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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 요한의 메시지 (마 3장 1 ~ 12절)
마태복음은 마태가 쓴 복음서를 말합니다. 마태는 예수님의 12 제자 중 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제자 마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입니다.
마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1-2장을 보면 세 가지 관점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계보를 중심으로(1:1-17), 둘째는 예수님의 부모를 중심으로(1:18-25), 그리고 셋째는 여러 주요 장소를 중심으로(2:1-23)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이제 예수님의 성장 과정을 생략한 채 바로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4장에서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로 가셔서 본격적인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3장을 보면 뜻밖의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로 세례요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 직전에 바로 세례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도대체 세례요한이 누구기에 예수님의 공생애 이야기 직전에 다루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왜 꼭 세례요한 이야기가 이 대목에서 나와야 하는 것일까요?
마태는 3:3에서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그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자라 일렀으되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가 오실 길을 곧게 하라 하였느니라” 한 마디로 세례요한은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메시야가 오실 때 먼저 와서 메시야 사역을 준비할 사람이 있다고 예언되었는데 세례요한이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세례요한은 예언 된 대로 먼저 와서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준비했다는 것입니다.
마태는 실제로 세례요한이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를 준비하기 위해 두 가지 사역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유대 광야에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선포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 세례를 베풀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는 메시야를 맞을 사람들을 준비시킨 것이고, 다른 하나는 메시야 사역을 준비하시는 예수님의 준비에 도구로 쓰임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중에 메시야를 맞을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마태는 세례요한을 간접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절에 “그 때에”라는 세례요한의 등장 시점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직전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1절에 “유대 광야에서”라는 세례요한의 사역 장소를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예언대로 광야에서 사역했다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마태는 세례요한의 모습을 보다 자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낙타털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가죽 띠를 띠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을 먹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가 광야에서 살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은 마태의 세례요한에 대한 설명은 한 마디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예언된 바로 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미리 보내셔서 준비케 하신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세례요한이 선포한 메시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그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례요한이 있는 광야로 나와서 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히 선포한 메시지입니다. 바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 중에 특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 선포한 메시지입니다. 그 내용은 조금 더 길고 깊이가 있습니다. 7-12절입니다.
자 그러면 오늘 우리는 세례요한이 예수님의 공생애를 준비키 위해 선포한 메시지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이 메시지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줄까요?
영적 장애를 극복하라
지금 세례요한을 찾아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경건한 삶에 대한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400여 년 이스라엘 땅에서 사라진 선지자 같은 사람 세례요한이 유대광야에 나타났다는 소문을 듣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온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지도층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일반 백성들보다는 율법을 더 잘 지키고 보다 더 의롭게 살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세례요한은 이들에게 직격탄을 날립니다.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에게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현재 그 모습으로는 메시야를 만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메시야를 만나도 그 모습 그대로는 메시야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 영적인 장애가 있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4월 19일이 장애인의 날이었습니다. 우리 주변에 육체적인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이 참 많습니다. 보지 못하는 사람들,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걷지 못하고 제대로 활동하지 못하는 분들... 이분들은 일반인들처럼 생활하기 힘든 여러 가지 장애를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최근 “오체불만족”이란 책이 일본 열도를 뜨겁게 감동시키고 있답니다. 오토타케 히로타다라는 장애인이 쓴 책입니다. 이 분은 팔다리가 없는 채로 태어났고 성장하면서 고작 10센티 밖에 안 되는 팔다리로 야구, 농구, 수영 등을 즐기며 초중고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일본의 명문 와세다대를 졸업한 후에 현재는 소학교 교사로 재직중인 분입니다.
이분은 자신의 장애를 단순한 신체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하면서 장애를 극복해 왔습니다. 그리고 발령받는 날 환영 나온 아이들에게 “여러분에게 도움을 받을 일이 있을 지도 모르지만 함께 많은 추억을 만들어 가자”고 인사를 해서 뜨거운 박수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주변에 남다른 장애가 있지만 이 장애를 극복하고 행복한 삶을 사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는 분들이 참 많이 있습니다.
지금 세례요한은 나름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에게 영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장애 때문에 메시야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랬습니다. 요 1:5을 보면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말씀했고, 11을 보면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라고 말씀한 그대로였습니다. 메시야가 오셨는데 메시야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끝내 그 메시야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세례요한 당시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도 영적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영적인 눈에 장애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듣지 못합니다. 영적인 귀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주님 말씀대로 살지 못합니다. 우리 손이 그리고 우리 발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런 영적 장애를 극복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장애를 극복하고 감동적인 삶을 사는 분들처럼 우리도 영적 장애를 극복하고 우리와 함께 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회개하라
본문 2절을 보면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했습니다.
여기서 회개하라는 말씀은 헬라어 메타노이아(metanoia)를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라는 말은 이 메타노이아라는 원래 뜻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못합니다. 회개(悔改)라는 말은 “어떤 잘못에 대해 뉘우치고 고친다”는 뜻입니다. 참회(懺悔)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데 이 말 역시 “자기 잘못에 대해 깊이 뉘우친다”라는 뜻입니다.
