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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2) : 광야의 시험 (눅4:1~13)
지난주일 우리는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그분이 굳이 세례를 받으신 것은 메시야 신분을 증명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임하고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장엄한 광경에 펼쳐졌습니다. 한 마디로 요단강 세례는 ‘메시야 대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예수님 앞에 전개되는 공생애는 고난의 연속이요, 그 마지막은 십자가 죽음입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은 그 가운데 첫 번째 사건으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면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신 사건입니다. 여기서 시험은 ‘유혹’을 의미하는데, 마귀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유혹한 겁니다.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의 아들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는 게 이상하지 않습니까? 그만큼 중요한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 의미가 과연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이유 : 메시야 자격 입증, 승리의 길 제시
본문 1절~2절(상)을 보면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있어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 ” 예수님은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나아가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이 구절을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였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도 순순히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면 왜 그랬을까요?
① 메시야 자격 입증 :
예수님의 메시야 신분은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메시야는 두 가지 조건을 충족시켜야 합니다. 인간이고, 무죄한 의인이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어야 하고, 대속하기 위해서는 무죄한 의인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이기만 하면 십자가를 질 수 없고, 또 죄인이면 남의 죄를 대속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광야 시험에서 승리하심으로 이 두 가지를 갖추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 주셨습니다.
② 승리의 길 제시 :
인간의 불행은 죄로부터 기인합니다. 마귀는 죄를 빌미로 인간을 공격하고 멸망시킵니다. 따라서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죄와 마귀와의 싸움, 즉 영적 전쟁에서 이겨야 합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많은 소유를 갖고 출세함으로 화려한 모습을 갖춘다 할지라도 영적 전쟁에서 패배하면 불행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까닭에 예수님은 인간의 대표로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승리의 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말하자면 예수님이 승리함으로 우리 성도들도 승리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창세기 3장 보면 인류의 시조 아담의 실패 사건이 나옵니다. 그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금지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범죄합니다. 선악과는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언약관계의 ‘고리’이므로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하나님에게 반역하고 범죄한 것입니다.
그 과정에 마귀(Satan)가 개입합니다. 마귀는 본래 천사장(루시퍼)이었는데 하나님께 반역하고 지상으로 쫓겨났습니다.(이사야 14장 참조) 그가 타락할 때 그 수하에 있는 천사들도 함께 타락했는데, 그게 바로 귀신 혹은 악령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인간을 멸망시키는 데 열중합니다.
마귀는 에덴동산에서 뱀을 가장해서 여자에게 접근합니다. 그리고 시험합니다. 결국 아담과 여자는 실패하고 범죄합니다. 그 후 모든 인간이 아담처럼 마귀의 시험에 넘어가고 그로 인해 불행해집니다. 마지막에는 영원한 사망 지옥의 형벌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비참한 저주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실 분은 오직 예수님 한 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둘째 아담’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둘째 아담으로 마귀의 시험에서 완전 승리합니다. 종국에는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 죄를 대속하셨고, 더 나아가 우리의 삶 속에 순간순간 닥쳐오는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도록 도와줍니다. 고전15:22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그 뒤를 따라가면 얼마든지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곧 영생의 길이요 축복의 길입니다. 아무쪼록 예수님을 믿고 이 길로 걸어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길 : 승리자 예수님의 모델
그러면 구체적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예수님처럼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할 수 있겠습니까? 영적 전쟁에 관한 내용들을 잘 알아야 합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知彼知己 白戰不殆 - 상대를 알고 자기를 알면 백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음)입니다.
① 시험하는 자 : 마귀(Satan)
본문에서 시험하는 자는 마귀입니다. 잠시 참고로 성경에 나오는 시험에 관해 말씀드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하시는 시험인데, 창22:1 보면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물로 바치라고 시험하십니다.
이런 시험은 신앙을 테스트(Test)하고 연단(Trial)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긍정적인 시험입니다. 또 하나는 본문에 나오는 것 같은 마귀의 시험입니다. 이것은 유혹(Temptation)으로, 인간의 욕망과 죄를 자극하여 실패하게 만들고 멸망시키는 마귀의 궤계입니다.
② 시험의 대상 : 누구나
시험의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가 자칫 시험은 죄인이나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는 미숙한 그리스도인이나 당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오해입니다. 시험은 누구나 당하는 겁니다. 마귀는 대상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님에게 시험할 정도니까 말입니다. 마치 파리와 같습니다. 여러분, 파리가 임금님 수라상이라고 덤벼들지 않나요? 막 달려듭니다. 체면도 없고, 막무가내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인간이 마귀의 시험 대상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③ 시험의 시기 : 언제든지
시험의 시기는 언제인가? ‘언제든지’입니다. 여러분, 마귀가 예수님에게 시험을 하고 패배한 후 물러가고 끝났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 후에도 계속 시험을 했습니다. 십자가 지실 때까지 그랬습니다. 13절.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동안 떠나니라(he left him until an opportune time - NIV)” 여기서 ‘얼마동안’이란 좋은 기회가 생길 때가지만 떠났다는 겁니다. 다시 기회를 엿보고 시험한다는 겁니다.
