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407
분류 |
---|
류철랑목사 (부천동광교회)
어떤 사람이 어렵게 공무원이 되었으나 해고를 당했습니다. 이 일 저 일 해보았지만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왼손을 다쳐 우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의 인생에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작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 감옥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난생 처음 겪는 감옥생활은 끝장난 인생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막장이 그의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조각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52세요, 그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입니다. 그 책이 바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돈키호테입니다. 실패에서 내리막으로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꽃을 피웠습니다. 내가 지금 넘어져 있는 자리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최상의 기회일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완벽한 이론이 있어도 현실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 있어도 실제와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하며 잘못되고 싶어 잘못되겠습니까?
실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실패없는 인생이 있을까? 한마디로 “No”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아무리 잘하던 일도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전도자 무디를 찾아와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나는 실패자입니다. 나 같은 실패자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을까요?” 무디는 요한복음 6장 37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심한 알콜 중독자입니다.” 무디는 “내가 읽은 성경 말씀에는 술꾼은 제외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는 처자를 버린 놈입니다.” 무디는 “그것은 매우 나쁜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처자를 버린 자를 제외하고 내게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또 다시 말합니다. “저는 도둑질을 하여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무디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도적질한 사람이나 감옥에 갔다온 사람은 제외하고 오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 조건 없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모두 받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사람은 무디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공한 사람을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사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오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둘입니다. 한 사람씩 분석해보면 보잘 것 없는 인간입니다. 평범한 사람이고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족한 나를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자식이지만 돌아온 것 하나만으로 용서하시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형님도 미워하는 동생이지만 잔치를 베풀고 환영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실패한 인생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야 자신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자기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자기 생각이 모자랐던 것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이 오히려 그를 믿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걸려 넘어진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선지자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자란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사람들은 화가 났습니다.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절)
나는 달리기를 잘못합니다. 뭐는 잘하고... 운동회 때 4등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뛰던 아이가 넘어져서 내가 3등을 했습니다. 그것이 오직 한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영광의 수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방인에게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잘 나갈 때가 아닙니다. 실패하고 있을 때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많은 고기를 잡았고 그는 거기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드로는 약점 투성이요 따라서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갈릴리 호수 같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하다가도 순식간에 노도광풍이 일어납니다. 베드로의 성격도 그렇습니다. 천방지축입니다. 변화무쌍한 갈릴리 호수 같습니다. 그는 칭찬도 최고로 받고 야단도 최고로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하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더냐? 하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하여 최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도 안된다고 거절합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제 발을 씻기시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 13:8)고 하실 때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나섰습니다.
베드로는 문제 투성이였습니다. 실수하고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문제가 많고 실수를 하는 사람이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변한 것입니다. 원석같은 그가 갈고 닦아 보석이 된 것입니다. 변해야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함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빈 병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누구나 쓰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께 쓰임 받기 바랍니다.
패자 부활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패자 부활전에 능하신 코치이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 깨지고 부서진 사람을 만나 그를 새롭게 조립해서 쓸만한 도구로 만드시는 제작자이십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감독이 될 때까지 한국축구의 실력은 3류 내지, 2,5류 밖에 못되었습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과 비교하면 실력이랄 게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선수를 맡은 지 500일만에 16강, 8강의 대승을 가져 온 것은 알고 보면 기본을 바로 잡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개혁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못 올린 한국 축구의 습관을 바꿔 놓겠다고 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순간의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 체질을 벗어나지 못해서입니다. 그가 한국 축구를 볼 때 저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보였고 이래야 되겠다는 자기 방식이 있었습니다. 본선에 대비한 평가전에서 0대5로 지는 수모를 겪으며 그의 별명이 ‘오대영’이라고 비웃어도 자기 방법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력과 스피드에 기반을 둔 압박축구를 펼쳐나갔습니다. 선수들의 정신력과 복종심은 세계적이었으니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하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수가 변해야 우승을 하고, 사람이 변해야 성공합니다. 개혁을 하다보면 걸림돌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했을까 이해도 됩니다. 히딩크 감독이 자기의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비판하는 언론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절하며 꼬치꼬치 묻는 기자에게 ‘머리통을 날리고 싶다’는 폭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부활시키는 명수이십니다. 여론과 같은 인간의 이론이 아닌 하나님만의 방법에 의해서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하여 깨질 것은 깨지게 하고, 약한 부분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히딩크 감독이 500일간 모두 32차례 국가간의 경기를 했습니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깨지더라도 우리보다 강한 팀과 맞붙어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팬들을 즐겁게 하려면 약한 팀과 싸워 이기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런 장난을 쳐서는 안되다고 본 것입니다. 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나보다 앞선 선수를 통해서 기술을 연마해야 합니다. 실수할 기회가 있어야 배우는 것입니다. 예일대학 법대학장인 고홍주 박사는 아버지 고광림 박사로부터 늘 들어온 교훈이 “실패를 거치지 않고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공의 길을 가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실패자를 불러 성공하게 하십니다. 버림받은 인간을 귀하게 만드십니다. 모세는 살인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질그릇을 불러서 보배를 담으십니다. 약한 자를 불러 강하게 만들어 강하게 쓰셨습니다. 너무 강한 사람 예수님에 대해서 불만과 살기가 등등하던 사울을 불러 바울 되게 하셨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넘어졌고 이스라엘도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부활시킵니다.
