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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이 아닌 승리하는 삶 (느:1-9 )
어제 월드컵 축구경기에서 전 국민이 열광하며 성원을 보냈고 우리나라 선수들이 열심히 싸웠지만 승리하지 못하므로 아쉽게 16강에 오르지 못하고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아쉬움을 남지만 세계열강들과 넉넉하게 겨룰 수 있음에 자부심도 긍지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습니다.
모든 목적지에는 승리가 기다리고 있을 때 함께 기뻐하고 흥분도 하고 열광도 하고 살아가는 보람도 느끼고 행복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지금까지 인생을 살아오시면서 승리한 경험이 많습니까? 아니면 실패의 경험이 많습니까? 또한 여러분은 성공적인 신앙생활을 하십니까? 죄와 죄책감, 가난과 질병, 절망과 좌절, 교만과 이기심, 미움과 시기 그리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경험이나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까?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하나님 품안에 있는 성도, 십자가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구원 안에 있는 성도는 아무리 어렵고 큰 환난이 닥쳐와도 보호를 받으며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경쟁하지 않고 살 수 없는 존재이며 우리는 늘 경쟁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끔 이런 질문을 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왜 저 사람은 행복한데 나는 행복하지 못할까? 왜 저 사람은 기쁘게 사는데 난 기쁘게 살지 못할까? 왜 저 사람은 늘 감사와 고마움과 얼굴의 생기와 마음의 평화를 가지고 사는데 난 두려움과 섭섭함과 미움으로 가득 차 있는가?
삶의 경쟁력과 삶의 차이점, 모든 행동이나 표정도 마음의 태도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마음의 태도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하고 그 사람의 오늘의 현실도 결정합니다. 마음이 편안하면 눈빛도 예쁘고 표정도 예쁘고 걸음걸이도 예쁘지만 마음이 불편하면 이런 것들이 다 흔들립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도 내가 하나님을 붙들었더니 비굴하지 않았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혔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고 강하고 담대하게 오늘도 잘 달려간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에게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만일 하나님이 나를 위하신다고 하면 누가 나를 대적하겠는가. 만일 하나님이 나의 후원자가 된다면 내가 무엇을 겁낼 것이 있겠는가?”입니다.
인간은 반응하는 존재입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것은 단순하게 반응하지 않고 생각을 하고 반응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서 가장 크게 변화하는 것이 바로 생각입니다. 삶을 부정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늘 긍정적이고 소망이 있는 해석을 합니다. 즉 좋은 쪽으로 인생의 결론을 맺습니다. 그래서 만사형통합니다. 이 사람은 성공하는 사람이라기보다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인간은 승리할 때 행복한 것이지 성공했다고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유학생활 중에 고생 많이 한 사람이 있는데 그는 가는 곳마다 적응을 잘 하고 어려움을 잘 이겨냅니다. 그런데 그가 공부를 해서 학위를 받았지만 원하는 학교에서 교수가 될 수 없어서 시골에 가서 목회를 했습니다. 그러나 몸이 아파서 목회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일이 잘 안 풀리고 불행해보이지만 그는 항상 자신에게 정직하고 늘 되는 쪽으로 생각을 합니다. 즉 어려움이 올 때마다 잘 적응합니다. 그는 세상적으로는 성공하는 사람이 아닌 것 같이 보일지라도 분명한 것은 승리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승리해 나가는 그의 삶을 가치로 계산한다면 어마어마한 부자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부자를 쓰십니다. 즉 갖추어지고 준비된 자를 쓰십니다.
승리한 사람 느헤미야
그는 나라가 망해 페르시아에 끌려가 고위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는데 어느 날 자기 나라 자기 고향 예루살렘이 다 망가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왕의 허락으로 예루살렘에 총독임명을 받아 고향에 돌아와서 성을 쌓습니다. 벌써 그는 훌륭한 사람입니다. 자식고생 안 시키려고 국적을 포기하거나 살기 힘들어서 나라를 떠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자세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방해가 예사롭지를 않습니다. 처음에는 협박을 하고 그 다음에는 싸움을 걸어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협상을 걸어 왔습니다. 그래도 안 되니까 이 성을 쌓아서 페르시아 왕을 배반하려고 한다는 음모를 꾸며 세상에 소문이 나게 합니다. 그러나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성을 다 쌓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어려움을 이겨내고 또 이겨내고 또 이겨낸 힘은 바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뜻한 바를 이루려는 마음의 힘입니다. 마음으로 이기기를 포기하지 않으면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민수기13-14장에 보면 정탐 군을 보내고 보고를 받게 되는데 10명이 와서 부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낙심을 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 때 하나님이 진노하시면서 쓰신 단어가 있습니다. 민14:33“자녀들은 너희의 패역한 죄를 지고 너희 시체가 광야에서 소멸되기까지 40년을 광야에서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그들이 40년 고생하게 되는 이유가 패역입니다. 이 패역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낙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못한다, 안 된다 하면서 포기하는 것이 패역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포기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나님이 크게 화내실 일입니다.
