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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적인 감사행위 (요 12:1-8)
독일에 큰 기근이 들어서 많은 사람이 굶주릴 때 한 부자가 매일 빵을 구워서 동네 아이들에게 하나 씩 나누어 먹였습니다. 그런데 서로 큰 것만 집으려고 하지 빵을 받아 가지고는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레첸이라는 어린 소녀는 제일 마지막에 남은 작은 빵을 집어 들고는 할 아버지한테 "감사합니다"하고 기쁨으로 돌아가곤 하였습니다. 하도 기특해서 하루는 제일 작은 빵속에 50센트짜리 은화 여섯개를 넣어서 빵을 구워냈더니 그날도 역시 그레첸이라는 착한 소녀가 집어 들고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갔습니다. 집에 가서 빵을 먹다보니 은화 여섯개나 들어있는 것을 보고 할아버지 를 찾아와 그 돈을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그 부자 할아버지는 "감사할 줄 아는 착한 아이에게 주려고 일 부러 빵 속에 은화를 넣어 구운 것이니 걱정말고 가지고 가라"고 했다고 합니다.
감사할 줄 아는 생활이란 참으로 중요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행위이며 하나님의 더욱 큰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하는 행위이며 감사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흡 족하게 하는 일이며 자신에게는 좋은 인상을 갖게 하며 남에게 호감을 주는 일이며 긍정적인 삶을 사는 비결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중단없이 받게 되는 비결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마땅히 감사해야 하는데 감사할 줄 모르고 지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이 1 0명의 문둥이를 다 고쳐주셨는데 찾아와서 감사한 사람은 한사람 밖에 없었던 것과 꼭같습니다. 제 대로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은 10명에 1명꼴도 안되는게 인생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골로새서 4: 2에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있으라"고 말씀했습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 도록 늘 기도에 깨어있어야 하는 것처럼 감사치 않는 죄를 짓지 않도록 늘 감사에 깨어 있어야 합니 다.
사람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해도 마지못해서 겉치례로 인사하는 사람이 있고 진정한 감사를 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온 마리아는 참된 감사의 행위를 보여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모범적인 감사"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이 마리아는 누가복음서에 의하면 일곱 귀신이 들렸던 창녀였다고 합니다. 자기와 같이 더러운 죄인 이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서 그랬던지 아니면 자기 오빠가 죽었다가 예수님이 살려줘서 고마워서 그랬 었던지간에 그는 예수님의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이 죽으실 날이 임박한 것을 마음에 명심하고 유윌 절 엿새 전에 잔치를 잘 차려서 예수님께 대접하는 중에 마리아는 비싼 나드(nard) 향유 옥합을 갖 다가 아낌없이 깨뜨려 예수님의 발에 붓고 엎드려 자기 머리털로 씻어드렸습니다.
이 나드 향유는 일년 이상 벌어야 살 수 있는 비싼 것인데 모두 예수님 발에 부어드리는 것을 보고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그것을 300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면 좋을텐데 왜 허비하느냐?"고… 사실은 가룟 유다가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서 그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성경에 보면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의 일행의 돈 주머니를 받아가지고 다니면서 돈을 훔쳐 내는 도적놈이라 돈이 탐나서 그랬던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께서는 유다를 책망하고 마리아 편을 들어 말씀하시기를 "저를 가만히 두어 나의 장 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 니하니라"고 하시고 "이 여자의 행한 일이 온 세상 복음이 전파되는 곳마다 전하여지리라"고 하셨 습니다. 이 여자의 행위에서 우리는 모범적인 감사 행위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타산을 초월한 감사 행위입니다.>
그 나드 향유는 인도에서 수입한 것으로 대단히 값이 비싼 것이었습니다. 유다의 말대로 보면 최소 한 일년 이상 벌어야 살까말까 한 것입니다. 이 여자의 시집 갈 밑천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마리 아는 너무너무 감사해서 계산같은 것은 하지도 않고 아낌없이 예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사람한테 인사할 때도 너무 타산을 앞세우면 그 사람을 기쁘게 못해 줍니다.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데도 남의 눈에 보기에 좀 지나치다 할 정도로 낭비한다 할 정도로 해야 훌륭한 감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는 책망했지만 예수님은 칭찬하시고 축복하시기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고 했 습니다. 창녀이었던 그가 수천년 동안 많은 사람을 은혜받게 하는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잠언 22:1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사무 엘상 2:30에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 라"고 했습니다. 또 사실 하나님이 존귀하게 만들어 주시면 물질이 따라 올 것 아니겠습니까? 한편 300데나리온에 팔아서 구제사업하지 왜 허비하느냐고 했던 유다는 그렇게 계산과 타산만 앞세우더니 자기 스승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먹고 나중에는 목매달아 자살했고 스승을 팔아 먹으려던 그 배는 먹지도 못하고 곤두박질하여 창자가 터져나와 죽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드릴 때 물질을 드릴 때 너무 타산적이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고 큰 축복 도 받지 못합니다. 오직 성령의 감동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부호 하이드(A.A.Hyde)란 사람이 한 때 빚을 많이 진적이 있었습니다. 빚을 졌는데도 십 일조를 계속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이 "당신 빚은 안갚고 십일조만 하면 어떻게 합니까?"하고 물 었더니 "하나님의 빚을 먼저 갚아야 내 빚도 갚습니다"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마침내 세 계적인 부호가 되었습니다.
