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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롬12:14∼21)
남을 축복하거나 행복하게 하는 사람은 자신도 행복합니다. 또 남이 잘되는 것을 도와 주는 사람은 자신도 잘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을 저주하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은 자신도 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축복과 저주는 환경이나 상대편 때문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원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가정에 명색만 남편이지, 남편 구실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광산에 미쳐서 봄부터 가을까지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겨울철에만 잠깐 집에 왔다가 다시 옷을 싸 가지고 나갔습니다. 평소엔 연락도 없었고 생활비도 보내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내는 혼자 장사를 하면서 애들을 키우고 가정을 꾸려 나갔습니다. 그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아내는 만나는 사람에게 남편의 흉을 보고 욕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럴 수가 있어요? 이것도 남편이예요? 이래도 참고 살아야 되나요?" 하고 늘 원망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달라지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 때 마침 이 부인은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와서 성경을 보다가 하루는 로마서 12장 20절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는 말씀을 읽게 되었습니다.
부인은 이 말씀에서 마음의 감동을 받고 깨닫는 바가 있어서 "그렇다. 내가 남편을 원망만 하지 말고 이제는 축복을 해 주자" 하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날 이후 만나는 사람들에게 남편의 좋은 점을 이야기하고 칭찬을 하며 남편을 위해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랬더니 얼마 되지 않아서 남편에게서 처음으로 한 통의 편지가 왔습니다. 사랑스러운 구절들이 가득 찬 남편의 편지를 읽으면서 이 부인은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남편을 축복하였습니다.
다음 달에 또 편지가 왔습니다.
"여보, 그 동안 고생이 많았소. 가정에 무심했던 나를 용서해 주시오. 이제 앞으로는 매달 생활비를 보낼 테니 걱정말고 편히 지내시오. 몸 조심하시오."
이런 사연과 함께 생활비도 보내왔습니다. 남편의 변화를 본 부인은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해서 더욱더 열심히 남편을 칭찬하고 축복하였습니다.
그 해 가을에는 놀라운 내용의 편지가 또 왔습니다.
"이젠 나의 이 방랑생활을 끝마쳐야겠소. 당신과 애들과 함께 지내고 싶구려. 이제 훌륭한 남편, 훌륭한 아빠가 되도록 하겠소."
그리고 며칠 후 그 남자는 정말로 집으로 돌아와서 헌신적으로 잘 살았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하면 갖고 있는 것도 없어지고 가까운 것도 멀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감사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남을 축복하면 그 축복이 자신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9절에서 사도 베드로가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에게 복을 빌어 주는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탐욕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을 당하거나 핍박을 당할 때 성도들은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고(출 2 : 23), 핍박하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말고(사 51 : 12), 그 핍박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며(마 5 : 12), 더 나아가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고(마 5 : 44), 피할 수 있으면 피하고(마 10 : 23), 참을 수 있으면 참아야 합니다(고전 4 : 12). 그렇게 어려움과 핍박을 극복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하게 해 주십니다.
2. 본문 배경 설명
로마서는 사도 바울이 A.D. 57∼ 58년 경 제 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당시 로마교회는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 성도들이 심한 다툼을 일으켜서 교회에 안정이 없었고 또 대외적으로는 황제를 숭배하는 로마정부의 박해 위기에 놓여 있었습니다.
A.D. 50년 경 로마의 4대 글라우디오 황제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켰다고 해서 유대인들은 로마를 떠나라는 칙령을 내리고 유대인을 적발하는 대로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로마교회 성도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방 종교와 문화 속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갈등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기독교 윤리적인 삶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기독교 윤리의 기준은 삶 전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 영적인 예배가 되도록 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아 그 뜻대로 순종하고, 교회에서는 하나로 연합하고 맡은 직무에 충실하고, 사회에서는 핍박하는 자와 대항해 싸우지 말고 오히려 축복하여 모든 사람과 평화하고, 국가에 대해서는 충성하고, 이웃에 대해서는 사랑하고 이해하라는 기독교 윤리의 방향을 가르쳐 준 것입니다.
