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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 (유다서 1장 17-23절)
영국 귀족이 인도의 한 영주에게 트럭을 선사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 귀족은 영주가 사는 곳을 방문하였다가 깜짝 놀라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보내 준 트럭은 쓰지 않고 한쪽 구석에 세워둔 채, 여전히 소를 부려서 짐을 나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귀족은 트럭에 기름을 넣고 소들이 지고 있던 짐을 싣게 하고는 시운전을 해 보였습니다. 그랬더니 영주는 그제야 트럭의 용도를 알게 되었습니다. 트럭 한 대가 소 수십 마리의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트럭이 있어도 기름이 들어가야 움직이지 기름이 없으면 움직이지 않습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기름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도,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많다 할지라도 성령께서 함께 하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능력을 더해 주시고 지혜와 지식을 더해 주셔야, 풍족한 삶을 살 수 있고 하나님 앞에 충성하고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충만히 받고 하나님의 능력을 얻어야 합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인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는 것은 원칙입니다. 원칙을 실천하느냐 못하느냐가 성공의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원칙에 충실할수록 성공의 확률은 높아지고 원칙에 위배될수록 성공률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원칙은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그 원칙만 지켜지면 신앙생활은 잘 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생활만 잘되면 다른 모든 일들이 따라서 잘되기 마련입니다. 영혼이 잘 되면 범사가 잘되고 몸도 건강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성령은 우리를 믿음 위에 세워줍니다
19세기에 런던에서 가장 유명했던 설교자 알렉산더 매클라렌 목사님은 어느 주일날 그 도시에서 무신론자로 잘 알려진 한 사람이 예배에 참석한 것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예배를 마치자 그는 무신론자에게 4주동안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를 설교하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네 번째 주일예배가 끝난 뒤 무신론자는 예수를 믿겠다고 말했습니다. 매클라렌은 너무 기뻐서 어느 설교에 특히 감동을 받았느냐고 물었다습니다. 그 무신론자는 대답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는 물론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기독교인이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한 할머니였습니다. 몇 주전 교회에서 나가다가 얼굴에 기쁨이 가득 찬 할머니 한 분을 보았는데, 길이 얼어서 걷기가 불편했기 때문에 제가 좀 도와드렸습니다. 그 분이 저를 쳐다보면서 '선생님, 제 구주이신 예수님을 선생님도 아시는군요. 그 분은 제 인생의 전부예요. 선생님도 그분을 사랑했으면 좋겠어요'하셨습니다. 그 할머니의 몇 마디가 저를 감동시켰습니다".
신앙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행복하지 못한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서, 불행한 사람은 불행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신앙이 필요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믿음 위에 세워주십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 이끌어 갑니다.
목수가 기둥을 주초 위에 세우며 집을 짓듯이 성령은 우리를 믿음 위에 세워주십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전 먼저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고 물가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머리위로 임했습니다. 그리고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셨습니다. 40일 동안 주리시며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메시야로서의 사명자로 세우심을 입었습니다. 성령은 넘어진 자 실망한 자에게 용기를 주어 일으켜 세우십니다.
완전히 무너져버린 마른뼈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군대로 일으켜 세우신 것은 '생기' 하나님의 입김이었습니다(겔37). 하나님의 입김은 성령을 뜻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께서 보잘 것 없는 어부인 시몬을 위대한 전도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자는 성령의 세워주심을 받습니다.
