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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을 기쁘게 합시다 (잠 23:24-26)
- 설교 : 장영일 목사 (범어교회)
24)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 25) 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1. 어버이 주일에
고속 철도(KTX)를 타면 차내 안내 책자 5월호에 실린 어버이 날의 유래를 밝힌 글이 있습니다.
약 100 년 전 미국 비지니아주 웹스터 마을에 안나 자이비스란 소녀가 살았다. 어머니와 달란하게 살던 소녀는 불행이도 어느 날 어머니를 여의게 되었다. 장례식을 엄숙히 치루고 난 후 소녀는 산소 주위에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카네이션을 심었다. 생전에 어머니를 잘 모시지 못한 것을 후회하던 소녀는 흰 카네이션을 달고 어느 모임에 나갔다. 그렇게라도 어머니를 기억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안나는 어머니를 잘 모시자는 운동을 벌였고, 1904년 시애틀에서 처음으로 어머니날 행사가 열리게 되었다. 그날 이후 어머니가 살아 계신 분은 붉은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분은 자기 가슴에 흰 카네이션을 달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1913년 이후 매년 5 월 둘째 주 일요일을 어머니 날로 정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1956년에 5월 8일을 어머니날로 정해, 17회 동안 시행에 오다가 1973 년에 어버이날로 계정, 부모님의 가슴에 붉은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며 사랑과 존경의 뜻을 전하게 되었다.
이처럼 부모님의 은혜는 세상을 떠난 후에 더 짜릿하게 자녀의 마음에 못이 박히나 봅니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 혹은 아직 젊으실 때 자식들이 그 은혜를 깨닫고 보은 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아들들은 군에 가서 비로소 부모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딸들은 시집가서 아이를 낳으면 부모 심정을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착한 자식들이 그렇지 대부분의 자녀들은 부모님 은혜는 잊어버리고 살아갑니다.
부산대학교 교수이신 오 세창 선생이 쓴 勸孝歌가 있습니다.
생부 생모 그 은혜는 하늘 같이 높으건만
고이 키운 자식들 중 효자효부 드물더라
시집오는 며느리는 시부모를 싫어하고
장가드는 아들자식 살림나기 바쁘도다
제 자식이 장난치면 싱글벙글 웃으면서
부모님이 훈계하면 듣기싫어 성을 내고
버릇 없는 자식소리 듣기 좋다 즐겨하나
부모님이 두말하면 잔소리라 짜증낸다
자식들의 오줌똥은 맨손으로 주무르나
부모님의 가래침은 더럽다고 찡그리고
과자봉지 들고와서 자식 손에 쥐어주나
부모위해 고기 한근 사올줄을 모르는가
개가 아파 누우면은 가축병원 달려가나
늙은부모 병이나면 근심걱정 아니하네
부모는 열자식을 하나같이 키웠건만
열자식은 한 부모를 귀찮다고 내버리네
자식위해 많은 돈을 불쓰듯이 쓰건만은
부모위해 한푼 돈은 아까워서 모쓰도다
처자식을 데리고는 외식함도 잦건만은
늙은부모 위해서는 외출한번 아니한다
그대몸이 소중하면 부모은덕 생각하고
서방님이 귀하거든 시부모를 잘섬겨라
죽은후에 후회말고 살아생전 효도하면
하나님께 복을받고 내한만큼 효도받네
언제 쓰신 글인지 몰라도 상당한 부분 오늘 젊은이들의 모습을 그려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다시 한번 더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서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의인과 지혜로운 자
오늘 잠언의 본문 24-25절은 '의인과 지혜로운 자'를 정의하고 있습니다. 곧 '부모를 즐겁게 하며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까닭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신명기서에 나옵니다.
