백만장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고 선교의 큰손으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입니까? 사람이 그런 행복을 모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우 집사에게 축복의 비결을 물으면 그는 간단히 말합니다. “저는 두 가지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십일조와 선교헌금, 이 두 가지가 저희 가정의 축복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잊지 않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록펠러는 말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매주 1불 50센트씩 주급의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면 백만 달러씩 십일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금액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도 담대하게 십일조를 할 수 있었다는 뜻도 있고, 또 하나는 작은 금액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의 십일조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드리고 나누기를 힘쓴다고 다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드리고 나누는 삶은 믿음의 중요한 표시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철저한 헌신의 표현입니다(Our tithe is an expression of our trust in God‘s provision and our total surrender to God). 선교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믿음과 헌신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여승훈 선교사님을 위해 기분 좋게 헌신하십시오. 오늘 말씀 시간 전에 여승훈 선교사님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처럼 프랑스의 복음화 율은 전체 인구의 0.63%입니다. 그 프랑스를 거점으로 해서 북 아프리카 지역의 모슬렘 권을 타깃으로 삼아서 선교를 떠나는 초임 선교사에게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 선교사로서의 첫 발걸음부터 무거운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힘써 선교후원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주비를 제외하고 매월 필요한 금액은 주택비, 관리비, 의료비로 96만원, 기본 생활비가 46만원, 자녀교육비가 23만원, 행정 사무비가 18만원, 도합 183만원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복음의 최전선에서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방에서 영적인 병참 지원부대가 되어 그들의 생활을 최대한 책임지려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여승훈 목사님은 제가 신학교 때에 가르친 제자였습니다. 목사님은 선교사 파송 결정이 나고 지난 3개월 동안 여러 방면으로 후원자를 찾았지만 아직 선교사님 부부 가족 외에는 후원자를 많이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초임 선교사의 어려움입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저도 개인적으로 “어떻게 여 선교사님 부부에게 힘을 실어줄까?”하고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선교사님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협력교회와 개인적인 물질후원자도 붙여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기도한 후에 감동되시는 분들은 물질적인 후원에도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까지 여승훈 선교사님이 직접 만들어온 ‘여승훈 민경선 선교 후원’이라고 쓰인 봉투에 힘써 헌금해주시고, 인터넷으로 헌금하실 분은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후원구좌 - 국민은행 284-21-0264-873 이한규(요삼일육선교회) - 로 ‘여승훈’이라는 이름과 함께 헌금해주십시오.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하실 분은 저의 말씀을 관리하는 요삼일육선교회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선교후원 난에 가입하시고 ‘여승훈 후원’이라는 코멘트를 남겨주십시오.
주는 삶이 받는 삶이고, 선교하는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입니다. 항상 선교와 구제를 위한 거룩한 큰손이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학생은 공부하고, 사업가는 사업하고, 주부를 그런 꿈을 남편과 자녀에게 도전하고 격려하고,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호주머니를 비우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더 큰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 선교하는 사람이 부자입니다 >
요새 미션퍼블릭에서 저의 책을 출판하면서 보람된 일이 참 많습니다. 지난 2월 말, 몽골의 임준호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얼마 전 몽골의 교정국장이 저에게 4천 명이 넘는 몽골 죄수들의 정신교육을 부탁했습니다. 그들에게 목사님의 책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를 번역해 공급하고 싶습니다. 그들 중에는 사형수도 많고 장기수도 많습니다. 그들에게 사랑과 용서와 희망의 메시지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해도 될까요?”
그 말을 듣고 제가 기쁘게 그 책의 몽골 판권을 드리고 이윤이 생기면 전액 선교비로 쓰도록 허락해드렸습니다. 한국 서점가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책이 인터넷과 입소문을 통해 많이 팔리다가 이제는 몽골까지 그 책이 대량으로 보급된다고 생각하니까 책을 발행한 이후 가장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이틀 전에는 안양에서 몽골의 임병철 선교사님을 만났습니다. 이상하게도 몽골에 저의 책이 큰 인기가 있어서 이번에는 저의 책을 대량으로 사가려고 준비하고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몽골에 한국인 사역자가 400명 정도 있는데 그분들에게 선물하겠다고 ‘상처는 인생의 보물지도’와 ‘하나님과 깊은 만남’을 대량으로 주문했습니다.
