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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를 사랑하라 (신명기10:16~22)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22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신약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으며 또 어떻게 일생을 마쳤는지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나그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창 23:4).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만 보더라도 그는 본래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가나안으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지만 이 땅위에 있는 지역적인 본향을 사모하며 산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장차 가서 살게 될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저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중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우선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세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1. 아무리 예수 믿기가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믿
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2.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3.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일
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마 12:36).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든지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영원히 살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장차 가서 살 내세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4:28-29과 24:19에서도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두신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있는 어려움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모두가 다 예수님에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23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사수하고 말씀 안에 살면서 나그네 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보임으로 해서 교회 앞에서 사랑을 증거했다고 기뻐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환난과 핍박이 있고 생활이 어려워도 성도들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않으므로 해서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히 13:1-2).
디모데전서 3:2을 보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감독의 자격중의 하나를 나그네 대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5:9-10에서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는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인심은 나그네를 얼마나 잘 대접하는가 하는 것을 보고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집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 대접을 잘 받게 되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덩달아 그 나라나 그 지방에 대한 인상도 좋게 갖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지방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예전에 대접을 잘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지역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참 좋은 사람들이야” 하며 축복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가 다녀간 지역으로부터 별로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았을 경우, 그 지방 사람들까지 몽땅 고약한 사람들로 여겨져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들 아주 못된 사람들이야” 하는 저주의 말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인심이 좋은 사람들이 사는 땅은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았습니다. 본래 땅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기 때문에 땅도 그 지방 인심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심이 사나운 사람들이 사는 땅은 저주를 받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북한이 그렇습니다. 그 땅들이 저주를 받아 곡식이 잘 되지 않는 척박한 토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김일성 동상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놓고 주민들이 절하도록 우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셋째로, 반미 반한의 구호를 외치며 못된 저주의 말을 퍼붓고 증오하도록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벼농사나 밭농사는 물론 심지어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자라는 옥수수조차도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남한 땅도 홍수와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 백성들이 얼마나 우상숭배를 많이 하고 악독해지고 음란해지고 죄악이 관영한지, 여기에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너희들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이처럼 망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사인입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에도 시장마다 각종 곡식과 과일을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자비를 보게 됩니다. 이는 이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부르짖는 일 천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시며 긍휼을 베푸십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한 절대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수영로 교회 때문에 부산이 복을 받고 잘 사는 도시가 될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제 14회 아시안 게임이 이 부산에서 열립니다. 이는 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올까말까 하는 국제경기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발전을 십 년 이상 앞당기는 축복의 기회이며, 일만 명이 넘는 선수와 임원 그리고 그에 따른 관광객들에게 한국과 부산을 알리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특별히 회교권 사람들에게 선교를 할 수 있는 더 없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동안 회교권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에게 들어가는 생활비가 적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전도하는 것을 법으로 철저히 금하고 있다보니 우리 선교사들이 몇 년씩 체류해도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솔직히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들이 부산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우리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어서 그들 중에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큰 수확이며 축복입니까!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가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줄 아시고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외국인들에게 전도하는 일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전도법은 사랑을 베풀고 대접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는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와 있는 노무자들이 수십만 명이나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도 많지만, 불교와 회교권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왜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굳이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하셨을까요? 단순히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들 나라에 가서 선교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보니 차라리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마음놓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여 저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적극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전도한다면 우리가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과적이겠습니까.
우리가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도와준다고 하면 거의 가 다 예수님을 믿든지 아니면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 중에 특별히 성령을 받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을 신학교에 보내고 잘 훈련시켜서 목사안수도 받게 한다면 이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훌륭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능력 받아 자신의 동족들에게 자기나라 말로 전도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앞으로 5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목표를 세웠지만 과연 이들이 얼마나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을지 미지수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교회가 한국에 와 있는 몇 십만 명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선교정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면 돈도 적게 들고 전도 효과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좋은 나라로 기억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온갖 멸시천대를 받으면서 월급을 착취당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동남아에 퍼져있는 반한 감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네팔 사람이 일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전해주려고 네팔을 방문했을 때 네팔청년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향해 욕을 하는데, 그것도 한국말로 아주 심한 욕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사람들이 한국 욕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뼈에 사무칠 정도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필리핀의 마닐라 공항에서 공안당국으로부터 매우 불쾌할 정도로 심한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했을까요?