로마인들은 대개 다신교를 믿고 황제 숭배를 강요하였고 유대인들까지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지만 특히 본문에서는 낙심하거나 희망을 잃지 말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B.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 : 14)
사회 관계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기본적인 법칙이 '너희를 핍박하는 자, 즉 원수를 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마 5 : 43)는 유대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 : 4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획기적인 혁명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을 네 가지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첫째 마음을 같이 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체 말고, 둘째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셋째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고, 넷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핍박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고, 그들도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기도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이 세상에서 최후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마음을 같이 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마음을 같이하고 교만하지 말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 12 : 15∼16)
첫째, '마음을 같이 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이 좋은 일이 있어 즐거워할 때 시기하지 않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할 때는 그 사람의 처지를 동정하여 함께 슬퍼하고 위로하는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 : 12)고 말씀하셨습니다. 남을 위로하고 사랑을 베푸는 자만이 위로받고 사랑을 받게 됩니다.
B.C. 4세기부터 그리스 철학의 가르침은 교만을 하나의 덕으로 보고 겸손을 비열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위대한 정신의 소유자는 자신의 탁월함을 높이 평가한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게 되면 그로 말미암아 비천한 정신의 소유자로 낙인 찍히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학식과 가문과 귀족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자기 자신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 윤리가 나타나 예수님의 겸손을 모범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겸손이 이웃에 대한 기본적인 태도이며,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조화를 이루게 해 준다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주인과 종이 나란히 앉을 수 있고 귀족과 천민이 하나라는 인간 평등의 사상을 전했습니다. 도저히 당시의 귀족이나 정복자들이 생각할 수 없는 진리를 전파한 것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서 솔로몬왕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23장 12절에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 말기 라틴교부 신학자였던 성 어거스틴(Augustinus, Aurelius)은 "천사를 마귀로 만든 것은 교만이며 인간을 천사로 만드는 것은 겸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높은 척 하지 말고 낮아져서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흔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의 꽃을 피우기 위한 나무의 뿌리는 바로 겸손이어야 합니다. 그 겸손이라는 뿌리가 말라 버리면 그 사랑의 꽃은 자연히 시들고 말 것입니다.
사랑도 겸손으로, 행복도 겸손으로, 성공도 겸손으로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모든 기초와 뿌리는 바로 겸손인 것입니다.
사람이 겸손해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둘째는 우리가 깨닫지 못해서 그렇지 큰 죄, 작은 죄를 알게 모르게 많이 짓는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성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반드시 겸손한 삶을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어느 날 몇 마리의 수탉이 예쁜 암탉을 서로 차지하려고 처절하게 싸웠습니다. 크고 힘이 센 한 마리의 수탉이 다른 수탉들을 다 쫓아내고 혼자 암탉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울타리 위에 올라앉아 외쳤습니다. "세상에서 나보다 더 힘센 놈 있으면 나와 보라고 해!" 그런데 그 때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휙 날아와서는 그 수탉을 채어 갔습니다.
큰 소리치고 잘난 척 하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돈이나 권력이 조금 있다고 해서 자랑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인생에는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1860년, 미국에서 링컨(Lincoln, Abraham)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습니다.
하루는 링컨의 친구였던 스프링필드의 은행가 존 번이 링컨의 법률사무소에서 나오는 새몬 체이스 상원의원과 마주쳤습니다.
존 번은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대통령 당선자인 링컨에게 "설마 저렇게 잘난 척 하고 교만한 사람을 새 각료 명단에 포함시킬 생각은 아니시겠지요?" 하고 물었습니다.
링컨이 "왜 그런 질문을 하는가?" 묻자, 번이 대답했습니다.
"저 체이스 상원의원은 자신이 대통령보다도 훨씬 잘났다고 생각하고 큰소리치는 그런 인간입니다. 그런데도 저 사람을 쓸 겁니까?"
그러자 링컨이 대답했습니다.
"그런가? 나는 새 각료로 나보다 더 잘나고 능력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쓰려고 하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인정하고 존중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과 협력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겸손한 사람에게 최후의 승리가 나타나게 됩니다.