제가 책값을 안 받겠다고 하니까 선교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내가 먼저 주문했고, 내가 개인적으로 돈을 지출하는 것이 아니고 사역비에서 지출하는 것이기 때문에 꼭 책값을 지불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안 받겠다고 했습니다. 결국 그 문제로 임병철 선교사님과 식당에서 5분쯤 “받아라! 안 받겠다!”고 실랑이를 벌이다가 제가 이겨 안 받는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그날 김정효 목사님과 교회로 돌아오면서 너무 기분이 좋았습니다. 마치 책을 몽골로 시집을 보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처럼 선교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들고 들뜨게 만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삶이 선교하는 삶입니다. 우리는 선교에 중독 되고, 선교하면서 행복을 느껴야 합니다. 왜 선교합니까? 돈이 있어서 선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교는 주님의 명령이고, 주님의 명령을 이행하면서 행복하기 때문에 선교하는 것입니다.
작년에 문형준 감독님이 우리 집에서 10일 간 지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 전까지 감독님은 제가 선교사님들을 많이 돕고, 미션퍼블릭에서 많은 수입이 있으니까 제가 아주 여유 있게 사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과는 너무 딴판이어서 정길진 목사님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저는 이 목사님이 그렇게 검소하게 사는 줄 몰랐어요.” 좋게 말해서 검소하게 산다는 것이지 너무 초라하게 산다는 얘기였습니다.
그 얘기를 며칠 전에 정길진 목사님으로부터 듣고 얼마 전에 문 감독님이 했던 잔소리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다. 그때 문 감독님이 계속 저에게 여러 번 잔소리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 어떻게든지 작은 집이라고 집을 마련할 궁리를 해보세요. 나중에 후회해요.” 저는 그것이 그냥 하는 잔소리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것이 저의 사는 모습을 보고 정말 안타까워서 하는 목회 선배의 진심 어린 애정표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검소하게 사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절약하는 스타일도 아니고 있으면 그냥 쓰는 스타일입니다. 선교사님도 개인적으로 많이 돕습니다. 사실 미션퍼블릭 수입으로 매월 적금을 부으면 작은 아파트라도 마련해서 월세 생활을 청산하고 내 집 생활을 할 수 있지만 수입보다 헌금을 더 하니까 돈을 벌면서도 오히려 마이너스입니다. 그것도 모르고 사람들은 제가 잘사는 줄 알고 있습니다.
문 감독님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제가 집도 없이 작은 빌라에서 초라하게 사니까 생각과 너무 달라 조금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남은 어떻게 생각해도 저 자신은 마음이 행복합니다. 저는 스스로 누구보다 부자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선교하는 사람은 이미 부자인 줄 믿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선교하는 사람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 가장 복된 3대 관계 >
요새 여승훈 선교사님은 ‘3.3.5. 운동’을 하면서 ‘300명의 기도후원자, 30개의 협력교회, 50명의 개인 물질후원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초창기 이주비용만 421만원이 필요합니다. 이제까지 인터넷을 통해 2분이 헌신했습니다. 이제 10여일 후에는 선교지로 떠나게 됩니다. 초기 이주비용에도 조금 더 헌신해야 되고, 무엇보다 매달 꾸준히 헌신할 사람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 문제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오늘 나눠드린 ‘여승훈 민경선 선교사 후원’이라고 쓴 봉투에 드린 모든 선교헌금은 전액 선교사님에게 드릴 것입니다. 이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본문에 나오는 사도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의 관계처럼 가장 복된 관계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복된 관계란 어떤 관계일까요? 본문을 통해 3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서로를 알아주는 관계
사도 바울은 거룩한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떳떳하고 꿋꿋했습니다. 본문 바로 앞에 나오는 11절 말씀처럼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했고, 12절 말씀처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우고 실천했고, 13절 말씀처럼 주님 안에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처럼 사도 바울은 아무리 어려워도 그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항상 기뻐하며 살았지만 사실 차가운 로마 감옥에서 지내면서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 마음과 형편을 빌립보 교인들은 알아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 사도가 저렇게 기뻐하니까 그냥 놔두자!”고 하지 않고, 그 기뻐하는 이면에 있는 어려운 형편을 알아주고 사도 바울의 옥중수발을 하도록 에바브로디도 집사를 보내고, 또한 헌금도 보냈습니다.
그 모습에 대해서 사도 바울이 어떻게 평가합니까?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의 어려움에 같이 동참하려는 사려 깊은 마음을 가진 것에 대해 크게 칭찬했습니다. 그처럼 좋은 인간관계를 가지려면 남의 형편과 사정과 처지를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기도하면 교회에 무엇이 필요하고 선교사님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면 그 필요를 채워보려고 힘써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와 선교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특히 이 구절에서 “함께 참여한다!”는 말은 행동하는 믿음을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행동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미국에 빌이라는 적극적인 믿음을 가진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원하는 것은 다 주신다고 믿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스스로 다짐했습니다. “나는 오늘부터 하나님께서 내 모든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철저히 신뢰하며 살겠다.” 그리고 믿음으로 꽤 큰 회사의 매니저 자리에서 사표를 내고 그 도시의 할렘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첫째 날 밤, 그는 배가 고파 하나님께 음식을 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는 음식을 찾으러 밖으로 나갔는데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기도 부족이라고 생각하고 그날도 하루 종일 음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도 여전히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날 그는 더욱 간절히 음식을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저를 시험하지 마시고 이제 저에게 기적적으로 음식을 보내주세요.”
