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804
어린이가 경험한 부흥집회 (누가복음 9:10~17)
얼마 전에 기독교 신문에 큰 기사가 난것을 제가 관심 있게 읽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뿐만이 아니고 세계적으로 존경받는 한국의 어느 목사님이 칠순이 되셔
서 생일 파티를 하게 되었는데 많은 동료 목회자들이 수백 명 참석했습니다.
아마도 칠순 잔치라서 그의 리더십과 영적인 목회 사역을 칭찬도 해드리고 격려도
하기 위해 그런 자리가 모여졌다고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의 지도력에 대해
감탄해왔고 또 부러움의 대상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답사를 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나는 실패한 아버지입니다. 나의 자녀들이 훌륭하지 못한 것
은 그 아이들에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인 나의 잘못으로 빚어진
어려움입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말씀하셨고 이것이 신문 기사화되어서 제
가 그것을 본 것입니다. 저는 그분의 말을 공감합니다. '지금 내가 내 자녀
들을 바라볼 때 그들에게 비추어진 나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그들이 정말
나의 아버지는 훌륭한 아버지라고 믿고 있을까?' 이런 생각을 자연히 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정말 훌륭하다는 것은 그것을 평가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를 봐야 신뢰성이 있는 법입니다. 제일 좋은 평가는 나 자신입니다. 자신의
양심 고백이 스스로를 존경할 수 있는가? 그것이 첫째의 신뢰성 있는 평가이
고, 그 다음은 나와 가장 가깝게 있는 사람의 평가가 정확합니다. 그러니까
가족들에게 훌륭한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 사람은 아주 훌륭하고, 성공한
사람이고, 모범이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사람들은 어린 시절의 어떤 충격이
일생을 지배하는 동기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때 한 발짝만 다른 길을
가면 인생이 달라집니다. 대한민국은 부모의 도움을 받지 못하고 성장하는
어린이가 6만 명입니다. 이 아이들은 다 상처가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러면
그 6만 명이 상처를 가지고 성장했을 때 이 사회에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는
가? 어린이 교육은 그래서 매우 중요합니다.
선진국들을 보면 대통령이 된 사람들의 어린 시절이 많이 소개되고 어린
시절에 거의 다 신앙적 일화가 많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조지 워싱턴이
그렇게 훌륭하게 된 것은 그의 어린 시절에 이런 일이 있었다. 이것이 그의
마음에 하나의 인생 좌우명이 되었고 길잡이가 된 것이다." "또, 아브라함
링컨은 19살 때 받은 충격이 그로 하여금 흑인노예를 해방시키는 대통령이
되게 하였다." 나쁜 친구들과 몰려다니고 어울려서 돌아다니는 클리블랜드라
고 하는 청년이 오늘도 주일날인데 나쁜 일만 하며 돌아다니는 겁니다. 죄만
지으면서 돌아다니는 겁니다. 아침에 한 친구와 다른 친구들을 만나러 둘이
서 걸어가다가 어느 교회 앞을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지금 갈보리교회 앞에
도 오늘 제가 설교하는 설교 제목, 제 이름이 간판으로 붙어있지 않습니까?
무심코 클리블랜드가 그것을 쳐다보니까 설교 제목이 눈에 띄었습니다. "죄
의 값은 사망이다." 클리블랜드는 날마다 죄만 짓고 다녔고 오늘도 그렇게
가려고 했는데 '어?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마음이 이상해졌습니다. 그래서
친구에게 "야! 우리 놀러가는 거 오후에 가고 교회 들어가서 한번 예배드리
자." 그 친구는 "너 미쳤냐? 지금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무슨 교회 들어
가서 예배야?" 그래서 그 교회 앞에서 둘이 막 말다툼을 하며 싸웠습니다.
