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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혁명 (출8:25-31,10:8-11,24-26)
어린아들이 목사 아빠에게 물었습니다. "아빠, 아빠가 설교하러 나오시기전 언제나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걸 봤어요. 그때 뭐라고 기도하세요?" "주님께 좋은 말씀을 달라고 기도하지." "아빠, 그런데 왜 안 주시죠?"
좋은 교회를 만드는 것, 좋은 설교를 하는 것은 모든 목사들의 꿈 일 것입니다.
제가 어린시절 소명을 받아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하게 되었습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하루에도 수없는 결정을 해야 되고 결단을 필요로 할 때가 있습니다. 저의 목회 여정에서 생각하면 할수록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되는 감사한 결정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한소망교회를 개척하기로 결단한 1991년의 결정이었습니다. 이 결단은 평생 제 목회의 방향과 내용을 결정해 주었습니다.
둘째는 21세기 한국교회 목회의 방향을 위해 기도하다가 2000년도 셀교회를 만나고 한소망교회가 셀교회로 나아가기로 결단한 결정이었습니다.
셋째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의 마음을 배우고 한소망교회가 이동성장이 아니라 불신자를 전도하여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2002년 알파코스를 목회의 핵심으로, 본질로 받아들인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성령님의 인도였습니다. 이 결정은 저 자신 뿐만아니라 한소망 모든 가족에게 신앙생활의 행복과 보람 그리고 기쁨과 열매를 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베스트 셀러가 담고 있는 영혼의 양식」 그 두 번째 시간 김원태 목사님의 「가치혁명」이란 책을 통해 양식을 얻고자 합니다. 김원태 목사님은 저처럼 교회를 개척하고 그 교회를 셀교회로 전환한 젊은 목회자입니다.
목사님은 「가치혁명」이란 책에서 가치가 무엇인지 그리고 가치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셀교회의 가치를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셀교회는 교회를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해합니다.
·셀교회는 두 날개로 비상하는 교회입니다.
예배의 영광과 셀소그룹의 행복을 항상 맛보는 교회입니다.
·셀교회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가족을 찾기위해 몸부림하는 교회입니다.
II. 말뚝은 세상에 박아놓고 교회만 나가라
우리교회는 참 오랫동안 성경적 교회의 원형을 발견하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노력이라기 보다는 몸부림을 해왔습니다. 거기에 유혹이 하나 있었습니다. 가치관의 변화없이 교회의 체계, 시스템만 바꾸면 셀교회가 될 줄로 압니다. 아닙니다. 셀교회는 시스템 이전에 가치관의 문제요 우선순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가족들이 하나님 아버지께 예배하는 일 보다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출애굽기 본문에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예배하겠다는 모세의 제안에 바로는 멋진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그 첫번째 타협안이 오늘 본문 출애굽기 8장 25절입니다.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너희는 이 땅에서 즉, 애굽땅 안에서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라는 것입니다. 애굽을 떠나지 말고 이 땅에서 예배하라! 하나님께 예배는 해라. 그러나 너희 신분의 본질은 노예라는 것을 잊지 말아라. 교회는 나가라. 그러나 세상 가치관을 떠나지 말아라 하는 것입니다.
이 작전이 그리스도인을 유혹하는 사탄의 첫 번째 작전입니다. "예수는 믿어라. 그러나 네 가치관, 정신, 삶은 세상에 말뚝을 박아놓고 살아라." 사탄은 오늘도 변화받지 못한 그리스도인의 목줄을 붙들고 언제든지 자신의 뜻대로 조종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이 작전에 걸려 넘어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자연인인지 구별이 안됩니다. 교회는 나오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세상중심입니다. 세상에 박힌 말뚝을 뽑지 못하고 그 주변을 맴돌며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은 때로 사단의 병정 놀음을 합니다. 때로 크리스챤을 비난하기도 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기도 하고 예수 잘 믿는 사람들에게 지나친 광신도가 되지 말라고 박해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때로 사단의 선전물이 되기도 합니다.
