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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극복하는 방법 (야고보서 1장 13-15절)
잘못했을 때 나타나는 6가지 태도
오늘 본문은 시험을 어떻게 슬기롭게 잘 극복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본문입니다. 사람이 잘못을 저지르고 시험을 당할 때 보통 어떤 태도를 취합니까? 보편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곱 가지 태도가 흔히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남 탓으로 돌립니다.
모든 갈등의 원인은 ‘남 탓'에서 비롯됩니다. 가장 소중한 인간 공동체인 교회와 가정조차 ’남 탓‘에 무너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좀 먹는 네 가지 탓’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즉 남편 탓, 아내 탓, 부모 탓, 자식 탓은 가정의 행복을 질식시키는 가시입니다. 가정에서부터 탓하는 버릇이 고착화되면 결국 고약한 인격과 체질을 가진 사람이 됩니다. ‘내 탓’은 나의 죄를 끊는 동기부여를 하지만 ‘남 탓’은 나의 죄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2.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잘못을 환경 탓으로 돌립니다. 그러나 환경은 큰 이유가 아닙니다. 지난 다음에 생각해 보면 잘못된 길로 가지 않을 수 있는 수많은 방법이 있었습니다. 잘못의 원인은 환경에 있지 않고 자신에게 있습니다. 가난하면 도적질을 해도 됩니까? 누가 화나게 하면 살인을 해도 됩니까? 환경 탓으로 돌리면 잘못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고 결국 하나님 탓이라는 얘기로 흐르게 됩니다. 얼마나 무책임한 일입니까?
3. 마귀 탓으로 돌립니다.
자신의 잘못을 마귀 탓으로 돌리는 태도는 가장 고약한 태도이고, 가장 무책임한 태도입니다. 설사 마귀가 중간에 장난을 했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과 의지를 통해 벌어진 일은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4. 정당화하려고 합니다.
“나만 그런 죄를 짓는가?”라고 하면서 다 그렇다고 보편화시킵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똑같은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 죄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내 죄는 내 죄이고, 자기 잘못은 자기 책임입니다.
5. 실수였다고 말합니다.
언젠가 연세대학교 앞 공중전화 박스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습니다. 통화를 간단히 하라고 하던 아주머니를 전화하던 청년이 발끈하여 칼로 찔러 죽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그 청년 이야기가 한심합니다. 자기는 자라면서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데 순간적으로 실수했다는 것입니다. 그 순간에 자기가 왜 그랬는지 알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지만 “실수했다”는 것이 상습적 변명거리는 될 수 없습니다.
6. 사람은 완벽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물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단단히 결심했다면 그 사건에서 충분히 시험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존재는 아니지만 시험을 충분히 이길 수 있도록 창조되었습니다. 그 시험을 이기지 못해 자기 자신이 죄를 지은 것이지 애초에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창조된 것은 아닙니다.
이런 태도들은 자신이 자신을 과보호하려는 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을 과보호하면 버릇이 나빠지듯이 자신을 과보호하면 여러 가지 면에서 나쁜 태도가 체질화되고 문제 해결은 더욱 요원해지게 됩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과보호하지 말아야 합니다. 죄를 짓고 실패했을 때는 자신의 부족함을 겸허히 인정하면서 잘못을 빌어야 합니다. 그러면 남이 나를 보호해 주게 될 것입니다. 모든 죄는 “내 탓이다”라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풀리게 되고. 축복된 자리를 향한 위대한 출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 본문은 시험이라는 문제를 통해 그 사실을 도전해 주고 있습니다.
< 왜 시험이 찾아올까요? >
왜 사람에게 시험이 찾아올까요? 이 질문은 아주 중요한 질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지, 혹은 시험이 어느 길로 오는지를 알아야 시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서 야고보는 두 가지를 분명히 말합니다. 첫째, 시험은 하나님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 13절 말씀을 보십시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둘째, 시험은 자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보십시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의 원인은 세상도 아니고, 환경도 아닙니다. 시험은 바로 나 자신과 내 마음으로부터 비롯됩니다. 물론 어떤 경우에는 정말로 내 책임과 욕심을 부리지 않았는데도 시험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도 “내가 부족해서! 내가 기도하지 않아서!”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시험을 당할 때 “나는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다 보면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원망의 자리’로 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원망하는 것을 대단히 큰 죄로 여기십니다. 왜냐하면 원망이란 기본적으로 마음의 간사함을 나타내는 것이고, 원망을 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자리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3장에 나오는 하와를 대하는 아담의 모습을 보십시오. 좋을 때는 하와에 대해서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하다가 일이 잘못되니까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저 여자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합니다. 즉 여자 탓을 하면서 여자를 주신 하나님에게까지 원망을 돌립니다.
