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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에게 본 받을 점 (에스더 4장 10 ~ 17절)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가운데 “스타신드롬”이런 것이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가 되려고 너도 나도 몰려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1명의 가수 지망생을 뽑는데 수천 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답니다. 일곱 여덟 살 때부터 학업을 뒤로 하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답니다. 예전 같으면 ‘딴따라’라 해서 부모가 반대했지만 요즘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뒷바라지 하고 있답니다.
요즘 소위 잘나간다는 스타들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 된다는 것입니다. 기획사와 매니저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스타가 만들어집니다. 다음으로 철저하게 돈 벌이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타 마케팅이라 해서 스타들이 상품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기 생명이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스타로 이름을 날리다가 어느 샌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 에스더서에는 이런 요즘의 병적인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스타가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원래 히브리 이름으로는 “하닷사”입니다.(에 2:7) 그가 바사 땅에서 살면서 바사식 이름 에스더로 불렸습니다. 그 뜻이 바로 별 곧 스타입니다. 에스더는 그 이름 그대로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민족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원해 냅니다. 그리고 그이 이름은 이스라엘의 절기 부림절을 통해 오늘까지 길이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요즘 스타들과 비교해 보면 에스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왕후가 됐습니다. 5장 이후 그는 “왕후 에스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으로 그는 진정한 에스더 곧 스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왕후가 되어 민족을 살렸고, 자기 남편 바사 왕도 지켰습니다. 스타로서 돈 벌이에 나선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헌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이름은 잠시 있다 사라지 않았고 오랜 역사가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의 스타로서의 인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도 결코 시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스타라 할 수 있는 에스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섭리
에스더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에게 엄연히 왕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포로로 끌려온 이민족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선 왕후 와스디가 폐위됩니다. 에 1장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 7일째 되던 날 술에 취해 자기 왕후를 단장하고서 잔치 자리에 나오도록 불렀습니다. 뭇 백성과 지방 관리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후 와스디도 그 때 왕궁에서 여인들과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왕후가 왕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왕의 심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왕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신하들이 왕후를 폐위하라고 고합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바사의 여인들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왕이 왕후를 폐위시켰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왕후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신하들이 그렇게 심한 처벌을 청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를 작동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됩니다. 에 2장을 보면 새 왕후 간택에 관한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자 모르드개가 조카인 에스더를 간택에 내 보냈습니다. 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간택에 내보냈을까요? 이민족인 유대인 에스더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간택을 위해 수산성에 들어갔을 때 책임을 맡은 헤개라는 내시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가 에스더를 특별히 좋게 보았습니다.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민족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 헤개라는 사람의 도움이 왕후 간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하수에로 왕이 간택에 나온 모든 여자들 중에서 에스더를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왕후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왕후 간택에 내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왕궁에서 헤개라는 사람을 만나서 큰 도움을 받게 되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왕이 그 많은 여자들 중에서 에스더를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를 작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것도,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왕후 간택에 내보내게 된 것도, 수산성에서 헤개라는 내시를 만나게 된 것도,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이 에스더에게 쏠리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의 결과를 볼 때마다 “왜 하필이면 그 때...”라고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기차 승객들에게 요한복음이 기록된 작은 책자를 나눠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어떤 사람이 보지도 않고 책자를 찢어 창 밖으로 내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철로 변을 지나던 한 사람이 종이가 날리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한 장을 주었습니다. 읽어보니 거기 “생명의 떡”이란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그 말의 뜻이 궁금했습니다. 그 종이가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는 성경을 한 권 샀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어디 나오는 지 찾기 위해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후에 인도 교회를 위해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썬다 싱이 그 기차에서 복음을 전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성경책을 찢어 창 밖으로 버렸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철로 변을 지나게 됐을까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걷는 인생 길에 섭리로 역사하십니다. 하필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필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필 내가 그곳에 있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철저한 신뢰
오늘 본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 시기를 따져보면 주전 470-480년경입니다. 이 때는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한 지 이미 50여년이 지난 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정착하고 살며 성벽도 재건하고 성전도 다시 짓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서는 이 때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실까요? 이들이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믿음을 이어갔을까요? 궁금한 대목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점에 대해 답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 답은 부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서 어디를 봐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표현이라든지 제사나 성전과 같은 어휘들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토라나 율법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말들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철저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저들도 여전히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 3장을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이 총리의 자리에 오르자 교만해졌습니다. 왕의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절 할 수 없었습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 뿐 아니라 바사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간계를 꾸밉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왕에게 왜곡해서 보고했습니다. 또한 은 만 달란트를 바쳐 유대인들을 몰살할 계획에 대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조서를 보냈습니다.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으라는 것입니다.
