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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마17:1-8)
서 론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셔서 제자들로부터 바른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혀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6:13-21)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호수 북방 약 40km지점, 헬몬산 기슭 해발 345m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원래 조그마하였으나 헤롯의 아들 분봉왕 헤롯 빌립에 의해서 확장이 되었습니다. 헤롯 빌립은 로마 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 마을을 ‘가이사랴’ 라 하였고 자기 이름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이방인으로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곳 원주민들은 ‘바알’을 섬겼고,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자수의 신인 ‘판신’을 섬겼으며,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서 ‘황제신전’을 건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상의 땅에서 제자들로부터 바른 신앙고백을 받아내셨고, 앞으로 있을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있으신 후 6일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헬론산에 올라가셔서 앞으로 있을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세 제자들에게 보이신 사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헬몬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신 내용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변형이 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변형이 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눅9:28-29에 보면,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하신 용모는 육신의 모습이 아니라, 신령체로 부활하실 신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3일후에 3명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신령체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육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마무리를 하시면서 헬몬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상당히 큽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지 않으시면 변형이 될 수 없으신 분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변형이 될 수 있으신 분께서 구지 기도하실 때에 변형이 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너희들도 많이 변해야 하는데 기도하여야 변화가 될 수가 있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기도 없이는 변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가 기도하여 이스라엘로 변했고(창32:24-28), 사울이 기도하다가 바울로 변했습니다.(행9:11-19)
11사도가 주님의 유언에 순종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 변했습니다.(행2:1-4)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다가 인격과 언행심사와 신앙생활과 사명감당이 변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고, 내 삶의 현장과 내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2.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본문3절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요,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모세는 이미 죽었다가 천국에 올라 간자요(신34:5-6) 엘리야는 죽지 않고 천국으로 휴거된 자입니다.(왕하2:11)
천국에서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서의 대표자인 엘리야가 헬몬산에 내려와서 율법과 선지서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루살렘에서 예언이 성취될 것을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런 대화의 현장을 목격한 세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됨을 확실히 입증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헬몬산으로 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며, 그들의 모든 역할을 대신 실현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미 죽었던 모세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헬몬산에 온 것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을 의미하며, 산채로 휴거되었던 엘리야가 헬몬산에 내려 온 것은
예수님 재림 시 땅에 살아있는 자들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산채로 휴거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휴거를 하게 됩니다. 휴거가 된 후에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늘에 산 소망을 두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시다가 부끄러움 없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 모두가 휴거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베드로가 헬몬산에 초막 셋을 짓기를 원하였습니다.
본문4절에 보면,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급한 성격이 변화되지 않아서 영광스런 광경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생각은 마치 주님을 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1)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을 하시고 영광을 얻으셔야하기 때문입니다.
2)베드로는 산 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을 해야 하는 지대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3)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에 전파가 된 다음에야 영광스러운 세계와 안식이 오는데 그 세계의 안식을 미리 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뜻보다는 내 감정과 기분을 앞세워 믿음생활을 하고 사명을 외면한 채 안식만을 구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명을 외면한 자들에게 참 안식과 축복이 주어질까요?
주님을 위해 고통을 외면한 채로 주님의 영광을 맛 볼 수가 있을까요?
4.하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는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음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요단강에서 들었습니다.(마3:17)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아들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이십니다.
성경 계시의 절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이나 선지서는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이요, 예수님의 사역에 보조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구약의 율법이나 선지서 이상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듣고 순종을 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도 마천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의 성경말씀이 다 귀하고 지켜야 할 영원한 진리이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생명처럼 여기고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성경을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데 성경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지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결 론
1.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다가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하여야 하겠습니다.
2.우리도 성경의 말씀의 현장에서 모세와 혹은 엘리야와 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영적인 경험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3.우리도 내 생각만을 앞세워 주님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명을 외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4.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이훈구 목사 설교 중에서
서 론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가셔서 제자들로부터 바른 신앙고백을 받으시고, 또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혀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마16:13-21)
가이사랴 빌립보는 갈릴리호수 북방 약 40km지점, 헬몬산 기슭 해발 345m에 위치한 아름답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이 마을은 원래 조그마하였으나 헤롯의 아들 분봉왕 헤롯 빌립에 의해서 확장이 되었습니다. 헤롯 빌립은 로마 황제 ‘디베료 가이사’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이 마을을 ‘가이사랴’ 라 하였고 자기 이름을 추가하여 ‘가이사랴 빌립보’라고 불렀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이방인으로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곳 원주민들은 ‘바알’을 섬겼고, 헬라계 사람들은 산림과 야자수의 신인 ‘판신’을 섬겼으며, 헤롯은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아부를 하기 위해서 ‘황제신전’을 건립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우상의 땅에서 제자들로부터 바른 신앙고백을 받아내셨고, 앞으로 있을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을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일이 있으신 후 6일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헬론산에 올라가셔서 앞으로 있을 부활과 천국의 영광을 세 제자들에게 보이신 사건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헬몬산에 올라가셔서 변형되신 내용을 살펴보면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예수님은 변형이 되셨습니다.
