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엡 5:22-33
가정은 하나님이 최초로 만드신 아름다운 작품이다.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하늘과 땅과 산과 들과 각종 짐승을 만드신 후에
사람을 창조하셨는데,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을 만드셨다.
그리고 어느 설교자의 말처럼 태초에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만드셨지,
"아담과 제임스"를 만들지 않으신 것을 기억해야 한다.
헐리웃의 어느 여배우는 자기 이름을 서명한 것보다도 더 많이
이혼서류에 서명했다고 한다.
그리고 시카고의 어떤 여배우는 여섯 번 째 남편과의 결혼 수속 때문에
다섯 번 째 남편의 음식을 요리해 줄 시간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우습기도 하지만 너무 가슴아프고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가정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이며 기초가 되는 인간 공동체이다.
즉 건물의 기초와도 같고, 수학의 기본 공식과도 같아서,
이것이 잘못되거나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위태로운 것이다.
세상을 온통 장악할 정도로 그 막강하던 로마가 왜 망했는가?
세계 역사의 흐름을 주름잡던 영국과 독일 등의 유럽이 왜 힘을 잃어가는가?
사회 보장 제도가 완벽하고, 경제적으로 크게 위축될 것이 없지만 세력은 크지 않다.
많은 이유 가운데 가정이 무너지면서, 도덕 기준이 땅에 떨어지고 질서를 잃으면서
사회의 양심으로 견고하게 서야 하는 교회가 제 자리를 잃었고,
끔찍한 사이비 종교들의 흥왕, 견딜 수 없는 정도의 음란한 문화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지난 20세기 후반은 미국이 온 세계에서 가장 부강하고 막강한 나라였고,
전문가들 중에는 21 세기에도 당분간은 미국이 선두 주자의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본다.
그러나 우리는 정치 지도자들의 타락과, 부패한 문화와 무서운 살인극들을 보고 있다.
가정에 대한 가치의 중요성을 알지만, 너무도 많은 가정들이 휘청거리고 있지 않은가!
심지어 교인들 중에서도 가정의 아픔을 많이 겪는 것을 본다.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연구단체인 Barna Research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확한 통계가 쉽지 않지만,
미국인의 1/4 이상이 한번 이상의 이혼을 경험했고,
거듭난 그리스도인들 가운데에 이혼율이 증가 추세에 있다고 한다.
그리고 미국에서 이혼율이 가장 낮은 부류는 개신교 목사로 조사되었다.
우리는 그 동안 좀 더 여유있는 생활과 경제적인 부유를 위해서 전심으로 달렸다.
특히 많은 이민자들은 낯설고 힘겨운 상황에서 위험을 무릎쓰며 생존을 위해 일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이제는 상당히 안정된 생활을 찾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의 가정도 그렇게 안정되고 평안하며 쉼과 소망이 있는가?
우리의 청소년들이 지금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있는가?
자기에게 스트레스를 준다고 어머니와 식구를 향해 총을 쏘아대고,
친구들을 향해서 마구잡이로 사냥하듯이 총을 쏘는 일이 얼마나 흔해 졌는가?
물론 그 숫자는 적다고 말하겠지만, 그런 것들이 사회에 끼치는 악영향을 무시하겠는가?
우선 부부들이 제 자리를 찾아서 제 몫을 바르게 감당해야 한다.
미국인 약 7,000명을 대상으로 부부 싸움에 관한 조사를 해 보았다.
그 중에 전혀 부부 싸움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이들이 약 7%가 되었고,
가끔 다투는 부부가 약 70%, 자주 다투는 부부가 15%,
심하게 싸우는 부부가 8%로 나왔다.
결국 부부 사이에 다투는 이들이 전체 조사 숫자의 93%가 된다.
아내와의 다툼에서 이긴 남자는 이제부터 진짜 다툼이 시작된다는 말도 있다.
문제는 부부 싸움을 전혀 안하는 것보다,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극복하는가에 있다.
사회의 세상적인 관습대로 할 것인가, 아니면 가정의 전통대로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따라 보다 창조적으로 풀어갈 것인가가 문제이다.
이제 성경이 말하는 부부 사이의 책임과 역할에 대하여 생각해 보자.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그러나 그리스도가
교회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5:22-24).