2.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 : 17)
둘째,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해를 받았을 때 대처하는 방법으로 '동해 보복법'이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복수를 하는 방법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기 자신을 지키려는 소극적인 보호법일 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적극적인 보호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악을 갚지 않으며 보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원한을 가지고 보복하다 보면 보복은 보복의 씨앗을 낳고, 그것은 점점 폭력과 전쟁으로 발전하여 화평한 사회관계는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레위기 19장 18절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또 데살로니가전서 5장 15절에서 사도바울은 말했습니다.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한편 히브리서 10장 30절에서 하나님은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억울하고 분하여도 원수는 하나님이 갚아야지, 우리가 스스로 원수를 갚겠다고 나서면 결국 자신도 피해를 당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원수가 어려움을 당하면 도움을 베풀 수 있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고 (출 23 : 4∼5), 원수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고(마 5 : 44), 원수 갚는 일은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히 10 : 30).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중국의 병법서인 『손자병법』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백 번 싸워서 백 번 이기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오히려 한 번도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지혜롭고 큰 승리이다."
싸워서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더 지혜로운 것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복은 결국 자기 자신을 해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의 캔사스 주에 살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 청년은 이웃 농부로부터 억울하게 모욕을 당하고 나서 보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아주 해로운 잡초를 가져다가 몰래 그 농부의 밭에 뿌렸습니다. 그 잡초가 자라자, 금방 밭 전체에 퍼져서 밭의 바닥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되었습니다.
몇 년 후에 이 청년은 마침 그 농부의 딸과 연예를 하여 결혼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 장인이 된 농부는 이 청년과 딸에게 청년이 잡초를 뿌렸던 그 밭을 결혼선물로 주었습니다. 이 청년 부부가 밭의 잡초를 뽑아내는 데 30년이나 걸렸다고 합니다.
여러분, 사람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남을 도와 주면 자신에게도 유익이 오지만 남한테 해를 끼치면 그 해가 자신에게 올 수도 있습니다. 보복은 남을 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자신을 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며 모든 사람에게 선한 일을 도모하라'는 성경말씀을 진리로 생각해야 합니다.
전 세계에서 존경받는 미국의 흑인민권운동가였던 마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 목사가 몽고메리시의 한 흑인 침례교회의 목사로 부임해 갔을 때의 일입니다.
그 도시에 버스 승차 차별대우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이 차별대우가 없어질 때까지 그 도시의 모든 흑인들이 버스 승차를 거부하고 차별대우를 철폐하기 위한 항의 운동을 벌였는데, 킹 목사가 그 운동의 지도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한번은 한 백인이 킹 목사 집에 던진 폭탄이 폭발하였습니다. 흥분한 흑인 군중들은 제각기 흉기를 들고 모여들었습니다. 경찰들도 수습할 수 없을 만큼 많은 군중이었고 이들은 극도로 흥분하여 조금만 건드리면 폭발하기 직전에 있었습니다.
이 때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군중들 앞에 나서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여러분, 흉기를 모두 다 내려놓으십시오. 여러분이 폭력을 사용하면 더 큰 폭력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이 죽게 되고 피해를 당합니다. 우리는 보복적인 폭력을 비폭력으로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한다고 하셨습니다. 자! 여러분, 우리는 칼로 싸우지 말고 오히려 신앙으로 싸웁시다."
그 말이 끝나자 분노해서 날카로운 흉기를 가졌던 군종들이 킹 목사의 말에 감동을 받고 '아멘' 이라고 응답하면서 흉기를 모두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여러분, 칼을 쓰는 사람은 칼로 망하고, 총을 쓰는 사람은 총으로 망하고, 주먹을 쓰는 사람은 주먹으로 망합니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 : 7)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어느 교회 교인이 가까운 친구에게 돈을 빌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약속한 날짜에 돈을 갚지도 않고 아예 줄 생각도 안했습니다. 그는 너무 속상해서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아는 사람과 의논을 해서 그의 충고대로 그 친구를 혼내 주기 위해 깡패를 시켜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결국 깡패를 동원시킨 사실이 드러나서 그 분은 구속되었습니다. 돈도, 친구도 다 잃고 감옥에 들어간 것입니다.
