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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목사 (양곡교회)
사람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술집에도, 극장에도, 오락실에도, 댄스홀에도, 죄짓는 곳에도 갑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갔다가 후회하기도 하고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돈이 많으면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지만, 가보고 해 보아도 별 것, 별 데가 없습니다. 인생의 참 즐거움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바닷물은 마실 때는 시원해도 마시고 나면 더 목마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찾아가서 누려 보아도 목마르고 결국 죽게 됩니다. 오직 교회에 참된 기쁨, 참된 즐거움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루 와도 좋고, 백 번 와도 좋고, 억 만 번 와도 좋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생명의 강수, 은혜의 샘으로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목사 고시 공부를 고등 고시 공부하듯 했습니다. 문을 닫아 걸고 목숨을 걸다시피 목사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1등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 고시에 1등 하려고 고등 고시 공부하듯이 했는데, 합격자 발표만 하고 1등이 누구인지 2등이 누구인지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1등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니 불합격할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 고시에 4수, 5수를 하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한 번만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몰랐습니다. 제직회를 어떻게 하는지, 당회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심방은 저희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 오시는 것을 보아서 알았지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첫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해 갔는데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 교회에 훌륭한 장로님, 참 귀한 장로님 여섯 분이 계셨는데, 그 장로님들에게 배워 가며 목회를 했습니다. 제직회 하기 전에 장로님께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장로님, 제직회는 어떻게 합니까? 순서는 어떻습니까?"
장로님들이 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그 교회에서 4년 동안 목회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큰 은혜를 주셔서 교회도 많이 부흥했고 또 교우들도 축복을 많이 받았고 사랑이 넘쳤습니다.
그러다가 양곡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양곡교회에 오기가 싫었습니다. 제게 양곡교회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제 아내의 가슴에 불이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아! 이곳은 할 일이 많은 곳이구나."
아내를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 같아서 제가 양곡교회로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했으니 그 교회를 그냥 떠나오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제발 가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어떤 교우는 사과 밑에 편지를 넣어서 보내고, 또 저희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정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떠나올 때 교우들도 울었지만 저도 얼마나 울었는지,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4년 간 정들었던 교우들을 떠나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교회를 옮기지 않게 해 주세요. 다시는 천국에 갈 때까지 목회지를 옮기지 않고 목회하게 해 주세요.''
그때 양곡교회가 좋아서 그런 기도를 했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때 우리 양곡교회는 너무나 초라했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 모습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왔었습니다.
어쨌든 성도를 떠나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도 3년 간은 그 교회 장로님들의 이름, 집사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고, 그저 매일 교회 이름을 부르면서 교회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떠나온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햇수로는 21년째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교회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교우들의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난 지 5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우들이 얼마나 그립고 그 사랑이 얼마나 넘쳤겠습니까?
그래서 1장 10절에도 ''형제들아'' 11절에도 ''형제들아'' 26절에도 ''형제들아'' 2장 1절에도 ''형제들아'' 3장 1절에도 ''형제들아'' 4장 6절에도 ''형제들아'' 라고 부릅니다. 하늘에 별이 수놓아지듯이 16장까지 그저 "형제들아! 형제들아!"하고 부릅니다. 바울의 마음에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이 막 흘러 넘쳤기 때문입니다.
왜 형제입니까?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 아버지의 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도 하나님 아버지 한 분 아래 모인 형제들입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우리는 싸우면 안 됩니다. 시기 질투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생각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다같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끼리 미워하고 시기하면 아픈 일이고 남들이 웃을 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끼리만 형제가 아닙니다. 피부가 달라도, 얼굴이 희든 검든 붉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으니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서로 한 가족애를 느낍니다. 할렐루야!
참 신비롭습니다. 어디에 가도 십자가가 있는 교회를 보면 좋습니다.
이번에 시드니에서 그 교회 목사님께 제가 여쭈었습니다.
"호주인들의 교회는 좀 크지 않아요?"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어요. 얼마나 뜨거운지 거기서 복음 찬송이 다 나와요."
그 말씀을 들으니 기뻤습니다. 호주인들의 교회가 잘 되어도 제가 기쁜 것은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호주에 가서 다섯 개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대표 기도하는 분들마다 빠뜨리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축복하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왜 그분들이 그런 기도를 드립니까?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나라에 사니 나라의 소중함을 모를 것입니다. 나라를 떠나 보면 알게 됩니다. 호주인들이 기분 나쁘면 우리 교민들에게 "돌아가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한답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서럽지만 꾹 참는답니다. 참지 않고 싸우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지구촌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니냐?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니 이 호주는 내 땅이다."
모두 제 말을 듣고 기분 좋아했습니다.
제가 "호주는 내 땅이다! 우리 땅이다!"라고 복창하게 했더니, 얼마나 크게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호주 사람 앞에 가서 일부러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우리 교민들에게도 서러운 일이 많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의사이신 우리 나라 장로님 한 분이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다른 자동차와 부딪쳤습니다. 쌍방 과실로 접촉 사고가 일어났는데, 미국인(백인)이 차에서 내리더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 왜 남의 땅에 와서 이렇게 성가시게 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때 우리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너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이게 어디 너희 나라냐?"
미국인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내 나라가 아니라니?"
"이 나라가 어찌 너희 나라냐? 인디언 나라지. 너희는 늦게 오지 않았느냐? 너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
그러자 미국인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갔답니다.