다음날, 그는 또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런데 여전히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약속한 대로 음식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한편으로는 마음에 분노를 품고, 또 한편으로는 비탄의 눈물을 흘리고 가슴을 두드리면서 침대를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이제 음식을 주시지 않으면 저는 죽습니다. 지난 4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간절히 기도한 후에 현기증이 나서 침대에 쓰러져 천장을 봤습니다. 그때 조금 후에 귀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빌!” 그는 소리쳤습니다. “하나님! 제가 여기 있어요. 마침내 저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군요.” 그때 계속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내가 네게 기도 응답을 했는데, 너는 항상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더구나!” 빌이 말했습니다. “무슨 말씀이세요? 잘 이해가 안 돼요.”
그때 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빌! 밖으로 걸어 나가 보라.” 그는 밖으로 걸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저분한 현관의 여기저기를 살펴보았습니다. 여전히 음식은 없었습니다. 그때 또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또 엉뚱한 방향을 보고 있구나! 위를 보라.” 빌은 위를 쳐다보았습니다. 바로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 큰 광고판이 보였습니다. 그 광고판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낮일을 할 사람 구함. 점심 제공됨(DAY LABORERS WANTED! LUNCH WILL BE PROVIDED).”
하나님께서 일하는 사람에게 식사를 주십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말씀을 보면 일하기 싫어하면 먹지도 말게 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생활이란 환상적인 모험도 아니고, 자주 입신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14년 전에 한번 입신을 했어도 결코 그것을 자랑하지 않고 14년 만에 교훈적인 목적상 부득불 그 입신한 얘기를 했었습니다(고후 12:1-5). 입신하려는 생각은 최대한 멀리할수록 좋고, 실천하려는 생각은 최대한 가까이할수록 좋습니다.
믿음이 참된 믿음임을 보여주는 3대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실천, 행동, 참여’라는 단어입니다. 인간관계를 잘하고 교회생활에서 존경받고 인정받는 길은 실천하고, 행동하고, 참여하는 태도에 있습니다.
2. 서로를 채워주는 관계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형편과 사정을 알아주었습니다. 그러나 알아준 것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으로 도움의 손길을 폈습니다. 당시 많은 교회들은 “바울 사도님이 선교하면서 얼마나 힘드실까?” 하고 그 힘든 형편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바울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 발 벗고 나선 교회는 빌립보 교회뿐이었습니다.
본문 15절 말씀을 보십시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받는 내 일에 참예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많은 교회들이 혀끝의 사랑은 많았지만 손끝의 사랑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은 혀로만 사랑하지 않고 손을 펴서 사도 바울의 필요를 실제로 채워주었습니다.
계속해서 본문 16절 말씀을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번 두 번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빌립보 교인들은 사도 바울의 필요를 한번 채우는데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그의 필요를 채워주었습니다. 그런 관심과 사랑에 대해 칭찬하면서 사도 바울은 본문 17절에서 그 행위가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행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어느 날, 인색한 한 부자가 천국에 가자 천사가 그를 위해 예비된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가는 도중에 많은 아름다운 맨션을 통과해서 마침내 그의 집으로 인도되었는데, 그의 집은 천국 외곽의 한적한 곳에 있는 작고 낡은 집이었습니다. 그가 항의했습니다. “아니! 이럴 수 있어요? 왜 제 집은 이렇게 초라해요?” 그때 천사가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당신이 보낸 물질로는 이만큼밖에 지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인색하게 살지 말아야 합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19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우리가 어떤 것에 무엇인가를 주면, 그것은 반드시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되돌려줍니다. 심은 대로 거둡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도 드릴 줄 아는 사람에게 더 주어집니다.
본문 18절 말씀을 보십시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의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물질적 헌신의 가치를 보여주려고 구약의 제사의 의미를 사용해서 그들의 물질적인 헌신은 단순히 돈이 빌립보에서 로마로 옮겨진 것이 아니라 땅에서 하늘로 옮겨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향기로운 제물이라고 했습니다.