④ 시험의 내용 : 3대 시험(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
그러면 시험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마귀는 영물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간의 약점을 기가 막히게 잘 압니다. 격투기에서 공격할 때 상대방의 가장 약한 급소를 가격하는 것처럼
마귀도 우리의 급소를 찌릅니다. 급소가 어딥입니까? 창3:6에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이것을 잘 요약해 주는 구절이 요일2:15~16입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독사 중에 ‘링카루스’라는 코브라의 한 종류가 있습니다. 이 코브라는 침을 뱉는 것처럼 상대방의 눈을 정확히 겨냥해서 독을 분사합니다. 그러면 짐승이든 무엇이든 눈이 멀어 꼼짝 못하고 결국 잡아먹히고 맙니다. 마귀도 마찬가지 우리 인간의 급소를 공격함으로 영적인 눈을 멀게 해놓고 멸망시킵니다.
마귀는 어림없는 짓이었지만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제 딴에는 약점을 노렸습니다. 40일간 금식한 예수님은 주리셨는데, 바로 그때 시험을 한 겁니다. 본문을 보면 세 가지 시험을 합니다. 이것은 마귀에 아담과 하와에게 시험했던 것과 같은데,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간에게 가장 약한 부분입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입니다.
i) 육신의 정욕(육욕) - 맨 먼저 마귀는 예수님의 육신의 욕구를 자극합니다. 그도 인간으로 오셨기에 식욕을 갖고 계십니다. 그것을 겨냥한 겁니다. 2절(하)~3절. “ ...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사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돌을 갖고 얼마든지 떡으로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말을 듣고 할 수 없죠. 더구나 금식 기도 중인데 말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훼방 놓으려고 이런 시험을 한 겁니다. 만일 예수님이 육욕을 따른다면 어떻게 십자가 고난의 길을 가겠습니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 육욕만 따르면 좋을 것 같지만 나중에는 그 욕망에 사로잡혀 망하게 됩니다. 육신의 쾌락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순간은 즐거운 것 같지만 차츰 무감각해져서 더 큰 자극을 원하고, 나중에는 중독 증세까지 보이고 결국 인생을 망치고 맙니다. 예수님은 이런 육욕의 시험을 단호히 거부하고 승리하셨습니다.
ii) 안목의 정욕(소유욕) - 마귀는 두번째로 다른 시험을 합니다. 이것은 아마 환상 중에 일어난 일 같습니다. 5절~7절.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는 높은 데 가서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화려한 것들을 보여줍니다. 절하면 다 준다고 시험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하는 시험입니다. 마귀의 말은 거짓말이죠. 만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예수님의 것입니다. 마귀에게 절한다도 얻는 게 아니고, 마귀에게 속아서 종노릇 하는 겁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대로 욕심을 내고 소유하려고 합니다. 소유하기만 하면 행복해질 줄 압니다. 그러나 착각이죠. 소유 자체가 진정한 만족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족할 때 진정한 만족이 있는 겁니다. 더 많은 소유를 위해 죄를 짓고 부정한 짓을 하면 오히려 마귀에게 붙잡히게 됩니다. 그로 인한 만족보다 갈등과 고통이 더 큽니다. 세상 사람들이 돈이면 무엇이든 하지만 그 돈 때문에 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iii) 이생의 자랑(명예욕) - 세 번째 시험은 무엇입니까? 9절~11절.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마귀는 예수님을 이끌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웁니다. 뛰어내리면 천사들이 받아줄 것이고, 백성들이 환호하게 될 거라고 시험합니다. 명예욕을 자극한 겁니다. 사실 메시야니까 빨리 대중들 앞에 유명해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오신 것은 유명해지려는 게 아니라 십자가 지러 오신 겁니다. 사람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인간을 구원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기와 명예를 위해서라면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하는 육신의 일만 해 주면 됩니다. 결국 이 시험은 예수님을 넘어뜨리려는 겁니다.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⑤ 시험을 이기는 법 : 성령충만
예수님은 이런 시험을 어떻게 이기고 승리하셨습니까? 시험은 누구나 다 받습니다. 그러나 이기는 사람이 있고, 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가 이깁니까? 예수님의 모델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1절(상).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 ” 그렇습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이 시험을 이깁니다. 성령 충만은 하나님의 다스림, 지배를 받는 상태입니다. 내가 마음대로 하면 번번이 집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성과 욕망으로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으면 실패합니다. 구체적으로 성령 충만하면 어떻게 됩니까?