사실 백인들보다 우리가 인디언과 더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뿌리를 찾으면 모든 땅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도 우리 교민들에게 설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되어야 호주나 미국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을 위해서도 잘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아니, "우리 조국을 축복하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사랑합시다. 나라를 위해서 세금도 많이 내고, 손해도 좀 봅시다. 호주에서는 천만 원 정도 벌면 48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냅니다. 나만 백억을 갖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먹고살고 아이들 교육시키며 살면 되지 않습니까? 나라가 강하고 부유해야 우리도 빛이 나고 해외 교민들도 떳떳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니 고린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고린도 교회가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많았는데, 제일 걱정이 되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걱정거리 교인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게 걱정을 주는 장로님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걱정이 되는 권사님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면 그저 반갑고 자랑스러운 장로님, 권사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나의 멸류관! 나의 멸류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자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입니까? 신앙이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에도 훌륭한 교인, 성숙한 교인들이 많았지만, 어린 교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육신에 속한 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장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은 ''The man without the Spirit, 성령이 없는 자, 중생하지 못한 자, 예수를 모르는 자, 불신자, 지옥 갈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육신에 속한 자''는 천국 갈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어린 자들입니다. 신앙이 어려서 개구쟁이 짓을 하고 시기 질투하고 다투며 단단한 것은 먹지 못하고 젖만 먹는, 조금이라도 책망하는 설교는 듣지 못하고 복된 말씀만 듣는 어린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자라야 할 때는 자라는 것이 기쁨입니다.
신앙은 팍팍 자랍니다. 우리 육신의 키는 남자는 25년 간 자라고 여자는 20년 간 자랍니다. 저는 군에 가서 얼마나 자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입대할 때는 키가 참 작았는데 제대할 때는 얼마나 컸는지 아십니까? 5cm 자랐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군에 가서 실컷 자고 잘 먹었더니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의 키가 자라는 데는 이렇게 20년, 25년이 걸리지만, 영적인 키는 4년 동안 자라면 거의 다 자랍니다. 물론 계속해서 성숙해지고 다듬어지고 성화되지만, 4년 간 자라면 거의 다 자라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3년 만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교육받고 불 세례를 받으니 3년 만에 사도가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를 믿은 지 4년이 되었는데 아직 집사님도 되지 못하고, 전도도 제대로 못하고 새 신자와 똑같은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답답한 신자입니다. 태어나서 4년째 생일을 맞이했는데도 기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다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부담이 되는 자녀입니다. 그래도 부모는 그 자녀를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면 하나님께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우리가 죽죽 자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신앙이 자란 신자는 교회를 돕습니다. 갓난아기는 비행기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식당에서도 소리를 지릅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남을 생각합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은 자기 성질대로 싸우고 시기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교회를 편안하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어린아이는 돈을 쓰기만 하고 벌지 못합니다. 장성해야 취직도 하고 사업도 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둡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성도는 남의 도움만 받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줄도 모르고 남을 돌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 전도도 하고, 구역장 교사 성가대원 안내위원으로 봉사도 하고 남을 돕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전도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으면 구원은 받았지만, 얻어지는 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죽 자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브리스번의 홍요셉 목사님께 들은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눈이 너무 많이 상해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셨답니다. 목사님의 눈이 나빠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하나님! 제 눈을 좀 재창조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에 주셔서 두 눈의 시력이 다 1.5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안경을 벗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홍 목사님이 전도를 참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겸손하신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눈을 치료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성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증권가에서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시세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시세가 올라간 날은 사람들의 걸음이 가뿐가뿐하고 눈이 빛난답니다. 그런데 시세가 떨어지면 풀이 죽어 걸음도 축 처진답니다.
제가 지난번에 일본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다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호텔에서나 백화점에서나 거리에서나 밝게 웃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오래 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그들이 활기찼던 것을 기억하고 도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께 물었더니, 일본 경제가 곤두박질쳐서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지난 10월, 11월 때처럼 회사 문을 많이 닫은 적이 이때까지 없었답니다. 실직자가 사상 최대로 많답니다. 그러니 회사의 근로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의논해서 스스로 월급을 인하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특별히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 중에 정신병자가 그렇게 많답니다. 한창 공부할 아이들이 마약하고 되는 대로 막 사니 부모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회사를 생각해도 답답하고 아이들을 생각해도 답답하니 풀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터를 생각해도 신바람 나고 자녀를 생각해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경제도 성장하고 자녀도 성장해야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해야 됩니다. 신혼 여행이 얼마나 좋습니까? 물론 신혼 때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호주에 갈 때 공항에서 신혼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혼 여행 가면서 싸웠습니다. 하기야 라스베가스에서는 결혼식장 앞에서 신부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신랑과 싸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다 담배를 입에 물고 막 싸웠습니다.
그러나 대개 신혼 부부 때는 좋지 않습니까? 그 신혼의 사랑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저희는 신혼 때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3일간은 좋았는데 3일 후부터 후회했고, 11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11년째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지금은 극에 달해 아내가 부엌에 있어도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제 아내를 좋아합니다. 제가 제 아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비행기 타도 아내의 손을 쓱 잡습니다. 제 아내도 가끔 제 손을 잡아 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해야 합니다.
미국 중서부에 태풍이 불어 한 외딴 집의 지붕이 날아갔습니다. 이불도 날아갔습니다. 부부가 놀라서 일어나니 침대도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부인이 막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오. 정신차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너무 막막해서 우는 것이 아니예요. 기가 막혀서 우는 것이 아니예요. 너무 기뻐서 우는 거예요."
"지붕이 날아가고 침대가 날아가고 있는데 뭐가 기뻐?"
"당신과 외출하는 것이 처음이라, 20년 만에 이렇게 당신과 외출하니 감격해서 우는 거예요."
남편이 아내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지붕이 날아가도 남편과 같이 외출하니 좋다고 하겠습니까?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간에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어야 됩니까? 여러분의 남편을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어야 됩니까?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하고 모든 것이 성장해야 됩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 자녀 성장, 부부 사랑의 성장보다 더 큰 성장, 더 복 있는 성장은 영적인 성장입니다.
세상의 성장은 성장해 보았자 땅에서 끝나고 말지만, 영적인 성장은 하늘에 상달됩니다.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장합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 안의 어린아이로 있지 않고 성장합니까?
젖을 떼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이삭이 잘 자라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창세기 21:8)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자 "이제는 젖을 뗐다. 우리 이삭이 젖을 떼고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하며 잔지를 벌였습니다.
