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군병들아! 전신갑주로 무장하라!  (엡6:10-20)

엡: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3장은 교리면으로, 우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 어떻게 성도가 되었는가? 어떻게 이 땅위에 교회가 세워졌는가를 다루었고, 4-6장은 생활면으로 예수를 믿는 성도가 어떻게 세상을 살아야 하는가? 사는 방법과 가정의 부부관계, 부자관계, 그리고 주인과 종의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의 영적 생활면을 다루고 있는데 한마디로 성도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을 전쟁으로 비유해서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씨름으로 표현했는데 이 씨름은 전쟁이란 말과 동일합니다.
사실 이 세상은 전쟁터입니다. 우리는 지금 남과 북이 잘 되어져 가는 것 같지만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긴장관계 속에 있습니다. 지구촌에 모든 나라마다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모르는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저마다 핵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전쟁보다 더 다급하고 어려운 전쟁에 우리가 시달리고 있습니다. 어떤 전쟁입니까?
경제전쟁, 무역전쟁, 수출전쟁을 하고 있으며, 범죄와 전쟁, 문화와 전쟁, 정보와 전쟁, 기술과 전쟁을 하고 있습니다. 주부들은 물가와 전쟁을, 자녀들은 입시와 전쟁을 하고 아빠들은 출근길에서 교통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피곤한 전쟁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전쟁은 '보이는 전쟁'입니다. 그런데 보이지 않은 전쟁도 있습니다. 정말 우리가 경계해야 할 전쟁은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이 전쟁은 신문에도 TV에도 보도되지 않습니다. 수십 억의 사람들이 이 보이지 않는 전쟁에서 적의 포로가 되어 넘어지고 무너지고 죽어가고 있습니다.
바로 '영적인 전쟁', '마귀와의 전쟁'입니다. 인생이 '보이는 전쟁'이라면 신앙생활은 '보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당면한 모든 문제들은 실질적으로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가르쳐 '전투하는 교회'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을 가리켜 '십자가의 군병'이라고 합니다. 군인은 적과 싸우는 잡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인 전쟁을 하는 자들로 원수 마귀와 싸우는 군병들입니다. /믿/
바울은 우리들에게 본문에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고 했고,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이때에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원수 마귀를 이기는 비결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고, '믿음을 굳게 하는 것'입니다.
●전신갑주를 취하라는 말은 신앙인의 완전무장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제목소개▶이런 제목으로-

오늘 본문 말씀은 영적 전쟁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들입니다. 군인들은 전투에서 이기려면 완전무장이 중요합니다. 본문은 두 번이나 반복해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하십니다.

1. 왜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했습니까?(13)

"이는 악한 날에 저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에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두 가지 목적을 위해서 전신갑주를 취하라, 입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①사단을 넉넉히 대적하기 위해서 입니다.
사단과의 싸움에서 겨우 판정승으로 이겨서는 안 됩니다. KO승으로 이겨야 합니다. 우리는 이길 수 있습니다. 왜? 주님이 이겨놓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싸움에서 다윗은 이스라엘의 대표해서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물맷돌을 던져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윗의 승리는 이스라엘의 승리였습니다. 영적 전쟁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대장 되시는 주님이 승리하셨습니다.
골2:12-15절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풀어보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서 죄에 대해서 죽고 의에 대해서 살게 되며 주님이 십자가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이미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승리하신 대장 예수를 따라가는 점령군입니다.
②이겼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이겼으면 서야합니다.
선다는 말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는 것을 의미하는데, 하나님 중심, 예수 중심, 성전 중심으로 선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삶의 우선 순위가 제대로 되어 있습니다. 마6:33절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할/

2. 하나님의 군사는 강건해야 합니다(10절).