민족의 큰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바사 땅의 모든 유대인들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하고 가진 재산을 다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저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에 4장을 보면 그 때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4:1에 보면 모르드개가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3을 보면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애통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통회 자복하는 모습입니다. 금식하며 부르짖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위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민족적 위기가 다가오자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 것입니다. 저들이 위기가 다가오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도입니다. 다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4:1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면서 기도 부탁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허락 없이 왕 앞에 나가면 누구라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더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 그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도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겉으로는 믿음의 약해 보여도 위기가 다가오자 깊이 감춰졌던 믿음이 화산처럼 분출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인생의 위기에서 건져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믿고 의지할 분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깨달음과 순종
에스더는 원래 자신의 안녕에만 관심이 있었던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4:11을 보면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 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에스더는 민족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안녕만 지키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4:4를 보면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지금 모르드개가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데 베옷을 벗기고 일상 옷을 입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민족의 위기를 영적으로 해결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던 에스더가 변합니다. 바로 모르드개의 도전의 말이 계기가 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 이 말씀이 그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아니하게 왕후 자리에서 자기의 안녕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심령에 큰 도전이 옵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을 것입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됐을까? 내가 어떻게 왕후가 됐을까? 왕후가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왕후가 됐던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기를 왕후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지금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통해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돈을 많이 버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자가 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출세를 하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나를 그 자리에 앉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명해 지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내 이름을 알려지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는 깨닫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용기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단과 그 용기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과 그 용기를 들어 쓰십니다. 왕 앞에 나아가 에스더를 지켜주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부름도 없이 자기 앞에 나온 왕후를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게 하셨습니다.(5:3) 그래서 유대인들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결단을 귀하게 보십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를 주목하십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옥 가는 사람에게 용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죄 짓고 요령껏 사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손해와 박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우리에게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우리에게 결단과 용기에서 샘솟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에스더와 같은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별처럼 빛나게 쓰임 받을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철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용기있게 순종하는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 중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현상 가운데 “스타신드롬”이런 것이 있습니다. 연예인이나 운동선수와 같은 대중적 인기를 누리고 있는 스타가 되려고 너도 나도 몰려드는 현상을 말합니다. 1명의 가수 지망생을 뽑는데 수천 명이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룬답니다. 일곱 여덟 살 때부터 학업을 뒤로 하고 준비하는 아이들이 크게 늘어나고 있답니다. 예전 같으면 ‘딴따라’라 해서 부모가 반대했지만 요즘은 도시락 싸들고 다니면서 뒷바라지 하고 있답니다.
요즘 소위 잘나간다는 스타들은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우선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지고 조작 된다는 것입니다. 기획사와 매니저들에 의해서 의도적으로 스타가 만들어집니다. 다음으로 철저하게 돈 벌이 수단이 된다는 것입니다. 스타 마케팅이라 해서 스타들이 상품화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그 인기 생명이 길지 않다는 것입니다. 스타로 이름을 날리다가 어느 샌가 사라져 버리고 맙니다.
오늘 본문 에스더서에는 이런 요즘의 병적인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스타가 등장합니다. 그 주인공이 바로 에스더입니다. 에스더는 원래 히브리 이름으로는 “하닷사”입니다.(에 2:7) 그가 바사 땅에서 살면서 바사식 이름 에스더로 불렸습니다. 그 뜻이 바로 별 곧 스타입니다. 에스더는 그 이름 그대로 별처럼 빛나는 스타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민족을 멸망의 위기로부터 구원해 냅니다. 그리고 그이 이름은 이스라엘의 절기 부림절을 통해 오늘까지 길이길이 빛나고 있습니다.
요즘 스타들과 비교해 보면 에스더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우선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 가운데 왕후가 됐습니다. 5장 이후 그는 “왕후 에스더”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역사하심으로 그는 진정한 에스더 곧 스타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왕후가 되어 민족을 살렸고, 자기 남편 바사 왕도 지켰습니다. 스타로서 돈 벌이에 나선 것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공헌했던 것입니다. 또한 그의 이름은 잠시 있다 사라지 않았고 오랜 역사가 지날수록 더욱 빛나는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의 스타로서의 인기는 수천 년이 지난 오늘도 결코 시들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스타라 할 수 있는 에스더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섭리
에스더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사 왕 아하수에로에게 엄연히 왕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에스더는 포로로 끌려온 이민족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있었습니다.
우선 왕후 와스디가 폐위됩니다. 에 1장을 보면 아하수에로 왕이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잔치 7일째 되던 날 술에 취해 자기 왕후를 단장하고서 잔치 자리에 나오도록 불렀습니다. 뭇 백성과 지방 관리들에게 왕후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싶어서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왕후 와스디도 그 때 왕궁에서 여인들과 잔치를 베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왕후가 왕명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왕의 심기가 좋지 않았습니다.