젖은 영양이 풍부해도 맛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 나이가 60이 되고 80이 되어도 매일 우유만 먹으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국수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피자도 먹고, 떡도 먹고, 쌈도 먹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교회에 쌈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집사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란 채소에 쌀밥을 놓고 참기름으로 갠 된장을 얹은 다음 말아서 입에 넣으면 꿀꺽 넘어갈 때 그 맛이 천당입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천당이랍니다.
그러나 아기는 기가 막히는 그 쌈도 먹지 못합니다. 쌈을 싸서 아기 입에 넣으면 아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10년 믿었어도 신앙이 어린 사람은 쌈을 먹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하고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합니다. 신앙이 자라야 밥도 즐기고 교회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자라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식이 쑥쑥 자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예수를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지 않고 계속 그냥 있으면 하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왜 자라지 않느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은 베드로전후서의 결론과 같은 말씀인데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자라 가라. 자라 가라. 자라 가라."
자라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성장하려면 ''나는 자라리라!''하고 각오해야 합니다.
학생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공부하면 절대로 일등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일등 하리라! 나는 일등 한다!''라고 작정한 아이가 일등을 합니다. 그렇게 작정한 아이는 이등을 하면 통곡을 합니다. 이등도 잘 한 것인데 막 웁니다. 그래서 결국 일등을 합니다.
모든 일에 일등 하려면 각오를 해야 됩니다.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이 상이 용사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강을 하면서 상이 용사들을 막 공격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 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니 그들이 화가 나서 그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고, 당신들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상이 용사들이 미친 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올렸습니다. 양팔 모두 가짜 팔이었습니다. 그는 바지도 걷어올렸습니다. 양다리도 다 나무다리였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모든 상이 용사들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악조건에 있어도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 양곡교회가 아주 초라할 때도 저는 세계의 전도 챔피언, 말씀 챔피언의 꿈을 갖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만큼 들어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목회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쓰지 않으십니다.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면 챔피언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테니스든 골프든 야구든 축구든 취미로 해서 챔피언이 됩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골프 챔피언이 되리라. 챔피언이 되고 말리라.''하는 각오로 해야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김미현은 땅콩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키가 작습니다. 미국의 호텔에 묵을 돈이 없어 여관에 묵으며, 밥값을 아끼기 위해 전기 밥솥을 몰래 갖고 가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골프를 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골프 챔피언 된다!'' 라는 각오를 갖고 골프를 했습니다. 그러니 마침내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일에도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헨리 포드가 말했습니다.
"공중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우리 머리 주위에 막 감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 않아서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지,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 한없는 아이디어가 생긴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일을 그냥 하시니 그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잘 하리라!'' 마음먹고 나가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주일 지키고 천당 가면 되지.'' 하면 평생 그렇게 살다가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내가 전도를 제일 많이 하리라.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가 제일 많이 하리라. 나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으리라.''하는 높은 뜻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천만 명을 전도하려는 뜻을 세우고 ''하나님, 저를 통해 천만 명을….''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방송과 문서를 통해 전도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장하려면 그 다음에는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박찬호 선수가 ''하루에 천 번의 스윙을 한다. 내 몸을 해치는 술을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일기를 쓰고, 아무리 피곤해도 스윙을 천 번 하고, 아무리 운동이 잘 안 되어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박찬호 선수가 된 것입니다. "박찬호! 박찬호! 박찬호!"하는 선수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 됩니다.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한다. 하루에 성경을 몇 장씩 읽는다. 기도는 하루에 몇 시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구역장, 성가대원, 교사 등)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장하고, 말씀을 읽을 때 성장하고, 봉사할 때 성장합니다. 봉사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우리 부교역자들에게 ''교회에 등록한 분에게는 6개월 안에 일할 수 있도록 일감을 찾아 주라''고 말합니다. 성가대원을 하든지, 교사를 하든지, 안내위원을 하든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랍니다.
지금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는 우리 강 집사님에게서 어제 편지가 왔습니다. 미국에 가신 지 7개월이 되었는데, 편지를 세 장이나 써서 보냈습니다. 그분이 처음 우리 교회에 나왔을 때 저는 그분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잘 생긴 신혼 부부가 주일마다 1부 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1년 동안 그렇게 예배만 드리고 그냥 갔습니다. 하루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그 부부를 제가 불러 세우고 말했습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지요?"
"무슨 일을…"
"성가대원으로 일 좀 해요."
그분이 자기의 일주일 행복은 주일에 늦잠 자는 것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차피 1부 예배 드리러 나오니 조금 더 일찍 나와서 부부가 같이 성가대원으로 봉사해요."
목사가 그렇게 말하니 거절하지 못하고, 목사의 말이라도 거절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그분들은 거절하지 않고 다음 주부터 성가대원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받은 편지에 보니, 그 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답니다. 주일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축복이 되었답니다. 일찍 나와서 기도하고,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기도하다 보니 믿음이 자라고 더 기도하게 되어 회사의 특혜를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미국으로 갈 때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스턴으로 가게 되어서 제가 이희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가 그 교회에 가니 마침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하고 있더랍니다. 유학생이라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공부보다 신앙을 우위에 두리라. 신앙을 1위에 두리라.''고 결단하고 부부가 같이 40일 특별 새벽기도회에 나갔답니다. 그 새벽기도회 때 성령의 불을 몇 번이나 체험하고 방언 은사를 받고, 부인 집사님은 오랜 지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답니다.