최소한 우리 자신들은 그렇지 않았다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고용했던 일부 중소기업체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억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들이 돈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자기나라에서는 대학 출신이고 교사로 근무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 속에 한을 품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정적으로 선교를 가로막는 불행한 일입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제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온 교회 성도들이 앞장서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한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대접을 잘했습니다. 그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 피츠버그의 한 가구점에 클레멘토 스톤이라는 한 젊은이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가게 문 앞에서 웬 할머니 한 분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뛰쳐나가 할머니에게 날도 추운데 잠깐 들어오셔서 불을 쬐고 계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대신해서 자신이 밖에 나가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아주 멋진 자동차를 탄 신사가 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신사에게 다가가 혹시 할머니 한 분을 찾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신사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신사를 가게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신사는 할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 신사는 그 유명한 피츠버그의 강철왕 카네기였습니다. 카네기는 자기 어머니를 따뜻하게 영접한 그 가게의 점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가게를 찾은 카네기는 그 점원을 불러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카네기는 그에게 가구점을 차려주고 회사 사무실마다 가구를 구입할 때는 그 가게의 가구를 구입하게끔 지시했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가게는 카네기의 단골가게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클레멘토 스톤은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이름난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작은 친절이 그에게 엄청난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번 14회 아시안 게임을 통해서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가 되고 전도와 선교에 불이 붙는 계기가 되며,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부산 시민의 생각이 달라져서 부산성시화가 앞당겨지는 계기가 되는 축복이 오기를 바랍니다.
출처/정필도 목사 설교 중에서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17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주의 주시요 크고 능하시며 두려우신 하나님이시라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18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19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20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여 그를 섬기며 그에게 친근히 하고 그 이름으로 맹세하라 21 그는 네 찬송이시요 네 하나님이시라 네가 목도한 바 이같이 크고 두려운 일을 너를 위하여 행하셨느니라 22 애굽에 내려간 네 열조가 겨우 칠십인이었으나 이제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하늘의 별같이 많게 하셨느니라
신약 성경의 히브리서 11장은, 위대한 믿음의 조상들이 어떻게 믿음으로 살았으며 또 어떻게 일생을 마쳤는지에 관하여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어디를 가든지 자신을 나그네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창 23:4).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만 보더라도 그는 본래 [갈대아 우르]라는 지방에서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대로 가나안으로 와서 살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지만 이 땅위에 있는 지역적인 본향을 사모하며 산 것이 아니라 특별히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나면 장차 가서 살게 될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도 저 하늘나라를 사모하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중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무엇을 보고 알 수 있습니까? 우선 그 사람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세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1. 아무리 예수 믿기가 힘들고 어려워도 절대로 믿
음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2.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3. 이 세상에서 아무리 고통을 당하고 억울한 일
을 당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게 되며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도 조심하고 행동도 조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마 12:36).
이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예외 없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되든지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고통을 받으며 영원히 살게 되든지 둘 중의 하나입니다. 장차 가서 살 내세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사람들은 절대로 아무렇게나 살지 않습니다. 말 한마디를 해도 함부로 하지 않습니다. 삶의 자세가 다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신원하시며 나그네를 사랑하사 그에게 식물과 의복을 주시나니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명기 14:28-29과 24:19에서도 [매 삼년 끝에 그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축복을 주시리라],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취하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버려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범사에 복을 내리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얼마나 자비하신 하나님이신지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주변에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를 두신 이유는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선을 행할 기회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이 땅에 있는 어려움을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무심히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그들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은 모두가 다 예수님에게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나그네를 잘 대접하고 영접하는 것은 주님을 대접하는 것과 같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3:23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하고 사람에게 하듯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은 환난과 핍박을 당하면서도 진리를 사수하고 말씀 안에 살면서 나그네 된 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 보임으로 해서 교회 앞에서 사랑을 증거했다고 기뻐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환난과 핍박이 있고 생활이 어려워도 성도들이 형제 사랑하기를 계속하고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않으므로 해서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다고 말씀했습니다(히 13:1-2).