결국 클리블랜드는 "그러면 너 혼자 가라! 나는 못가겠다." 그래서 그날 교
회에 가서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목사의 설교를 잘 들었습니다. 그 후에 그
는 많은 눈물을 흘리며 '내가 왜 인생을 이렇게 가고 있을까?'라며 그날부터
훌륭한 크리스천의 창조적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30년이 지났을 때 미국
의 역사는 클리블랜드를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큼직한 클리블랜드의 사진
과 함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뉴스를 한 늙은 죄수가 감옥에서 눈물
을 흘리면서 읽었다고 합니다. 바로 그날 아침 "죄의 값은 사망"이라고 하는
그 교회 앞의 간판을 기억했다고 합니다. 한 사람은 그 길로 미국의 대통령
이 되었고, 다른 친구는 감옥소에서 그가 대통령이 되었다는 신문 기사를 보
고 울었다는 이야기가 클리블랜드 대통령의 일화로 미국 사회에서 아주 유명
합니다. 어느 나라에나 국가의 최고 공로자의 얼굴을 집어넣어 돈을 만듭니
다. 우리나라에도 세종대왕이 그려져 있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1불
짜리에는 워싱턴이, 5불짜리에는 아브라함 링컨이, 10불짜리는 해밀턴이 있
고, 20불짜리는 잭슨, 50불짜리에는 그랜트고, 100불짜리에는 플랜클린이고,
그리고 1,000불짜리가 바로 클리블랜드의 초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오늘은 어린이 주일인데 다른 어린이들은 생각할 필요가 없이 내 집 아
이들에게 나는 존경의 대상인가? 나는 실패한 아버지인가? 실패한 어머니인
가? 오늘 성경말씀은 성경 중에 제일 큰 규모의 기적 사건으로 나타난 오병
이어의 이야기입니다. 이것을 한번 조명해 보면 어린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먼저 어린 아이에게 첫 번째 나타나는 현상은 어른 세계에 대한 관
심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지금 장소는 벳새다라는 지방으로 갈릴리 바다 바로
북쪽으로 연결된 지방입니다. 오늘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이 그곳에서 하루
종일 부흥회를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부흥회는 어린이 전도 집회가 아닙
니다. 어른 중심의 부흥집회였습니다. 어른들이 모이는 부흥집회에 왜 어린
이가 참석하고 있는가? 바로 그것이 어린이 관심이라는 것입니다. 어린이들
은 어른들의 세계에 얼마나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어린이들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잘못 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게
됩니다. 20세기를 피로 물들인 사람은 히틀러입니다. 히틀러를 연구한 사람
들은 똑같은 결론에 도달합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
었는데 자기 집에 우유 배달을 하는 유대인 남자와 홀로 사는 어머니의 부정
이었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그런 일만 보고 자라니까 그는 어려서부터 마음
에 각오를 했습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유대인 놈들은 모조리 죽여 버리겠
다." 그렇게 말하고 자랐습니다. 그것이 유대인 6백만 학살의 동기가 된 것
입니다. 한 어린 아이가 받은 상처의 표현이 이렇게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다음 달에 저는 중앙아메리카 니카라과에 갈보리교회 파송 선교사로 20명을
면접하러 갑니다. 제가 중남미에 다니면서 선교사들에게 많이 들은 소리가
있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한국 선교사가 자녀들을 데리고 그 쪽으로 처음 갔
는데 TV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삼바 문화에 젖어서 그런지 TV 화면이 너무 야
하게 나옵니다. 아버지, 어머니는 그런 나라에 가서 처음 보니까 흥미롭게
보지만 아이들이 보면 안 되는 장면이 나온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선교사인
아버지는 그런 분위기의 장면이 나올 만 하면 같이 있는 아이들에게 "야! 너
가서 물 좀 떠와라!"라고 시켰는데 이 아이들이 다 압니다. '이것은 나는 보
지 못하게 하고 엄마, 아빠만 보려는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나중에는 아이
들이 뻔히 알고 그런 장면이 나올 때는 "아빠! 나 물 떠와요?" 아이들이 먼
저 말한답니다. 이 말은 선교사가 나한테 해준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 웃었
습니다.
