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24
말씀에 사로잡힌 사람들 (본문 시편19:7-14)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자타가 인정하는 국보급의 학자였습니다. 그분이 멀리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한국에 있는 어떤 여자분을 좋아하므로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이므로 기숙사에 있는 사감이 그 편지를 먼저 뜯어보고 연애편지이므로 전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주동 박사는 한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이므로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야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성경구절이 요한일서 4:7~8,요한일서 4:18, 로마서 12:9, 마가복음 10:7~9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결국은 답장도 받고 교제도 나누며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랑은 보고싶은 것입니다. 방금 헤어져도 또 다시 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은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늘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의 말이라면 어떠한 말이든지 또 듣고 싶고, 길든지 짧든지 다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 들은 말이라도 또 들어도 새롭게 들리는 것입니다.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들을 때 감동으로 듣게 됩니다.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듣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있지만 내 생각보다 그의 생각을 더 옳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다 줍니다. 다 줘놓고도 행복하게 웃는 것이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데이트 해놓고 찻값 많이 나간것을 생각하는 것은 벌써 사랑이라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남이 볼때는 멍청하게 보여도 다 주고도 너무나 좋은 것이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보고싶고 듣고싶고 다주고도 행복한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에 자연히 귀기울이게 되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3절부터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너무나 잘표현되어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또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음식만들기에 분주한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앞에 앉아 그분의 얼굴을 보며 그분의 음성듣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을 합니다. 마르다의 일을 함께 돕지않는 마리아에 대해서 예수님은 꾸짖으시기는 커녕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고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싶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며 그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의 간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나면 정금보다 더 사모하면 꿀보다 더 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0절).시편 119편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는 지 잘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131절에서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그 말씀앞에 헐떡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쉽게 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너무나 쉽게 됩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기쁘게 달려나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말씀이 나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밥을 맛있게 잘먹고 잘 소화시키는 사람을 건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말씀이 무슨 말씀이든지 맛잇게 먹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헐떡이며 너무나 배고프고 갈급하게 먹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소화능력도 너무나 좋게 됩니다. 가끔은 체증이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아는 말씀은 알아서 맛없고 모르는 말씀을 몰라서 맛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껄 하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저 사람이 들으면 좋을 껄,오늘은 내게 맞는 이런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껄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씀의 소화능력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껄은 지옥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나님 잘 믿을 껄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신체부분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늘 의식하고 사십니까? 눈이나 허리가 의식됩니까? 그러면 그 부위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식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쁘게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라서 먹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디 달아야 합니다. 써서는 안됩니다. 읽을 때마다 들을 때마다 너무나 좋고 영적인 지식이 자라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설교를 들을 때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며,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됩니다. 공의의 설교도 회개의 말씀도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이러한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왜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그렇게 사랑할까요?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합니다(7절).내 영혼이 시들고 지쳐있을 때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소성케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7절). 우둔하고 미련한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8절). 우리의 마음을 신바람나게 하고 재미있게 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그 속에서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세상을 보고 영원한 미래와 소망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안에서 나를 기다리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말씀안에서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사로잡힌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오경남목사 설교자료 중에서
국문학자 양주동 박사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자타가 인정하는 국보급의 학자였습니다. 그분이 멀리 일본에서 유학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러나 그는 한국에 있는 어떤 여자분을 좋아하므로 편지를 보내게 되었는데 답장이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이므로 기숙사에 있는 사감이 그 편지를 먼저 뜯어보고 연애편지이므로 전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양주동 박사는 한가지 꾀를 내었습니다. 그 학교가 기독교 학교이므로 성경구절을 인용해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해야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찾아낸 성경구절이 요한일서 4:7~8,요한일서 4:18, 로마서 12:9, 마가복음 10:7~9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게 되었고 결국은 답장도 받고 교제도 나누며 결국은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랑의 특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사랑은 보고싶은 것입니다. 방금 헤어져도 또 다시 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은 보고 또 보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늘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의 말이라면 어떠한 말이든지 또 듣고 싶고, 길든지 짧든지 다 듣고 싶은 것입니다. 그리고 방금 들은 말이라도 또 들어도 새롭게 들리는 것입니다.또한 사랑하는 사람의 음성을 들을 때 감동으로 듣게 됩니다. 비판하는 것이 아니라 반론하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듣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 있지만 내 생각보다 그의 생각을 더 옳게 생각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다 줍니다. 다 줘놓고도 행복하게 웃는 것이 그게 바로 사랑입니다. 오늘 데이트 해놓고 찻값 많이 나간것을 생각하는 것은 벌써 사랑이라고 볼수 없는 것입니다. 남이 볼때는 멍청하게 보여도 다 주고도 너무나 좋은 것이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은 이처럼 보고싶고 듣고싶고 다주고도 행복한 것입니다.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말씀에 자연히 귀기울이게 되고 그분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행복한 것입니다.
