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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만사를 변화시킨다. (빌4:6-7)
톱밥을 톱으로 켜려 하지 맙시다. 이 말은 미국 필라텔피아의 불리틴 주간이었던 프레드 폴러 쉐드가 어느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 중에 나이 드신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톱으로 나무를 켜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톱밥을 톱으로 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전혀 불가능하고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지나간 일을 잡고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은 톱밥을 톱으로 켜는 것과 같습니다. 개울가로 흘러 가버린 물은 씨앗을 싹트게 할 수 없고,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작은 딱정벌레를 조심합시다. 해리 에머슨 포스틱 박사의 「숲속거인의 승리와 패배」라는 이야기 중에 이러한 실화가 나옵니다.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롱 피거에 400년이 넘은 거목의 잔해가 있습니다. 박물학자들은 이 나무가 청교도인들이 플리머스에 이주할 그 보다 더 앞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그때부터 자란 나무라고 합니다. 400년을 넘는 긴 세월 동안에 벼락을 열네 번이나 맞았고, 폭풍과 눈사태 등 수없는 어려움을 다 이기고 굳건히 견디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따뜻한 봄날 아주 작은 딱정벌레 떼가 몰려와 이 나무껍질을 파고 들어가 수분을 빨아 먹음으로 이 거목이 활력을 잃더니 결국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열 네 번의 벼락에도 견디어 낸 거목이 어린 아이의 손톱으로 죽일만한 작은 딱정벌레들에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소한 작은 염려가 인생을 무너지게 합니다.
옛날 시골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의 힘이 맷돌에 구멍을 냅니다. 중국의 어떤 장군이 포로에게 손발을 묶어 놓고 작은 물방울이 덜어지는 물주머니를 매달아 두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얼마를 지나면서 똑, 똑,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그 소리가 점점 커져 나중에는 망치와 해머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최후에는 폭탄소리와 같이 들리면서 정신착란을 일으켜 발작을 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독일 나치 정권 때 히틀러가 강제 수용소에서 행했던 고문의 방법입니다. 작은 염려와 같은 물방울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황폐케 하여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갑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고민을 멈추고 건강해져라」라는 책을 쓴 포돌스키 박사에 의하면 염려와 걱정이 감기, 갑상선, 당뇨, 위장병, 심장병, 고혈압, 루마티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모든 질병은 사소한 염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첫째, 염려는 위궤양을 비롯한 소화기 계통의 모든 질병을 일으킵니다. 걱정하고 긴장하면 위 신경이 자극을 받아 위액분비에 이상이 생겨 소화기능이 약화되어 소화불량을 일으켜 나중에는 위궤양까지 일으킵니다. 「신경성 위장 장애」라는 책을 쓴 조셉 F 몬터규 박사는 “위궤양의 원인은 음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염려이다”고 했습니다. W. C. 알바레츠 박사는 “위궤양은 때때로 감정적 긴장의 강약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 심리적인 불안, 공포 두려움, 증오, 그리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둘째, 염려는 심장병을 일으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미군 병사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이백만 명인데 그 절반인 일백만 명이 극도의 염려와 걱정이 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염려와 고민은 충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윌리엄 I. L, 맥고니글 박사가 미국 치과학회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민, 공포, 잔소리 따위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은 신체에 갈슘의 균형을 잃게 하여 충치의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넷째, 염려는 갑상선을 일으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이스라엘 브람 박사는 38년간 갑상선을 진료한 명의입니다. 그의 병원 대기실에 「휴양과 오락」이란 액자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기운을 돋우는 힘은 건전한 종교. 수면, 음악, 웃음이다”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가 환자를 진료할 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깊은 수면을 통한 쉼과 찬양으로 기쁨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다섯째, 염려는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게 합니다. 미국의 영화배우 오베론은 절대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배우로서 가장 큰 재산은 얼굴인데 염려하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걱정하면 표정이 굳어지면서 얼굴에 윤기가 없어지고 주름살이 집니다. 온갖 종류의 분미물이나 여드름이 돋아나고 머리가 빠지고 흰머리가 돋아나고 빨리 늙는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래서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염려(μ?ριμνα)란 말은 본래 마음을 쪼갠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쪼개지니 정신이 분열된 상태입니다. 가야할 곳은 한곳인데 여러 곳에서 부르니 혼란스럽습니다. 사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헤아려 걱정하는 것”,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마음이 무거운 것”(a weight on one's mind)이라고 합니다. 육체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첫째,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돈을 붙들고, 지식을 쌓고,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우선적이고 소중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전부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쳐서 빼앗는 용사나 장군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잠16:32).