어떤 사람이 어렵게 공무원이 되었으나 해고를 당했습니다. 이 일 저 일 해보았지만 신통한 일이 없습니다. 하는 일마다 제대로 되는 일이 없다 보니 점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게다가 왼손을 다쳐 우울한 세월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의 인생에 큰 비극이 찾아왔습니다. 작은 실수를 저지른 것이 감옥까지 가게 된 것입니다. 그의 인생은 더 이상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난생 처음 겪는 감옥생활은 끝장난 인생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인생 막장이 그의 인생을 새롭게 만드는 조각실이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에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이 52세요, 그의 이름은 세르반테스입니다. 그 책이 바로 세계적으로 알려진 돈키호테입니다. 실패에서 내리막으로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 그의 인생은 새롭게 꽃을 피웠습니다. 내가 지금 넘어져 있는 자리가 새로운 출발을 위한 최상의 기회일수도 있습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완벽한 이론이 있어도 현실과는 다릅니다. 아무리 완벽한 계획이 있어도 실제와 맞지 않습니다. 인간은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실패하고 싶어서 실패하며 잘못되고 싶어 잘못되겠습니까?
실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실패없는 인생이 있을까? 한마디로 “No”입니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집니다. 아무리 잘하던 일도 실수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가 없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실패도 없지만 성공도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실수하고 실패합니다.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어떤 사람이 전도자 무디를 찾아와 구원의 길을 물었습니다. “나는 실패자입니다. 나 같은 실패자에게도 구원의 길이 있을까요?” 무디는 요한복음 6장 37절을 읽어 주었습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어쫓지 아니하리라” 그 사람은 말하기를 “나는 심한 알콜 중독자입니다.” 무디는 “내가 읽은 성경 말씀에는 술꾼은 제외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는 처자를 버린 놈입니다.” 무디는 “그것은 매우 나쁜 죄입니다. 그러나 성경 말씀은 처자를 버린 자를 제외하고 내게 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하자, 그 사람은 또 다시 말합니다. “저는 도둑질을 하여 감옥에도 갔다 왔습니다.” 무디는 말했습니다 “예수님은 도적질한 사람이나 감옥에 갔다온 사람은 제외하고 오라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는 자는 결코 내어쫓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아무 조건 없이 주님 앞에 나아오는 사람은 모두 받아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그 사람은 무디가 전하는 복음을 받아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성공한 사람을 찾아오신 것이 아닙니다. 실패한 사람을 찾아 오셨습니다.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찾아 오셨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든 자를 찾아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열둘입니다. 한 사람씩 분석해보면 보잘 것 없는 인간입니다. 평범한 사람이고 결함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좋아하는 이유는 부족한 나를 받아주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재산을 탕진한 자식이지만 돌아온 것 하나만으로 용서하시고 끌어안고 입을 맞추시는 사랑 때문입니다. 형님도 미워하는 동생이지만 잔치를 베풀고 환영하는 아버지이십니다. 실패한 인생이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 새로운 인생이 시작됩니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때에야 자신의 실수가 무엇이었는지, 자기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압니다. 자기 생각이 모자랐던 것도 깨닫습니다.
이스라엘도 넘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넘어진 것은 예수님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너무나 잘 아는 것이 오히려 그를 믿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 걸려 넘어진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예수님은 걸림돌이었습니다. 선지자가 고향에서 선지자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는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자란 사람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사람들은 화가 났습니다. 그분이 인류의 죄를 위해 죽으셨다는 말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가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11절)
나는 달리기를 잘못합니다. 뭐는 잘하고... 운동회 때 4등으로 달리고 있었는데 내 앞에서 뛰던 아이가 넘어져서 내가 3등을 했습니다. 그것이 오직 한번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영광의 수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아서 이방인에게 넘어갔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잘 나갈 때가 아닙니다. 실패하고 있을 때입니다.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고 애를 썼지만 전혀 잡히지 않았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였더니 많은 고기를 잡았고 그는 거기서 주님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베드로는 약점 투성이요 따라서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갈릴리 호수 같습니다. 잔잔하고 평온하다가도 순식간에 노도광풍이 일어납니다. 베드로의 성격도 그렇습니다. 천방지축입니다. 변화무쌍한 갈릴리 호수 같습니다. 그는 칭찬도 최고로 받고 야단도 최고로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더냐? 하고 물으셨을 때 제자들이 대답하기를 엘리야라고 하기도 하고 세례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더냐? 하고 물으셨을 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라고 하여 최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시니라...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실 때도 안된다고 거절합니다. 어떻게 선생님이 제 발을 씻기시느냐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다”(요 13:8)고 하실 때 목욕까지 시켜달라고 나섰습니다.