이처럼 원망은 자꾸 거슬러 올라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남 탓, 환경을 들먹거리다가 좀더 나아가면 조상 탓까지 하고, 마침내는 하나님 탓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원망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경우에라도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문제와 시험이 있을 때마다 내 책임을 항상 먼저 생각하고 나의 부족함을 반성하고 다시 분발하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 시험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 >
시험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험을 잘 소화하지 못할 때 원망이 나온다면 반대로 시험을 잘 소화하는 가장 좋은 길은 감사하는 것입니다.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2가지가 있다면 하나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감사가 있습니다. 그것은 성공했을 때뿐만 아니라 실패했을 때에도 감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사실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많이 듣는 말이지만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남의 비극을 보면 “감사하라!”고 권면하기 쉽지만 막상 그 비극이 내게 닥치면 감사보다는 원망하고 좌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패했을 때에도 그 빈 자리에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훌륭한 감사이고, 가치 있는 감사입니다.
감사 중에는 웃음의 감사가 있고 눈물의 감사가 있습니다. 일에 성공하여 축하객들 앞에서 감사하는 분은 많지만 슬픔의 눈물을 흘리며 외롭게 하나님 앞에 감사하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눈물 중에서도 죽어라고 감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웃는 날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입니다. 눈물 속에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신앙인입니다. 감사와 신앙은 정비례합니다. 은혜가 충만하면 감사가 많고 은혜가 마르면 감사가 없어집니다.
어느 날, 어떤 권사님이 새벽기도 나가다가 눈에 미끄러져 팔이 부러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목사님이 죄지은 것 같았습니다. 시장가다 부러졌으면 덜 미안할 터인데 새벽기도 나오다가 부러졌으니 꼭 자기가 잘못한 것 같았습니다. 혹시 시험 들면 어떻게 하나 하고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는데 목사님을 보자 권사님이 대뜸 말했습니다. “목사님,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요.”
목사님이 깜짝 놀랐습니다. 원망할 줄 알았는데 감사하는 것이 너무 의외라서 목사님이 물었습니다. “아니! 권사님! 뭐가 그렇게 감사해요?” 권사님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보세요. 제가 지금 왼손이 부러졌잖아요. 제가 실수해서 넘어졌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자주 사용하는 오른손보다 왼손이 부러지게 하시니 너무 감사해요.”
그것이 바로 진짜 감사입니다. 우리는 주어진 모든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감사해야 합니다. 고난과 질병 속에서도 감사하고, 보통 생활 속에서도 감사거리를 찾아 수시로 감사해야 합니다. 그처럼 감사를 느끼는 빈도가 높을수록 우리의 영이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몸이 약하면 모든 계절이 다 싫습니다. 봄에는 바람이 귀찮고, 여름에는 더위가 짐이 됩니다. 가을에는 감기가 들고, 겨울에는 추워서 견디지 못합니다. 그러나 건강하면 추위나 더위도 쉽게 견딜 수 있고, 오히려 그 계절의 변화가 더 건강을 가져다줍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건강하면 감사가 나오고 감사하면 역풍도 무난히 헤쳐 갑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약하면 모든 것이 불평과 원망의 소지가 되고, 더 삶이 어려워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감사 생활을 해야 합니다.
물질이 없어서 고생하십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이 땅에 빈손으로 왔고, 빈손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하고 가난에 대해 불평하지 말아야 합니다. 다만 없는 중에서도 가진 것을 찾고 그것으로 인해서 감사하고 더 내일의 희망을 가지고 땀을 흘리면 됩니다. 우리가 지금 못 받은 것이 아니라, 받은 것을 못 깨닫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원래부터 가진 것이 없는 우리가 현재 가진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하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지금 나 자신이 생각만큼 대우를 받지 못합니까? 그래도 감사하십시오. 사람은 대우를 받기 좋아하지만 항상 대우받으며 살 수는 없습니다. 사실 깊이 생각하면 우리는 죽어야 마땅한 죄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천대를 받아도 변명 한마디 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그처럼 대우받을 존재가 아니라 죽어야 마땅한 존재가 지금 하나님으로부터 큰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그것을 생각하면서 사람으로부터 조금 대우 못 받는 것에 대해서는 “그까짓 것 아무 것도 아니야!”하고 대범하게 넘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왕따’의 처지를 믿음으로 잘 극복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왕자’처럼 높임 받게 될 것입니다.
살다보면 감사하지 못할 일이 많이 생깁니다. 그래도 감사해야 합니다. 실연, 상처, 실패, 좌절 등 어떤 경우에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는 신앙을 가지면 모든 것이 회복될 것입니다. 감사는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영적 조미료이고, 영적 질병을 고치는 근본적인 치료제이고, 모든 문제해결의 마스터키입니다. 항상 원망보다는 감사함으로 시험을 이기고 축복받는 분들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