먼저 남자의 돕는 베필로서의 아내들에게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가정의 창조 질서를 위해서 아내에게 주시는 말씀을 요약하면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내용이며, 주님께 대하 듯이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제안이거나 권고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명령의 말씀이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즉 남편이 아내의 머리 역할을 한다는 것이며,
그것은 예수께서 교회의 머리가 되는 것과 같은 비유라고 말씀하신다.
즉 남편에게 가정의 지도력이라는 막중한 책임이 주어졌다는 사실이다.
이 말씀에는 당시 여성의 위치를 덜 부각시킨 유대 문화적인 배경도 배제할 수 없지만,
복음 안에서는 남녀와 종과 자유자,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이 다 무너져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 아내는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을 명령하고 계시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의 창조 질서를 말하는 것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성공적으로 목회하고, 현재는 달라스 신학대학 총장인 척 스윈들 목사는,
결혼한지 10년 쯤 될 때까지 왜 자기 아내가 자기와 너무 다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의 아내는 자신처럼 분석적이지 못하고, 논쟁도 안하고, 다만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그치기
때문에 스윈들 목사는 종종 갈등을 겪었다.
그런데 그는 창세기 2:18-25절을 읽다가 하나님께서 원래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창조하셨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잡은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남편의 메아리가 아니라, 남편과 동격이지만
다른 면을 가진 베필인 것을 안 후에 아내의 가치를 절실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것은 결코 열등감이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다.
오히려 남편에게 가장(家長)으로서의 역할을 드러나게 하는 일이며,
또한 가족에 대한 중요한 임무와 책임을 감당하게 하는 요소가 된다.
요즘에는 간이 큰 남자들에 관한 유모어도 많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에
한편 서글프기도 하고, 남성들이 자기 자리를 상실한 아픔을 느낀다.
남편의 권위와 자리를 누가 회복시키고 세워 주는가?
"큰 바위 얼굴'이라는 단편 소설을 쓴 나다나엘 호슨의 아내 이야기가 있다.
호슨은 세관에서 일했는데, 1849년에 실직을 당해서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그의 실망적인 이야기를 귀담아 들은 호슨의 아내는 책상 위에 펜과 잉크를 준비하고
램프등을 켜놓고, 남편의 어깨를 감싸면서 이렇게 속삭였다.
"여보, 이제 당신은 비로서 당신이 원하던 소설을 쓸 기회가 온 것입니다."
이 말에 격려를 받고 쓴 것이 그 유명한 "주홍 글씨"(The Scarlet Letter)라는 소설이다.
아내가 남편을 사랑하고 복종하는 것이 실상은 자신을 보호하고 행복한 길이다.
종종 대화 중에 남편을 깎아 내리거나 가볍게 여기는 말을 하는 아내들을 본다.
그것은 마치 자기 몸을 깎는 것과 같고, 제 얼굴에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맹인이요 귀머거리요 벙어리의 완전 장애인이었지만 믿음의 삶을 살았던 헬렌 켈러는
"우리 삶에 있어서 최선의 것과 가장 아름다운 것은 눈에 보이거나 심지어 손으로
만질 수도 없다. 그런 것들은 마음으로 느껴져야 한다"고 말했다. 참으로 맞는 말이다.
사랑은 입이나 말보다 가슴으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특히 아내에게 누구보다도 많은 사랑의 깊은 샘을 넣어 주셨다.
아내에게서 남편에 대한 사랑과 순종이 빠지면 남편들은 갈 곳이 없다.
아내와 자녀에게 존경받는 남편은 이 세상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다.
밖에서 아무리 인기있고 인정받아도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남자는 불쌍하다.
세상에서는 이름없는 자로 취급당해도, 가정에서 존경받으면 결코 낙망할 필요가 없다.
아내들이여, 허물과 실수가 많은 남편들을 사랑하고 복종하고 존경하라.
살벌한 이 세상은 그들의 약점과 실수에 대해서 에누리없이 깎아 내리고 공격한다.
그래서 쉼과 따뜻함이 있는 가정에서 느끼는 가족들의 사랑이 남성들로 하여금
다음 날 다시 전쟁터와도 같은 일터로 힘차게 나서게 한다.
