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어리석은 사람 (본문 고후10장 1절~ 18절)
그러나 저희가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니 지혜가 없도다 그러나 우리는 분량 밖의 자랑을 하지않고 오직 하나님이 우리에게 분랑으로 나눠 주신 그 분량의 한계를 따라 하노니 곧 너희에게까지 이른 것이라"
▶ 현대인은 자신의 능력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또한 미지의 세계를 항해 도전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우주를 항한 인간의 욕구는 달과 화성을 넘나들고 있으며 염색체를 연구한 끝에 복제양을 생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최근에는 동물의 머리이식 수술에 성공하여 인간에게도 곧 적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하고 있습니다. 자연과 인간 생명에 대한 탐구와 노력으로 인간은 이제 자신의 힘으로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습니다.
▶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능력을 넘보며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까지 할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의 원인이 될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 피조물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까지 침투해서는 안됩니다. 인간은 인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온당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 한계를 넘어서 창조 주의 영역에까지 미치려고 할 때 돌이킬수 없는 불행을 불러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합니다.
▶ 죄가 어디에서 왔습니까? 인간의 불행이 어디에서 왔습니까? 한계를 망각할 때 온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피조물의 한계를 벗어나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것이 불행의 씨앗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에게 이 세상의 모든 불행과 모은 상황을 다 감당하라고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인간에게 허락하신 한계의 범주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은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한계 상황은 인간의 왜소함을 드러내는 장치가 아니라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혼란스런 문제들을 정리해 주기 위해 보낸 공적 서신이 고린도전서라면, 이후 디도에게 보낸 고린도후서는 바울 개인의 문제와 견해를 담고 있는 사적인 서신입니다.
▶고린도후서를 살펴보면 당시 고린도교회 성도들 중에 대해 오해하고 바울을 비난하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사실을 알수 있습니다. 바울은 비겁하고 유약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에 대한 비난의 내용이었습니다.
▶ 사실 바울은 볼품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척 단구의 키에 이마는 다 벗겨졌으며 안짱다리에 배가 나온 체구였습니다. 거기다 눈썹은 빽빽해서 거의 맞닿아 있었습니다. 매부리코에다 일설에 의하면 그가 심한 안질에 시달리고 있었다고 하며 어떤 사람은 그가 간질을 앓았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정말 존경할 것이라고는 없는 한심한 외모를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 그래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업신여겼습니다. "그가 떠나 있을 때 보낸 편지를 보면 제법 위엄있고 능력이 있어 보이지만 우리에게 왔을 때 보면 설교도 힘이 없고 매우 연악할 뿐이야" 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이 자신을 바로잡기 위해 쓴 것이 바로 오늘 본문인 고린도후서 10장 말씀입니다.
▶ 바울은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씀합니다. 본문4절에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는 말씀은 바울의 왜소한 육체가 그의 능력의 근거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가 말씀을 전하고 '견고한 진" 곧 사탄의 힘을 대적하는 것은 그리스도에게서 오는 능력에 근거한 것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 또한 13절에서 "그러나 우리는 남의 수고를 가지고 분량 밖에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 믿음이 더할수록 우리의 한계를 따라 너희 가운데서 더욱 위대하여지기를 바라노라 이는 남의 한계안에 예비한 것으로 자랑하지 아니하고 너희 지경을 넘어 복음을 전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의 볼품 없는 외모에 대해 불만을 가졌고 그가 좀 더 능숙한 언변으로 힘있게 복음을 전하기를 원했지만 바울은 본문 13절에서 '그 분랑의 한계를 따라…'라는 말씀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한계,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 사람이 절망하게 되는 이유는 한계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한계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인간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분량의 한계를 따라 사는 삶의 축복을 소래하고 있습니다. '한계를 따라…'라는 말씀의 헬라어 원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산다는'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이 한계에 부딪쳤을 때 의지할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 바울은 자신의 한계에 대해 분명히 알았으며 그것을 철저히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이방을 위한 사도로 부름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예루살렘에서 여러 사도들을 만났을 때 그것에 대해 분명히 천명하였을 뿐 아니라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서 무수한 비난을 들었을 때도 결코 실망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 이처럼 말씀을 의지할 때 어떤 한계상황에서도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 오늘날 자신의 힘의 한계, 지식의 한계, 사업상의 한계에 부딪쳐 절망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라도 절망하는 것은 미덕이 아닙니다.
▶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에 모여 있던 수많은 무리들이 굶주리자 예수님은 빌립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라고 말씀하셨으며 , '너희 중에 떡 몇 개가 있느냐?' 라고 물으셨습니다.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이니이다'라는 대답을 들으시고는 '그것을 이리로 가져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그들의 소유의 한계, 그들이 바칠수 있는 것의 한계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마리 뿐이라는 것을 주님은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시고 축사하사 남자만 오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나 남기는 큰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 이 기사를 통해 알수 있듯이 우리는 우리의 한계로 인해 절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의 한계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계를 무시하고 한계를 인정하고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 인간은 늘 한계에 부딪치며 삽니다. 그러나 한나님의 말씀 안에서 살 때 그 한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한계를 벗어나는 사람이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말씀 안에서,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사는 사람입니다.
▶ 혹시 여러분 중에 한계에 부딪쳐 낙심한 사람이 있습니까?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말씀 안에 여러분의 삶을 향한 축복이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고 말씀 안에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출처/길자연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