왕이 어떻게 하면 좋을 지를 신하들에게 물었습니다. 신하들이 왕후를 폐위하라고 고합니다. 그대로 두었다가는 모든 바사의 여인들이 남편의 말을 듣지 않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래서 왕이 왕후를 폐위시켰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왕후가 왕의 명령을 듣지 않았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신하들이 그렇게 심한 처벌을 청했을까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를 작동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에스더가 왕후로 간택됩니다. 에 2장을 보면 새 왕후 간택에 관한 조서와 명령이 반포되자 모르드개가 조카인 에스더를 간택에 내 보냈습니다. 왜 모르드개는 에스더를 간택에 내보냈을까요? 이민족인 유대인 에스더가 왕후가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데 말입니다.
간택을 위해 수산성에 들어갔을 때 책임을 맡은 헤개라는 내시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가 에스더를 특별히 좋게 보았습니다. 특별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이민족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아도 되도록 분위기를 이끌어 갔습니다. 이 헤개라는 사람의 도움이 왕후 간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게다가 아하수에로 왕이 간택에 나온 모든 여자들 중에서 에스더를 눈여겨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스더를 왕후로 선택하게 됩니다. 그래서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왕후 간택에 내보낼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왕궁에서 헤개라는 사람을 만나서 큰 도움을 받게 되었을까요? 왜 하필이면 왕이 그 많은 여자들 중에서 에스더를 선택하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왕후로 세우시기 위한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를 작동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에스더가 왕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 갑자기 왕후 와스디가 폐위된 것도, 모르드개가 에스더를 왕후 간택에 내보내게 된 것도, 수산성에서 헤개라는 내시를 만나게 된 것도, 아하수에로 왕의 마음이 에스더에게 쏠리게 된 것도 다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섭리의 결과를 볼 때마다 “왜 하필이면 그 때...”라고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인도의 성자 썬다 싱이 기차 안에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기차 승객들에게 요한복음이 기록된 작은 책자를 나눠주며 말씀을 전했습니다. 왜 그랬는지 어떤 사람이 보지도 않고 책자를 찢어 창 밖으로 내 던져 버렸습니다.
그런데 철로 변을 지나던 한 사람이 종이가 날리는 것을 보고는 호기심에 한 장을 주었습니다. 읽어보니 거기 “생명의 떡”이란 글이 씌어 있었습니다. 그 말의 뜻이 궁금했습니다. 그 종이가 성경이라는 것을 알고는 성경을 한 권 샀습니다. 그리고 생명의 떡이라는 말이 어디 나오는 지 찾기 위해 성경을 한 장 한 장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사람은 성경을 읽으면서 자신이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래서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었고 후에 인도 교회를 위해 큰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왜 하필이면 그 때 썬다 싱이 그 기차에서 복음을 전했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성경책을 찢어 창 밖으로 버렸을까요? 왜 하필이면 그 때 그 사람이 철로 변을 지나게 됐을까요? 모두가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 우리가 걷는 인생 길에 섭리로 역사하십니다. 하필 그 일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하필 그 사람을 만나게 하십니다. 하필 내가 그곳에 있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섭리를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2. 철저한 신뢰
오늘 본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바사의 아하수에로 왕이 다스리고 있을 때입니다. 그 시기를 따져보면 주전 470-480년경입니다. 이 때는 바사의 초대 왕 고레스의 칙령을 따라 유대인들이 고국으로 귀환한 지 이미 50여년이 지난 뒤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정착하고 살며 성벽도 재건하고 성전도 다시 짓고 있을 때입니다. 그러니까 에스더서는 이 때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살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들에게 관심을 갖고 계실까요? 이들이 여전히 바사 땅에 남아서 믿음을 이어갔을까요? 궁금한 대목입니다. 에스더서는 이점에 대해 답을 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그 답은 부정적입니다. 그 이유는 에스더서 어디를 봐도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철저히 하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은 생명처럼 소중히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그 이름을 소중히 간직합니다. 그러나 당시 유대인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그렇지 않아 보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표현이라든지 제사나 성전과 같은 어휘들도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토라나 율법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나타내는 말들도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이런 말들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그러니까 당시 이들은 겉으로만 봐서는 철저하게 신앙생활하고 있다고 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본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른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전히 저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저들도 여전히 속 깊은 곳에는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를 가지고 있습니다.
에 3장을 보면 하만이라는 사람이 총리의 자리에 오르자 교만해졌습니다. 왕의 모든 신하들로 하여금 자기에게 절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와 유대인들은 절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이외에 그 누구에게도 절 할 수 없었습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알고 모르드개 뿐 아니라 바사 내의 모든 유대인들을 죽이고자 간계를 꾸밉니다. 하만이 이 사실을 왕에게 왜곡해서 보고했습니다. 또한 은 만 달란트를 바쳐 유대인들을 몰살할 계획에 대한 허락을 받아냈습니다. 그리고 전국에 조서를 보냈습니다. 아달월 13일 하루 동안에 모든 유대인들을 다 죽이고 그 재산을 빼앗으라는 것입니다.