군인들은 강도 높은 훈련을 시킵니다. 해병대 훈련장에는 '훈련 때 땀을 많이 흘리면 전쟁에서 피를 적게 흘린다'는 구호를 외치며 극한 훈련을 시킵니다. 그렇게 강한 훈련을 하는 이유는 강한 군인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영적인 군인으로 강한 자가 되는 것은 훈련만으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훈련도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 즉, 근본적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주안에 들어가고 주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힘은 주안에서 오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오는 힘의 능력으로 강건해지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강건해지는 것을 코팅된 종이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쉽게 찢어지는 종이 한 장도 코팅을 해서 강한 비닐 안에 넣어두면 쉽게 찢을 수 없습니다. 종이를 포장한 비닐 때문에 종이가 강해지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개개인은 마귀 앞에 연약한 존재들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대적할 힘이 없습니다. 그런데 천지에서 가장 강한 자이신 예수님 안에 들어가면 예수님의 강하심으로 보호를 받기 때문에 강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주안에서 강하여 진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주안에 있기를 바랍니다. 주안에 있는 것이 얼마나 귀하면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서에서 무려 150번이나 이 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주안에 있는 것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주안에: 예수 안에, 믿음 안에, 은헤 안에, 생명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 '그 힘의 능력'이 어떤 능력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의 능력과 부활의 능력입니다. 이 능력을 받아야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네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장담했습니다. 그 힘이 바로 십자가의 능력이요, 부활의 능력입니다. /할/

3. 하나님의 군사는 적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11,12절).

■이 전투에서 가장 큰 적은 누구인지 아십니까? 바로 '나 자신'입니다. 나 자신을 이기는 것이 제일 어렵습니다. 내 속에는 나말고 또 다른 내가 들어 있습니다. 그것이 "나의 본성"입니다.
이 본성은 내 생각이나 내 뜻과는 상관없이 편견이 들어 있고 나태함이 들어 있고 고집이 들어 있고, 교만까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자꾸만 게으름을 피우고 싶고, 놀고 싶고 타락하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과 싸워야 합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나 자신입니다.
그 다음 '세속, 세상'도 무서운 적입니다. 오늘날 이 세속의 물결이 너무나 거셉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이 세속의 풍조에 그냥 휩쓸려 가고 있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향락에 빠지고, 세상 유행에 빠지고, 오락에 빠집니다. 그래서 자꾸만 믿음에서 멀어지고 세속의 물결에 깊숙이 묻혀서 세상의 풍조를 따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 우리의 큰 적이 또 있습니다. '사탄 원수 마귀'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영적인 싸움인데 바로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사탄은 참 교묘하게 파고듭니다. 우리의 의지를 늘 시험합니다. 그래서 11절에 '마귀의 궤계'라고 했습니다. '궤계'란 교묘한 속임수를 의미합니다. 즉 마귀는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신학자 c.s 루이스는 "마귀가 가장 다루기 쉬운 성도는 마귀의 존재를 믿지 않은 성도"라고 했습니다. 마귀가 있는 것조차 모르는 성도들에게 마귀는 얼마나 안심하고 들어가 '궤계'를 부리는지 모릅니다.
적을 바로 알면 백전백승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적은 마귀와 마귀의 졸개들인 악한 영들입니다. 우리의 생활에 일어나는 문제의 배후에는 악한 영들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욥기서를 보면 악한 사단이 욥의 가정을 파괴합니다. 자녀들이 사고로 죽게 만들고, 재물을 잃어버려 가난하게 만들었습니다. 욥의 몸에 발생한 병도 사단이 준 것입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육체적 질병과 정신병도 악한 영들에게서 온 것을 가르쳐 줍니다. ■요10:10에서는 마귀를 도적놈에 비유하면서 "도적이 온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왔다고 가르쳐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인 싸움에 승리해서 악한 영을 물리치면 악한 영으로 인하여 온 문제도 해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9:32-33절에 보면, 주님이 한 벙어리 된 사람을 고쳐주시는데 그에게 있던 귀신이 나가므로 벙어리가 고쳐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벙어리 된 원인이 악한 영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적은 이미 예수 안에서 패배했고 성도는 예수님을 모시고 살기 때문입니다.
요일3:8절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요일4:4절에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저희를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이보다 크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4. 하나님의 군사는 전신갑주로 무장해야 합니다(13-17절)