"저 사람 좀 봐라. 주일날 가서 예배만 드리고 세상과 타협하고 살아도 멀쩡히 잘 살고 있지 않느냐?" "열심히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네가 나보다 잘된 것이 뭐가 있느냐?" 세상적 가치기준으로 신앙을 비웃고 있습니다.
애굽을 떠나지 못한 사람, 세상의 가치를 버리지 못한 사람, 그는 종교인은 될는지 모르지만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은 아닙니다. 그에게도 종교적 형식은 있을 수 있고, 직분은 있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가치관의 변화는 없습니다.
지금도 사단은 아무런 부담없이 종교인으로 지내다 보면 예배도 하고, 구원도 받고 그러다 죽으면 천국도 갈 거라고 우리를 속입니다. 이러한 바로 왕의 타협안 - 사단의 유혹에 대한 모세의 대답을 들어 보십시오.
8장 26절입니다. "모세가 이르되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것은 애굽 사람이 싫어하는 바인즉 우리가 만일 애굽 사람의 목전에서 제사를 드리면 그들이 그것을 미워하여 우리를 돌로 치지 아니하리이까"
애굽 사람은 짐승을 섬기는 사람이요 우리는 짐승을 잡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입니다. 당신과 우리는 가치관이 다르고, 주권이 다르고, 사는 방식이 다르고, 입맛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다른 사람이요.
① 때문에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변화받지 않고도 구원받을 수 있다. No.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세상도 즐기고 신앙도 즐기라. No.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세상은 공동 우승도 있고 무승부도 있느니라. 아니요. 그리함은 불가하오.
하나님 나라는 무승부도 없고 공동 우승도 있을 수 없소.
III. 너무 야단스럽게 믿지 마라!
첫 번째 타협안에 실패한 바로는 두 번째 타협안을 내어놓습니다.
8장 28절입니다. " 바로가 이르되 내가 너희를 보내리니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광야에서 제사를 드릴 것이나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
② 가라, 그러나 너무 멀리는 가지 말라.
예수 믿어라. 그러나 너무 유별나게 믿지는 말아라. 신앙생활 해라. 그러나 열성분자처럼 믿지는 말아라. 티내고 예수 믿는거 꼴불견이더라. 예수 믿는다고 하루 아침에 술 끊고, 담배 끊고, 주일날 가게 문 닫고, 예배시간마다 은혜 받았다고 찔찔짜고, 저녁예배, 수요예배, 새벽예배까지 야단법석 떠는 것 그거 별로 안좋더라. 이게 사단의 유혹입니다.
여러분, 마귀는 세상에서 우리를 교회로 풀어주는 듯한 유화정책을 쓰지만 자신이 붙들고 있는 고삐를 놓치 않으려고 몸부림을 합니다. 이럴때 일수록 단호해야 합니다. 사단! 네 말을 듣는 것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 어느 것이 옳은지 판단해 보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열심을 다해 믿어라. 마지막 때가 될수록 더욱 그리하라.
똑같이 신앙생활한다고 하면서도 ① 발목만 은혜의 강물에 담가놓고 찰싹거리며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는 노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얕은 물가에서 저 큰 바다 가려다가
찰싹거리는 작은 파도 보고 맘이 졸여서 못 가네 (408장)
② 무릎까지 담그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응답도 곧잘 받습니다. 그러나 가치관의 변화는 없습니다.
③ 가슴까지 담그고 살아갑니다. 감동을 잘 받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온전히 하나님 앞에 삶을 맡기지 못합니다.
④ 온 몸을 담그고 하나님의 은혜의 강물에 온전히 맡겨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이름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 부르는 것이지요.
