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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매시고 고치시고 (사 30:23-26)
"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케 하실 것이며 그 날에 너의 가축이 광활한 목장에서 먹을 것이요 밭 가는 소와 어린 나귀도 키와 육지창으로 까부르고 맛있게 한 먹이를 먹을 것이며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령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 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배가 되어 일곱날의 빛과 같으리라"(이사야 30:23-26)
1991년 어느 날 알프스산 얼음 속에서 한 남자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처음엔 최근 등반하다가 실종된 사람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했습니다만 시체를 정밀 분석하던 조사팀은 깜짝 놀랐습니다.
이유는 수천년 전 죽은 사람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하라 사막에서 불어오는 먼지 폭풍과 계속된 따뜻한 날씨에 얼음이 녹아내리면서 시체가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 시체는 이집트 고대왕족의 미라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판명되
었습니다. 뼈를 분석한 결과 46세 정도의 남자, 하나 남은 손톱을 분석한 결과 죽기 전 세 차례 병을 앓았는데 그 병은 동맥경화와 뇌졸중, 장에는 편충이 있어서 설사와 이질이 심했을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DNA 검사결과 죽기 전 붉은 사슴과 야생염소고기를 먹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리고 남아 있는 머리카락을 검사한 결과 그의 직업은 구리를 녹여 기구를 만드는 일을 했을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의 장속에 꽃가루가 남아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가 죽은 때는 꽃가루가 날리는 늦봄이나 초여름이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의 힘이 놀랍습니다.
수천 년 전에 살던 사람의 성별 건강 음식 직업을 알아낼 수 있다면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나에 관한 모든 것을 다 아시고도 남는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시편 139편에서 다윗은“나의 앉고 일어섬을, 나의 생각을 내 혀 속에 있는 말을 아신다”고 했고 16절에서는“내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나도 모르는 나를 하나님은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자기 손으로 지으시고 구원하신 사람들 즉 자기 백성을 어떻게 도우시고 사랑하시는가를 설명해 줍니다.
1. 때를 따라 비를 주십니다.
23절을 보면“네가 땅에 뿌린 종자에 주께서 비를 주사 땅 소산의 곡식으로 살찌고 풍성하게 하실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은 농부가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비가 오지 않으면 농사가 안됩니다. 사람의 힘으로 비를 오게 하고 오는 비를 멈출 수 있습니까? 가까운 일본은 지진이 잦은 나라입니다. 그래서 지진에 관한한 세계 어느 나라도 따라올 수 없을 만한 연구소가 있고 지진 계측시설일 발달되어있고 집을 지어도 지진을 견딜 수 있는 집을 짓고 있습니다. 그런데 매년 총 1200여 차례의 지진이 일어납니다. 그 피해액과 인명피해 역시 천문학적 숫자를 기록합니다.
지진이란 지구를 형성하고 있는 여러 개의 지각판이 있는데 그 지각판이 움직이면서 충돌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그 지각판의 운동이나 이동을 막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간단한 예입니다만 사람의 힘으로 자연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가 형성되는 것은 자연현상인 것 같지만 그 현상을 조종하시고 운행하시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시편 148:3-4를 보면“해와 달 별 하늘 별 물들도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했고 5절을 보면“저가 명하시매 지음을 받았다”고 했고 6절에서는“저가 그것들을 영영히 세우고 폐치 못할 명을 정하셨도다”라고 했습니다.
지으시고 세우시고 없어지지 않는 자연 질서를 정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본문 23절은 하나님이 비를 주셔야 소산의 곡식이 살찌고 풍성케 된다고 했습니다.
농부의 소망은 농사가 잘돼 소출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기업인의 소망을 기업이 발전해 이익이 많아지는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꿈은 그 꿈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세 가지 길이 있습니다.
하나의 길은 자신의 힘으로 노력하고 최선을 다해 자수성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성공한 사람도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한계가 있습니다. 성공과 실패를 반복해야 하고 눈물과 한숨의 빵을 먹어야 합니다.
두 번째 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친구, 이웃, 선배, 권력 그 누군가가 도움을 주고 밀어주면 꿈을 이루고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변여건이나 사람들은 수시로 시도 때도 없이 기분과 여건 따라 변하기 때문에 절대로 믿고 의지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세 번째 길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입니다. 농부의 밭에는 단비를 내리시고 기업인의 기업위에는 번영의 비를 내리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은 내 손에 바로 잡히지도 않고 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대개 큰손은 숨어서 일하기 때문에 보이지 않습니다. 돈을 굴리고 만지는 큰손의 심부름을 하는 작은 손들은 얼른 눈에 띄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우시는 큰 손이 세계를 덮는 손, 역사를 다스리시는 손이 나를 도우시면 됩니다.