지금 이 부흥회 참석한 어린이의 관심도가 얼마나 컸는가 하는 것의 증
거가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들, 어른들은 준비도 없이 왔는데 이 어린이는
도시락을 준비해 왔습니다. 이 어린이 생각에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 말입니
다. '전에도 보니까 예수님의 부흥회는 한 시간 두 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
야! 하루 종일 할 거야! 그렇다면 도중에 점심 식사를 해야 돼! 도시락 하나
정도는 싸가지고 가야 오늘 견딜 수 있다.' 그래서 이 어린이는 철저한 준비
를 가지고 여기에 참석했습니다. 얼마나 관심 있게 본 것입니까?
그 다음에 이 어린이의 특징은 인내심으로 나타납니다. 지금 이 부흥회
는 이렇게 교회 안에서의 실내 예배가 아닙니다. 야외 집회였습니다. 야외집
회는 웬만큼 잘해서는 은혜받기 힘듭니다. 왜? 산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사고력도 실내와 같지 않습니다. 참석하는 사람들도 웅성
거리고 도중에 가는 사람도 많이 생깁니다. 오늘 성경말씀에는 예수님께 제
자들이 약간의 불만스러운 말을 합니다. "날이 저물어 가매"라고 나와 있습
니다. 부흥회를 하루 종일 하셔서 해가 넘어갈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부흥회 좀 그만 하소서. 날이 저물어 가나이다. 더구나 무리가 하
루 종일 굶어서 배가 고파 더 이상 견디기 힘이 듭니다. 여짜오되 무리를 보
내어 두루 마을과 촌으로 가서 유하며 먹을 것을 얻게 하소서. 우리가 있는
여기는 빈들입니다." 아마 예수님이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신이 나셨나봅니
다. 그래서 하루 종일 정신없이 설교 하시니까 제자들은 조금 짜증스러운 반
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지금 예배드리시는데 제가 설교를 오후 6시
나 7시 될 때까지 한다고 했을 때 끝까지 앉아 계실 분이 계십니까? 제자들
은 지금 주님이 원망스러운 것입니다. '해가 아직 남아 있을 때 이 군중을
해산하실 것이지 이렇게 오래 붙잡고 계시면 생각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
는데 우리보고 어떡하란 말인가? 멀리서 온 사람은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고 군중 전체가 배가 고파 가는데….' 아무리 부흥회가 은혜가 있어도
신체적 조건을 맞추어 가면서 해야 될 것 아닙니까?
오늘 말씀에는 이 부흥회에 참석한 사람의 숫자가 나타납니다. 남자만
5,000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자와 아이들도 많이 왔는데 다 합치면 얼
마나 되겠습니까? 일만 명 정도의 군중집회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신이 나신 겁니다. 이 아이는 하루 종일 어른 중심의 설교를 끝까지 인내심
을 갖고 듣고 있었습니다. 더 신기한 일은 배가 고픈데 자기에게 준비된 식
량을 먹지 않고 기다렸다는 인내심을 넉넉히 보이고 있습니다. 가만히 보니
까 배고프고 지루한 것은 어른들이 더 못 참습니다. 요한복음에 보면 빌립이
이때 예수님께 돈 이야기까지 하는 것이 나타납니다. "이 많은 사람을 먹이
려면 200데나리온의 돈이 필요합니다. 그런 돈도 없거니와 돈이 있다하여도
이 저녁에 빈들에서 어느 음식점에 가서 10,000명의 음식을 주문해서 올 수
가 있겠습니까? 그만 돌려보내소서. 날이 저물었나이다." 일이 이렇게 되었
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난처해졌습니다. 제자들마저도 불평스러운 상황을 보
고했습니다. 빨리 해산해서 보내든가 아니면 먹을 것을 주던가 해야 되는데
오늘 말씀의 결론은 17절에 "다 먹고 배불렀더라. 그 남은 조각 열두 바구니
를 거두니라."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습니까? 결국 이와 같은 기적 창출의
사건은 이 어린이의 세 번째 행동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자기를 위해 준비
해온 식량 한 끼분을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기 위해 예수님 앞으로 내놓은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불러오는 동기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이 설
교 준비를 하면서 정신을 바짝 차렸습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대목을 설교할
때는 좀 흥분합니다. 그래서 말을 자꾸 바꿀 때가 있습니다. "보리떡 5,000
개로 다섯 명을 먹이고 남았다"고 말입니다.