지금 그 교회에서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공부도 잘 하고 있다며 집사님이 감격해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일할 때, 성가대원으로 봉사할 때 성장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오늘 말씀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서 많이 자란 분은 더 잘 자라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래 믿었지만 자라지 않은 분, 그리스도 안의 세상적인 사람, 영적인 어린아이는 오늘부터 잘 자라서 3-4년 후에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하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이 우리의 인격을 보고 ''아, 예수님은 저런 분이구나! 하나님은 저런 분이구나!''하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숙한 교인은 예수님을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성도는 세상 사람과 비슷해서 5년 동안 같이 생활한 사람에게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런 교인은 5년간 옆에 있었던 사람에게도 자신이 교인인지 아닌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크리스천은 하루를 같이 지내는 사람에게도 주님의 향기를 맡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귀한 성직자 한 분이 출장을 갔다 오니 자신이 일생 동안 모아 놓은 귀한 책들이 다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을 도와주는 집사님이 실수하여 서재에 불이 나서 그분의 모든 자료가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그분을 보자마자 집사님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분이 집사님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집사님, 그래도 할렐루야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생 모은 모든 책과 자료가 다 불타도 평안하게 "할렐루야!"하니 그분에게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의 이웃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는 구한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하늘에서도 상을 받습니다.
경제 성장, 부부간의 사랑의 성장, 자녀의 성장, 군인의 진급, 회사원의 승진 등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성장, 최고의 성장은 영적인 성장입니다.
우리와 우리 대한 민국의 모든 성도들,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기쁨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움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술집에도, 극장에도, 오락실에도, 댄스홀에도, 죄짓는 곳에도 갑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는 줄 알고 갔다가 후회하기도 하고 망신을 당하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돈이 많으면 갈 곳도 많고 할 일도 많지만, 가보고 해 보아도 별 것, 별 데가 없습니다. 인생의 참 즐거움이 있는 곳이 없습니다. 바닷물은 마실 때는 시원해도 마시고 나면 더 목마릅니다. 세상에서는 아무리 찾아가서 누려 보아도 목마르고 결국 죽게 됩니다. 오직 교회에 참된 기쁨, 참된 즐거움이 있습니다. 교회는 하루 와도 좋고, 백 번 와도 좋고, 억 만 번 와도 좋습니다.
여러분, 오늘도 잘 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큰 생명의 강수, 은혜의 샘으로 축복하실 것을 믿습니다.
저는 목사 고시 공부를 고등 고시 공부하듯 했습니다. 문을 닫아 걸고 목숨을 걸다시피 목사 고시 공부를 했습니다. 1등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목사 고시에 1등 하려고 고등 고시 공부하듯이 했는데, 합격자 발표만 하고 1등이 누구인지 2등이 누구인지는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조금 섭섭했습니다. 그러나 1등을 하려고 열심히 공부했으니 불합격할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목사 고시에 4수, 5수를 하는 분도 계시는데, 저는 한 번만에 합격했습니다. 그러나 목회는 몰랐습니다. 제직회를 어떻게 하는지, 당회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습니다. 심방은 저희 교회의 목사님이 심방 오시는 것을 보아서 알았지만, 할 줄은 몰랐습니다. 첫 교회에 전도사로 부임해 갔는데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그 교회에 훌륭한 장로님, 참 귀한 장로님 여섯 분이 계셨는데, 그 장로님들에게 배워 가며 목회를 했습니다. 제직회 하기 전에 장로님께 찾아가서 물었습니다.
"장로님, 제직회는 어떻게 합니까? 순서는 어떻습니까?"
장로님들이 제 선생님이셨습니다. 그렇게 그 교회에서 4년 동안 목회를 했는데, 하나님께서 너무 큰 은혜를 주셔서 교회도 많이 부흥했고 또 교우들도 축복을 많이 받았고 사랑이 넘쳤습니다.
그러다가 양곡교회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양곡교회에 오기가 싫었습니다. 제게 양곡교회의 첫인상이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령님께서 제 아내의 가슴에 불이 타오르게 하셨습니다.
"아! 이곳은 할 일이 많은 곳이구나."
아내를 통해 제게 주시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 같아서 제가 양곡교회로 오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렇게 결정했으니 그 교회를 그냥 떠나오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아이들이 제발 가지 말아 달라는 편지를 보내고, 어떤 교우는 사과 밑에 편지를 넣어서 보내고, 또 저희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서….
정이 정말 무섭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거기서 떠나올 때 교우들도 울었지만 저도 얼마나 울었는지, 여기에 도착할 때까지 눈물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4년 간 정들었던 교우들을 떠나오는 것이 얼마나 슬프고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다시는 교회를 옮기지 않게 해 주세요. 다시는 천국에 갈 때까지 목회지를 옮기지 않고 목회하게 해 주세요.''
그때 양곡교회가 좋아서 그런 기도를 했다고 오해하지 마십시오. 그때 우리 양곡교회는 너무나 초라했었습니다. 제가 섬기던 교회 모습의 절반도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하고 왔었습니다.
어쨌든 성도를 떠나는 것은 아픈 일입니다.
제가 그 교회를 떠나 우리 교회에 와서 목회를 하면서도 3년 간은 그 교회 장로님들의 이름, 집사님들의 이름을 부르면서 계속 기도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기도하지 못하고, 그저 매일 교회 이름을 부르면서 교회가 잘 되도록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를 떠나온 지 20년이 되었습니다. 햇수로는 21년째입니다. 그래도 저는 그 교회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교우들의 사랑을 잊지 못합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떠난 지 5년밖에 안 되었습니다. 그러니 교우들이 얼마나 그립고 그 사랑이 얼마나 넘쳤겠습니까?
그래서 1장 10절에도 ''형제들아'' 11절에도 ''형제들아'' 26절에도 ''형제들아'' 2장 1절에도 ''형제들아'' 3장 1절에도 ''형제들아'' 4장 6절에도 ''형제들아'' 라고 부릅니다. 하늘에 별이 수놓아지듯이 16장까지 그저 "형제들아! 형제들아!"하고 부릅니다. 바울의 마음에 고린도 교회를 향한 사랑이 막 흘러 넘쳤기 때문입니다.
왜 형제입니까? 예수님의 피로 하나님 아버지의 한 형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우리 모두도 하나님 아버지 한 분 아래 모인 형제들입니다.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우리는 싸우면 안 됩니다. 시기 질투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입니다.
