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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쓰시는 일꾼되자 (마21:1-11)
저희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두 제자를 보내시며 이르시되 너희 맞은 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보내리라 하시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일렀으되 시온 딸에게 이르기를 네 왕이 네게 인하나니 그는 겸손하여 나귀, 곧 멍에 메는 짐승의 새끼를 탔도다 하라 하였느니라 제자들이 가서 예수의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무리의 대부분은 그 겉옷을 길에 펴며 다른 이는 나무가지를 베어 길에 펴고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질러 가로되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니 온 성이 소동하여 가로되 갈릴리 나사렛에서 나온 선지자 예수라 하니라-마태복음 21:1-11
사람이 자기의 능력이나 지식 그리고 배경을 보고 자기 자신을 평가합니다. 그래서 뭔가 소유하고 있고 갖춰졌다고 생각하면 가치 있는 존재로 생각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어떤 사람은 '나는 무용지물이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연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필요에 의해서 존재하는 필연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필요에 따라 귀하게 쓰임받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1. 사람에게도 쓰임받는 자가 되자
지구의 인구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람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없습니다. 쓸모있는 사람, 도움이 될만한 사람, 유익한 사람이 없습니다. 오늘 대학을 졸업하는 젊은이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많은 학생들이 취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사람에게도 쓰임받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이 늦게 들어오면 부모의 마음이 긴장하게 되고 불안해집니다. 그러나 속썩이는 자식이 늦게 들어올 때에 그 부모는 염려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든지 사랑받는 자, 사람에게 유익을 주고 필요한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자가 되자
주인의 집에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 그릇이 여러 가지 있지만 그 중에 쓰임받는 것은 따로 있습니다. 어떤 것은 귀하게 쓰임받고 어떤 것은 천하게 쓰임받습니다(딤후2:20-21). 다 쓰임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의 내용입니다. 주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맞은편 마을로 가라 곧 매인 나귀와 나귀 새끼가 함께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내게로 끌고 오너라." "만일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어찌 모르는 사람에게 주가 쓰실 것이니 가서 나귀를 달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다고 해서 그 사람이 주겠습니까? 제자들은 말씀에 순종해서 가서 나귀를 끌고 왔습니다. 나귀의 주인은 주인이 쓰시겠다고 하니까 내어준 것입니다. 아마 그는 나귀의 진정한 주인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의 것은 우리의 것이 아니요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쓰여져야 합니다. 만약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우리의 것을 내어놓을 수 있을 것입니까? 믿음의 사람은 모두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내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자녀도, 건강도, 물질도, 재능도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드릴 수 있어야 합니다. 주께서 쓰시겠다고 요구하시는 것은 우리에게 큰 축복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아무나 쓰시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3. 그러면 하나님은 어떤 자를 쓰시는가?
첫째로, 자기 일에 충실한 자를 쓰십니다. 엘리사 선지자는 본래 밭을 갈다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왕상19:19-21). 아모스 선지자는 본래 양치는 목자였습니다. 그도 역시 양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쓰임받았습니다(암1:1-2).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도 게네사렛 호숫가에서 열심히 그물질을 할 때에 주님을 만나 쓰임받았습니다(마4:18-22, 눅 5:1-11). 마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도 그렇습니다.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현장에서 하나님이 그들을 부르시고 귀하게 쓰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목사님은 한 교회의 목사요 부흥사며 그 교단의 총회장을 지낸 분인데, 그 분은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 분인지 교회에서는 총각집사요 마을에서는 마을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열심을 보시고 그를 부르신 것 같습니다. 목회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도 변함없이 열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일에 충실한 자를 쓰십니다. 게으른 자를 절대로 쓰시지 않습니다.
둘째로,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쓰십니다. 달란트의 비유(마25:14-30)에서 두 달란트와 다섯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열심히 일해서 그 갑절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 때에 주인이 그를 축복하기를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잔치에 참여할지어다"고 했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맡기겠다는 것입니다. 더 크게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땅에 묻어두었다가 가져옴으로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맡겨진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자를 크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께 크게 쓰임받는 비결이 다른 데 있지 않습니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를 크게 쓰십니다.
셋째로, 매인 것을 푼 자를 쓰십니다(2). 나귀가 매여 있을 때에는 쓰임받을 수 없었습니다. 매인 것에서 풀려난 후에 쓰임받았습니다. 바울은 전에 율법에 매여 있었습니다. 율법에 매여 있었을 때는 쓰임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물질과 명예에 매여 있는 자를 쓰시지 않습니다. 또한 의문과 의심에서 풀려나야 합니다. 나사로가 동인 채 무덤에서 나왔을 때 풀어놔 다니게 했습니다(요11:44). 동인 것에서 풀려야 쓰임받습니다.
넷째로, 하나님은 개조해서 쓰십니다. 하나님은 사울을 개조하여 바울로 만들어서 쓰셨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쓰임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게 해서 쓰십니다(엡4:22-29). 죄와 허물많은 인간이 하나님께 어떻게 쓰임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고쳐서 쓰시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사가 오는 곳이 아닙니다. 쓸모없는 고물이 오는 곳입니다. 교회는 철공소이기에 고물인 사람이 와서 새 사람이 되고, 더 나아가서 한 것을 가지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용서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관용을 베풀어 사랑하고 용서하는 중에 새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나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고전15:10). 나의 노력으로 내가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보다 더 큰 은혜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소원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께 쓰임받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김충기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