몇 해 전에 광주에 가서 부흥회를 하던 중에 성결교회 이 모 장로님의 초대를 받아서 갔었습니다. 목사님이 그 장로님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데 그가 몇 해 전에 사업을 하다가 200만원 빚을 지게 되 었는데 주일날 100만원 빚을 더 얻어다가 감사헌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 모두 의아하게 생각하니까 "내가 무엇인가 물질생활에 잘못이 있었길래 이러한 징계를 받은 줄 압니다. 하나님이 200만원 빚을 갚아 주실 것 같으면 300만원도 갚아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과연 그는 얼마 안 가서 돈 좀 받을 값으로 억지로 땅 좀 받아 놓은 것이 있었는데 도로가 나면서 수십 배로 값이 올라 큰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믿음의 계산법으로 살아야지 인간의 계산법으로 살면 주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고 큰 축복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2. 사랑의 감사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을 뜨겁게 사랑하고 은혜에 감격해서 이와 같은 감사행위를 나타낸 것입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축복해 주시는 것은 틀림이 없지만 그러나 축복을 꼭 받기 위한 조건으로만 감사하고 물질을 바치기보다는 정말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바쳐야 할 것입니다.
노부모님이 재산이 좀 있거나 집이라도 한 채 있으면 자식들이 더 알랑거리면서 효를 하려고 한다지 않습니까? 그러나 참된 효도는 부모를 사랑하고 부모의 은덕에 감사해서 하는 효도라야 참된 효도가 아니겠습니까? 마리아는 자기와 같은 죄인이 예수님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감사해서 비싼 옥합을 깨뜨 려 예수님께 부어 드렸습니다. 그리고 머리털로 그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3. 겸손한 감사 행위입니다.>
원래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할 줄도 모르고 사람에게도 감사할 줄 모르는 법입니다. 겸손한 사 람이 감사도 할 줄 압니다. 마리아는 비싼 옥합을 깨뜨려서 붓는 정도이면 아마도 어깨를 으쓱거릴만도 하고 자세하고 자랑할만도 한데 이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엎드려 자기가 귀중히 여기는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씻어드렸습니다. 이것은 얼마나 겸손한 행위입니까? 그런고로 더욱 예수님의 마음에 들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농촌 교회에 그곳에 유지되는 분이 교회에 나왔습니다. 그분이 예수를 믿은지 얼마 있다가 추수 감사절을 지켰는데 그분이 쌀 두가마니를 바쳤습니다. 학습 세례도 안받은 분이 쌀 두가마니를 바치니 까 온 교인들이 그분을 떠받들고 우러러 보았습니다. 그런데 몇 달 후에 그분이 웬일인지 교회에 나 오질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목사님, 전도사님, 그리고 장로님께서 심방을 가도 나오질 않습니 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만 하지 도무지 교회에 나오지 않는 이유를 말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장로님이 아예 그 집에서 잠을 잘 생각으로 그분 댁에 가서 밤 에 자면서 이유를 캐물었습니다. 그러니까 그분이 하는 말이 성찬예식 때 빵 조금하고 포도주 조금도 안줬다고(한국 개신교에서는 세례받은 사람만 예식에 참여함)해서 그분은 세례를 안받았기 때문에 참 여를 못한 이유를 잘 모르고 "그래도 내가 쌀 두가마니를 했는데 세상에 그럴 수가 있느냐?"고 했던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내용을 잘 설명해 드렸답니다.
왜 그 유지가 그렇게 했느냐고 볼 때 예수 믿은지 얼마 안돼서 쌀 두가마니나 바치니까 온 교인이 떠받들어 주어서 교만한 마음이 생긴 것입니다.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무엇을 드릴 때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고 드리고 나서도 계속 겸손한 마음을 품어야 복이 오는 법입니다. 그리고도 복을 받지 못하는 것은 교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잘 한다고 칭찬받을 때 교만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주의하시고, 다른 사람이 칭찬 들을 때 질투마귀가 들어오지 못하도목 주의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10에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 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 뿐이라 할찌니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봉사를 많이 하고 헌금을 많이 해도 교만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도리어 손해입니다. 잠언 11:2에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교만해지면 욕 을 먹게 되지만 겸손하고 낮아지면 모든 사람에게 존귀와 칭찬을 듣고 하나님께 은총과 귀중히 여김 을 받게 됩니다.
<4. 최선을 다한 감사 행위입니다.>
마리아는 자기의 있는 힘과 정성을 다 기울여서 주님께 감사했습니다. 그 향유는 너무 귀하고 비싸 기 때문에 조금만 발라도 온 집안에 향내가 진동할 것인데 마리아는 그 옥합을 몽땅 깨뜨려 부었습니 다. 대단한 정성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많든 적든 최선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지극한 정성은 늘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도 있듯이 그래서 예수님께 서 가난한 과부가 비록 두푼을 바쳤지만 그날의 생활비 전부를 바치는 것을 보고 그 모든 사람보다 제일 많이 바쳤다고 했습니다. 정성이 없는 사람은 신앙도 없습니다. 주님의 일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이느냐에 따라 그 신앙도 측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번에 건축헌금 작정할 때도 보면 집안 일이나 아이들을 위해서 안먹고 안쓰고 무섭게 아끼면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일에는 깜짝 깜짝 놀랄만큼 작정하고 드리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분명히 하나님께 서 그 가정도 우리 교회도 축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릴 때 어떤 이는 억지로 드리는 이가 있고, 어떤 이는 기쁨으로 드리되 힘껏 안하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힘껏 하면서도 기쁨으로 드리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드릴 때 하나님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마귀도 봅니다. 마귀가 비웃고 조롱하지 않도록 해야되겠습니다. 마 귀는 절대로 하나님께 감사치 않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음 주일 추수감사절에 마리아의 감사 행위를 본받아 충분히 하나님께 감 사하는 기회가 되어서 지난 한해 동안 받은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또 한해 동안도 축복해 주시 옵소서 하는 복된 감사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