「얼굴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생각은 달라도 하나님의 자녀
다같이 믿는 하나님의 자녀」
우리는 다 똑같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끼리 미워하고 시기하면 아픈 일이고 남들이 웃을 일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끼리만 형제가 아닙니다. 피부가 달라도, 얼굴이 희든 검든 붉든 상관없습니다. 제가 호주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도 예수님을 믿으니 모두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서로 한 가족애를 느낍니다. 할렐루야!
참 신비롭습니다. 어디에 가도 십자가가 있는 교회를 보면 좋습니다.
이번에 시드니에서 그 교회 목사님께 제가 여쭈었습니다.
"호주인들의 교회는 좀 크지 않아요?"
"수만 명이 모이는 교회도 있어요. 얼마나 뜨거운지 거기서 복음 찬송이 다 나와요."
그 말씀을 들으니 기뻤습니다. 호주인들의 교회가 잘 되어도 제가 기쁜 것은 모든 교회가 다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사랑하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이번에 호주에 가서 다섯 개 교회를 순회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대표 기도하는 분들마다 빠뜨리지 않고 드리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우리 조국 대한민국을 축복하소서!"라는 기도였습니다.
왜 그분들이 그런 기도를 드립니까? 조국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우리 나라에 사니 나라의 소중함을 모를 것입니다. 나라를 떠나 보면 알게 됩니다. 호주인들이 기분 나쁘면 우리 교민들에게 "돌아가라!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라고 한답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서럽겠습니까? 서럽지만 꾹 참는답니다. 참지 않고 싸우겠습니까?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래서 제가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이 지구촌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 아니냐?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 아버지이니 이 호주는 내 땅이다."
모두 제 말을 듣고 기분 좋아했습니다.
제가 "호주는 내 땅이다! 우리 땅이다!"라고 복창하게 했더니, 얼마나 크게 외쳤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호주 사람 앞에 가서 일부러 그런 말은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미국에서 자리 잡고 사는 우리 교민들에게도 서러운 일이 많습니다. 미국에 사시는 의사이신 우리 나라 장로님 한 분이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가 다른 자동차와 부딪쳤습니다. 쌍방 과실로 접촉 사고가 일어났는데, 미국인(백인)이 차에서 내리더니 "너희 나라로 돌아가! 왜 남의 땅에 와서 이렇게 성가시게 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하며 화를 냈습니다. 그때 우리 장로님이 말했습니다.
"너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 이게 어디 너희 나라냐?"
미국인이 놀라며 물었습니다.
"아니, 내 나라가 아니라니?"
"이 나라가 어찌 너희 나라냐? 인디언 나라지. 너희는 늦게 오지 않았느냐? 너도 너희 나라로 돌아가!"
그러자 미국인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갔답니다.
사실 백인들보다 우리가 인디언과 더 비슷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뿌리를 찾으면 모든 땅이 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런데도 우리 교민들에게 설움이 많습니다. 우리가 잘 되어야 호주나 미국에 있는 우리 교민들이 대접을 받습니다. 우리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교민들을 위해서도 잘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이것을 아니, "우리 조국을 축복하소서!"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나라를 사랑합시다. 나라를 위해서 세금도 많이 내고, 손해도 좀 봅시다. 호주에서는 천만 원 정도 벌면 480만 원 정도의 세금을 냅니다. 나만 백억을 갖고 있으면 무엇합니까? 먹고살고 아이들 교육시키며 살면 되지 않습니까? 나라가 강하고 부유해야 우리도 빛이 나고 해외 교민들도 떳떳하게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사랑하니 고린도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고린도 교회가 잘 되기를 바랐습니다.
바울이 세운 교회가 많았는데, 제일 걱정이 되는 교회가 고린도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은 제게 걱정거리 교인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제게 걱정을 주는 장로님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걱정이 되는 권사님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보면 그저 반갑고 자랑스러운 장로님, 권사님,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나의 멸류관! 나의 멸류관!''
데살로니가 교회를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자랑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입니까? 신앙이 자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물론 고린도 교회에도 훌륭한 교인, 성숙한 교인들이 많았지만, 어린 교인들이 더 많았습니다.
오늘 본문의 ''육신에 속한 자''는 성령을 받지 못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장 14절의 ''육에 속한 사람''은 ''The man without the Spirit, 성령이 없는 자, 중생하지 못한 자, 예수를 모르는 자, 불신자, 지옥 갈 자''를 말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육신에 속한 자''는 천국 갈 사람입니다. 성령을 받았고, 예수님을 믿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그러나 어린 자들입니다. 신앙이 어려서 개구쟁이 짓을 하고 시기 질투하고 다투며 단단한 것은 먹지 못하고 젖만 먹는, 조금이라도 책망하는 설교는 듣지 못하고 복된 말씀만 듣는 어린 신자들을 말합니다.
그러니 사도 바울이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사람이 자라야 할 때는 자라는 것이 기쁨입니다.
신앙은 팍팍 자랍니다. 우리 육신의 키는 남자는 25년 간 자라고 여자는 20년 간 자랍니다. 저는 군에 가서 얼마나 자랐는지 모릅니다. 제가 입대할 때는 키가 참 작았는데 제대할 때는 얼마나 컸는지 아십니까? 5cm 자랐습니다. 제가 공부하면서 바쁘게 살다 보니 잠도 제대로 못 잤는데, 군에 가서 실컷 자고 잘 먹었더니 그렇게 자란 것입니다.