민족의 큰 위기가 찾아온 것입니다. 가만히 있다가는 바사 땅의 모든 유대인들이 하루아침에 몰살당하고 가진 재산을 다 빼앗기게 생겼습니다. 저들이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에 4장을 보면 그 때 유대인들이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선 4:1에 보면 모르드개가 “자기의 옷을 찢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를 뒤집어쓰고 성중에 나가서 대성통곡을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4:3을 보면 “유다인이 크게 애통하여 금식하며 울며 부르짖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누운 자가 무수하더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옷을 찢고 재를 뒤집어쓰고 애통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통회 자복하는 모습입니다. 금식하며 부르짖었다는 것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위기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유대인들은 민족적 위기가 다가오자 자신들의 죄를 하나님 앞에 통회 자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 것입니다. 저들이 위기가 다가오자 제일 먼저 한 일은 기도입니다. 다른 어떤 인간적인 방법을 찾지 않았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만 의지했다는 뜻입니다.
4:16을 보면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와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에스더가 왕 앞에 나가면서 기도 부탁을 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허락 없이 왕 앞에 나가면 누구라도 죽게 됩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에스더에게는 위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때 그가 하나님 앞에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도 금식하며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들이 겉으로는 믿음의 약해 보여도 위기가 다가오자 깊이 감춰졌던 믿음이 화산처럼 분출했습니다. 철저히 하나님만 바라보고 기도에 모든 것을 걸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를 인생의 위기에서 건져주실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래서 인생의 위기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뿐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믿고 의지할 분이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인생의 위기에서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은혜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풍성하게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3. 깨달음과 순종
에스더는 원래 자신의 안녕에만 관심이 있었던 평범한 여인이었습니다. 4:11을 보면 “왕의 신하들과 왕의 각 지방 백성이 다 알거니와 남녀를 막론하고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안 뜰에 들어가서 왕에게 나가면 오직 죽이는 법이요 왕이 그 자에게 금 규를 내밀어야 살 것이라 이제 내가 부름을 입어 왕에게 나가지 못한 지가 이미 삼십 일이라 하라 하니라” 에스더는 민족이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자기의 안녕만 지키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게다가 4:4를 보면 “에스더의 시녀와 내시가 나아와 전하니 왕후가 매우 근심하여 입을 의복을 모르드개에게 보내어 그 굵은 베 옷을 벗기고자 하나” 지금 모르드개가 통회하며 하나님 앞에 부르짖어 기도하고 있는데 베옷을 벗기고 일상 옷을 입히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민족의 위기를 영적으로 해결하고자 몸부림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던 에스더가 변합니다. 바로 모르드개의 도전의 말이 계기가 됩니다. “네가 왕후의 자리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4:14) 이 말씀이 그의 심령에 꽂혔습니다. 아니하게 왕후 자리에서 자기의 안녕에만 관심을 기울이던 심령에 큰 도전이 옵니다.
갑자기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됐을 것입니다. 내가 왜 왕후가 됐을까? 내가 어떻게 왕후가 됐을까? 왕후가 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왕후가 됐던 과정을 다시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자기를 왕후가 되게 하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지금 하나님께서 모르드개를 통해 우리에게 도전하고 계시는 것은 아닐까요? 돈을 많이 버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나를 부자가 되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십시오. 출세를 하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나를 그 자리에 앉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유명해 지셨습니까? 그것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감사만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왜 내 이름을 알려지게 하셨는지를 생각해 보십시오.
에스더는 깨닫고 난 뒤 달라졌습니다. 방법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왕을 만나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왕 앞에 나가는 길은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길입니다. 그래도 가야만 한다고 결단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하는 용기로 나아갑니다.
하나님께서 그 결단과 그 용기를 주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결단과 그 용기를 들어 쓰십니다. 왕 앞에 나아가 에스더를 지켜주셨습니다. 왕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부름도 없이 자기 앞에 나온 왕후를 따뜻하게 맞이하게 하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무슨 소원이라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게 하셨습니다.(5:3) 그래서 유대인들이 위기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결단을 귀하게 보십니다. 죽으면 죽으리라는 용기를 주목하십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천국 가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지옥 가는 사람에게 용기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죄 짓고 요령껏 사는 사람들에게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합니다. 실패하는 사람들은 용기가 필요치 않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일에도 용기가 필요합니다. 타협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위험과 손해와 박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알겠느냐?” 우리에게 깨달음이 필요합니다. “죽으면 죽으리라” 우리에게 결단과 용기에서 샘솟는 순종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에스더와 같은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위해 별처럼 빛나게 쓰임 받을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철저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용기있게 순종하는 스타를 찾고 계십니다.
출처/박봉수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