마귀는 속임수의 명수입니다. 궤계를 주무기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무장을 갖추어야만 이들과 대항해 싸울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바울사도는 하나님의 전신갑주 6가지를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바울 당시에는 로마가 세계를 점령하던 때인데, 그 때는 어디를 가든지 로마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인들도 로마 군인들을 많이 봤기 때문에 영적 군인으로 무장하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①진리의 허리띠로 무장하라
로마 군인들은 허리에 넓은 허리띠를 둘렀습니다. 거기에 여러 종류의 칼을 매달거나 배급주머니를 매달았습니다. 사실 군인 복장은 허리띠부터 시작합니다. 거기에다 수통을 차고, 탄창을 차고, 단검을 차고, 수류탄까지 매달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허리띠는 진리의 허리띠입니다. 진리는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빌라도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본문에서 바울은 "진리로 허리띠를 매라"고 하십니다. 허리는 중요합니다. 우리 몸의 중심입니다. 힘은 허리에서 나옵니다. 허리를 다치면 힘을 쓰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도 선수들은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굵은 허리띠를 매고 합니다. 경찰이 범인을 체포하면 허리를 잡습니다. 또 보호소에 널 때에는 허리띠를 풀어버립니다. 왜? 힘을 못 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매라고 합니다. 이 말은 예수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권력 중심이 아닙니다. 지식 중심이 아닙니다. 물질 중심으로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중심으로 살 때 우리는 세상을 이기고, 자신을 이기며, 사단의 권세를 꺽고 이기고 승리하게 될 줄 믿습니다.
②가슴에 의에 흉배로 무장하라!
사람의 가슴은 참 중요한 부분입니다. 가슴에는 심장이 있고 양심이 있습니다. 사람은 이 양심을 잘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이 양심이 괴롭고 아프고 떳떳하지가 않습니다. 이 양심이 병들면 불행해집니다. 그래서 가슴에 의에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가슴을 갑옷과 철판으로 보호했습니다. 그래야 적의 화살이나 칼에 맞아도 가슴이 다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의에 흉배를 붙이라는 말은 신앙인은 양심을 보호하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양심에 가책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말입니다. 사람이 죄를 지어서 양심에 가책이 되면 사탄이 가만히 있질 않습니다. 자꾸만 정죄합니다. '너는 죄인이다!' 그래서 양심을 괴롭게 만들고 두렵게 만들고 용기를 잃게 만듭니다.
●조선실록 가운데 단종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 mbc에서 '용의 눈물'이 방영되었습니다. 단종은 12살 때 아버지 문종이 죽자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오릅니다. 왕위에 오른 지 3년만에 숙부인 수양대군에 의해 왕의 자리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고 16살에 강원도 영월로 유배를 갑니다.
유배를 보낸 수양대군은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단종을 죽여 가마니에 넣어 흐르는 강물에 수장을 시킵니다. 그리고 자신이 보는 앞에서 떠내려가게 합니다. 그의 넋까지도 멀리 떠나가는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을 하고 나서야 그는 안심을 합니다. 이제는 조카의 넋까지 떠나가는 것을 직접 보았으니 염려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13년 동안 치세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하루도 평안하지가 않습니다. 꿈만 꾸면 죽은 형수가 입에 칼을 물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밤마다 불안한 날을 보냅니다. 그러다가 하루는 꿈에서 죽은 형수가 수양대군에게 침을 뱉었는데 그만 그 자리가 썩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온몸이 썩어 죽었다고 조선실록에 적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옛말에 죄인은 따라오는 사람이 없어도 도망친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죄를 지으면, 양심이 괴롭습니다. 잠을 설치게 됩니다. 용기를 잃게 됩니다. 마음이 불안합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듭니다. 자포자기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성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가슴에 의의 흉배를 붙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의 흉배는 '의'입니다. 이 의는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칭의'입니다. 롬5:1절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롬1:17절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우리는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과거의 죄, 현재의 죄, 미래의 죄까지 용서받은 의인입니다. 이 의가 천국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용서받은 우리는 우리는 더더욱 그리스도의 의로 무장해야 합니다.
요한1서5:4절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③양발에 평안에 복음으로 신발로 무장하라!(15)
로마군인이 세계를 지배하는데 획기적인 공헌을 한 것 중에 하나가 군화랍니다. 그들은 신을 특수하게 만들어서 아무리 오랜 시간을 행군해도 발이 상하지 않고 평안하게 만들었습니다.
여러분! 여행 중에, 길을 가다가 신발이 맞지 않으면 얼마나 불편합니까? ■우리는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로마가 세계를 정복한 것처럼 오늘날 그리스도인이 세계를 복음화 하기 위해서는 복음의 신을 신어야 합니다. 당신이 외출할 때 반드시 신어야 할 신이 있는데 그 신이 바로 복음의 신입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이 복음을 평안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복음(십자가)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인간과의 관계에도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십자가는 하늘과 땅의 평화를 연결하는 통로입니다.