이 말씀이 4복음서에 모두 기록된 가장 큰 의미가 무엇일까? 주님은 많
은 사람 앞에서 기적을 보여 자신의 신비적 힘을 과시하시려는 데 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광야 40일 금식기도 후에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
내리라는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신 적이 있습니다. "나는 그런 것은 안하겠
다." 그러면 떡을 먹여 군중들의 배부른 만족을 채워 주시려는데 목적이 있
었는가? 그것도 광야 40일 금식 기도 후에 있었던 문제입니다. "사람이 굶을
때도 있지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다." 라고 물리치신 바가 있습니다. 그러면
무슨 중요한 뜻이 있는가? 이 어린이의 행한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
다. 이미 마귀의 요청대로 예수님은 그 들판에 널려져 있는 돌멩이로 떡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5개로 일만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사하신 주님이 돌멩이로 떡을 만들지 못하겠습니까? 넉넉히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왜 돌멩이를 주워들고 축사하지 않으시고 어린아이가
드린 도시락을 들고 축사하셨는가? 저는 이 대목을 볼 때마다 너무나도 아쉬
운 느낌이 하나 듭니다. 왜 이렇게 큰 사건의 주인공이 된 어린이의 이름이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는가 아쉽습니다. 사람의 행복 중에 먹는 것이 참 큽니
다. 먹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겁습니까? 제가 분당에 목회하러 온다고
했더니 제 친구가 나한테 정보를 줄 테니까 가서 그대로 하면 목회 잘 될 거
라고 하면서 조언해 준 말이 있습니다. 서울의 문화가 있는데, 예를 들어 강
북에 목회를 나가면 그 지역 문화가 있는데 엄마들이 아이들 과외비를 벌려
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알고 아줌마 목회를 잘
하면 성공할 거라는 겁니다. 강남에 가서 목회를 하면 거기의 엄마들은 과외
비 버는 것이 아니라 과외 시키느라고 이리 뛰고 저리 뛴다는 것을 알고 있
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분당으로 간다고 했더니 분당의 엄마들은 둘
다 안하고 먹으러 뛴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도 같이 뛰어야 된다고 이야
기해 주었습니다. 와보니까 정말 분당은 소비의 도시인 것 같습니다.
지금 주변에는 우리 집에서부터 수많은 어린이들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각
으로 어른을 봅니다. 아주 지극한 관심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자신들을 위
한 프로그램이 아닌데도 어른들 틈에 끼어서 바라보고 참여합니다. 생각해보
면 어린아이까지도 그날 벳새다 부흥회가 하루 종일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기 식량을 미리 준비해 왔는데 많은 사람 가운데 그렇게 준비한 사람이 그
어린아이 한명 밖에 없을 리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도 다 넉넉히 준비해서
가지고 왔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이것을 내놓았다가는 이 저무는 저녁에
나는 어떻게 하나?' 그 계산 때문에 내놓지 못한 것뿐입니다. 아마도 이 어
린아이는 그날 예수님의 설교에 흡족한 은혜 체험을 한 듯 합니다. 이 아이
는 그것보다 더 좋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을 내놓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설
교를 하루 종일 들어서 영적으로 충만해진 군중들은 이제 이 어린이의 헌신
으로 인해 육적 만족까지 생겼습니다. 그리고 기쁘고 행복한 하루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 말씀 가운데 조명된 어린이의 모습을 왜 성서 기자들이
이렇게 세밀하게 기록했는가? 어린이의 신앙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요청에 응답합시다. 먹고 남은 조각은 열두 바구니가 됩니다. 진리를 믿고
실천하는 자의 복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이 말씀에 조명된 하나님의 뜻을 저희들이 기억
할 수 있게 하시고 주님을 향해서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으로 하나님의 역사
에 도움 되는 삶이 우리들의 신앙 결심이 되는 어린이 주일이 되게 하여 주
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출처/이필재목사 설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