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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목적 (마 1:18~23)
성탄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산타크로스나 크리스마스 케롤송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성탄 캐롤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라고 시작되는 ‘징글벨’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고 합니다. 특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술 먹은 취객들에게도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성탄의 주인공 되는 예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예배(Mass)가 합성된 단어로서 “그리스도께 경배 드리다” “예배를 드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 예배해야 할 이유는 그 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 구원자 예수
첫째로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폭발로 생겨나는 식량의 위기문제가 아닙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전쟁문제도 아닙니다. 에너지 자원의 문제나 자연 환경의 공해문제보다도 더 큰 인류 최대의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한 이후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죄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 구속자라는 뜻입니다. 저에게는 천호동교회 담임목사라는 직함이 있고, 여(呂) 성삼(聖三)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제 부친 목사님이 성삼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라고 그렇게 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직함을 나타내는 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자”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사도행전 16장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은 그분이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있습니다. 역사학자 베드(Bede)에 의하면 이들은 별을 연구하는 점성학자들이며 동시에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멜콰이어, 발타살, 케스펠로서 인생의 3단계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멜콰이어는 아라비아 왕으로 키가 작고 긴 흰 수염을 가진 존귀한 모습으로 그는 백인 노인을 상징하는 인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발타살은 에티오피아 왕으로 검은 얼굴에 수염이 난 40세 가량의 중년으로 그는 흑인을 대표하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케스펠은 탈서스의 왕으로 키가 후리후리하고 수염이 없는 30세 미만의 황인종의 청년인 듯합니다. 이들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것은 이 세상 모든 인종과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그 분 앞에 엎드려 절하며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앞에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2. 임마누엘로 오심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은 우리와 임마누엘 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나타나 아들을 얻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세례요한)이라고 하라면서 태어나기 전에 먼저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날 것인데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동거 동락하시길 원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존귀하시고 거룩한 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시며 거룩하셔서 죄 많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자리까지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되셔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음 비유와 같습니다. 이번에 호남지역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1m가 되는 많은 눈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고 이웃과의 왕래도 단절이 되었습니다. 60대 노인이 집 앞에 눈길에 쓰러져 죽은 것을 발견했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면 사람도 힘들지만 야생동물들도 힘듭니다.
산골마을에 눈이 내렸는데 먹이가 모두 눈 속에 묻히다 보니 새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못한 산골마을의 농부가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곡식을 담아 가까이 다가가자 새들이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답답해진 농부가 “애들아! 내가 너희를 헤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주려고 그래!”하고 소리치자 새들은 더 놀라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 끝에 농부가 닭장에서 빠진 털들을 주워 온몸에 붙이고 가만히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새들이 같은 새인 줄 알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농부는 가지고 간 먹이를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은 이처럼 낮고 천한 인간을 향해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셔서 찾아오신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성탄절에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소년 소녀 가장들이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나,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찾아가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강동구에 10가정의 소년소녀 가장이 있습니다. 불이 나서 부모가 죽고 아이들만 남은 가정, 아버지가 엄마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가서 아이들만 남은 집들이 있습니다. 세 가정은 아이들만 살고 있고 일곱 가정은 고모나 큰집에 붙여져 살고 있습니다. 성탄헌금은 전액 이런 사람을 위해 구제비로 전달됩니다.
3. 다시 오시는 주님
성경에 나타난 초림의 예수는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다시 재림하십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눈은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으며, 입에는 이한 검을 물고 백마타고 오시는 주님은 행위대로 갚으시는 심판의 주님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초림의 메시아가 오셨을 때에도 동방의 박사들과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만 찾아가 경배한 것처럼 깨어 준비하는 사람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탄절이 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무엇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산타크로스나 크리스마스 케롤송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부르는 성탄 캐롤은 “흰 눈 사이로 썰매를 타고”라고 시작되는 ‘징글벨’과,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고 합니다. 특히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은 술 먹은 취객들에게도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성탄의 주인공 되는 예수님을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예배(Mass)가 합성된 단어로서 “그리스도께 경배 드리다” “예배를 드리다”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 예배해야 할 이유는 그 분이 나의 구원자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1. 구원자 예수
첫째로 예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 이심이라 하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의 가장 큰 문제는 인구폭발로 생겨나는 식량의 위기문제가 아닙니다. 이로 인해 생기는 전쟁문제도 아닙니다. 에너지 자원의 문제나 자연 환경의 공해문제보다도 더 큰 인류 최대의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불순종한 이후 하나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반항하고 불순종하는 죄가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은 죄에서 구원할 자, 구원자, 구속자라는 뜻입니다. 저에게는 천호동교회 담임목사라는 직함이 있고, 여(呂) 성삼(聖三)이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제 부친 목사님이 성삼위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라고 그렇게 지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단어는 직함을 나타내는 말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는 그분의 이름으로 “구원자”란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자로 오셨습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에서 전도할 때 사도행전 16장 31절에 “가로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받는 것은 그분이 “구원자”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셨을 때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세 사람의 동방박사가 있습니다. 역사학자 베드(Bede)에 의하면 이들은 별을 연구하는 점성학자들이며 동시에 작은 나라를 다스리는 왕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이름은 멜콰이어, 발타살, 케스펠로서 인생의 3단계를 상징하는 인물들이라고 했습니다. 먼저 멜콰이어는 아라비아 왕으로 키가 작고 긴 흰 수염을 가진 존귀한 모습으로 그는 백인 노인을 상징하는 인물라고 했습니다. 두 번째 발타살은 에티오피아 왕으로 검은 얼굴에 수염이 난 40세 가량의 중년으로 그는 흑인을 대표하는 중년의 인물입니다. 케스펠은 탈서스의 왕으로 키가 후리후리하고 수염이 없는 30세 미만의 황인종의 청년인 듯합니다. 이들 세 사람이 아기 예수를 찾아 경배한 것은 이 세상 모든 인종과 모든 연령의 사람들이 그 분 앞에 엎드려 절하며 경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그 앞에 예배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나의 구원자이십니다.