빌립보서 1장 3절부터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너무나 잘표현되어 있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을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하고 또한 기쁨으로 하나님께 간구한다고 합니다. 또한 누가복음 10장 38절부터 마리아와 마르다 이야기가 나와 있는데, 음식만들기에 분주한 마르다와는 달리 마리아는 예수님앞에 앉아 그분의 얼굴을 보며 그분의 음성듣는 것을 너무나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본 마르다는 예수님께 불평을 합니다. 마르다의 일을 함께 돕지않는 마리아에 대해서 예수님은 꾸짖으시기는 커녕 마리아는 좋은 편을 택하였고 빼앗기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보고 싶고 그의 음성을 듣고 싶며 그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다윗의 간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윗은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였습니다. 이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나면 정금보다 더 사모하면 꿀보다 더 달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10절).시편 119편에서도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얼마나 사모하는 지 잘 나타나고 있는데 특히 131절에서 "내가 주의 계명을 사모하므로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그 말씀앞에 헐떡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쉽게 됩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도 너무나 쉽게 됩니다. 그 분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기쁘게 달려나오는 것입니다. 결국은 그 말씀이 나를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을 우리는 어떻게 압니까? 밥을 맛있게 잘먹고 잘 소화시키는 사람을 건강하다고 하지 않습니까?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도 말씀이 무슨 말씀이든지 맛잇게 먹는 사람입니다. 그것도 헐떡이며 너무나 배고프고 갈급하게 먹는 사람입니다. 말씀의 소화능력도 너무나 좋게 됩니다. 가끔은 체증이 걸린 사람이 있습니다. 아는 말씀은 알아서 맛없고 모르는 말씀을 몰라서 맛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껄 하며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저 사람이 들으면 좋을 껄,오늘은 내게 맞는 이런 말씀을 해주시면 좋을 껄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말씀의 소화능력이 좋지 않은 것입니다. ~껄은 지옥에서 많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합니다. 하나님 잘 믿을 껄하고 말입니다.
그리고 건강한 사람은 자신의 신체부분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심장이 뛰는 것을 늘 의식하고 사십니까? 눈이나 허리가 의식됩니까? 그러면 그 부위에 이상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식적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그저 기쁘게 먹는 것입니다. 그래서 골라서 먹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달디 달아야 합니다. 써서는 안됩니다. 읽을 때마다 들을 때마다 너무나 좋고 영적인 지식이 자라야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어떤 설교를 들을 때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되며, 특히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됩니다. 공의의 설교도 회개의 말씀도 거기서 하나님의 사랑이 느껴져야 됩니다.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자는 이러한 축복이 있을 줄 믿습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합니다. 왜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그렇게 사랑할까요?
7절에 여호와의 율법은 우리의 영혼을 소성케합니다(7절).내 영혼이 시들고 지쳐있을 때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회복시키고 소성케하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우리를 지혜롭게 합니다(7절). 우둔하고 미련한 우리를 지혜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 말씀은 우리의 마음을 기쁘게 합니다(8절). 우리의 마음을 신바람나게 하고 재미있게 합니다. 또한 말씀은 우리의 눈을 밝게 합니다. 말씀을 읽을 때 그 속에서 나를 보고 하나님을 보고 세상을 보고 영원한 미래와 소망의 세계를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칼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안에서 나를 기다리신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하나님을 말씀안에서 만나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래서 그 말씀에 사로잡힌 성도님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오경남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