마귀는 오늘도 협박합니다. 너무 멀리 가지 말아라. 멀리가면 너 빠져 죽는다. 바로 왕은 속입니다. 내가 밥 먹여주고, 집 주고, 옷 입혀 주는 거야. 광야에서 어떻게 살아. 광야에서는 예배만 하고 곧 애굽으로 돌아오는 거야. 예수가 밥 먹여 주냐. 교회 가서 예배만 하고, 사는 것은 세상적인 방법으로 사는 거야. 예수 믿는 사람도 타협하며 그렇게 사는 거야. 너 혼자 열심내고 흥분하고 그러지 말아라.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들이 무력해지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월요일 아침 교황청 발코니에서 주교가 토마스에게 베드로는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어라"고 했는데 오늘 우리교회는 은과 금이 넘쳐나고 있어요. 그 자랑을 듣고 있던 토마스가 대답을 했습니다. "그러나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없어졌지요."
오늘 우리교회가 예수의 이름, 예수의 능력, 예수의 권세가 없어져서 무력한 집단이 되지는 안았는지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이름에 생명을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국교회가 왜 이렇게 무력한 집단이 되었습니까? 예수는 믿되 멀리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교회가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왜 교회가 세상을 바꾸지 못합니까? 너무 멀리가지 말라는 바로의 타협안에 넘어갔기 때문 아닐는지요. 왜 천만 그리스도인이 있어도 세상이 어둡습니까? 세상에서 멀리 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오늘 교인이 되었기 때문이 아닐는지요.
디지털 혁명을 일으켜 세계 최대 갑부 가운데 한 사람이 된 인텔사의 엔드류 그로부라는 사람은 말했습니다. "뭔가에 미친 사람이 세상을 뒤집더라.”
옛말에 미친놈이 곰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에 미친 사람이 마귀 때려 잡는 것입니다. 예수에 미친 사람이 세상을 뒤집고 복음에 미친 사람이 세상을 구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안에 멀리가지 않으려는 사람들로 가득찰 때 성경적 원형의 셀교회는 불가능합니다. 멀리가는 사람들에 의하여 초대교회의 원형은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에 의하여 하나님 나라 가치관은 회복되어질 것입니다. 너무 멀리가지 말라는 사탄의 유혹 앞에 주님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멀리 가는 것이야. 확실하게 떠나는 것이야. 지옥을 떠나 천국으로 가는 것이거든.
IV. 공동체를 포기하라
애굽에 묶어두려던 바로의 시도도, 너무 멀리 가지 말라던 바로의 타협안도 거절되자 이번엔 세 번째 타협안을 가지고 나옵니다.
10:11절입니다. "너희 장정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
③ 남자만 가라, 너 혼자만 가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을 패배시키려는 사단의 집념을 보십시오. 사탄은 한번 두 번 실패했다고 포기할 위인이 아닙니다. 오늘 성도들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신앙생활을 하면 사단은 세 번째 타협안을 들고 나옵니다. 좋다. 열심히 믿어도 좋다. 그러나 너 혼자만 열심히 믿어라. 신앙은 자유니까. 남편까지, 자식까지, 이웃까지 변화시키려고 하지 말아라. 셀공동체가 어떻고? 하지말고 너 혼자만 열심히 해라. 다른 사람의 구원은 네가 책임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소위 공동체까지 운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동체를 만드시는 분이십니다. 그 공동체안에 임하시며 그 공동체를 통해 경배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사단은 에덴동산에서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아벨을 죽인 가인의 말을 아십니까?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이니이까?" 그러나 우리는 단호히 선포합니다. "나는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다" 내가 내 공동체를 지키는 자이니이까? 하나님의 사람들은 단호히 선포합니다. 나는 공동체를 지키는 자이며, 공동체를 통하여 하나님을 섬기게 될 것이고, 공동체의 영광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너 혼자 가라. 사단의 이 타협은 우리를 속이는 것입니다. 나 혼자 잘 믿으면 그만이라는 생각은 사단이 주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가족을 함께 데리고 애굽을 떠나라 말씀하십니다. 태신자 VIP들을 가슴에 품고 함께 신앙생활을 하라 말씀하십니다. 한소망 교회 모든 성도들이 같은 삶을 살라고 하십니다. 같은 뜻을 품고, 같은 말을 하며, 같은 비전, 같은 능력으로, 같은 열매를 맺고 사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그리고 출애굽 이후 인간의 역사는 하나님의 가족 공동체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열심과 그 공동체를 파괴하려는 사단의 끈질긴 집념의 부딪히는 장이 되었습니다.