오늘도 성령께서 여러분을 세워주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도 믿음 위에 설 수 있습니다. 사람은 나를 세워주지 못해도 성령이 세워주십니다. 여러분 모두 성령에 의하여 일으켜 세워주심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둘째로, 성령은 우리를 기도하게 합니다
스펄죤 목사님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10년을 염려하는 것보다 10분을 기도하는 것이 더 좋다. 성령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문을 작성하시고 성자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기도문을 제출하시고 성부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신다. 성삼위일체께서 우리의 기도를 도우시는데 우리가 기도를 못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성령을 의지하지 않고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기도라는 것 자체가 세상에 속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성령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톨스토이의 「인생독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어느 사람이 도를 깨닫기 위해 산 속에 들어가서 기도합니다. 산 밑에 있는 농부의 집에 부탁해서 식사를 날라다 먹으면서 그야말로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여러 날을 기도하는 데도 깨달아지는 것이 없습니다. 이 사람은 덕이 높은 수도사를 찾아가서 어떻게 하면 깨닫겠느냐고 진지하게 물어보았습니다. 수도사는 당신에게 식사를 날라다 주는 농부가 신앙이 아주 깊은 사람인데 농부의 집에 가서 며칠 머물면서 농부가 하는 것을 유심히 관찰하면 깨닫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농부의 집에 가서 농부가 하는 것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습니다. '이 농부에게 어떤 면이 있기에 배울 것이 있다고 했을까?' 생각하면서 유심히 보았습니다. 그런데 농부의 생활은 아주 단순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주여!"한 마디 외치고는 밭에 나가 일합니다. 저녁에 들어와서 저녁을 먹고는 또 "주여!" 한 마디 외치고는 누워 곤하게 잡니다. 이 사람은 수도사를 찾아가서 깨달은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그러느냐고 하면서 기름병을 하나 내 주었습니다. 이 기름병을 들고 다시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데 기름이 밖으로 흐르지 않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시키는 대로 했습니다. 수도사가 묻습니다. "그대는 이 기름병을 가지고 농부의 집에 다녀오는 동안 주님을 몇 번이나 생각했습니까?" 이 사람은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일에 신경을 쓰느라고 한 번도 주님을 생각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수도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것 보시오. 당신은 그 간단한 일을 하면서도 주님을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는데 농부는 그렇게 피곤한 삶 가운데서도 하루에 두 번이나 주님을 찾지 않소? 그대는 그저 기름이 흐르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 하나만 걱정했지만 농부는 걱정할 일이 얼마나 많소? 날씨 걱정, 씨 뿌린 것이 제대로 자랄까 하는 걱정, 새들이 와서 쪼아먹으면 어떻게 할까 하는 걱정, 그렇게 걱정할 일이 많은 가운데서도 주님을 두 번이나 찾지 않소?" 이 사람은 크게 깨닫고 산에서 내려 왔다고 합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새벽에 일어나서 "주여!" 외치고 하루를 시작하면 성령이 동행하고 이와 같이 성령과 동행하는 사이에 경건하고 성실하고 소망에 가득 찬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기도가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기도가 되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령께 우리의 기도를 전폭 맡겨야 하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기도는 때로 이기적이고 맹목적인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성령이 우리를 완전히 붙드실 때만이 우리의 기도는 온전한 기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 부흥이 오지 않는 이유는 절대 부흥의 조건인 기도가 결여된 때문입니다. 먼저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은 구하면 주십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도하게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그 기도로 세계를 품을 수 있습니다. 그 품에서 부흥의 역사가 시작될줄로 믿습니다.
셋째로, 성령은 우리를 전도하게 합니다
성령을 따르는 교회는 전도합니다. 오늘날 유럽 교회들이 문을 닫는 것은 전도가 죽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복음을 전하든지 화석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가 됩니다.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죄악의 구덩이에 빠진 사람을 이끌어냅니다. 그들을 보면서 불쌍한 마음이 생깁니다. 건져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또한 이끌어낼 힘도 주십니다. 성령은 불신자를 전도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은 활동적인 힘입니다.
사도행전은 성령을 바람과 같다고 설명합니다. 바람은 동력입니다. 오순절에 마가의 다락방에 임하셨던 바람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바람으로 급하고 강했습니다. 성령은 선교 명령을 성취시키는 능력입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서 역사 하시는 능력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온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
요한 웨슬레가 여섯 살 때 집에 불이 났습니다. 8형제 중 막내인 그는 불이 났을 때 미처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지붕이 불타서 거의 무너져 내리는 순간까지 아버지는 막내가 어디 있는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불타는 집안에서 막내의 울음소리가 들렸습니다. 어린 웨슬레는 2층 난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웃 사람이 다른 사람의 어깨를 밟고 올라가 난간에서 울고 있는 웨슬레를 구출했습니다. 웨슬레의 초상화 밑에는 "이 사람이 바로 불속에서 끄집어낸 아이였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가 수많은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했습니다. 불구덩이에서 구출된 그가 지옥의 불에서 수많은 영혼을 구출했습니다. 지옥의 불꽃에서 구원받은 우리도 전도합시다. 멸망하는 사람을 불에서 이끌어 냅시다.
성령 강림은 교회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합니다. 그것은 바로 세계 모든 곳에까지 복음이 전파 될 수 있도록 교회는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으로 무장이 되어 있어서 그 사명을 끝까지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강림은 교회를 만들었습니다. 성령강림은 당시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사람들을 변화시켰습니다. 성령강림은 오늘날에도 그 당시와 똑같은 역사를 이루어 가십니다. 때로 삶에 지치고 힘들어서 낙심이 되십니까? 두려움과 절망으로 인해 고생하고 계십니까? 바로 성령님께서 오늘 여러분을 위해 오셨습니다.
질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을 향하여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숨을 내쉬며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 하시며 주셨던 성령이 바로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줄로 믿습니다. 이시간 모두가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믿음위에 세워지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계속 기도하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전도의 역사를 일으키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유행따라 살지 마시고 환경따라 살지마시고 모두가 성령을 따라 사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