i) 승리의 확신 - 예수님이 승리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령 충만한 사람은 예수님의 다스림 속에서 승리를 확신하게 됩니다. 영적 전쟁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확신해야 됩니다. 요일3:8 “ ...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은 승리했습니다. 마귀의 일을 멸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의 시험은 뻔합니다. 승리자 예수님만 의지하면 충분히 이깁니다.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러므로 마귀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맞서 대적하면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4:7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부디 이런 승리의 확신을 가지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시기 바랍니다.
ii) 영적 경계태세 - 마귀는 언제 어디서 시험할지 모릅니다. 방학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항상 경계 태세를 갖춰야 합니다. 혹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때도 영적으로 경계를 풀면 곤란합니다. 군대에서도 휴식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군 휴양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곳에도 보초가 있습니다. 경계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휴식을 즐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영적으로는 결코 해이해져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경고합니다. 벧전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깨어 있습니까? 마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우리 영혼은 기도로 깨어 있는 겁니다.
다윗이 신앙의 거장인데 왜 실패했습니까? 왕이 된 후 방심해서 그랬습니다.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귀가 시험했고 여지없이 무너진 겁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인 사건이 그래서 벌어진 겁니다.
iii) 영적 무장 - 전쟁을 치르기 위해 무장하는 것처럼 우리도 마귀와 싸워 이기기 위해서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엡6:13~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군인이 완전무장을 하듯 영적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그런데 모두 수비를 위한 것들이고, 오직 한 가지만 공격용 무기인데 바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본문에서도 마귀의 시험이 있을 때 예수님이 무엇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승리합니까?
4절.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 ” 8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 ” 12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 ” 번번이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함으로 승리하십니다. 우리 마음과 생각 속에 말씀을 묵상하고 담아두면 마귀의 시험을 잘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결정하고 마귀의 시험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iv) 결단(타협 거절) - 마귀에게 패배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협하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조금만 틈을 줘도 비집고 들어와서 시험합니다. 엡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and do not give the devil a foothold - NIV) 마귀가 시험하도록 발판을 만들어 주면 안 됩니다. 작은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넘어가면 그게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죄를 짓고 멸망하게 됩니다. 이번에 딱 한번만 ... 이게 문제입니다. 한번이 두 번, 두 번이 세 번, ... 계속 이어지게 됩니다. 결국 망하게 됩니다. 약1:14~15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타협하고 핑계 대는 것을 단호히 거절해야 합니다. 권총에 탄환을 장전하면 저절로 발사되나요? 그렇지 않습니다. 방아쇠를 당기지 않으면 괜찮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이 죄성이 있고 연약하지만 마귀가 시험한다고 무조건 넘어지는 게 아닙니다. 자기기 응해야 넘어지는 겁니다. 마귀가 아무리 시험해도 내가 응하지 않으면 절대 죄를 짓지 않고 실패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결단해야 합니다. 단호하고 신속하게! 첫 판에 결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또 가장 쉽습니다. 한두 번 시험에 들고 범죄한 후에 나중에 만회하고 승리하려면 몇 배 더 어렵습니다. 성경 인물 중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요셉과 삼손의경우입니다.
요셉이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 할 때의 일입니다. 착실해서 인정받아 가정 총무가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런데 보디발의 아내가 계속 유혹합니다. 그때 어떻게 합니까?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당시 혈기왕성한 청년입니다. 잘만 하면 그 여자를 통해 큰 이득을 볼 수도 있습니다. 그도 인간인데 어떻게 욕망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결단합니다. 창39:9,10,12 “ ...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 그 여인이 그 옷을 잡고 가로되 나와 동침하자 요셉이 자기 옷을 그 손에 버리고 도망하여 나가매” 요셉은 결단함으로 영적으로 승리했지만 현실적으로는 고난을 당합니다. 모함을 받아 감옥에 갇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넘치도록 보상해 주십니다. 애굽의 총리대신이 된 겁니다. 그가 첫판에 결단함으로 비교적 쉽게 승리할 수 있었고,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삼손은 어떻습니까? 그는 대단한 인물입니다. 나귀 턱뼈 하나로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죽인 용사입니다. 그런데 기생 들릴라에게 유혹을 받아 넘어집니다. 들릴라의 무릎을 베고 있다가 머리 깎이고 눈 뽑히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끌려가 광대처럼 놀림감이 됩니다. 그제야 회개한 삼손이 마지막 기도를 합니다. 삿16:28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 블레셋 사람이 나의 두 눈을 뺀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 ... ” 다행이죠. 나중에라도 회개하고 승리했으니까. 하지만 아쉬움도 많습니다. 첫판에 시험을 이겼었더라면 그런 큰 희생을 치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광야 시험에 관해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대속하는 십자가를 질 수 있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따라서 우리는 십자가를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호시탐탐 엿보고 시험하는 마귀를 대적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부디 이런 확신을 갖고 우리 대장 예수님과 함께 승리의 기쁨과 축복을 누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출처/홍문수 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