어떤 교우께서 이번 부흥회에 많은 은혜를 받으셨답니다. 강사 목사님 말씀 중에 죄를 깨닫게 됐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런 저런 핑계로 십일조 헌금을 제대로 드리지 못했는데 그것이 하나님 앞에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깊이 깨닫게 됐답니다. 그래서 견딜 수 없어 통회하고 자복하고 눈물로 회개를 했답니다. 하나님의 용서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고, 이제 그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답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통회 자복하고 용서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동안 자신을 무겁게 짓누르던 죄 짐을 벗어버리는 홀가분함이 있습니다.
그러나 메타노이아는 여기서 더 나아가야 합니다. 회개를 포함하는 전향(轉向)이 일어나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삶이 지향하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간첩을 심문하기 전에 서울 시내를 구경시킨다고 합니다. 어디든지 가고 싶은 곳으로 데리고 다니며 자유 대한의 실체적인 모습을 체험케 한답니다. 그러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돌아선다고 합니다. 이것을 전향이라고 부릅니다. 김일성주의에 속아 살았다는 것을 깨닫고 이제 자유민주주의 시민으로 살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처럼 메타노이아는 회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향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의 메시지가 천국과 연결되어있다는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이 말은 메타노이아를 하되 천국을 향해서 전향하라는 말입니다. 그동안 세상 바라보고 살던 죄를 깊이 깨닫고 참회한 후 천국을 향해 돌아서라는 것입니다.
고훈 목사님께서 백혈병으로 죽었던 사람이 주님의 치유로 기적적으로 살아난 어떤 집사님 간증을 말씀하셨습니다. 이분은 4시간 동안 천국을 경험하고 오셨는데 다시 살아나신 다음에는 그 삶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전도만 하시더랍니다.
완전히 그 삶이 전향된 것입니다.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달라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천국을 지향하는 삶으로 철저하게 돌아서야 합니다. 단순히 세상을 바라보며 살다가 하나님 앞에 저지른 죄를 눈물로 회개하는데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서 돌아서서 주님을 바라보는 삶으로 전향해야 합니다.
주님과 동행하라
본문 11절을 보면 세례요한은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로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베푸실 것이요”
우선 “내 뒤에 오시는 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이 땅에 천국을 소개하고 그 천국을 맛보게 하고 장차 그 천국으로 인도하실 바로 그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이 구름처럼 세례요한 앞으로 밀려왔습니다. 그에게서 잊혀졌던 그 옛날 선지자의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토록 시원하고도 힘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대로 죄를 자복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다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천국에 관해서는 자기는 말할 수도 없고 천국으로 인도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 의학의 성과가 대단합니다. 대부분의 질병을 정복해 갑니다. 생명을 상당히 연장시켜가고 있습니다. 현대 과학의 성과도 대단합니다. 과학기술 발전으로 현대인의 삶이 그 어느 때보다도 풍요롭고 편리합니다. 또 대단한 종교지도자들이 나타나서 활약합니다. 달라이라마라든지 이슬람교의 종교지도자들이 대단한 권위로 많은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위안을 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업적들 가르침들 사람들 모두 천국 앞에만 서면 무기력합니다. 천국에 관한 이야기를 해 줄 수도 없고 그 천국으로 인도할 수가 없습니다.
연세대학교 중앙도서관 앞에 용재 백낙준 박사의 동상이 있습니다. 이분은 목사로서 초대총장을 지내신 분이시고 연대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해 오신 분이십니다.
원래 이분의 아버지가 무당이었습니다. 어느 날 전도자가 이 집 앞을 지나다가 박수무당인 백낙준 박사의 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답니다. “당신 무당 짓 하다가 나중에 지옥가면 어떻게 하겠소? 자식들 망할 짓 그만하고 예수 믿고 천당 가시오”
그날부터 역사가 시작됐답니다. 밤에 잠을 자려고만 하면 “예수믿고 천당가라”는 소리가 귀에 쟁쟁하게 들려옵니다. 천당! 천당! 천당! 이 소리 때문에 결국 예수 믿게 됐고 아들 가운데 훌륭한 목사요 선각자가 태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그래서 오직 예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세례요한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나면 우리에게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데 바로 우리 안에 성령이 거하시게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거하시되 충만하게 임하시면 우리는 불같은 뜨거운 능력을 덧입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여기서도 천국을 경험하고 천국시민의 삶을 살다가 장차 저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요 3:5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고전 12:3을 보면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 말씀했습니다. 행 1:8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을 보면 셀 수 없이 많은 곳에서 “성령으로”를 말하고 있습니다. 왜 일까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실 때 다른 보혜사인 성령을 보내 주실 것을 약속했고, 그 성령으로 사는 것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서 예수와 동행하는 삶을 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는 “성령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살 때 천국을 맛보며 살고 천국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세례요한의 메시지는 유효합니다. 우리가 영적 장애를 극복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진정한 회개를 통해 천국을 지향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천국을 향해 나아갈 때 주님과 동행하며 살아야 하겠습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