육적인 생각으로 원한을 가지고 보복하면 결국은 보복한 사람이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3. 모든 사람으로 평화하라-이웃과 화평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롬 12 : 18)
셋째, '모든 사람으로 평화하라'고 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개인간에도, 가정간에서도, 직장간에서도, 국가와 국가간에서도 평화가 필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도 하늘과 땅에 존재하는 불신앙과 심판과 저주를 다 없애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평화의 역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도 평화의 개념을 가지고 이웃과 화평한 관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이제는 대자연과도 평화를 선언해야 합니다. 공해가 생기고 산 사태, 물 사태가 일어나는 것은 모두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 무관심하고 제대로 돌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인류의 존속과 지구가 올바로 되고 평화롭기 위해서 관심을 갖고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시편 34편 14절에서 다윗왕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우리는 평화를 찾고 평화를 따라야 합니다. 평화가 있는 곳에 기쁨도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행복도 있고, 평화가 있는 곳에 희망도 있습니다. 분쟁과 싸움과 다툼은 아무것도 가져오지 못합니다.
우리 나라와 북한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평화입니다. 만약에 다시 전쟁이 터지고 분쟁이 일어나거나 폭력이 생기면, 그 동안 쌓아온 모든 경제적 안정과 사회적 기반, 생활이 다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게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화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8절에서 사도 바울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신 것입니다.
어디에 가도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있고 화목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사람은 마음에 평안함을 얻고(시 37 : 37), 희락을 얻으며(잠 12 : 20),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게 됩니다(마 5 : 9). 그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골 1 : 20), 의의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약 3 : 18).
이 세상을 평화로운 세상으로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독일 태생의 미국 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은 "평화는 힘으로 유지될 수 없다. 그것은 오직 이해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꿔 놓고 생각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평화에 가까워질 수가 있습니다.
지구촌 20세기 인류의 역사는 바로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그래서 역사가들은 "과학과 기술이 발전해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다. 제1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또 한국전, 월남전, 발칸지역 전쟁 등등, 각종 테러, 폭력이 끊이지 않았다. 우리는 전쟁보다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12세기 이탈리아의 수도사 성 프란체스코(Francesco)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했습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언제, 어디에서, 누구를 만난다고 하더라도 평화의 도구로 쓰이길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에는 평화의 도구가 아니라 전쟁의 도구가 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독일에 살던 18세의 한 소년이 미술 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시험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두 번이나 낙방을 하였고, 세 번째는 아는 사람에게서 당시 유명한 화가의 추천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사람을 받아 주겠나" 하고 미리 생각하고 낙심하여 입학을 포기했습니다.
그 소년은 꿈에 그리던 화가가 되는 길을 포기하고 나서 좌절감과 증오감, 열등의식에 싸였습니다. 그리고 길거리 부랑자로 전락하여 품팔이 노동자로 하루하루 근근이 먹으며 살아갔습니다.
그는 마음 속에, 특히 부유하고 성공하고 행복한 사람에 대해서 증오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군에 입대하여 군인이 되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뮌헨 육군 지구사령부 공보과에 배치되었고 연대 교관 교육공무원으로 빠르게 진급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나치스로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람이 훗날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유대인을 대량학살시켰던 히틀러(Hiter, Adolf)였습니다. 젊은 시절의 증오와 좌절감, 열등의식이 그의 인생을 망치고 남도 파멸시키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패배의식이나 분쟁, 분함보다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야 합니다.
평화롭게 사는 사람이 건강하고 더 나아가서 장수한다고 합니다. 마음이 병들면 육체가 병들고, 육체가 병들면 장수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처칠(Churchill, Winston Leonard Spencer)은 90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의학적인 조건으로 보았을 때, 오래 살만한 조건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담배도 많이 피우고, 과식하고, 운동도 하지 않고 늘 뚱뚱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가 90세까지 살았는지, 의사들이 신기하게 생각하여 연구해 보니까 그에게 장수의 비결이 한 가지 있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아내의 헌신적이고 뜨거운 사랑이었습니다. 그는 아내의 사랑 때문에 모든 스트레스와 여러 가지 질병이나 고통에서 벗어나 노익장을 과시하며 생명을 90세까지 누릴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헌신적인 사랑이 있는 곳, 마음에 평안이 있는 곳에 건강도 있고 장수도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4.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원수에게도 선을 베풀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 : 19∼21)
넷째,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고 했습니다.