가정에서 아내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선한 길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보양함과 같이 하나니,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5:25-30).
이제 하나님은 보다 간략하지만 요점적으로 남편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이 성경 말씀의 핵심은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목숨을 걸고 사랑하라는 내용이다.
모든 사람은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사랑이 무엇인지 자세히 보라.
여기서 말하는 사람은 여성의 매력이나 미모나 애정 수준이 그치는 것이 아니다.
원래 하나님께서는 여성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고, 남자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들을 할 수
있도록 돕는 평생의 반려자요 동반자요 친구요 한 몸으로 만드셨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정치가 깨어지고, 경제가 무너지고, 전쟁으로 난민이 생겨도
마지막까지 부부가 견고하게 서 있으면 언제나 거기에 회복의 소망이 있다.
그리고 그 견고한 줄은 예수 안에 있는 믿음이요, 그 매듭을 남편이 잡고 있어야 한다.
부부의 사이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예수께서 교회를 사랑하여 자신을 포기하신 것은 교회로 하여금 거룩하고
흠이나 티가 없이 정결하게 하시고자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의 말씀의 물로 교회를 계속해서 깨끗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광스런 교회로 하나님 앞에 세우시려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남편은 아내를 위하여 자신을 포기할 결단을 해야 하며,
동시에 아내로 하여금 흠없고 거룩하고 정결하게 되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공급해 주는 영적인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아내에게 억지로 끌려서 교회에 다니거나, 신앙 생활을 한다면 질서가 무너진 것이다.
남편들이어, 가정에서 신앙적인 모범과 영적인 제사장이 되라.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을 간접적으로 보여 주는 사랑의 남편이 되라.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이 가정을 향해서 원래 의도하신 창조 질서이다.
물론 일부의 사람들은 아내가 먼저 예수를 믿고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시는 질서는 남편이 가족에게 신앙의 본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남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고 아내와 자녀들을 바른 길로 인도해야 한다.
목소리가 큰 것과 힘센 것이 모범이 아니라, 신앙의 경건성과 헌신이 본이 되어야 한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라. 그가 왜 믿음의 조상이라는 자랑스런 이름을 얻었는가?
그가 "하나님의 벗"이라는 너무도 영광스런 별명을 얻게 된 까닭이 어디 있는가?
그는 허물이 전혀 없는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는 죄를 범한 적이 없고 장점만 가진 사람이었는가? 아니다.
그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조건없이 순종하는 모범을 보였고,
그 말씀에 따라서 자기의 가정을 믿음의 길로 인도했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남편들은 아내를 자기 몸같이 사랑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배고플 때에 때를 따라 음식을 먹고, 씻고, 다듬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추우면 감기걸릴까 봐 더운 옷을 입고,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서 로션을 바르고,
상처가 나면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고 주의하며 관리한다.
남편들이 어떻게 아내를 사랑할 수 있는가? 몇 가지의 실제적인 제안을 하겠다.
첫째는 아내에 말에 귀를 기울여 주라.
아주 쉬우면서도 아마 가장 어려운 것이 이것일 것이다.
아내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남편의 역할의 큰 몫이 된다.
그 말을 다 따를 수는 없어도 귀를 막을 필요까지는 없지 않은가!
둘째는 함께 있는 시간을 귀하게 여겨라.
비록 세련되지는 못해도 진실하게 사랑하는 표현들을 생각해 보라.
현대 사회에서는 남편이 너무 바빠서 아내와 시간을 내지 못해 문제가 자주 생긴다.
조금만 더 대화하면 부부 문제의 많은 것들이 뜻밖에 쉽게 풀리기도 한다.
셋째는 아내의 약점과 허물에 대하여 자기가 감당하겠다는 마음을 굳게 가져라.
아내의 부족을 남편이 채워 주지 않으면, 그는 다른 곳에서 채움받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나님은 두 사람이 합하여 둘이 되지 않고 하나가 된다고 말씀하셨다.
서로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넷째는 자상하면서도 용기있고, 부드러운면서도 강하라.
사랑하는 것을 마음에 담고만 있지 말고 말로 표현하라.
너무 흔하게 말하는 것도 가볍지만,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다.
진정한 남성은 강하면서도 부드럽고, 섬세하면서도 흔들리지 않는 멋을 가졌다.