둘째, 모든 일의 결과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솔로몬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1,3) 이 말은 일의 결과를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의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공부할 자식이 자꾸 살림 걱정을 하면 그것은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능력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염려는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세인들은 염려가 생기면 고민하다가 해결할 길이 없으므로 스스로 생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께 맡기면 됩니다. 주께서 권고( #K)하십니다. 주님이 친히 그 팔로 안아서 돌보아 주십니다. 상한 것은 싸매어 치료해 주십니다(he cares for you). 맡기는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모든 일은 기도로 풀어가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 “모든 일”(in everything)이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문제가 생기면 기도로 풀어가라는 말입니다. 기도가 습관화되고,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서 기도했습니다.
첫째, 모든 일은 기도로 풀어갑시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προσευχ?)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구하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데일 카네기가 쓴 「카네기 행복론」에 보면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미주리주 작은 농장에서 가족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가정예배를 드린 때가 그 인생에 가장 행복한 때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리고 간구합시다. 여기 간구(δ?ησι?)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는 기도의 간절함입니다. 앞서 말한 기도와 같은 의미로 볼 때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생명이라면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에는 신속히 응답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음으로는 특별한 기도일 경우입니다. 이는 특별한 때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때를 정하고, 구별하여 때로는 금식하면서 부르짖는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하여 한 기도는 특별한 기도입니다(창18:22-33).
셋째,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단이 좋아하는 것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오면 사단은 이미 내 심령에 이미 진지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이 원망과 불평을 대적할 강력한 무기가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과 염려가 엄습해 올 때 즉시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기도의 필수요소이며, 감사하면 거룩한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다 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에게 감사하는 일입니다. 감사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평강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입으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왜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입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평강은 성도들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파수꾼을 부르는 청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통치권자가 있는 수도를 지키는 군대를 수도경비사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나라를 빼앗깁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평강은 성도들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한번 쫓겨나간 악령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견고한 수비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심령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강력한 경호원이요, 파수꾼이며, 수비대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그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당할 수 없도록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롬8:35-39).
둘째, 하나님의 평강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우리의 모든 행위는 마음에 생각한 계획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빼앗기면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생각이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엡3:20)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의 생각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합니다.
셋째, 그러면 이 평강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 서신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13권중에서 주 안에서란 표현이 무려 164회나 나온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 안과 밖은 삶과 죽음의 분기점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에서 자유 합니다(롬8:1).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진리로 자유 함을 누리는 영역과 경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탕자의 삶이요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콜롬비아 대학장이었던 허버트 E 헉스 박사는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해서 결정하여 실행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 우리가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사실을 바로 파악하여 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합시다.
톱밥을 톱으로 켜려 하지 맙시다. 이 말은 미국 필라텔피아의 불리틴 주간이었던 프레드 폴러 쉐드가 어느 대학 졸업식 연설에서 한 말입니다. 우리 중에 나이 드신 대부분의 기성세대는 톱으로 나무를 켜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톱밥을 톱으로 켜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는 전혀 불가능하고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지나간 일을 잡고 고민하고 염려하는 것은 톱밥을 톱으로 켜는 것과 같습니다. 개울가로 흘러 가버린 물은 씨앗을 싹트게 할 수 없고, 다시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습니다.
작은 딱정벌레를 조심합시다. 해리 에머슨 포스틱 박사의 「숲속거인의 승리와 패배」라는 이야기 중에 이러한 실화가 나옵니다. 미국 중부 콜로라도주 롱 피거에 400년이 넘은 거목의 잔해가 있습니다. 박물학자들은 이 나무가 청교도인들이 플리머스에 이주할 그 보다 더 앞선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그때부터 자란 나무라고 합니다. 400년을 넘는 긴 세월 동안에 벼락을 열네 번이나 맞았고, 폭풍과 눈사태 등 수없는 어려움을 다 이기고 굳건히 견디어왔습니다. 그러던 어느 해 따뜻한 봄날 아주 작은 딱정벌레 떼가 몰려와 이 나무껍질을 파고 들어가 수분을 빨아 먹음으로 이 거목이 활력을 잃더니 결국 말라 죽게 되었습니다. 열 네 번의 벼락에도 견디어 낸 거목이 어린 아이의 손톱으로 죽일만한 작은 딱정벌레들에게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사소한 작은 염려가 인생을 무너지게 합니다.