사람의 육신의 키가 자라는 데는 이렇게 20년, 25년이 걸리지만, 영적인 키는 4년 동안 자라면 거의 다 자랍니다. 물론 계속해서 성숙해지고 다듬어지고 성화되지만, 4년 간 자라면 거의 다 자라게 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십시오. 3년 만에 사도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 교육받고 불 세례를 받으니 3년 만에 사도가 되고 교회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에 예수를 믿은 지 4년이 되었는데 아직 집사님도 되지 못하고, 전도도 제대로 못하고 새 신자와 똑같은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은 답답한 신자입니다. 태어나서 4년째 생일을 맞이했는데도 기지도 못하고 계속 누워만 있다면 그 자녀는 부모에게 부담이 되는 자녀입니다. 그래도 부모는 그 자녀를 버리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못하면 하나님께 부담이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할렐루야!
그러나 그 마음이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우리가 죽죽 자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신앙이 자란 신자는 교회를 돕습니다. 갓난아기는 비행기에서도 소리를 지르고, 식당에서도 소리를 지릅니다. 남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남을 생각합니다. 신앙이 어린 사람은 자기 성질대로 싸우고 시기하고 문제를 일으키지만, 신앙이 성숙한 사람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해서 교회를 편안하게 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어린아이는 돈을 쓰기만 하고 벌지 못합니다. 장성해야 취직도 하고 사업도 해서 돈을 벌어 가정을 둡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린 성도는 남의 도움만 받습니다. 남을 위해 기도할 줄도 모르고 남을 돌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신앙이 자라면 전도도 하고, 구역장 교사 성가대원 안내위원으로 봉사도 하고 남을 돕게 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목적 가운데 하나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할렐루야!
우리가 전도 열매, 풍성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요한복음 8장 29절에 말씀하십니다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시도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느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신앙이 자라지 않으면 구원은 받았지만, 얻어지는 복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죽죽 자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기도를 다 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브리스번의 홍요셉 목사님께 들은 간증입니다. 목사님의 눈이 너무 많이 상해 성경도 제대로 읽지 못하셨답니다. 목사님의 눈이 나빠 성경을 제대로 읽지 못하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셨답니다.
"하나님! 제 눈을 좀 재창조해 주세요…."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에 주셔서 두 눈의 시력이 다 1.5가 되었답니다. 그래서 안경을 벗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홍 목사님이 전도를 참 많이 하십니다. 그리고 얼마나 겸손하신지 모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그 눈을 치료해 주신 줄로 믿습니다.
성장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경제가 성장하면 사람들이 달라집니다. 증권가에서는 사람들의 걸음걸이만 보아도 시세가 올라갔는지 내려갔는지를 알 수 있답니다. 시세가 올라간 날은 사람들의 걸음이 가뿐가뿐하고 눈이 빛난답니다. 그런데 시세가 떨어지면 풀이 죽어 걸음도 축 처진답니다.
제가 지난번에 일본 갔을 때 일본 사람들이 다 풀이 죽어 있었습니다. 호텔에서나 백화점에서나 거리에서나 밝게 웃는 사람을 보지 못했습니다. 모든 사람의 얼굴이 어두웠습니다. 오래 전에 일본을 방문했을 때는 그들이 활기찼던 것을 기억하고 도쿄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께 물었더니, 일본 경제가 곤두박질쳐서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지난 10월, 11월 때처럼 회사 문을 많이 닫은 적이 이때까지 없었답니다. 실직자가 사상 최대로 많답니다. 그러니 회사의 근로자들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의논해서 스스로 월급을 인하하고 있답니다. 그리고 특별히 부유한 집안의 아이들 중에 정신병자가 그렇게 많답니다. 한창 공부할 아이들이 마약하고 되는 대로 막 사니 부모들이 아이들을 생각하면 희망이 없는 것입니다. 회사를 생각해도 답답하고 아이들을 생각해도 답답하니 풀이 죽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일터를 생각해도 신바람 나고 자녀를 생각해도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면 경제도 성장하고 자녀도 성장해야 됩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해야 됩니다. 신혼 여행이 얼마나 좋습니까? 물론 신혼 때도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호주에 갈 때 공항에서 신혼 부부가 싸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혼 여행 가면서 싸웠습니다. 하기야 라스베가스에서는 결혼식장 앞에서 신부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신랑과 싸우는 것도 보았습니다. 웨딩 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다 담배를 입에 물고 막 싸웠습니다.
그러나 대개 신혼 부부 때는 좋지 않습니까? 그 신혼의 사랑도 계속 성장해야 합니다.
저희는 신혼 때보다 지금이 더 좋습니다. 저는 결혼하고 3일간은 좋았는데 3일 후부터 후회했고, 11년 동안 내리막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다 11년째부터 올라가기 시작해서 지금은 극에 달해 아내가 부엌에 있어도 같이 있고 싶을 정도로 제 아내를 좋아합니다. 제가 제 아내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모릅니다. 비행기 타도 아내의 손을 쓱 잡습니다. 제 아내도 가끔 제 손을 잡아 줍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해야 합니다.
미국 중서부에 태풍이 불어 한 외딴 집의 지붕이 날아갔습니다. 이불도 날아갔습니다. 부부가 놀라서 일어나니 침대도 날아가고 있습니다. 그때 부인이 막 울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이 말했습니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오. 정신차려! 지금은 울 때가 아니야."
"너무 막막해서 우는 것이 아니예요. 기가 막혀서 우는 것이 아니예요. 너무 기뻐서 우는 거예요."
"지붕이 날아가고 침대가 날아가고 있는데 뭐가 기뻐?"
"당신과 외출하는 것이 처음이라, 20년 만에 이렇게 당신과 외출하니 감격해서 우는 거예요."
남편이 아내에게 얼마나 관심이 없었으면 지붕이 날아가도 남편과 같이 외출하니 좋다고 하겠습니까? 슬픈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은 부부간에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아내를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어야 됩니까? 여러분의 남편을 여러분이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사랑해 주어야 됩니까?
부부간의 사랑도 성장하고 모든 것이 성장해야 됩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 자녀 성장, 부부 사랑의 성장보다 더 큰 성장, 더 복 있는 성장은 영적인 성장입니다.