출애굽의 목적은 하나님의 선민공동체, 구원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공동체, 하나님의 가족 - 셀공동체를 건설하는데 있습니다.
지금까지 조용히 예배만 드리고 가시는 분들은 모두 셀공동체 안으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그 안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축복이 있습니다.
V. 물질은 빼놓고 믿어라
「너나 열심히 예배하라」는 바로의 유혹앞에 모세와 이스라엘은 단호히 거절합니다. 아내도, 어린아이 하나도 두고 갈 수 없소. 이때 바로는 네 번째 타협안, 마지막 타협안을 내어 놓습니다.
출애굽기 10장 24절입니다. "바로가 모세를 불러서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
양과 소는 두고 몸만 가라는 것입니다. 물질로까지 예배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바로의 유혹이 무엇인지 아시겠습니까? 양과 소. 물질이 하나님을 위해 사용되는 것을 막아 보자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유혹입니다. 여기에 넘어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물질문제 때문에 신앙생활이 주는 기쁨과 행복과 축복을 상실하고 살아갑니다. 10년을 믿어도 믿음이 자라지 않습니다. 항상 똑같은 시험에 걸려 넘어집니다. 평생을 투덜거리며 불평이나 하다가 인생이 끝장납니다.
주일학교에 가는 아들에게 엄마가 500원짜리 동전 하나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주면서 말했습니다. "1000원은 헌금하고 500원은 용돈으로 가지려무나." 주일학교에서 돌아온 땡식이가 1000원 지폐를 들고 왔습니다. "1000원을 헌금하라고 했잖아." "엄마, 전도사님이 하나님께서는 기분 좋게 내는 헌금을 기뻐하신대. 나는 1000원 헌금하고 500원 갖는 것보다 500원 헌금하고 1000원 내가 갖는 게 더 기분이 좋거든."
자기 기분, 자기 가치, 자기 기준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가치를 가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섬기는 일 때문에 물질적 손해를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온전한 십일조를 드렸습니까? 구제와 선교에 성실한 헌금을 드렸습니까?
주님의 성전을 건축하기 위해서 힘에 지나도록 헌신하셨습니까?
주께서 보상해 주실 것입니다.
누가 18:29-30절 말씀에 보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출애굽을 하던 날 밤 떨어진 하나님의 명령을 보십시오. 출애굽기 12장 11절입니다.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지팡이를 잡고"라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지팡이를 의지하고 광야로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죽장에 삿갓 쓰고 멋을 내고 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게 지팡이는 양을 모는 도구입니다. 애굽을 빠져나갈 때 양을 몰고 나가라는 것입니다. 여기 양은 이스라엘 백성의 재산입니다. "네가 거듭날 때 물질도 거듭나야 한다. 너희 하나님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에 물질도 세상을 떠나는 물질관이 거듭나야 한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을 갈라 생수를 내어 먹이셨습니다. 그런데 왜 양을 몰고 나가라는 것입니까? 신앙인에게 물질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함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가치관이 분명하지 않을 때 두 가지 비기독교적이고 비성경적인 물질관을 가지게 됩니다.
첫째, 금욕주의적인 물질관입니다. 하나님은 부자를 싫어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풍요를 원치 아니하신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빈궁을 기뻐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아닙니다. 하나님은 믿음있는 자들의 소유를 통해 일하십니다. 물질적인 사명이 있는 사람들에게 오늘도 이 땅에서 재물얻는 능을 그들에게 더하여 주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부요하게 살 권리가 있습니다. 행복하게 살 특권이 있습니다.