두 가지의 패역
하나는 삶의 의미도 없이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패역입니다. 건강이 있는데도 공부를 할 수 있는데도 노력을 할 수 있는데도 인생을 낭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로 패역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쓰시지 않습니다. 또 하나는 열심히 하다가도 인간적인 생각으로 안 된다고 하고, 노력하다가 그 대가가 없다고 실망하여 포기하는 것도 패역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들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광야로 몰고 나가십니다.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갖지 않고 승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훈련하시는 것입니다.
승리하기 위해 사는 사람들
성경에 나와 있는 모델이 될 만한 사람들은 주로 성공한 사람들이기 보다는 승리한 사람들입니다. 요셉도 성공한 사람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나를 형님들이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오늘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나를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과거나 관계를 다 아름답게 해석해 내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누구를 만나든지 늘 좋게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자기에게 피해를 주었어도 하나님은 아시리라 생각하면서 더 이상 그 사람 때문에 인생을 절망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길을 열어 주십니다.
다윗도 성공한 사람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믿음으로 골리앗을 이기고 사울을 믿음으로 존경하고 자기의 죄를 회개할 줄 아는 자기와의 싸움이나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밧세바를 간음하고 나서 승리한 사람인데 그는 그 사건이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51:10) 이 말은 "하나님 제게서 부정적인 태도를 없애 주시고 제가 포기하지 않도록 도와주시고 제 안에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영을 주시옵소서” 스스로 자기를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일어서기를 간구하고 있습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포기하지 않고 승리할 때까지 싸우는 사람을 하나님은 자기편으로 삼으십니다.
사도바울도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 평생 고생만 한 사람이지만 그는 승리한 사람입니다. 한 번은 전도하다가 매를 죽도록 맞고 감옥에 갇혔으나 그는 거기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찬송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 승리가 곧 감옥에 지진이 일어나서 풀려나는 기적을 가져옵니다. 항상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따라 오지만 포기하는 사람은 세상이 더욱 어둡고 불합리한 일들만 만나게 됩니다.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자랑이 되는 것은 죽음 앞에서 포기하지 않고 죽음을 받아 들였기 때문입니다. 승리한 삶입니다. 그 승리가 곧 부활이라는 기적을 가져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공했다기보다는 승리한 분입니다. 성령이 왜 오셨습니까? 우리를 성공하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승리하도록 돕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증인이라는 말은 순교자를 말하는데 능력 받으면 죽음 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순교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죽을 수 있는 것이 승리입니다. 보통 사람은 죽지 못합니다. 성령이 함께 하는 사람만이 죽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넉넉한 이김
여러분은 요즘 잘 이기고 있습니까? 승리하기를 선택한다면 아무리 견디기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다가온다 해도 이겨내기만 하면 됩니다. 고난은 이기라고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프로선수들은 이기기 위해 싸우고 그 게임이 짐이 아니라 돈입니다. 하나님의 성령 받은 사람들은 어려움이 짐이 아니라 승리이고 축복입니다. 어떻게 이기시겠습니까? 수없는 원수들이 나를 따라오더라도 그것을 바라보지 마시고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말씀의 갑옷을 입으시고 기도의 창을 가지시고 그리고 믿음의 방패를 앞에 잡고 나가면 이 세상에서 반드시 이기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인생이라는 무대에서는 여러 번 바닥에 떨어지고, 밟히며, 더러워지는 일이 있습니다. 실패라는 이름으로, 실수라는 이름으로 또는 패배라는 이름으로 겪게 되는 그 아픔들을 겪게 되면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쓸 모 없는 사람이라고 평가합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우리 인간이 실패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우리의 가치는 여전하다는 것입니다. 마치 구겨지고 짓밟혀도 여전히 자신의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한 가치를 우리에게 부여하시고 그리고 사랑하시며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의롭거나 불의할 때를 불문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잘 났을 때나 못 났을 때를 불문하고 사랑하시며 우리가 성공했을 때나 실패했을 때 그리고 건강할 때나 약할 때를 막론하고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깊은 수렁과 같은 고난 속에 있을 때, 가장 위험한 적은 바로 ‘외로움’ 입니다. 세상 그 넓은 곳에 나 혼자만 던져진 채 홀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가 결코 외롭지 않은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하나님의 사랑’이 고난당하고 있는 우리를 붙잡고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 고난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 외로움 속에서 홀로 고난과 싸우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두르고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눈을 들어 주변을 살필 때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인이 주변에 있습니까? 그에게 이 놀라운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시기 바랍니다.