시편 37편 25∼26절에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 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자손들이 복을 받으려면 부모가 의롭게 살고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은혜를 베풀면 됩니다. 남에게 은총을 베풀고 남을 도와 줄 줄 아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미국의 발명가 에디슨(Edison, Thomas Alva)은 "씨를 뿌리면 거두어 들여야 한다. 남을 치면 당신도 맞게 되고, 남을 도와 주면 당신도 그 사람으로부터 도움을 받게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중국 당나라 때 송청이라는 유명한 약장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약을 조제하는데 탁월한 재주가 있어서 전국 각지에서 그의 약을 얻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송청은 돈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외상으로 약을 지어 주었습니다. 연말이면 외상장부가 수십 권에 이르렀지만 그는 한 번도 약값을 독촉하는 법이 없었고 연말이면 외상장부를 모두 태워 버리고 두 번 다시 약값을 묻지 않았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그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비웃었고 어떤 사람들은 '대단한 사람'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송청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40년 동안 약장수를 하면서 수십 권의 외상장부를 태웠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내 인생은 손해를 본 것이 거의 없다. 나는 덕을 보고 살았다. 약값을 떼어먹은 사람도 있지만 나중에 출세해서 약값보다 훨씬 더 많은 은혜와 보답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한평생 선을 베푸는 것이 손해보는 장사만은 아니다. 내 인생은 결코 손해보지 않았다."
여러분, 주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나 역사를 보면 대인관계가 나쁜 사람이 성공한 예는 하나도 없습니다. 남을 성공시켜야 자신도 성공하고, 남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자신도 행복하게 됩니다. 남을 사랑하면 자신도 사랑을 받고, 남에게 맛있는 것을 주면 자신도 맛있는 것을 먹을 수가 있습니다.
C. 자신을 핍박하는 자에게도 축복하고, 겸손히 마음을 같이하고, 악을 갚지 말고, 화평하고, 선을 베풀어 축복받는 성도가 되자
로마교회 교인들이 감옥에 갇히고, 고문받고, 사형당하고, 십자가에 달리고, 굶주린 사자의 먹이가 되는 극심한 고통을 당했지만 결국 A.D. 313년 밀라노 칙령에 의해서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공인되었습니다.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어 전세계의 지도자적인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통해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결국 선을 통해서 악과 싸워 승리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핍박하는 자를 축복함을 통해서 여러분의 삶이 형통하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물 아홉 살에 시집을 간 한 처녀가 있었습니다.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나 결혼을 하면서도 '남편이 돈을 잘 벌면 동생들을 돌봐 주겠지' 하고 희망을 갖고 시집을 갔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돈 버는 데나 성공하는 데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그냥 그날그날 먹고 사는 것에만 만족했습니다. 그런 남편을 바라보면서 그녀는 낙심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런 속에서 결혼한 지 4년쯤 되는 해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보통 아이를 가지면 좋아하지만 그녀는 마음 속에 증오심이 생겼습니다. '이런 남자의 아이를 가지면 무슨 소용이 있나, 먹고 살기도 힘이 드는데. 불행한 것은 나 하나만으로 족하다' 하고 남편을 미워하는 가운데 증오심을 가지고 아이를 잉태한 것입니다.
결국 제왕절개 수술로 아이를 낳았지만 그 아이는 일주일을 못 넘기고 죽고 말았습니다.
그 후 뼈마디가 쑤시고 배와 창자가 끊어질 듯 아파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보니 '자궁 근종'이었습니다. 의사가 빨리 수술할 것을 권해 수술을 하였지만 수술 후에도 뼈마디마디가 아프고 통증이 심했습니다.
그녀는 왜 자신에게 이런 큰 불행이 닥치고 질병이 생기는지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기도원에 가서 열흘 동안 금식하면서 하나님 앞에 간절히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이여, 질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저주가 떠나가게 하시고 불행이 떠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런데 갑자기 금식기도하는 그녀에게 음성이 들렸습니다.
"네 남편을 원망하지 말라. 그래도 네 남편은 너를 포기하지 않고 버리지 않았다. 남편을 사랑하라."
그녀는 남편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하나님 앞에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하나님, 미워한 죄를 용서하시고 원망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그리고 좌절한 것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하고 간절히 기도하며 눈물로 회개를 했습니다.
금식을 마쳤을 때, 그녀는 그렇게 고통스럽던 자궁 근종의 질병에서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누구를 원망하고 증오심을 가지면 자기 자신이 먼저 몸이 아프고 병이 들고 불행하게 됩니다.
같이 사는 한 남편을 받들고 섬겨서 행복한 가정을 이끌고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선을 베풀어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