둘째, 잘못된 물질관은 물질 애착증, 집착증입니다. 교회안에 들어와서도 온갖 관심이 물질에 있습니다. 세상적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교회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물질을 얻기 위해서라면 신앙도 유보합니다. 교회안에서 물질 때문에 늘 시험듭니다. 물질이 왜 필요한지 우선순위를 모릅니다.
"양을 몰고 나가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물질이 필요한 첫 번째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을 통하여 하나님의 넉넉한 사역의 승리를 위하여 아버지 나라의 영광을 위한 복음 전도, 사역을 위하여 내게도 넉넉한 물질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물질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물질이 적으나 많으나 근심이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못합니다. 물질이 적으나 많으나 하나님을 위하여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당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물질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 물질을 쫓아가던 피곤한 삶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이제는 물질이 나를 따라 오는 편안하고 기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의 고백은 이렇습니다.
「저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원치 않습니다. 주께서 먹여주실 것일 것입니다. 그러나 주의 영광을 위해, 당신이 부어주시는 축복으로써 물질이 필요합니다. 원하시면 주께서 흑암중에 보화와 은밀한 곳에 재물을 내게 주실 줄 믿습니다.」
VI. 세속적 가치관과의 전쟁
사랑하는 한소망 가족 여러분!
가치관이 바뀌지 않고서는 1천만 성도가 아니라 7천만이 모두 교회안으로 들어와도 세상은 바뀌지 않습니다. 세속적인 가치관을 가지고 대형교회 1만개를 세워도 민족이 달라지지 않습니다. 교회는 많아지고 성도는 많아졌는데 이토록 교회가, 그리스도인이 무력해 보이고,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이유는 가치관의 변화없이 교인도되고 집사도되고 목사도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원하는 교회, 신약 성경의 교회 원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가치관의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세속적인 가치관, 우리를 변화받지 못하도록 묶고 있는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 거룩한 전쟁을 선포하십시다.
사단은 우리를 계속해서 끊임없이 유혹할 것입니다.
「교인이 되라. 그러나 세상적 가치, 욕망을 포기하지는 말아라. 예수는 믿어라. 그러나 너무 열정은 내지 말아라. 신앙은 개인적인 거야. 너나 잘 하세요. 다 좋은데, 물질은 잘 붙들어라. 교회는 네 주머니에 관심이 있어. 물질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우리는 선언하십시다. No! 그리함은 부당하니이다.
변화된 그리스도인 한명은 변화받지 못한 그리스도인 1만명보다 더 힘이 있습니다. 주님이 세우시는 한 교회는 무력한 1만 교회보다 더 영향력이 있습니다. 시대를 뒤집고 역사를 바꾸게 될 것입니다. 성경적 가치관으로 사는 한명을 세우는 교회가 진정한 셀 교회입니다.
그 한 명을 찾기 위하여 하나님이 원하는 참된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단 한 명을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의 교회는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최고의 가치, 최고의 자랑은 무엇입니까?
「가치혁명」에 나오는 이야기 하나로 오늘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마취제를 처음 발명한 사람은 제임스 심프슨(James Simpson, 1811-1870)이라는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그는 외과수술을 받는 환자들이 당하는 고통을 어떻게 하면 덜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던 중 창세기 2장 21절-22절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하는 말씀에서 수술용 마취제 클로로포름을 발명합니다.
그는 영국 황실로부터 스코틀랜드 출신으로서는 처음으로 경의 칭호를 받았습니다. 그의 말년 제자들이 "선생님의 많은 발견 중에 가장 큰 발견은 무엇이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심프슨은 말했습니다. "나의 가장 큰 발견은 내가 죄인이라는 사실과 예수님이 내 죄를 사하신 내 구세주라는 사실입니다. 나의 가장 큰 발견, 나의 가장 큰 가치는 예수님입니다."
출처/류영모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