무뚝뚝한 것이나 근엄한 것이 남성의 멋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라.
그래서 아내에게 실수를 인정하고 미안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용감한 자다.
또 한 가지, 아내를 보다 깊이 알고 이해하라.
아내의 관심사와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있는 남편은 결코 외로운 사람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남성과 여성의 차이를 조금 더 관심있게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자기의 생각으로 아내를 성급하게 판단하지 말고, 그 섬세함을 염두에 두라.
평생을 살면서 매일 더 깊이 알아 가는 것이 부부라는 사이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저절로 되지 않는다.
조금만 더 참아 주고, 조금만 더 용납해 주고, 조금만 더 이해하라.
남자의 생각으로 여성을 판단하지 말고, 입장을 바꿔 놓는 것을 연습하라.
값이 들지 않아도 엄청난 보상이 있는 것이 바로 넓은 마음이다.
이것은 바로 예수께서 교회를 위하여 자기를 다 드리셨을 뿐 아니라,
계속해서 성령과 그의 말씀으로 교회를 보양하고 돌보시는 것과 같다.
성경은 교회를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본을 말씀하면서,
무관심하거나 방심하는 것은 매력이 아니라 잘못된 처사라고 지적한다.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5:31-32).
이번에는 부모와의 관계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결혼하는 사람은 부모에게서 떠나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반드시 분가하여 떨어져 산다는 의미가 아니라,
정신적, 사회적, 경제적, 도덕적, 그리고 신앙적으로 독립적인 존재라는 것이다.
이제까지는 대부분 부모의 도움을 받으며, 부모가 책임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장성한 자가 되었으므로, 자기 일에 스스로 책임을 지고,
가정을 세워 나갈 의무가 있다는 것을 말한다.
가정을 가진 부부이면서도 아직도 소위 "마마보이"나 "마마걸'처럼
삶의 중요한 결정들을 더 이상 부모에게 맡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을 떠나 보내고 뒤에서 가장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가 되어야 하고,
자녀들을 더 이상 내 품에 있는 철부지로 여기지 말고,
사회에서도 제 몫을 감당하는 장성한 자로 생각해 주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와 동일한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일사분란하게 순종하며 하나가 되어 일하는 것처럼,
부부도 비록 차이점이 많지만, 한 마음과 한 방향과 한 꿈을 가지고 섬기며 살아야 한다.
그래서 부부는 원래 한 편이 이기고 다른 편은 지는 것이 아니라 같이 이겨야 한다.
두 사람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한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5:33).
한 가지 것을 놓고도 보는 관점은 보는 이에 따라 다양하다.
과학을 한 사람은 "그게 왜 작용하는가?"라고 묻고,
기계 공학을 한 사람은 "그게 어떻게 작동되나?"를 묻고,
경영학을 한 사람은 "가격이 얼마나 드는가?"를 물으며,
철학을 하는 사람은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다.
이것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잘 설명해 준다.
부부도 그렇다. 비록 한 몸이라고 하지만, 뚜렷한 차이점들이 있고,
또 하나님이 주신 은사와 재능도 다르다. 그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여야 한다.
부부가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것은 모든 일에 항상 의견이 하나가 된다는 말이 아니다.
두 사람의 의견이 다를 수 있고, 관점이 다를 수도 있다.
그러나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상대방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배우자의 다른 의견 속에서 새로운 지혜를 얻는다.
Lord Belfour라는 그리스도인의 "최고의 선물"이라는 시가 있다.
"적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용서요, 반대자에게는 인내요, 친구에게는 마음이요,
자녀에게는 좋은 본이요, 아버지에게는 존경이요, 어머니에게는 칭찬받을 만한 행동이요,
당신 자신에게는 자존감이요, 모든 사람에게는 긍휼이다."
여기에 내용을 조금 더 추가해 보자.
"남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조건없는 사랑과 순종이요,
아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자신을 다 드리는 사랑과 헌신이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은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목숨을 걸고 우리의 가정을 지키자.
이것은 부부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다음 세대와 온 세대를 위한 결단이며,
자신과 가정만 아니라 이 사회와 국가의 운명과도 연관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나라와도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자.
출처/박광철목사 설교자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