신발은 발을 보호합니다. 산이나 개천이나 돌 짝 밭이나 가시밭길을 가는 데는 이 신발이 절대적입니다. 그래서 군인은 육중한 군화를 신고 다닙니다. 그 신발만 신으면 세상 어디든지 마음놓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우리 성도들도 이 신발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늘 좋은 길만 다닐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고난의 길도 가야하고, 유혹의 길도 가야하고, 배척의 길도 가야 합니다.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성공의 길도 가지만 때로는 실패의 길도 가야하고 눈물의 길도 가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길은 내 의지만으로는 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의 신을 신으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운명을 개척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복음은 세상을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갈 힘을 줍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와 있는 위인들은 한결같이 개척자의 길을 갔습니다. 사도 바울 같은 사람이 걸어간 길은 순전히 이 복음의 신을 신고 다닌 개척의 길이었습니다. 그가 다닌 길을 보면 한결같이 수난의 길이었고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래도 그 길을 갔습니다. 어떻게 갔는가 하면 복음의 신을 신고 갔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에게 자신 있게 복음의 신을 양발에 신으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복음의 신발로 무장합시다. 그래서 가는 곳곳마다 생명을 구하는 전도를 합시다. 하나님은 전도자의 발걸음을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롬10:15절에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복음을 전하는 자의 발이 그렇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룸답다고 합니다.
④양손에 믿음의 방패로 무장하라!
옛날 로마 군인들을 보면 한 손에는 검을 가지고 있었고 또 한 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것으로 자신을 보호했습니다. 오늘 데모대를 막는 경찰들이 바로 그 모습입니다. 한 손에는 방망이를 한 손에는 방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방패로 날아오는 돌맹이를 막고, 화염병도 막아냅니다.
당시 방패는 주로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가죽이 입혀져 있습니다. 당시에 전쟁은 활촉에 화약을 붙여서 활이 꼬치면 화약이 폭발하여 자연히 불이 붙게 됩니다. 그래서 불로서 소멸하는 화전입니다. 이러한 화전을 막기 위하여 나무 방패 위에 가죽을 입혀 놓았습니다.
우리들이 신앙생활 하는데도 이 방패가 꼭 필요합니다. 무슨 방패입니까? 믿음의 방패입니다. 흉배는 가슴을 보호합니다. 당신의 가슴인 심장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셔야 어떠한 죄라도 당신을 넘어지게 하지 못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고는 죄를 이길 장사가 없습니다. 흉배가 가슴을 보호하는 것이라면 방패는 몸 전체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지금도 우리를 향하여 이 화전을 쏘아댑니다. 음란의 화살을 쏘면 사람들의 가슴속에서 음란의 불길이 타오릅니다. 또 불화의 화살을 쏘아 댑니다. 그러면 조용하던 집안에 갑자기 불화가 생깁니다. 그리고 탐욕의 화살도 쏘아 대고 질투의 화살도 쏘아 댑니다. 이 땅에 탐욕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모두 이 사탄의 화전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방패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진리에 허리띠도 중요하고, 가슴에 의에 흉배도 중요하고, 복음의 신발도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믿음의 방패가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무장하라고 했습니다.
믿음이 능력이요, 믿음이 생명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말하기를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고, 주님은 막9:23절에서 "할 수 있거든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하셨습니다.
방패란 본래 문이란 말에서 왔는데 이는 믿음만이 천국 문을 열 수 있는 열쇠임을 가르쳐 주기도 합니다.
⑤머리에 구원의 투구로 무장하라!
로마 군병은 머리에 투구를 씁니다. 특히 장교는 멋있는 깃털이 달리고 번쩍거리는 투구를 쓰므로 머리를 보호할 뿐 아니라 자신의 신분과 위용을 자랑합니다. 멀리서도 적이 보고 겁을 먹게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투구는 구원의 확신입니다. 현재의 온전치 못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생명록에 나의 이름이 이미 기록되었다는 확신입니다. 이것이 마귀의 궤계를 물리치고 죄의 권세를 물리칩니다.
살전5:8절에 보면,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고 했습니다. 우리들의 머리에는 무엇으로 치장합니까? 염색머리입니까? 파마입니까? 숏카트입니까? 아닙니다. 구원의 투구로 치장해야 합니다. /할/
군인은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철모를 씁니다. 이 철모는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게 해주고 화살을 피하게 해주며 비를 피하게 해주고 햇빛을 차단해 줍니다. 그래서 군인들이 그 무거운 철모를 쓰는 것입니다.
이 구원의 투구가 성도들에게도 중요합니다. 여러분, 오늘 이 시대에 이단 사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릇된 신앙이 또 얼마나 많습니까? 구원의 확신이 없으면 넘어집니다. 이단에 빠지고 신비주의에 빠집니다.
오늘 우리 모두 구원받은 잡니다. 믿습니까?
행16:31절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요3:16절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했고, 요1: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하십니다.