성도의 물질적인 헌신은 교회와 사역자와 선교사의 필요를 채우는 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향기로운 제물이고, 우리가 교회와 선교 공동체의 한 가족이 되었다는 가장 뚜렷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과 물질을 드리는 것에서 기쁨과 보람을 느끼는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그의 책 ‘하나님을 바라는 삶(Desiring God)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돈은 여러분의 행복을 영원히 만들 수도 있고 혹은 깰 수도 있습니다(Money can make or break your happiness forever).” 우리의 헌금생활은 우리의 인생을 좌우하고, 우리의 장래의 축복을 좌우합니다. 우리가 물신주의를 버리고 교회와 선교사의 필요를 채우고, 서로의 필요를 채워주려고 할 때 하나님은 크게 기뻐하시고, 큰 축복으로 그와 함께 하실 것입니다.
3. 서로를 축복하는 관계
사도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 빌립보 교인들을 힘써 축복합니다. 본문 19-20절 말씀을 보십시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토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 이 19절 말씀은 엄청난 축복의 말씀입니다. 무디 목사님은 이 구절을 ‘성도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백지수표’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풍성하게 축복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어떤 분은 가난해야 영성이 깊어지는 줄 알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원래 에덴동산은 원래 풍요로운 동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범죄 후에 저주의 가시와 엉겅퀴 사이에서 가난을 맛보게 되었습니다. 가난은 하나님의 원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마음의 풍요를 주시고, 그 마음의 풍요는 언젠가 물질적인 풍요도 불러올 것입니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난을 극복하는 믿음과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거의 매일 성도들과 우리 선교회 후원자들의 물질적인 축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 저희 교회와 저희 선교회 후원자들 중에 거룩한 큰손이 많이 일어나게 하소서!”
욕심 없이 드리는 물질훈련을 하면서 이 축복의 기도와 말을 내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십시오. 현재 우리의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 보여도 상관없습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명을 따라 최선을 다하면 점차 창대하게 될 것이고, 때로 어떤 필요가 있을 때는 하나님께서 극적으로 채워주시는 역사도 있게 하실 것입니다.
얼마 전, 저희 교회가 속한 미국 기독교 선교연맹(C&MA) 본부에서 가슴 아픈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년에 선교헌금이 예상보다 90만 불 이상이 적게 들어와 할 수 없이 미국 본부직원 사례비를 10% 삭감하고, 선교사들에게 보내는 선교헌금도 7%를 삭감한다는 결정이었습니다. 그런 전례 없는 결정에 사람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본부 직원에게는 몰라도 복음의 첨병으로 전 세계에 나가 있는 1200명의 선교사들에게 못할 행동을 한 것 같았습니다. 그 문제로 수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선교사님들의 생활비를 7% 삭감한다고 합니다. 이 문제를 선하게 해결해주시고 앞으로 이런 결정이 없도록 해주소서!”
그 뒤 며칠 후, 교단본부로 체크(check, 수표) 두 장이 배달되었습니다. 한 장은 100만 불(10억원)짜리 체크였고, 또 한 장은 60만 불(6억원)짜리 체크였습니다. 두 체크 모두 무명으로 드려진 것이었습니다. 그 무명으로 드려진 체크를 보고 모든 교단 관계자와 선교사들은 90만 불의 문제를 통해 160만 불을 주신 풍성하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선교하는 자에게 결코 부족함이 없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기도할 때마다 항상 이 빌립보서 4장 19절 말씀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헌신할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헌신하십시오. 또한 어려울 때마다 이 말씀을 기억하고 힘을 내십시오. 하나님은 풍성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힘쓰면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필요를 넘치도록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런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우리는 서로를 축복해주고 나눔을 도전하고 격려하며 살아야 합니다.
< 주는 삶이 받는 삶입니다 >
어제는 가수 기부왕 김장훈 뉴스가 화제였습니다. 그는 매달 1500만원씩 보육원 등에 기부하고, 일산의 청소년을 위한 교회 설립에는 12억원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본인은 보증금 5천만 원에 월세를 산다고 합니다. 가끔 그도 “가수 수명이 짧은데 노후 대비를 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때 “아니다! 행복은 돈이 있지 않다. 가수 생명이 끝나면 포장마차를 해서라도 먹고 살자!”라고 생각하고 계속 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영혼입니까? 자녀가 그렇게 사는 아빠의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많은 것을 배우겠습니까? 부모가 나누고 베풀며 사는 모습은 최대의 자녀교육입니다. 그 자녀에게는 결코 걸식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의 가정에는 대대로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이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임병철 선교사님에게는 두 명의 동생이 있습니다. 임병철 선교사님은 그 동생들에게 만날 때마다 선교의 비전을 심어주고, 동생들에게 선교의 사명을 가지고 돈을 벌게 했었습니다. 결국 바로 밑의 남동생이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그 밑의 여동생은 옷 회사를 경영하면서 더 큰 백만장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여동생 부부가 얼마나 선교에 많은 헌신을 하는지 모릅니다.