인생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
인생은 끝없는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생 때는 공부와의 싸움을 하여야 합니다. 좀 더 자고 싶고 좀 더 놀고 싶은 욕망과 싸워야 합니다. 건강한 생활을 위해서도 자신과의 싸움을 하여야만 합니다. 음식을 절제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과의 싸움인데 음식을 절제하고 적당한 운동을 하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가 않고 많은 사람이 이 작은 싸움에서조차 승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벌떡 일어나 여건을 찾아 나서는 사람, 여건이 갖추어지지 않았을 때 스스로 여건을 만들어내는 사람만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행운을 불러온 사람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루어내고 싶다면 자신의 여건을 만들어보세요. 다른 사람의 여건으로 자신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자신의 여건을 스스로 만들어 승리를 향한 길을 가는 자가 행복하고 고귀한 사람입니다.
6, 25 오십육 주년을 맞으며
6,25전쟁은 세계사의 흐름을 바람직한 방향으로 돌려놓은 뜻 깊은 전쟁이었습니다. 우리 겨레가 이 전쟁에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이런 희생을 통하여 일류 역사에 큰 공로를 세우게 되었습니다. 만약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6,25전쟁에서 세계적화(世界赤化)의 설계를 품고 한 단계 한 단 계씩 그 계획을 실천하여 나가던 국제 공산주의를 가로 막지 못하였더라면 지금의 세계는 심히 어려운 처지에 처하여 있을 것입니다. 중국이 공산화 된지 불과 8개월여 만에 한반도를 공산화하려는 6,25전쟁이 일어났고 이 전쟁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빠른 시일 안에 전 세계를 공산화 하려는 국제공산주의 운동의 세계 전략으로부터 비롯되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인데 6,25전쟁을 통하여 16개국이 유엔의 깃발 아래 참전하여 이 땅의 공산화를 막아내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6,25전쟁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우리말에 과거를 나타내는 말로‘어제’가 있고 현재를 나타내는 말로‘오늘’이 있지만 미래를 나타내는 말이 없습니다. 내일이란 말이 있으나 순수 우리말이 아닌 한자의 내일(來日)입니다. 요즘 우리 사회의 처지가 내일을 기약하지 못하는 형편이라고들 합니다. 그래서 이민가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 사람들 중에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이민 가려는 마음을 품는 것이 '오늘이 고생스러워서’가 아니라‘내일에의 희망을 가질 수 없어서’라고 합니다. 그간에 우리는 너무 과거사에 매달려 있거나 지난날의 시시비비를 밝히려다 내일에의 희망을 잃고 있습니다. 과거와 현재가 싸우게 되면 미래가 희생당한다고 합니다. 어제를 잊어서도 아니 되지만 어제에 매여서도 안 됩니다. 우리가 어제와 오늘을 소중히 하는 것은 밝은 내일을 열어가기 위해서입니다. 이제나마 우리 모두가 보다 밝은 내일을 열어나가기 위해 어제와 오늘을 함께 극복하여 나가는 일에 마음과 뜻을 합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큰 승리
세상에는 이기는 승리도 있지만 지면서 이기는 승리도 있습니다. 사람을 파멸시키는 패배가 있는가 하면 누군가를 일깨우는 패배도 있습니다. 인생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가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에 따라 드러납니다. 내가 의심하지 않는 참다운 의미의 승리는 조그만 씨앗의 생명력 속에 숨어 있습니다. 씨앗을 시커먼 흙 속에 심어 놓으면 그것만으로 승리의 조짐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씨앗의 승리를 제대로 축하려면 먼저 시간이 흘러가야 합니다. 가장 큰 승리는 가장 빠르고, 가장 똑똑하고, 가장 총명하고, 가장 부유한 사람에게 오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사람에게 오는 것입니다. 누구나 넘어질 때가 있지만, 중요한 것은 그 다음입니다. 넘어진 채로 주저앉으면 영원한 패배자가 되지만 다시 일어서면 반드시 승리자가 됩니다. 민족은, 역사는 더욱 그러합니다. 일어나야 큰 승리자가 됩니다.
출처/서정호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