"그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신 27:16)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기 때문입니다. 저주받을 자와 의인은 부모 공경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가르쳤습니다.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딤전 5:4)
우리가 흔히 '背恩忘德'이라는 말을 자주 씁니다. 그런데 이것은 부모 자녀간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 사랑하는 것은 본능적인 것입니다. 소위 '내리 사랑'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은혜를 알고 보은하는 것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본능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간혹 배우지도 않았는데 효도하는 사람이 더물게 있는데 정말 착한 본성을 타고났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죄의 본성은 은혜를 알지 못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본능적으로 알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성령께서 오셔서 감화 감동해주셔야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하고 감사하며 예배하게 됩니다. 부모의 은혜를 알고 보은하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인사를 배우지 않으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인사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며 자기 중심적인 죄의 본성은 우리를 남에게 고개 숙이도록 하지 않습니다. 인사하는 예의를 가르쳐야 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인사를 잘하지 않습니다. 뻔히 쳐다보고는 고개를 홱하고 돌려버립니다. 참 민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어떻게 가르칩니까? 고개 돌리고 지나가는 젊은이를 불러서 꾸중을 합니까? 그러다간 크게 황당한 일을 당할 수 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의 교육은 모범의 방법뿐입니다. 그것은 부모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자라도록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조부모님에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기 부모에게 인사를 잘하게 됩니다. 여기서 인사란 고개를 숙이는 행동만이 아닙니다. 감사하는 말, 선물 드리는 일, 모시고 외식하는 일, 함께 시간 가지는 일 등 그런 효도하는 행동을 보면 자녀들이 따라 하게 될 것입니다.
3.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어라
본 잠언 26절에 매우 중요한 효도의 길이 나옵니다.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26절)
하나는 아들의 마음을 부모에게 드리는 것입니다. 이성간의 사랑이나 부모에 대한 효도나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진실은 몸이나 물질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마음을 담지 않은 어떤 것도 위선이나 외식일 뿐입니다. 오래 살아온 부모님은 이것을 더 잘 압니다. 마음이 담긴 효도인지 아닌지를 곧 바로 압니다. 부모님은 자녀의 마음을 원합니다. 즉 진심을 원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원하는 대표적인 부모의 요구는 곧 순종입니다. 선물보다 순종을 원합니다. 지난 주간 교회 홈페이지의 설문에 "자녀 양육에서 힘든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응답한 첫째는 경제적 부담이 50%에 달했고 두 번째가 불순종(20%)이라고 답했습니다. 옛적이나 오늘날의 부모나 한결같음은 '자녀로부터 순종을 바라고있다'는 것입니다.
자녀들이여. 일단 순종하십시오. 그리고 난 다음 자기 이견을 정중하게 설명하십시오. 이방인들 같이 대들거나 거역하지 마십시오. 나중 부모가 된 후에 이 의미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들이 부모의 길을 인정해드리는 것입니다. 즉 부모님의 살아오신 길, 삶의 가치관, 표현하는 방식 등 부모님의 것들을 잘 살펴 인정하는 것이 효도입니다. 오늘 부모와 자녀간의 가치관의 변화가 매우 심합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엄청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위기가 아닙니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변화는 곧 발전의 힘입니다. 역사는 변화를 통하여 발전합니다. 만일 지금 우리 사회가 백년 전과 같은 방식으로 산다면 어떻게 될 것 같습니까? 아마도 세계 꼴찌나라가 되고 말 것입니다. 분명히 앞 세대와 뒤 세대는 달라야 합니다.
그러나 뒤 세대는 앞 세대를 존중해야 합니다. 다르다고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 별로 필요했던 삶의 길이었습니다. 그 길 없이 지금의 길이 나올 수 없습니다. 옛것을 지우고 새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부모님의 길을 살펴서 인정하며 존경을 표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부모는 기뻐합니다. 삶의 보람을 느낍니다. '지금껏 살아온 것이 헛것이 아니었구나' 하는 만족함을 갖도록 도와 드려야 합니다. 이렇게 함이 지혜로운 자녀의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