베드로는 문제 투성이였습니다. 실수하고 실패를 거듭합니다. 그가 예수님을 만나 변하여 새 사람이 된 것입니다. 시몬을 베드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문제가 많고 실수를 하는 사람이라는데 있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변한 것입니다. 원석같은 그가 갈고 닦아 보석이 된 것입니다. 변해야 쓸 수 있습니다. 그는 성령이 충만함으로 변했습니다. 하나님이 지배하시는 사람, 하나님께 순종하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성령 충만이란 빈 병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습니다. 성령께서 지배하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하면 누구나 쓰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께 쓰임 받기 바랍니다.
패자 부활전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패자 부활전에 능하신 코치이십니다.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 깨지고 부서진 사람을 만나 그를 새롭게 조립해서 쓸만한 도구로 만드시는 제작자이십니다. 히딩크 감독이 한국 축구의 감독이 될 때까지 한국축구의 실력은 3류 내지, 2,5류 밖에 못되었습니다. 유럽이나 남미 선수들과 비교하면 실력이랄 게 없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런 선수를 맡은 지 500일만에 16강, 8강의 대승을 가져 온 것은 알고 보면 기본을 바로 잡는데서 비롯된 것이었습니다. 어떤 기술을 가르치기보다는 개혁을 이끌어낸 것입니다. 그는 처음부터 월드컵 본선에서 1승도 못 올린 한국 축구의 습관을 바꿔 놓겠다고 했습니다.
실패의 원인은 순간의 실수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습관 체질을 벗어나지 못해서입니다. 그가 한국 축구를 볼 때 저래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보였고 이래야 되겠다는 자기 방식이 있었습니다. 본선에 대비한 평가전에서 0대5로 지는 수모를 겪으며 그의 별명이 ‘오대영’이라고 비웃어도 자기 방법대로 밀고 나갔습니다. 그는 자신의 비전을 세우고 16강 진출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체력과 스피드에 기반을 둔 압박축구를 펼쳐나갔습니다. 선수들의 정신력과 복종심은 세계적이었으니 놀라운 성과를 거두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변화시키는데 주력하신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선수가 변해야 우승을 하고, 사람이 변해야 성공합니다. 개혁을 하다보면 걸림돌이 많습니다. 오죽하면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했을까 이해도 됩니다. 히딩크 감독이 자기의 사생활까지 들먹이며 비판하는 언론기자들이 인터뷰를 요청해도 거절하며 꼬치꼬치 묻는 기자에게 ‘머리통을 날리고 싶다’는 폭언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부활시키는 명수이십니다. 여론과 같은 인간의 이론이 아닌 하나님만의 방법에 의해서만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입니까? 어려운 문제에 부딪치게 하여 깨질 것은 깨지게 하고, 약한 부분을 강하게 만드십니다.
히딩크 감독이 500일간 모두 32차례 국가간의 경기를 했습니다. 세계무대에서 경쟁력 있는 선수를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깨지더라도 우리보다 강한 팀과 맞붙어 대처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팬들을 즐겁게 하려면 약한 팀과 싸워 이기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지만 월드컵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그런 장난을 쳐서는 안되다고 본 것입니다. 지면서 이기는 법을 배우고 나보다 앞선 선수를 통해서 기술을 연마해야 합니다. 실수할 기회가 있어야 배우는 것입니다. 예일대학 법대학장인 고홍주 박사는 아버지 고광림 박사로부터 늘 들어온 교훈이 “실패를 거치지 않고 성공에 이를 수 없다”는 말이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성공의 길을 가는 사람을 부르시지 않습니다. 실패자를 불러 성공하게 하십니다. 버림받은 인간을 귀하게 만드십니다. 모세는 살인자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불러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보잘것없는 질그릇을 불러서 보배를 담으십니다. 약한 자를 불러 강하게 만들어 강하게 쓰셨습니다. 너무 강한 사람 예수님에 대해서 불만과 살기가 등등하던 사울을 불러 바울 되게 하셨습니다. 실패 없는 성공 없습니다. 아브라함도 넘어졌고 이스라엘도 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패자를 부활시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