디모데전서 3:2을 보면 [감독은 책망할 것이 없으며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절제하며 근신하며 아담하며 나그네를 대접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서 감독의 자격중의 하나를 나그네 대접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5:9-10에서 [과부로 명부에 올릴 자는 나이 육십이 덜되지 아니하고 한 남편의 아내이었던 자로서 선한 행실의 증거가 있어 혹은 자녀를 양육하며 혹은 나그네를 대접하며 혹은 성도들의 발을 씻기며 혹은 환난 당한 자들을 구제하며 혹은 모든 선한 일을 좇는 자라야 할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이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일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 지방 사람들의 인심은 나그네를 얼마나 잘 대접하는가 하는 것을 보고 대강 알 수 있습니다. 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여러 곳을 다니며 집회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을 만나 대접을 잘 받게 되면 그 사람뿐만 아니라 덩달아 그 나라나 그 지방에 대한 인상도 좋게 갖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그 지방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경우, 예전에 대접을 잘 받았던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지역 사람들은 너무나 친절하고 참 좋은 사람들이야” 하며 축복의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와 반대로 제가 다녀간 지역으로부터 별로 좋지 않은 대접을 받았을 경우, 그 지방 사람들까지 몽땅 고약한 사람들로 여겨져서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 사람들 아주 못된 사람들이야” 하는 저주의 말을 하게 됩니다.
성경을 보면, 인심이 좋은 사람들이 사는 땅은 하나님의 축복을 듬뿍 받았습니다. 본래 땅은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기 때문에 땅도 그 지방 인심을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인심이 사나운 사람들이 사는 땅은 저주를 받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북한이 그렇습니다. 그 땅들이 저주를 받아 곡식이 잘 되지 않는 척박한 토지가 되었습니다.
이들이 저주를 받은 이유는 이렇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김일성 동상을 전국 방방곡곡에 세워놓고 주민들이 절하도록 우상화했기 때문입니다. 이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셋째로, 반미 반한의 구호를 외치며 못된 저주의 말을 퍼붓고 증오하도록 어려서부터 철저히 교육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엇을 해도 되는 일이 없습니다. 벼농사나 밭농사는 물론 심지어 아무 곳에나 심어도 잘 자라는 옥수수조차도 잘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 남한 땅도 홍수와 태풍으로 많은 피해를 받았습니다. 오늘날 이 백성들이 얼마나 우상숭배를 많이 하고 악독해지고 음란해지고 죄악이 관영한지, 여기에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너희들도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이처럼 망할 수밖에 없다”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사인입니다. 그러나 천문학적인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이번 추석에도 시장마다 각종 곡식과 과일을 풍성하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자비를 보게 됩니다. 이는 이 백성들의 죄악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날마다 부르짖는 일 천만명의 기독교인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축복하시며 긍휼을 베푸십니다.
기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한 절대로 이 나라는 망하지 않습니다. 저는 우리 수영로 교회 때문에 부산이 복을 받고 잘 사는 도시가 될 줄 믿습니다.
다음 주일부터는 제 14회 아시안 게임이 이 부산에서 열립니다. 이는 우리 생애에 두 번 다시 올까말까 하는 국제경기로 하나님의 축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부산 발전을 십 년 이상 앞당기는 축복의 기회이며, 일만 명이 넘는 선수와 임원 그리고 그에 따른 관광객들에게 한국과 부산을 알리는 좋은 기회입니다.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입니다. 특별히 회교권 사람들에게 선교를 할 수 있는 더 없는 좋은 기회가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그동안 회교권에 나가있는 선교사들에게 들어가는 생활비가 적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전도하는 것을 법으로 철저히 금하고 있다보니 우리 선교사들이 몇 년씩 체류해도 한 명도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솔직히 눈에 보이는 열매가 적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들이 부산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우리가 이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친절을 베풀어서 그들 중에 한 영혼이라도 구원할 수만 있다면 이 얼마나 큰 수확이며 축복입니까!
이번 기회야말로 우리가 선교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줄 아시고 저와 여러분이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외국인들에게 전도하는 일에 힘써주시기 바랍니다. 최고의 전도법은 사랑을 베풀고 대접하는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금 우리나라에는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와 있는 노무자들이 수십만 명이나 있습니다. 이들 중에는 중국과 같은 공산주의 국가에서 온 사람들도 많지만, 불교와 회교권에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때에 왜 수십만 명의 젊은이들을 굳이 우리나라에까지 오게 하셨을까요? 단순히 돈을 벌게 하기 위해서 보내주신 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저들 나라에 가서 선교하는 일이 너무나 어렵다보니 차라리 그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마음놓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선교하여 저들을 구원하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알고 적극적으로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그들을 전도한다면 우리가 직접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보다 얼마나 경제적이고 효과적이겠습니까.
