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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빛을 밝게 하라 (눅 11:33-36)
등불의 목적은 어두움을 밝히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등불은 켜서 감추어두지 않고 등경위에 두어 오고 가는 사람들로 그 빛으로 인하여 넘어지지 않게 하고, 바르게 가게 합니다.
등불의 목적은 밝히는데 있으며 등불에서 나오는 빛으로 사물을 보게 합니다. 그러므로 등불은 무엇으로 가리우거나, 덮어두면 그 빛의 기능을 전혀 나타낼 수 없으므로 빛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빛은 있어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등불이나, 빛이신 예수를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같은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우리 속에 빛이 있습니다.
우리 몸에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은 눈입니다. 그런데 그 눈앞에 무엇이 씌어져 있으면 제대로 보지 못하므로 몸 전체가 어둡습니다. 그러나 눈을 크게 뜨고 사물을 제대로 보면 온 몸이 밝습니다. 안 질환 가운데 백내장이 있는데, 눈동자 앞에 하얀 무엇이 가리워 잘 볼 수 없는 질환입니다. 안과에서 제거하는 수술을 통해 눈이 다시 밝아지지요.
예수님은 "네 속에 있는 빛이 어둡지 아니하냐 보라"(25)고 하셨습니다. 우리 속에 빛이 무엇입니까? 내가 구주로 영접한 예수 님입니다. 마태복음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는 말씀은 빛 되신 예수를 모시고 있기에 내가 빛을 발산시키는 자가 되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네 속에 빛이 어둡지 아니하냐 보라"는 말씀은 우리 안에 계신 빛이신 예수 님께서 밝아졌다가 희미해졌다가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을 밖으로 발산시키는 내 삶의 행동에 따라 밝기도 하고 어둡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33절에 "누구든지 등불을 켜서 움 속이나 됫박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라고 하신 것처럼, 등불이신 예수를 너희의 잘못된 행동에 가리워 빛이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36절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의 광선이 너를 비출 때와 같이 온전히 밝으리라"
"네 온 몸이 밝아 조금도 어두운 데가 없으면"라는 말씀에서 몸에 어두움은 무엇입니까?
마가복음7:21-23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어리석음)니,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의 어두움은 악한 생각입니다. 악한생각의 내용은 음란, 도적질, 살인, 간음, 탐욕, 악독, 속임, 음탕, 흘기는 눈, 훼방, 교만, 광패(어리석음)입니다. 이것이 악한행동으로 나타남으로 빛이 나타나지 못합니다.
그러면 반대로 몸의 밝음은 선한 생각입니다. 선한 생각은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품지 않고,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만 품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성령님의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쉬지 않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말씀묵상이 없이, 기도 없이 선한 생각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선한 생각이 깨끗한 행실로 나타납니다. 그 깨끗한 행실은 곧 빛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께 영광이 돌아가고 사람에게 유익을 끼치게 되지요.
기독교 신앙의 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는 선천적으로 착한데 교회에 도움이 안 되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없어 그 속에 선한 생각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선은 유교에서 말하는 선도 아니고, 불교에서 말하는 선도 아니고, 도덕책에 나오는 선이 아니라, 영원불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었으면, 믿기 전에 착하게 산 것도 다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 그 착함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착함이 아닌, 말씀이 없는 착함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지고 신앙생활에 적용하려 하면 진짜 답답한 성도가 됩니다.
"옛것을 버려라"할 때에 옛것은 무엇입니까? 믿기 전에 모든 것이 옛것입니다. 믿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것 써먹을 것 하나 없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기 전에 효도상을 받았을지라도 믿은 후에는 효도가 달라야 합니다. 그때는 부모 위에 아무 것도 없었지만 이제는 부모 위에 하나님께서 계시고, 부모님도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을 대상임을 알고 효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에게 부모님께 효도는 "부모님께 순종하고 존경하라"이면, 믿는 사람들은 "주안에서 부모님께 순종하고 존경하라"로 바뀌어져야 합니다. 같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같습니까? 형제우애도 마찬가지,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한 생각으로 빛을 밝게 하는 것이 곧 헌신입니다.
예수 믿으면 빛을 품고 있고, 그 빛은 죄사함 받아 구원으로 인도하는 빛이요. 영생으로 인도하는 빛이요. 천국으로 인도하는 빛인데, 그 빛이 희미해져 있으면 되겠습니까?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여 선한 생각으로 속에 있는 빛을 밝게 하여 선한행실, 아름다운 행실을 드러내십시오. 착한 행실, 아름다운 행실의 결정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희생입니다.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곧 헌신입니다.
다음 글을 잘 음미해 보시기 바랍니다. 황금물고기
연못에 아름다운 황금색 비늘을 가진 물고기가 살고 있었죠.
다른 물고기들은 그를 부러워하며 곁에 가려고 했지만
그의 자세가 너무 도도해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답니다.
황금물고기는 혹 자신의 비늘이 다칠까봐 다른 물고기들이 다니지 않는 길을 다녔고,
마을의 축제 때도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죠.
언젠가 부터..그는 늘 혼자였어요.
황금 물고기는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줄 만한 친구가 하나도 없어 슬펐답니다.
그 즈음 다른 연못에서 이사온 물고기가 그의 아름다움에 반해 말을 걸어왔어요.
외로워하던 황금 물고기는 그를 반갑게 맞았고, 둘은 곧 친구가 되었죠.
어느날 이사온 물고기가 황금 물고기에게 부탁했답니다.
"친구야 너의 아름다운 비늘을 하나만 내게 주렴. 그것을 간직하고 싶어."
그러자 황금 물고기는 선뜻 자신의 황금 비늘하나를 내 주었고 좋아하는
친구를 보면서 그도 기뻐했습니다.
그것을 본 연못의 다른 물고기들은 너도나도 황금 물고기에게 몰려와
비늘 하나만 달라고 졸랐죠..
마침내 비늘을 다 주고 난 황금 물고기는 보통 물고기처럼 되었지만 주위에 많은
친구들이 생겨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답니다..
그 뒤 어느날 밤.....
연못을 지나던 사람은 연못 전체가 황금색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연못속 물고기들이 하나씩 지니고 있는 황금비늘이 저마다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던 것이죠...^^
주야로 말씀묵상과 쉬지 않는 기도로 속에 선한 생각으로 가득채워 예수의 빛을 한껏 드러내어 어둠에 방황하는 이웃들을 몰려오게 합시다. 이것이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헌신이요 선물입니다.
출처:한국교회 부흥설교 설교 정보수집 편집위원 협조와 추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