구원에 확신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로 살뿐만 아니라, 자녀의 대접을 받고 보호를 받고 인정을 받게 됩니다. 대통령의 아들과 장관의 아들은 차이가 많습니다. 대통령의 아들보다 하나님의 자녀가 더 높은 줄 믿습니다. /할/
■우리의 구원은 세 가지 요소로 결정되는 것이며, 한번 결정되면 변함이 없는 것입니다.
①하나님의 선택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②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입니다. 나는 아무리 공로를 세워도 내 공로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내 능력으로 영생을 얻거나 천국에 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대신해서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죄 없으신 주님이 우리의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공로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③선물로 받은 믿음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것은 우리의 선택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믿어지는 것입니다. 비록 내가 부족해도 주님의 공로를 믿는 사실 하나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원의 투구를 쓰고 턱 끈까지 든든하게 묶어야 합니다. 그래야 전투 중에 투구가 벗어지지 않고 머리가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영적인 투구를 턱 끈까지 든든히 묶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구원받은 사실을 입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능력이 있습니다. 신앙고백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구원을 좌우합니다. 롬10: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말씀합니다. 고백은 승리와 패배를 좌우합니다.
⑥성령의 검으로 무장하라.
로마 군인들의 검은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강한 검을 가진 군인들은 전투에 유리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검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검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사단의 역사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항하면 사단은 두려워 떨게 됩니다. 예수님도 마귀의 시험을 받으실 때 말씀의 검으로 사단의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사단은 말씀이 충만한 곳에는 역사할 수 없습니다. 말씀이 없는 곳에서 역사하는 것입니다.
막5장에 보면 거라사의 귀신들인 사람이 나옵니다. 그 사람 속에는 군대 귀신이 들어있었습니다. 주님께서 귀신들을 쫓아내시자 돼지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귀신들이 돼지 속으로 들어간 것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먹을 수 있는 짐승의 조건이 있었는데,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을 하는 짐승입니다. 굽이 갈라졌다는 것은 구별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새김질을 하는 것은 말씀을 소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돼지는 굽은 갈라졌는데 새김질을 못합니다. 돼지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모양은 가졌는데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주님께서 귀신이 사람의 몸 속에 산다는 것을 가르치신 적이 있습니다. 귀신이 사람 속에서 살다가 나갔습니다. 쉴만한 곳을 찾는데 그곳이 물 없는 곳입니다. 귀신이 쉴 곳을 찾지 못하고 다시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청소 되어 있으니 일곱 귀신을 데리고 들어와서 더 악해졌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물 없는 곳이 바로 말씀이 없는 곳입니다. 엡5:26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물로 비유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도들에게는 영적 무기입니다. 악한 마귀를 대적할 수 있는 좌우에 날선 검입니다. 그런데 검을 잘 사용하려면 훈련되어야 합니다. 예리한 검을 사용하는 훈련이 안된 상태에서 사용하다가는 자신을 상하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사용하는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양육을 받고, 말씀을 실생활에 사용해 봐야 합니다. 말씀을 암송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야 필요할 때 말씀을 사용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가진 말씀에 검이 파워가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①많이 묵상해야 합니다. 말씀을 계속해서 묵상하면 말씀으로 인한 영적 에너지가 공급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이 날카로워지게 됩니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씹지 않고 삼키면 몸에 필요한 영양분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습니다. 같은 음식물도 많이 씹을수록 좋은 것입니다. 묵상하는 것은 말씀을 씹는 것과 같다고 보면 됩니다.
②말씀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면 그 말씀의 날이 날카로워집니다. 기도할 때 말씀의 영감이 더 풍성해지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시간은 성경의 원저자인 성령과 연결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③말씀으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면 그 말씀이 힘이 있습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아도 실천하지 않으면 힘이 없습니다.
계1: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5. 하나님의 군사는 기도해야합니다(18절).

