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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는 영성 (신 26:1-11, 눅 17:11-19)
다음 주일은 우리 교회에서 맥추 감사절로 지키려고 합니다. 12살 이상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면 필수적으로 지켜야 할 절기가 1년에 세 번 있습니다. 그것은 정월에 있는 유월절, 여름에는 맥추절, 가을에는 수장절(추수감사절)입니다. 여러분들이 잘 아시는 대로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30년 동안 애굽 종살이에서 해방된 날입니다.(출12:12-14) 또 맥추절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고 살았는데 가나안 땅에 처음 들어가서 씨를 뿌려 제일 먼저 거둔 곡식, 밀과 보리를 하나님께 감사 예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레23:10) 맥추절은 오순절이라고도 합니다. 유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릅니다. 그리고 추수감사절이 있는데 일 년간 추수한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날입니다. 이렇게 세 절기가 있는데 이 절기들은 하나님과 백성들이 함께 즐기는 축제였으며 온 백성들이 하나님께 감사하여 예배드리는 절기였다는 것이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출34:24)
우리가 맥추 감사 주일을 지키는 것은 단순히 물질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차원이 아닙니다. 감사는 우리의 영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들과 다른 점은 영성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이 영성을 잃으면 마치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아 아무 영향력도 끼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영성은 감사의 영성입니다. 하박국은 감사의 영성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는 이렇게 감사했습니다. “17)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절) 정말 아무것도 없어도, 전쟁의 포화소리가 들려오는 위기 속에서도 여호와 하나님 한 분 때문에! 그리고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피 흘리신 예수님의 은혜만 생각해도 나는 감사하다고 말하는 하박국은 영성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감사는 단순히 물질로 표현하는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는 예배요, 신앙을 더 깊이 만드는 영성입니다.
여러분들이 열 문둥이에 대한 말씀은 잘 아실 것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열 명이 예수님께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감사하러 온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 한 사람은 당시에 멸시 받고 천대 받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열 사람이 다 은혜를 입었으되 한 사람만이 예수께 돌아와 발아래 엎드려 사례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눅17:17,18절입니다. “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을 찾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아니 감사의 영성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서 몇 가지 교훈 받습니다.
1. 감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경우 세상 사람들은 “나를 고쳐 주셨으니 감사합니다.”하고 감사의 대가로 무엇이든 준비하여 보답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감사는 여기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이를 보이게 됩니다. 물론 도움을 받은 사람에 대한 감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나타내야 하지만, 믿는 사람들은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에 대한 대가를 바라시는 분은 아니지만 모든 감사에 대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진실한 예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고침을 받은 사마리아인이 “자기의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예수님께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눅17:15) 참된 감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예배를 통해서 마무리 됩니다. 입술의 감사뿐만 아니라 자신을 산제사로 드리는(롬12:1) 참된 예배가 주님이 원하시는 감사입니다. 그리하여 참된 감사는 우리의 영성을 더욱 깊이 있게 만들어 줍니다.
오늘 구약 신명기의 말씀 속에서도 우리는 이 점을 깨닫게 됩니다. 함께 신26:2절을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또 신26:10절을 봉독하겠습니다.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라고 하십니다. 또 “또 그것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가서 경배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참된 감사는 여호와의 단 앞에서 예물을 가지고 나가서 그에게 경배하는 것임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뜻에서도 금년도 우리 교회 감사의 제단은 그 어느 해보다 풍성한 제단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감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믿는 사람의 신앙고백입니다.
본문 신26:5-9절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고백을 통해서 증거됩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애굽으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서 430년간 살았고 번성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가운데 애굽의 바로의 학정에서 벗어나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와서 이렇게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감사는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은혜에 대한 고백입니다. 자신의 모든 지난 역사는 하나님의 주권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고백하는 것이 참된 감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의 어느 것도 우연이나 저절로 된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고 역사를 인과론적으로만 해석 할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우연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의 개입하심과 간섭하심과 섭리하심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여러분! 오늘이 있기까지! 그리고 나와 우리 집! 그리고 내 기업을 존재케 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바울의 말대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는 것이야 말로 감사의 영성인 것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산 것도 주님의 은혜라고 고백 할 수 있는 것은 감사의 영성입니다. 이 번 감사가 하나님의 주권 섭리를 생각하며 드리는 신앙고백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마지막으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것이 감사의 영성입니다.
신26:11절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라.”(신26:11)
영성 있는 감사는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과 경배는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리고 나눔과 섬김의 실천은 우리 이웃과 함께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부탁이요, 온전한 감사입니다. 우리가 이 지역이 개발됨과 동시에 예배드릴 성전을 건축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전을 건축해야 할 이유는 우리의 자랑이나, 남이 하니 우리도 해야 하겠다는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지역 사회에 꼭 필요한 하나님의 집으로 지역 사회를 살리기 위한 교회를 건축해야 합니다. 이것은 언제까지 믿는 우리들만의 교회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그 크신 은혜를 “레위인과 너희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하라.”고 하신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감사하다면 이웃들을 섬기리라고 하는 마음을 가지셔야 합니다. 여기에 감사의 영성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에 언제까지 우리가 우리 교회만을 위하여 급급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것은 저와 우리 교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사업을 하든지, 아니면 개인적인 가정이나, 일을 할 때에 개인적인 것에 매여 있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외면하실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셔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참된 감사는 반드시 이웃과의 나눔을 통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감사절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감사는 자기에게 은혜를 베풀어준 사람에게 대한 감사가 고작입니다. 그러나 믿는 사람들의 감사는 그 감사의 대상이 하나님이고,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다른 이웃들과 더불어 나누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이웃과의 나눔이 결코 동정의 마음으로 베푸는 자선 행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의 말씀대로 “함께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참된 감사는 참된 이웃사랑이라는 대 계명의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면 전도의 문은 활짝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적인 감사를 배워 실천한다면 이것은 우리의 신앙을 보다 성숙시키는 영적인 은혜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감사는 행사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이 한 계단 발전하는 귀한 영성과 은총의 기회가 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감사로 여러분들의 신앙 성장을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깨닫는 만큼 감사하게 됩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은 감사하지 못합니다. 배운 것이 많다고 감사를 많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살림이 풍성하면 풍성한 연보를 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물질이 풍족해도 믿음이 없으면 오히려 더 인색하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다만 한 날, 한 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체험하면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사람만이 진심으로 감사를 깨닫게 되고 풍성한 감사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가 간절히 기대하는 것은 감사 할 때에 물질만 생각하지 마시고, 그 예물 때문에 영적인 유익을 얻으며, 여러분들의 신앙 영성을 한 단계 더 성숙케 한다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절을 지켰으면 하는 것입니다.
모쪼록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 사도가 권면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범사에 감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감사하라고 했으니 그 말씀을 지키려는 율법적인 감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은혜, 구속의 은총으로 이웃과 더불어 나누는 감사의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무래도 깨닫는 자가 감사할 수 있다면 오늘 이 시간에 우리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깨닫는 은혜를 많이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들이 비록 작은 일이라도 크게 감사하는 그런 영성을 소유하시면서 이번 맥추감사절을 지킬 수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영적으로 둔해지지 않도록 언제나 깨어있어서 감사의 영성이 충만해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윤정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