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마티스(Henri Matisse)
활동년도 : 1869~1954
작가소개 : 마티스는 오랜 예술 활동을 통해 신고전주의, 사실주의, 인상주의와 후기 인상주의 등 반드시 그 순서대로는 아니더라도 19세기의 갖가지 미술 운동에서 영향을 섭취하여 자기 예술을 살찌우고 새로운 경지로 끌어올렸다. 전체적으로 보아 마티스의 양식은 이러한 전통을 무시하고는 생각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그는 20세기의 가장 창의적인 거장의 한 사람으로 변신했고, 오늘날 젊은 화가들에게 끊임없이 막강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20세기 전반의 몇 안되는 화가이기도 하다.
마티스의 예술은 분명히 파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으나,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이러한 지역적인 양식을 철저히 뛰어넘고 있었다.
뒷날 이들 작품은 20세기의 국제 미술 문화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파리의 다른 몇몇 거장들에 못지 않은 지위를 굳혔다.
미술사에 있어서 마티스의 명목상의지위는 야수파의 선도자였다. 이는 피카소가, 그리고 어느 모로는 브라크가 입체파의 선도자로 간주되는 것과 마찬기지다. 그러나 야수파는 연약하고도 단명한 운동이었고, 화파를 형성한 후에도 공식화된 강령을 갖춘 적이 없었다. 야수파의 모든 화가들 가운데서도 오로지 마티스만이 치열하면서도 단순화된 색채 조화와 세련된 소묘력을 보다 높은 차원에서 성취해 나가는 위업을 이어갈 수 있었다.
작품명 : 푸른 나부
: 1907
: 캔버스에 유채
: 92x140cm
: 볼티모어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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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녹색 눈의 젊은 여인
: 1909
: 캔버스에 유채
: 66x52cm
: 샌프란시스코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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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이본느 란베르 양
: 1914
: 캔버스에 유채
: 146.5x95.5cm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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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댄 스
: 1910
: 캔버스에 유채
: 258x390cm
: 레닌그라드 에르미타쥬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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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모르풍의 가리개와 젊은 여인들
: 1922
: 캔버스에 유채
: 115x96cm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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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벽무늬 속의 장식적인 인물
: 1924
: 캔버스에 유채
: 131x98cm
: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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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
: 1923
: 캔버스에 유채
: 46x39.4cm
: 필라델피아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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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꿈
: 1935
: 캔버스에 유채
: 80x65cm
: 뉴욕 개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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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음악
: 1939
: 캔버스에 유채
: 115x115cm
: 버팔로 앨브라이트 녹스 아아트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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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연보라색의 드레스
: 1937
: 캔버스에 유채
: 73x60cm
: 볼티모어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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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검은 배경의 독서하는 여인
: 1939
: 캔버스에 유채
: 92x73cm
: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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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루마니아풍의 블라우스
: 1940
: 캔버스에 유채
: 92x72cm
: 파리 국립 근대 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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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명 : 어항앞의 여인
: 1921
: 캔버스에 유채
: 81.3*100.3cm
: 시카고 미술관
: 사색적인 분위기와 심리적인 깊이를 갖는 일종의 초상화로서 벽지며, 깔개, 커튼 같은 밝은 색채의 장식적인 모티프를 즐기던 시기에 와니스(니스)를 써서 그린 작품이다. 금붕어가 든 어항 속을 주시하고 있는 여인은 당시 26세였던 마티스의 딸 마르그리트로 알려져 있다.
우아하고 밝은 실내, 또는 햇볕을 받고 있는 발코니의 여인을 다룬 다른 작품들과는 달리, 이 그림에서는 모델이 화면의 장식적인 한 요소가 아닌 그 자체의 형상으로 비중을 부여받고 있다.
다시 말해서, 여기서는 인물이 테이블의 각도와 뒤의 간막이로 조절된 공간에 입체적인 존재로 앉아 있다. 안정된 색조인 테이블 윗면의 엷은 자홍색과 간막이의 신선한 청색은 여인의 깊은 상념 혹은 수심어린 표정을 미묘하게 돋보이게 하고 있다.
작품명 : 실내-금붕어가 있는 어항
: 1914
: 캔버스에 유채
: 142*98cm
: 파리 근대미술관
: 마티스는 세기초에 파리의 새로운 결정적 회화운동이었던 야수파의 한 중심 멤버였으나, 1910년대에 접어들명서 이미 거기에서 이탈하여 자신의 독자적 세계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명확한 직선과 면, 그리고 찬색 계통의 정적인 색채에 의한 유기적이고 장식적인 화면 구성이었다. 그러한 정신적 변화는 1차대전의 체험에서 받은 영향으로 보는 연구가도 있으나, 다시 하나의 혁명적 움직임이었던 브라크 등의 입체파에 접근하려 했언 점을 말해준다.