완전무장의 결론입니다. '기도하라! 쉽게 표현하면, 입에는 기도의 무전통신을 달라!'고 하십니다.
기도하되 '무시로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결론입니다. 군인이 완전무장을 했다고 해서 다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무장을 했어도 잠을 자거나 방심을 하면 넘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만일 현대의 군대를 보았다면 18절에서 '기도의 무선통신을 가지라'고 권면했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통신망은 승패를 좌우합니다. 걸프전쟁 때 미국은 우세한 공군력으로 이라크의 통신망을 먼저 파괴시키므로 승리를 이끌어 냈습니다.
성도의 영적 전쟁에서 기도는 하나님과의 교신입니다. 성도가 기도하면 공중에서는 천사와 악령들의 싸움이 일어납니다(계8:3-4).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성도로 기도하지 않고 신앙생활 하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사단의 작전지시를 받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소대의 전투병력과 같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신하는 영적 무선통신입니다.
①항상 기도합시다. '무시로' 요즈음은 이동 통신의 발달로 핸드폰이 많이 보급되었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전화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가 그래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마귀처럼 부지런한 존재는 없습니다. 마귀는 쉬지 않고 일합니다. 항상 일합니다. 성도를 무너뜨리기 위해 땀흘려 일합니다. 성도는 여기에 대응해야 합니다. 항상, 무시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살전5:17).
②성령 안에서 기도합시다. 기도는 성령이 도와주시고 이끌어 주셔야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영적 전투이기 때문에 스스로의 힘으로 곤란합니다.
기도가 막히고 안될 때, 포기하지 말고 성령의 도움을 계속 구하면 기도가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회개가 열리고 하늘 문이 열립니다. 내 뜻대로 구하던 기도가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을 자신이 알고 놀라게 됩니다.
③깨어 기도합시다. 육체의 잠을 들면 기도할 수 없습니다. 이보다 영혼의 잠이 들면 전혀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기도하라는 말이 싫고 기도의 무용론이 마음에 자리 잡게 됩니다.
④힘써 기도합시다. 기도하는 것은 중노동이요, 전투입니다.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힘을 쓰지 않으면 기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도 땀방울이 변하여 핏방울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사실 기도는 부담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부담을 애써서 감당하면 놀라운 축복이 응답되어집니다. /믿/
⑤여러 성도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만 위해 기도하는 것은 초보자의 기도입니다. 기독교의 기도의 본질은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 즉 중보기도입니다. 이웃을 위해서, 특히 고난 중에 있거나 연약한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는 일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⑥말씀의 종을 위해 기도합시다(19). 무엇보다도 바울은 자신을 위하여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로 기도를 부탁한 것이 아니라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기도를 부탁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는 일을 하다가 쇠사슬에 묶여 압송되었습니다(20). 그는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라고 표현합니다. 로마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사신이라고 했습니다. 감옥에서도 복음을 전하다가 목숨을 버리는 일은 당연하다고 여겼습니다. 그토록 굳은 소명감과 헌신의 결단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기도를 부탁하였습니다.
성도들의 기도의 힘을 얻지 못하고 복음을 전할 수는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고 전하는 말씀은 마귀와 그 졸개인 귀신들의 역사로 차단되고 말기 때문입니다. 저를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국 교회의 설교자들을 위하여 성도 여러분들의 뜨거운 기도가 살아있어야 땅 끝까지 복음은 확산될 것입니다.
■저는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교회가 좋은 건물과 시설을 갖추는 일도 중요합니다. 좋은 프로그램으로 생동감 있는 예배를 드려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영적 전쟁에 대비하지 않으면 그 모든 것을 잃을 수가 있습니다. 전쟁에는 2등이 없습니다. 오직 1등의 승리 외에 선택의 길이 없습니다. 우리 모두 전신갑주로 무장한 십자가의 군병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3년 12월 7일 대예배 설교)


출처/송수천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