2. 임마누엘로 오심
예수님이 이 세상이 오신 목적은 우리와 임마누엘 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23절에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 이름이 지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나타나 아들을 얻게 될 것인데 그 이름을 요한(세례요한)이라고 하라면서 태어나기 전에 먼저 이름을 지어 주셨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날 것인데 “아들을 낳으면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라고 했습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동거 동락하시길 원해서 오신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은 존귀하시고 거룩한 분이십니다. 디모데전서 6장 15~16절을 보면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이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존귀하시며 거룩하셔서 죄 많은 인간이 가까이 다가갈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인간의 자리까지 오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6~8절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되셔서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오신 날이 성탄절입니다.
이것은 마치 다음 비유와 같습니다. 이번에 호남지역에 눈이 많이 내렸습니다. 1m가 되는 많은 눈이 내려 교통이 두절되고 이웃과의 왕래도 단절이 되었습니다. 60대 노인이 집 앞에 눈길에 쓰러져 죽은 것을 발견했다는 뉴스도 보았습니다.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리면 사람도 힘들지만 야생동물들도 힘듭니다.
산골마을에 눈이 내렸는데 먹이가 모두 눈 속에 묻히다 보니 새들이 먹이를 찾지 못하고 비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못한 산골마을의 농부가 새들에게 먹이를 주려고 곡식을 담아 가까이 다가가자 새들이 놀라서 도망가 버렸습니다. 답답해진 농부가 “애들아! 내가 너희를 헤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주려고 그래!”하고 소리치자 새들은 더 놀라 멀리 도망가 버렸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해봤지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생각 끝에 농부가 닭장에서 빠진 털들을 주워 온몸에 붙이고 가만히 다가갔습니다. 그랬더니 새들이 같은 새인 줄 알고 도망가지 않았습니다. 마침내 농부는 가지고 간 먹이를 전해줄 수 있었습니다. 성탄절은 이처럼 낮고 천한 인간을 향해 예수님께서 육체를 입고 인간이 되셔서 찾아오신 날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낮고 천한 우리를 찾아오신 예수님을 본받아 우리도 성탄절에 소외되고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 소년 소녀 가장들이나, 고아원이나, 양로원이나, 가난하고 힘든 이웃을 예수님의 이름으로 찾아가는 계절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위치한 강동구에 10가정의 소년소녀 가장이 있습니다. 불이 나서 부모가 죽고 아이들만 남은 가정, 아버지가 엄마를 살해하고 교도소에 가서 아이들만 남은 집들이 있습니다. 세 가정은 아이들만 살고 있고 일곱 가정은 고모나 큰집에 붙여져 살고 있습니다. 성탄헌금은 전액 이런 사람을 위해 구제비로 전달됩니다.
3. 다시 오시는 주님
성경에 나타난 초림의 예수는 구원의 주로 오셨습니다. 유대 땅 베들레헴 말구유에 초라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주님은 다시 재림하십니다. 다시 오시는 주님은 심판의 주로 오십니다. 눈은 불꽃같고 발은 빛난 주석 같으며, 입에는 이한 검을 물고 백마타고 오시는 주님은 행위대로 갚으시는 심판의 주님입니다.
요한계시록 22장 7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고 했고,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만날 준비를 하면서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초림의 메시아가 오셨을 때에도 동방의 박사들과 들에서 양치는 목자들만 찾아가 경배한 것처럼 깨어 준비하는 사람만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