분명히 브라크의 색채와 선에 자극 받은 마티스는 여러 형태의 직선적인 구도로 조형적 질서와 균형을 전개시키려고 했다. 그러한 집착의 하나인 이 작품은 금붕어가 들어 있는 어항과 주위와의 관계를 주제 삼고 있으나, 여기서의 초점은 무엇보다도 그 상황의 밝음과 강도의 강조이다. 1910년대에 금붕어를 주제로 한 작품은 모두 금붕어의 선명한 빨강, 부드럽게 움직이는 그 생명의 맑은 표정을 포착하는 데서부터 화면이 형성되고 있다.
작품명 : 호사 -고요, 그리고 열락(悅樂)
: 1907
: 캔버스에 유채
: 210*138cm
: 파리 근대미술관
: 야수파 시기의 마티스의 수법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이다. 색채와 형태에 의한 새로운 표현미를 제시혹 있는 이 작품에는 서 있는 여인, 웅크리고 있는 여인, 꽃다발을 들고 움직이는 여인이 고적적인 나체화에서는 볼 수 없는 형태로 그려져 잇다. 여기선 젊은 여인들의 나체상 자체가 지니는 아름다움이나 눈부심을 외면하는 대신, 그 형상의 명확한 윤곽선과 율동감이 장식적인 리듬을 창출하고 있다. 여인들의 평면적인 색조도 이 화면의 명쾌한 단순화와 장식적 조화에 잘 합치돼 있다.
마티스가 의도한 호사란 세련과 단순화로 제어된 삶의 풍요로움, 다시 말해서 고요와 열락, 질서와 아름다움을 노래한 보드레르의 시 그것이었다. 그에게 있어 표현과 장식적 구성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는 프랑스 회화의 전통적 정신인 명헉함과 질서 존중의 지지자였다. 그 점이 바로 그를 야수파 그룹에서 이내 탈출케 하고, 위대한 자기 실현의 길을 개척케 했다.
작품명 : 빨간 바지를 입은 오달리스크
: 1922
: 캔버스에 유채
: 67*84cm
: 파리 근대미술관
: 야수파 이후의 입체파 수법과 제1차 세계대전의 체험은 마티스의 화풍과 정신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192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는 확실한 자신의 세계로서 사치스런 관능성, 앙드레 토로가 말하는 [시적인 도취], 그리고 야수파 시절의 작품 명제가 상징적으로 시사해 주는 [호사, 고요 그리고 열락]을 급속도로 회복하기 시작한다. 색조는 다시 명확해지고 차가운 선은 사라지며 유기적인 곡선과 자유로운 필치가 화면을 덮는다. 여기서 보는 오달리스크를 비롯하여 일련의 이국적인 나부가 그려지는 것도 이 시기이다.
낭만파 시대에 매력적인 이국 정서로 애호되었던 오달리스크가 여기서는 전혀 별개의 신선한 화면으로 재등장하고 있다. 구도와 시점의 설정 등도 파격적이다. 화려한 장식적으로 구성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보는 사람에게 한낮의 환상마저 느끼게 한다. 퀼로트의 진한 빨강은 자극적인 선명함과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여인의 속살같은 신선한 관능성과 향기로 충만해 있다.
작품명 : 빨간 실내
: 1948
: 캔버스에 유채
: 146*97cm
: 파리 근대 미술관
: 마티스의 만년의 정점으로 여길 수 있는 작품이다. 화면을 가득 메우는 빨강이 압도적인 박력으로 삶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다. 마티스의 화면은 보통 단순함, 명쾌함 등의 특질로 인상지워져 있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언제나 여러 요소가 결합되고 혹은 충만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서로 형태가 다른 4개의 테이블이 나타나면서, 그 위에는 꽃과 과일이 놓여졌고, 바닥에는 짐승의 가죽이 보인다. 거울과 창이 나란히 설정돼 있고, 직선적인 의자의 다리에 테이블 다리의 곡선이 대응한다.
온갖 선과 온갖 시각이 서로 어울려 있고 그것들은 주조색인 빨강 속에 온통 흡수돼 있다. 그런데도 그것들은 복잡하다는 느낌이나 위화감 또는 충돌감을 조금도 일으키지 않는다. 삶의 윤택함이 완전히 체계화되어 모뉴멘탈한 풍성함을 낳고 있다.
1930년대에 이미 거장의 지위를 확립하고 있던 마티스는 2차 대전 후의 시도로서 이러한 기념비적인 세계에 도달한다. 오로지 삶을 찬미하고, 삶의 행복을 추구하는 마음이 가져다 준 하나의 장식적인 아름다움의 세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