옛날 시골 초가지붕에서 떨어지는 작은 빗방울의 힘이 맷돌에 구멍을 냅니다. 중국의 어떤 장군이 포로에게 손발을 묶어 놓고 작은 물방울이 덜어지는 물주머니를 매달아 두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러다가 얼마를 지나면서 똑, 똑,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더니 날이 갈수록 그 소리가 점점 커져 나중에는 망치와 해머소리보다 더 크게 들리면서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합니다. 최후에는 폭탄소리와 같이 들리면서 정신착란을 일으켜 발작을 하다가 죽는다고 합니다. 이것이 독일 나치 정권 때 히틀러가 강제 수용소에서 행했던 고문의 방법입니다. 작은 염려와 같은 물방울이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고 황폐케 하여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갑니다.
염려는 만병의 근원입니다. 「고민을 멈추고 건강해져라」라는 책을 쓴 포돌스키 박사에 의하면 염려와 걱정이 감기, 갑상선, 당뇨, 위장병, 심장병, 고혈압, 루마티스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라고 합니다. 모든 질병은 사소한 염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첫째, 염려는 위궤양을 비롯한 소화기 계통의 모든 질병을 일으킵니다. 걱정하고 긴장하면 위 신경이 자극을 받아 위액분비에 이상이 생겨 소화기능이 약화되어 소화불량을 일으켜 나중에는 위궤양까지 일으킵니다. 「신경성 위장 장애」라는 책을 쓴 조셉 F 몬터규 박사는 “위궤양의 원인은 음식물이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좀먹는 염려이다”고 했습니다. W. C. 알바레츠 박사는 “위궤양은 때때로 감정적 긴장의 강약에 따라 일어나기도 하고 가라앉기도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다 심리적인 불안, 공포 두려움, 증오, 그리고 극단적인 이기주의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둘째, 염려는 심장병을 일으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전사한 미군 병사가 30만 명이었습니다. 그런데 가정에서 심장병으로 죽은 사람은 이백만 명인데 그 절반인 일백만 명이 극도의 염려와 걱정이 그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셋째, 염려와 고민은 충치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윌리엄 I. L, 맥고니글 박사가 미국 치과학회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고민, 공포, 잔소리 따위에서 오는 불쾌한 감정은 신체에 갈슘의 균형을 잃게 하여 충치의 원인이 된다”고 했습니다.
넷째, 염려는 갑상선을 일으킵니다. 미국 필라델피아의 이스라엘 브람 박사는 38년간 갑상선을 진료한 명의입니다. 그의 병원 대기실에 「휴양과 오락」이란 액자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고 기운을 돋우는 힘은 건전한 종교. 수면, 음악, 웃음이다”란 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가 환자를 진료할 때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고, 깊은 수면을 통한 쉼과 찬양으로 기쁨을 잃지 말라고 합니다.
다섯째, 염려는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게 합니다. 미국의 영화배우 오베론은 절대로 걱정을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영화배우로서 가장 큰 재산은 얼굴인데 염려하면 얼굴에 주름살이 생기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걱정하면 표정이 굳어지면서 얼굴에 윤기가 없어지고 주름살이 집니다. 온갖 종류의 분미물이나 여드름이 돋아나고 머리가 빠지고 흰머리가 돋아나고 빨리 늙는다고 합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
그래서 바울은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염려(μ?ριμνα)란 말은 본래 마음을 쪼갠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쪼개지니 정신이 분열된 상태입니다. 가야할 곳은 한곳인데 여러 곳에서 부르니 혼란스럽습니다. 사전에서는 “여러 가지로 헤아려 걱정하는 것”, “마음을 놓지 못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어로 “마음이 무거운 것”(a weight on one's mind)이라고 합니다. 육체가 무거운 것이 아니라 마음이 무겁습니다. 그러니 어떤 일을 시작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첫째,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돈을 붙들고, 지식을 쌓고, 명예와 권세를 얻는 것도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우선적이고 소중한 것은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입니다. 마음이 무너지면 전부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스릴 줄 아는 자는 성을 쳐서 빼앗는 용사나 장군보다 낫다고 했습니다(잠16:32).