창세기 19:29를 보면 하나님이 소돔 고모라 성을 엎으실 때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큰 성이었고 문화와 예술의 도시였고 번영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엎으심으로 그 성이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비가 필요한 것은 식물만이 아닙니다. 내 영혼도 은혜의 단비가 필요합니다. 비를 주지 아니하시면 내 영혼이 시들어 죽고 맙니다.
주여 내 갈한 심령에 은혜의 단비 말씀의 단비 축복의 단비를 쏟아 부어 주옵소서.
2. 시냇물이 흐르게 해주십니다.
25절을 보면“크게 살육하는 날 망대가 무너질 때에 각 고산, 각 준력에 개울과 시냇물이 흐를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주변 강대국 앗수르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나라를 치고 망대를 무너뜨리고 그들을 파멸시켜 이스라엘에 승리를 주신다는 것이 이사야의 예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는 은혜를 베푸셔서 골짜기에 시냇물이 흐르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적은 파멸시키고 이스라엘에게는 마른 땅에 시냇물이 흐르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비도 중요하지만 365일 흐르는 시냇물은 더 소중합니다. 이스라엘의 경우 비는 일년에 두 번밖에 오지 않습니다. 그것을 이른 비와 늦은 비라고 합니다. 그러나 흐르는 시냇물은 낮에도 밤에도 어제도 오늘도 흐릅니다.
시냇물은 지속적 은혜, 끊임없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한꺼번에 엄청난 기적을 체험하고 큰 은혜를 받는 것도 좋습니다. 그러나 시냇물 흐르듯 낮에도 밤에도 봄에도 겨울에도 365일 지속적으로 끊임없이 은혜를 받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그것은 한 달에 한번 잘 먹었다고 해서 한달을 버틸 수 있는 것이 아닌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만나는 매일 아침마다 지면에 내렸고 그날 만나는 그날 거두어 먹어야했습니다. 저축도 저장도 안됐습니다.
오늘 은혜는 오늘 받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오늘 먹어야 합니다.
오늘 기도는 오늘 해야 합니다.
3. 싸매시고 고치십니다.
26절을 보면“여호와께서 그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는 날에는 달빛은 햇빛 같겠고 햇빛은 칠 배가 되어 일곱 날의 빛과 같으리라”고 했습니다.
체육학박사인 원정혜씨는 글 가운데서“분노가 심하면 간이 상하고 우울이 심하면 폐가 상하게 되고 공포가 심하면 신장이 상하게 되고 지나치게 골똘히 생각하면 비장이 상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평상심을 유지할 것, 스스로 돌아보는 여유를 가질 것, 늘 감사하고 작은 것에 행복해할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건강은 평범한 것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노, 공포, 우울, 집착, 이런 것들이 마음대로 조절되지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 세상살이는 분노, 두려움, 우울 등이 겹겹이 싸여 있습니다. 결과는 신경성 질환이 날로 늘어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육체보다 영혼의 질병을 앓는 사람이 많아져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섬기던 사람이 하나님 떠나는 것, 예수 믿던 사람이 다른 것 믿는 것, 교회 나오던 사람이 교회 안나오는 것,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하는 것, 열심이던 사람이 게을러지는 것, 기도하던 사람이 기도 쉬는 것, 이런 것들이 바로 영혼이 병들었다는 증상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어디서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상처를 입었든지 하나님은 싸매 주십니다. 언제 어떻게 맞았든지 하나님은 고쳐 주십니다. 그것이 본문의 강조점입니다. 현대인은 상처가 많고 큽니다.
사람에게서 상처받고 일하다가 상처받고 돈 벌다가 상처받고 여행하다가 상처받고 함께 살다가 상처받고…….
그 상처를 달래고 고치기 위해 이불 뒤집어쓰고 고민하는 사람도 있고 병원을 드나드는 사람도 있고 상담 전문가를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약을 복용하는 사람도 있고 훌쩍 현장을 떠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느 누구도 내가 상처를 싸매주겠다. 내가 고쳐주겠다. 내가 책임져 주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고치리라 내가 싸매리라 내가 온전케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를 고치고 싸매시기 위해 예수님 자신이 찢기시고 상처 받으시고 아파하시고 마직막엔 죽기까지 하셨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하고 감격스럽습니까?
나를 싸매시고 고치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감사하다고 고백합시다. 영광을 돌립시다. 아멘.
출처/박종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