세상의 성장은 성장해 보았자 땅에서 끝나고 말지만, 영적인 성장은 하늘에 상달됩니다. 하나님의 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복을 내려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장합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의 믿음이 예수님 안의 어린아이로 있지 않고 성장합니까?
젖을 떼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낳은 이삭이 잘 자라 젖을 떼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자라매 젖을 떼고 이삭의 젖을 떼는 날에 아브라함이 대연을 배설하였더라』(창세기 21:8)
아브라함은 이삭이 젖을 떼자 "이제는 젖을 뗐다. 우리 이삭이 젖을 떼고 이제는 단단한 음식을 먹게 되었다."하며 잔지를 벌였습니다.
젖은 영양이 풍부해도 맛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우리 나이가 60이 되고 80이 되어도 매일 우유만 먹으면 되겠습니까? 우리가 국수도 먹고, 비빔밥도 먹고, 피자도 먹고, 떡도 먹고, 쌈도 먹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우리 교회에 쌈을 특별히 좋아하시는 집사님이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파란 채소에 쌀밥을 놓고 참기름으로 갠 된장을 얹은 다음 말아서 입에 넣으면 꿀꺽 넘어갈 때 그 맛이 천당입니다."
그 맛이 얼마나 좋은지 천당이랍니다.
그러나 아기는 기가 막히는 그 쌈도 먹지 못합니다. 쌈을 싸서 아기 입에 넣으면 아기가 죽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자라면 먹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10년 믿었어도 신앙이 어린 사람은 쌈을 먹지 못하고 밥을 먹지 못하고 단단한 것을 먹지 못합니다. 신앙이 자라야 밥도 즐기고 교회의 모든 것을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성장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성장하기를 바라십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이 자라지 않기를 바라겠습니까? 모든 부모는 자식이 쑥쑥 자라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과 저를 성령으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서 났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한복음 1:12-13)
예수를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아멘!"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났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라기를 바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자라지 않고 계속 그냥 있으면 하나님께서 걱정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에게 "너희가 왜 자라지 않느냐?"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장 18절은 베드로전후서의 결론과 같은 말씀인데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라합시다.
"자라 가라. 자라 가라. 자라 가라."
자라야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자라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 다음, 우리가 성장하려면 ''나는 자라리라!''하고 각오해야 합니다.
학생이 편안한 마음으로 그냥 공부하면 절대로 일등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 학교에서 일등 하리라! 나는 일등 한다!''라고 작정한 아이가 일등을 합니다. 그렇게 작정한 아이는 이등을 하면 통곡을 합니다. 이등도 잘 한 것인데 막 웁니다. 그래서 결국 일등을 합니다.
모든 일에 일등 하려면 각오를 해야 됩니다.
미국의 저명한 은행의 은행장인 다우링이 상이 용사들의 초청을 받아 특강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특강을 하면서 상이 용사들을 막 공격했습니다.
"당신들은 패배주의자들, 남을 의지하고 국가의 연금을 축내며 되는 대로 먹고 마시며 놀기만 하는 나쁜 사람들입니다. 왜 열심히 일하지 않고 자꾸 의지하려고만 …."
나라를 위해 싸우다 부상당한 상이 용사들을 면전에서 그렇게 공격하니 그들이 화가 나서 그에게 맥주병과 재떨이를 던지며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당신들이 잘못하고 있고, 당신들의 자세가 잘못된 것입니다."라고 계속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상이 용사들이 미친 듯이 일어섰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한쪽 옷소매를 걷어올렸습니다. 쇠갈고리가 나왔습니다. 다른 소매도 걷어올렸습니다. 양팔 모두 가짜 팔이었습니다. 그는 바지도 걷어올렸습니다. 양다리도 다 나무다리였습니다.
갑자기 분위기가 숙연해졌습니다.
"여러분, 나는 열두 살 때 교통 사고를 당했는데, 눈 위에 10시간 동안 버려져 있었습니다. 그 바람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잘라야만 했습니다. 나는 열두 살에 두 팔과 두 다리를 다 잃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의욕을 갖고 ''이대로 최선을 다하며 살리라. 남에게 신세지지 않고 살리라. 나는 성공하리라.''라고 각오하고 최선을 다해 살아서 이렇게 은행장이 되었습니다. 양팔과 양다리가 없는 나도 노력해서 은행장이 되었는데 당신들은 나보다 낫지 않습니까? 왜 그냥 먹고 놀기만 합니까?"
모든 상이 용사들이 유구무언이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아무리 악조건에 있어도 뜻이 있으면 길이 있는 것입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습니다.
우리 양곡교회가 아주 초라할 때도 저는 세계의 전도 챔피언, 말씀 챔피언의 꿈을 갖고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며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오늘 이만큼 들어 쓰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냥 편안하게 목회하면 하나님께서 들어 쓰지 않으십니다.
편안하게 신앙 생활하면 챔피언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테니스든 골프든 야구든 축구든 취미로 해서 챔피언이 됩니까? 힘들고 어려워도 ''나는 골프 챔피언이 되리라. 챔피언이 되고 말리라.''하는 각오로 해야 챔피언이 되는 것입니다.
김미현은 땅콩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키가 작습니다. 미국의 호텔에 묵을 돈이 없어 여관에 묵으며, 밥값을 아끼기 위해 전기 밥솥을 몰래 갖고 가서 밥을 해 먹었습니다.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 골프를 했습니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골프 챔피언 된다!'' 라는 각오를 갖고 골프를 했습니다. 그러니 마침내 챔피언이 된 것입니다.
세상의 일에도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헨리 포드가 말했습니다.
"공중에 수많은 아이디어가 있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우리 머리 주위에 막 감돌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에 몰두하지 않아서 아이디어가 생기지 않지, 자신의 일에 몰두하면 한없는 아이디어가 생긴다."
의미 있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시는 일을 그냥 하시니 그저 그렇게 사는 것입니다. ''잘 하리라!'' 마음먹고 나가면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믿고 주일 지키고 천당 가면 되지.'' 하면 평생 그렇게 살다가 가게 됩니다.