그 여동생에게 우 집사라는 화교 출신의 남편이 있습니다. 그는 미국계 은행의 부사장까지 하다가 지금은 아내 회사의 자금관리를 해주고 있는데, 그가 얼마 전 단기선교로 몽골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임 선교사님 집에서 와이셔츠를 직접 다림질하는데 그 와이셔츠를 보니까 다 낡아서 10년도 더 입은 와이셔츠였습니다 백만장자가 그렇게 검소하게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 쓰지 않고 선교의 큰손으로 살고 있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입니까? 사람이 그런 행복을 모르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우 집사에게 축복의 비결을 물으면 그는 간단히 말합니다. “저는 두 가지 말밖에 할 말이 없습니다. 십일조와 선교헌금, 이 두 가지가 저희 가정의 축복의 비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잊지 않고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록펠러는 말했습니다. “제가 처음에 매주 1불 50센트씩 주급의 십일조를 하지 않았다면 백만 달러씩 십일조를 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 말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있습니다. 하나는 작은 금액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도 담대하게 십일조를 할 수 있었다는 뜻도 있고, 또 하나는 작은 금액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했기 때문에 엄청난 금액의 십일조를 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는 뜻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드리고 나누기를 힘쓴다고 다 백만장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드리고 나누는 삶은 믿음의 중요한 표시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의 공급하심에 대한 우리의 신뢰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철저한 헌신의 표현입니다(Our tithe is an expression of our trust in God‘s provision and our total surrender to God). 선교헌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 믿음과 헌신을 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실 것입니다.
이번에 여승훈 선교사님을 위해 기분 좋게 헌신하십시오. 오늘 말씀 시간 전에 여승훈 선교사님이 직접 프레젠테이션을 한 것처럼 프랑스의 복음화 율은 전체 인구의 0.63%입니다. 그 프랑스를 거점으로 해서 북 아프리카 지역의 모슬렘 권을 타깃으로 삼아서 선교를 떠나는 초임 선교사에게 여러분들이 함께 기도하고 있음을 보여줌으로 선교사로서의 첫 발걸음부터 무거운 발걸음이 되지 않도록 힘써 선교후원에 동참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주비를 제외하고 매월 필요한 금액은 주택비, 관리비, 의료비로 96만원, 기본 생활비가 46만원, 자녀교육비가 23만원, 행정 사무비가 18만원, 도합 183만원이 필요합니다. 선교사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복음의 최전선에서 영적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후방에서 영적인 병참 지원부대가 되어 그들의 생활을 최대한 책임지려는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여승훈 목사님은 제가 신학교 때에 가르친 제자였습니다. 목사님은 선교사 파송 결정이 나고 지난 3개월 동안 여러 방면으로 후원자를 찾았지만 아직 선교사님 부부 가족 외에는 후원자를 많이 얻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초임 선교사의 어려움입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니까 너무 안타까워서 저도 개인적으로 “어떻게 여 선교사님 부부에게 힘을 실어줄까?”하고 많이 고민하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할 선교사님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재정적으로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협력교회와 개인적인 물질후원자도 붙여주실 줄 믿습니다. 또한 기도한 후에 감동되시는 분들은 물질적인 후원에도 참여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까지 여승훈 선교사님이 직접 만들어온 ‘여승훈 민경선 선교 후원’이라고 쓰인 봉투에 힘써 헌금해주시고, 인터넷으로 헌금하실 분은 요삼일육선교회 대표 후원구좌 - 국민은행 284-21-0264-873 이한규(요삼일육선교회) - 로 ‘여승훈’이라는 이름과 함께 헌금해주십시오. 매월 정기적으로 후원하실 분은 저의 말씀을 관리하는 요삼일육선교회 홈페이지로 들어가서 선교후원 난에 가입하시고 ‘여승훈 후원’이라는 코멘트를 남겨주십시오.
주는 삶이 받는 삶이고, 선교하는 삶이 가장 성공적인 삶입니다. 항상 선교와 구제를 위한 거룩한 큰손이 되겠다는 믿음을 가지고 학생은 공부하고, 사업가는 사업하고, 주부를 그런 꿈을 남편과 자녀에게 도전하고 격려하고, 무엇보다도 지금부터 호주머니를 비우는 지속적인 훈련을 통해 더 큰 물질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출처/이한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