둘째, 모든 일의 결과는 여호와께 있습니다. 솔로몬은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잠16:1,3) 이 말은 일의 결과를 염려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일의 결과는 하나님의 장중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염려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권능과 지혜를 의심하고, 하나님의 언약을 불신하는 행위입니다. 공부할 자식이 자꾸 살림 걱정을 하면 그것은 부모님을 위하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능력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염려는 주께 맡겨야 합니다. 베드로는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벧전5:7) 세인들은 염려가 생기면 고민하다가 해결할 길이 없으므로 스스로 생을 포기해 버립니다. 그러나 성도는 주께 맡기면 됩니다. 주께서 권고( #K)하십니다. 주님이 친히 그 팔로 안아서 돌보아 주십니다. 상한 것은 싸매어 치료해 주십니다(he cares for you). 맡기는 채널이 바로 기도입니다
모든 일은 기도로 풀어가라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여기 “모든 일”(in everything)이란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어려운 일이든 쉬운 일이든 문제가 생기면 기도로 풀어가라는 말입니다. 기도가 습관화되고, 생활화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도 습관을 좇아서 기도했습니다.
첫째, 모든 일은 기도로 풀어갑시다. 여기서 말하는 기도(προσευχ?)는 광범위한 의미에서 구하는 일반적인 기도를 말합니다. 데일 카네기가 쓴 「카네기 행복론」에 보면 그는 어릴 때 아버지가 경영하는 미주리주 작은 농장에서 가족들이 함께 무릎을 꿇고 성경을 읽고 암송하는 가정예배를 드린 때가 그 인생에 가장 행복한 때라고 했습니다.
둘째, 그리고 간구합시다. 여기 간구(δ?ησι?)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먼저는 기도의 간절함입니다. 앞서 말한 기도와 같은 의미로 볼 때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생명이라면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부르짖는 기도에는 신속히 응답하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을 네게 보이리라”(렘33:3) 다음으로는 특별한 기도일 경우입니다. 이는 특별한 때 오직 기도에만 전념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때를 정하고, 구별하여 때로는 금식하면서 부르짖는 경우입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위하여 한 기도는 특별한 기도입니다(창18:22-33).
셋째, 감사함으로 해야 합니다. 사단이 좋아하는 것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입술로 원망과 불평이 쏟아져 나오면 사단은 이미 내 심령에 이미 진지를 구축한 상태입니다. 이 원망과 불평을 대적할 강력한 무기가 감사입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과 염려가 엄습해 올 때 즉시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감사는 기도의 필수요소이며, 감사하면 거룩한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 전에 다 아십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에게 감사하는 일입니다. 감사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입니다. 감사할 때 하나님의 평강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의 평강을 입으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왜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입어야 하는가?
첫째, 하나님의 평강은 성도들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파수꾼을 부르는 청원입니다. 우리나라의 최고통치권자가 있는 수도를 지키는 군대를 수도경비사라고 합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나라를 빼앗깁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평강은 성도들의 마음을 지키는 파수꾼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한번 쫓겨나간 악령이 다시 들어오지 못하게 지키는 견고한 수비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14:27)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심령을 가장 안전하게 지켜주는 강력한 경호원이요, 파수꾼이며, 수비대입니다. 그래서 세상에 그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당할 수 없도록 넉넉히 이기게 하십니다(롬8:35-39).
둘째, 하나님의 평강은 구체적으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will guard your hearts and your minds). 우리의 모든 행위는 마음에 생각한 계획에서 나옵니다. 마음은 우리의 지성과 감성과 영성이 자리 잡고 있는 좌소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빼앗기면 모든 것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그래서 지혜자 솔로몬은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마음을 지키라고 했습니다. 생각이란 지성과 감성과 영성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주신다고 했습니다(엡3:20) 그러므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의 생각을 다스리고 지배해야 합니다.
셋째, 그러면 이 평강의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 서신의 특징 중에 하나가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 13권중에서 주 안에서란 표현이 무려 164회나 나온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해서 그리스도 안과 밖은 삶과 죽음의 분기점입니다. 예수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에서 자유 합니다(롬8:1). 우리가 하나님의 평강을 누리고 진리로 자유 함을 누리는 영역과 경계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입니다. 이를 벗어나는 것은 탕자의 삶이요 죽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 콜롬비아 대학장이었던 허버트 E 헉스 박사는 염려와 걱정을 해결하는 방법은 사실을 잘 파악하고 분석해서 결정하여 실행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를 분별할 수 있는 지각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 속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킬 때 우리가 사물을 정확하게 보고, 사실을 바로 파악하여 결단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우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룁시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승리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