우리가 이들에게 따뜻한 사랑을 베풀고 도와준다고 하면 거의 가 다 예수님을 믿든지 아니면 기독교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이들 중에 특별히 성령을 받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결단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들을 신학교에 보내고 잘 훈련시켜서 목사안수도 받게 한다면 이들이 자기나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훌륭하게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능력 받아 자신의 동족들에게 자기나라 말로 전도하다보면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는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교회가 앞으로 5000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기로 목표를 세웠지만 과연 이들이 얼마나 많은 구원의 열매를 맺을지 미지수입니다. 저는 오늘 설교를 준비하며 우리 교회가 해야 할 일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라도 우리교회가 한국에 와 있는 몇 십만 명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선교정책을 세우고 실천에 옮긴다면 돈도 적게 들고 전도 효과도 극대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을 결코 잊을 수 없는 좋은 나라로 기억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 우리나라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온갖 멸시천대를 받으면서 월급을 착취당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인지 모릅니다.
오늘날 동남아에 퍼져있는 반한 감정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하다고 합니다. 얼마 전에 네팔 사람이 일하다가 사망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의 유족들에게 보상금을 전해주려고 네팔을 방문했을 때 네팔청년들로부터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자신을 향해 욕을 하는데, 그것도 한국말로 아주 심한 욕을 들어야 했다고 합니다. 아마 그 사람들이 한국 욕을 하는 것을 보면 한국에서 뼈에 사무칠 정도로 멸시와 천대를 받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또 어떤 분은 필리핀의 마닐라 공항에서 공안당국으로부터 매우 불쾌할 정도로 심한 조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왜 한국 사람들이 이런 대접을 받아야 했을까요?
최소한 우리 자신들은 그렇지 않았다하더라도 그 사람들을 고용했던 일부 중소기업체 사람들이 그 사람들을 억울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이들이 돈 때문에 한국에 와서 일한 적이 있지만 그래도 자기나라에서는 대학 출신이고 교사로 근무했던 사람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들 속에 한을 품게 했습니다. 이런 일들은 결정적으로 선교를 가로막는 불행한 일입니다.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제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온 교회 성도들이 앞장서서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고 그 한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그네 대접을 잘했습니다. 그는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고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성경 말씀대로 나그네를 잘 대접하는 사람은 주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 큰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미국 피츠버그의 한 가구점에 클레멘토 스톤이라는 한 젊은이가 점원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추운 겨울날, 가게 문 앞에서 웬 할머니 한 분이 누군가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뛰쳐나가 할머니에게 날도 추운데 잠깐 들어오셔서 불을 쬐고 계시라고 권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대신해서 자신이 밖에 나가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얼마 후 아주 멋진 자동차를 탄 신사가 오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는 신사에게 다가가 혹시 할머니 한 분을 찾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신사는 그렇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 신사를 가게 안으로 안내했습니다.
그 신사는 할머니의 아들이었습니다. 다름 아닌 그 신사는 그 유명한 피츠버그의 강철왕 카네기였습니다. 카네기는 자기 어머니를 따뜻하게 영접한 그 가게의 점원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날 그 가게를 찾은 카네기는 그 점원을 불러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의 가게를 갖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카네기는 그에게 가구점을 차려주고 회사 사무실마다 가구를 구입할 때는 그 가게의 가구를 구입하게끔 지시했습니다. 그로부터 그의 가게는 카네기의 단골가게라는 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클레멘토 스톤은 돈을 많이 벌게 되어 이름난 사업가로 성공했습니다. 작은 친절이 그에게 엄청난 축복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이 나그네를 사랑하고 대접하는 일에 힘쓴다면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반드시 축복을 받게 될 줄 믿습니다.
저는 이번 14회 아시안 게임을 통해서 부산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가 되고 전도와 선교에 불이 붙는 계기가 되며, 이를 통해 교회에 대한 부산 시민의 생각이 달라져서 부산성시화가 앞당겨지는 계기가 되는 축복이 오기를 바랍니다.
출처/정필도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