''우리 교회에서 내가 전도를 제일 많이 하리라.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를 내가 제일 많이 하리라. 나는 예수님의 인격을 닮으리라.''하는 높은 뜻을 가져야 합니다.
저는 천만 명을 전도하려는 뜻을 세우고 ''하나님, 저를 통해 천만 명을….''하고 기도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방송과 문서를 통해 전도하게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성장하려면 그 다음에는 계획을 세워야 됩니다.
박찬호 선수가 ''하루에 천 번의 스윙을 한다. 내 몸을 해치는 술을 절대로 마시지 않는다. 나를 돌아보기 위해 매일 일기를 쓴다. 이 세 가지를 지키지 않으면 나는 절대로 잠을 자지 않는다.''라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부터 아무리 피곤해도 일기를 쓰고, 아무리 피곤해도 스윙을 천 번 하고, 아무리 운동이 잘 안 되어도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오늘의 박찬호 선수가 된 것입니다. "박찬호! 박찬호! 박찬호!"하는 선수가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성장하기 위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 됩니다.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한다. 하루에 성경을 몇 장씩 읽는다. 기도는 하루에 몇 시간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잠을 자지 않는다. 나는 무슨 일(구역장, 성가대원, 교사 등)을 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나가야 성장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장하고, 말씀을 읽을 때 성장하고, 봉사할 때 성장합니다. 봉사하지 않으면 성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때때로 우리 부교역자들에게 ''교회에 등록한 분에게는 6개월 안에 일할 수 있도록 일감을 찾아 주라''고 말합니다. 성가대원을 하든지, 교사를 하든지, 안내위원을 하든지 일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랍니다.
지금 미국 보스턴에서 공부를 하고 계시는 우리 강 집사님에게서 어제 편지가 왔습니다. 미국에 가신 지 7개월이 되었는데, 편지를 세 장이나 써서 보냈습니다. 그분이 처음 우리 교회에 나왔을 때 저는 그분의 이름도 몰랐습니다. 잘 생긴 신혼 부부가 주일마다 1부 예배를 드리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1년 동안 그렇게 예배만 드리고 그냥 갔습니다. 하루는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는 그 부부를 제가 불러 세우고 말했습니다.
"왜 아무 일도 하지 않지요?"
"무슨 일을…"
"성가대원으로 일 좀 해요."
그분이 자기의 일주일 행복은 주일에 늦잠 자는 것이라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어차피 1부 예배 드리러 나오니 조금 더 일찍 나와서 부부가 같이 성가대원으로 봉사해요."
목사가 그렇게 말하니 거절하지 못하고, 목사의 말이라도 거절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만, 그분들은 거절하지 않고 다음 주부터 성가대원으로 봉사했습니다.
그런데 어제 받은 편지에 보니, 그 때부터 고통이 시작되었답니다. 주일마다 일찍 일어나는 것이 그렇게 고통스러웠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축복이 되었답니다. 일찍 나와서 기도하고, 성가대원으로 봉사하면서 기도하다 보니 믿음이 자라고 더 기도하게 되어 회사의 특혜를 받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된 것입니다. 미국으로 갈 때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보스턴으로 가게 되어서 제가 이희철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교회를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가 그 교회에 가니 마침 40일 특별 새벽기도를 하고 있더랍니다. 유학생이라 새벽기도를 하는 것이 힘들었지만, ''공부보다 신앙을 우위에 두리라. 신앙을 1위에 두리라.''고 결단하고 부부가 같이 40일 특별 새벽기도회에 나갔답니다. 그 새벽기도회 때 성령의 불을 몇 번이나 체험하고 방언 은사를 받고, 부인 집사님은 오랜 지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답니다.
지금 그 교회에서 기쁨으로 봉사하고 있으며 공부도 잘 하고 있다며 집사님이 감격해서 편지를 보낸 것입니다.
그 집사님이 일할 때, 성가대원으로 봉사할 때 성장한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오늘 말씀이 하나의 기점이 되어서 많이 자란 분은 더 잘 자라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오래 믿었지만 자라지 않은 분, 그리스도 안의 세상적인 사람, 영적인 어린아이는 오늘부터 잘 자라서 3-4년 후에는 훌륭한 일꾼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으십니다. 예수님을 사람의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성숙하면 우리를 만나는 사람이 우리의 인격을 보고 ''아, 예수님은 저런 분이구나! 하나님은 저런 분이구나!''하고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성숙한 교인은 예수님을 보여 주게 됩니다.
그러나 어린 성도는 세상 사람과 비슷해서 5년 동안 같이 생활한 사람에게도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 주지 못합니다. 그런 교인은 5년간 옆에 있었던 사람에게도 자신이 교인인지 아닌지조차 분별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지만 성숙한 크리스천은 하루를 같이 지내는 사람에게도 주님의 향기를 맡게 할 줄로 믿습니다.
귀한 성직자 한 분이 출장을 갔다 오니 자신이 일생 동안 모아 놓은 귀한 책들이 다 잿더미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 집을 도와주는 집사님이 실수하여 서재에 불이 나서 그분의 모든 자료가 잿더미가 된 것입니다. 그분을 보자마자 집사님이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하며 어쩔 줄을 몰랐습니다. 그분이 집사님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습니다.
"집사님, 그래도 할렐루야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해서 선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일생 모은 모든 책과 자료가 다 불타도 평안하게 "할렐루야!"하니 그분에게서 하나님을 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성숙하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우리의 이웃은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할렐루야! 그리고 우리는 구한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하늘에서도 상을 받습니다.
경제 성장, 부부간의 사랑의 성장, 자녀의 성장, 군인의 진급, 회사원의 승진 등 다 좋은 것입니다. 그런 일이 많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좋은 성장, 최고의 성장은 영적인 성장입니다.
우리와 우리 대한 민국의 모든 성도들, 세계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