본문 2절에 보면,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변형이 되사 그 얼굴이 해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다고 하였습니다.
눅9:28-29에 보면, 예수님께서 3명의 제자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변하신 용모는 육신의 모습이 아니라, 신령체로 부활하실 신성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던 대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3일후에 3명의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신령체로 부활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육을 입고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마무리를 하시면서 헬몬산에 올라가셔서 기도하실 때 용모가 변화되고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난 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상당히 큽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지 않으시면 변형이 될 수 없으신 분이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변형이 될 수 있으신 분께서 구지 기도하실 때에 변형이 되는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이신 것은 너희들도 많이 변해야 하는데 기도하여야 변화가 될 수가 있다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맞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기도 없이는 변화가 될 수가 없습니다.
야곱이가 기도하여 이스라엘로 변했고(창32:24-28), 사울이 기도하다가 바울로 변했습니다.(행9:11-19)
11사도가 주님의 유언에 순종하여 기도하다가 성령을 충만히 받은 후에 변했습니다.(행2:1-4)
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다가 인격과 언행심사와 신앙생활과 사명감당이 변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변해야 가정이 변하고, 내 삶의 현장과 내 이웃이 변하고 세상이 변합니다.
2.모세와 엘리야와 예수님이 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본문3절에 보면,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로 더불어 말씀하시는 것이 저희에게 보였다고 하였습니다.
모세는 율법을 대표하는 자요, 엘리야는 선지자를 대표하는 자입니다.
모세는 이미 죽었다가 천국에 올라 간자요(신34:5-6) 엘리야는 죽지 않고 천국으로 휴거된 자입니다.(왕하2:11)
천국에서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와 선지서의 대표자인 엘리야가 헬몬산에 내려와서 율법과 선지서의 실체이신 예수님을 만나서 예루살렘에서 예언이 성취될 것을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이런 대화의 현장을 목격한 세 제자들에게는 예수님의 죽으심이 구약의 예언이 성취됨을 확실히 입증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헬몬산으로 와서 예수님을 만나서 대화를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이들보다 더 큰 권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며, 그들의 모든 역할을 대신 실현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이미 죽었던 모세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헬몬산에 온 것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할 것을 의미하며, 산채로 휴거되었던 엘리야가 헬몬산에 내려 온 것은
예수님 재림 시 땅에 살아있는 자들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산채로 휴거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반드시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여 휴거를 하게 됩니다. 휴거가 된 후에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은 하늘에 산 소망을 두고 열심히 믿음생활을 하시다가 부끄러움 없이 재림하시는 주님을 만나 모두가 휴거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3.베드로가 헬몬산에 초막 셋을 짓기를 원하였습니다.
본문4절에 보면, 베드로는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주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짓겠습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베드로는 아직도 급한 성격이 변화되지 않아서 영광스런 광경에 압도되어 자기도 모르게 즉흥적으로 말을 하였습니다.
베드로의 이 생각은 마치 주님을 위한 것처럼 느껴지지만 대단히 잘못된 생각입니다.
왜냐하면,
1)예수님은 인간의 죄를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공회원들에게 잡히시고 고난을 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부활 승천을 하시고 영광을 얻으셔야하기 때문입니다.
2)베드로는 산 아래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구원을 해야 하는 지대한 사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식만을 구했기 때문입니다.
3)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온 세계에 전파가 된 다음에야 영광스러운 세계와 안식이 오는데 그 세계의 안식을 미리 구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주님의 뜻보다는 내 감정과 기분을 앞세워 믿음생활을 하고 사명을 외면한 채 안식만을 구하려고 하는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명을 외면한 자들에게 참 안식과 축복이 주어질까요?
주님을 위해 고통을 외면한 채로 주님의 영광을 맛 볼 수가 있을까요?
4.하늘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으라는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본문 5절에 보면,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저의 말을 들으라. 는 음성이 제자들에게 들려왔습니다.
구름 속에서 들려온 음성은 분명히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이 음성을 세례 요한도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 때 요단강에서 들었습니다.(마3:17)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아들 신분으로 세상에 오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들이시고 하나님의 모든 뜻을 이루시는 분이시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아들이십니다.
성경 계시의 절정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이나 선지서는 오실 예수님의 그림자일 뿐이요, 예수님의 사역에 보조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구약의 율법이나 선지서 이상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듣고 순종을 하여야만 합니다.
우리에게도 마천가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66권의 성경말씀이 다 귀하고 지켜야 할 영원한 진리이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은 생명처럼 여기고 지켜야 합니다.
오늘날 성경을 자기 마음에 드는 것만 좋아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자들이 너무나 많은데 성경은 일점일획도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루지기 때문에 반드시 모든 말씀을 지켜야 합니다.
결 론
1.우리도 열심히 기도하다가 변화되는 축복을 경험하여야 하겠습니다.
2.우리도 성경의 말씀의 현장에서 모세와 혹은 엘리야와 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영적인 경험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3.우리도 내 생각만을 앞세워 주님을 위하는 척하면서 사명을 외면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4.우리도 주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을 하여야 하겠습니다.
출처/ 이훈구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