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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두드리시는 주님 (말 3:1-6, 계 3:14-20)
옛날에는 이 기간이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 기간으로 마련되었고, 사순절과 같이 참회하며 금식하는 기간으로 지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근년에 미국에서 크리스마스 선물을 팔기 위하여 11월부터 성탄 장식을 하고 크리스마스 캐롤과 음악을 계속 불러대므로 대강절의 참뜻은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원래 역사적으로 교회는 크리스마스를 그 이브에 시작하여 1월 6일 현현절까지 지키도록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교회가 교회력에 따른 바른 절기 지키도록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이 대강절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리면서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주신 말씀 "보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20절)라는 말씀을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한가지도 칭찬을 듣지 못한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들은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신앙, 그래서 뜨든미지근하여 토해 낼 수 밖에 없는 신앙을 가져, 예수를 믿는 것인지 안믿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그런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여유가 있었으나 영적으로는 벌거벗은 가난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주님은 이와같은 교회를 향하여 회개하라는 말씀과 함께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말씀을 들려 주신 것입니다.
첫째로, "주님이 문 밖에 서 계시다"는 말씀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 홀만 헌트가 그린 "세상의 빛"이란 그림을 보고 러스킨이란 분이 해설한 말을 인용하겠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인간 영혼의 문이 보인다. 그것은 굳게 빗장질 해 있고 그 빗장과 못들은 녹이 쓸었다. 문설주는 담쟁이 넝쿨이 기어 올라가 뜨개질이나 한듯 똘똘 감아 얽어 놓았는데, 그 문은 한번도 열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 주위에는 박취 한 마리가 날아다니고 문지방은 기시덤불과 쐐기풀, 이삭하나 없는 옥숙수등이 무성히 덮여 있는데, 풀깎는 자가 그 야생초에 손하나 대지 않았고 단으로 묶어 놓지도 않았다."
이 문은 영원으로 통할 수 있는 문을 뜻합니다. 예전에 타락하기 이전에는 이 영혼의 문이 활짝 열려 있어서 언제라도 하나님과 만날 수 있었는데,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는 이 문이 굳게 닫히어 영원 즉 하나님의 세계와는 차단되어 버린 것입니다. '문밖'은 인간이 잃어버린 세계가 있는 곳입니다. 영원한 세계가 있는 곳입니다. 이 세계를 향하여 문이 열려 있을 때에는 생명의 바람을 호흡할 수 있었습니다. 답답하지 않았습니다. 기쁨이 있었습니다. 사랑이 있었습니다. 찬란한 영광의 빛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후 이 문을 굳게 닫아버리고 숨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두려웠던 것입니다. 문을 굳게 닫아 빗장질해 버렸습니다.
다시는 이 문을 열어볼 엄두를 못냈고, 마침내는 문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문빗장은 녹쓸고, 잡풀이 우거져 문은 다시는 열릴 것 같지 않았습니다.
"너는 내가 부자다 나는 풍족하고 부족한 것이 조금도 없다고 하지만, 사실 너는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 못하고 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이 원래의 고향이 아니라는 것을 잊어버리고 거기에서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영원하고 아름다운 세계를 잃어
버린 인간의 몰골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련한지 스스로 알지 못한채 이 세상에서 얻는 지극히 보잘 것 없는 물질에 만족하면서 희희낙낙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과학이 발달하면 낙원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었지만, 오히려 더 많은 비극을 가져왔고 현재 살고 있는 그나마의 세계마저 깨져버릴 위기를 맞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이 물질문명 속에서 무엇인가 얻어보려고 안깐힘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실 때 정말 "비참하고 불쌍하게" 보실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비참하고 불쌍하며 가난하게 된 처지에서 헤어나는 길은 잊어버렸던 영원의 세계를 기억해내는 일일 것입니다. 영원을 향한 문을 찾아내어 빗장을 때려 부수고 문을 여는 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비참해 지고 가난해지고 눈멀고 벌거벗은 까닭으로 해서 스스로 영혼의 문을 찾아 내지도 못하고 이리 저리 방황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편에서 먼저 찾아 오실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이 말씀에 보면, 주님께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다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비참함과 불쌍하고 가난함을, 그리고 눈멀고 벌거벗은 수치를 보신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을 찾아 오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오셔서는 친히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려 주시는 것입니다. 두드린다는 것은 거기 문이 있음을 일깨워 주시는 것이요, 또한 누군가가 밖에 와 있다는 신호입니다.
주님은 인간으로 범죄케 하였던 사탄의 세력을 꺾으시고 승리하심으로 모든 사람에게 사죄를 선포하실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인간이 지은 모든 죄의 값을 다 치루셨으므로 죄짓고 숨은 모든 인간에게 이제는 문을 열고 나와도 좋다는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말씀을 못 들었거나 들었어도 믿지 못하여 혹은 주저하여 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몰트만의 <소망의 신학>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끌어 올려서 광대한 전망을 주는데도 인간은 물러 않아서 절망한다. 하나님은 인간을 약속의 상대로 삼는데도 인간은 그 기대를 믿으려고 하지 아니한다. 이것이 신자들을 위협하는 죄다."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고,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이 약속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결코 문책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믿고 우리의 영혼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이 문을 두드리신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주님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주님은 "이른 아침의 찬란한 햇살, 아름다움과 향기를 내뿜는 꽃송이, 사랑의 순간,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쁨의 선물 "(불트만)들을 통하여 우리의 영혼의 문을 부드럽게 두드리시는 것입니다.
시인과 같이 예민한 사람들은 곧 그 소리를 알아듣고 마음문을 여는 것입니다. 다음은 타고르의 시입니다.
"저는 알만 하옵니다- 당신의 별들의 소리를, 그리고 당신의 수목들의 그 침묵을. 저는 느끼옵니다. 제 마음이 꽃같이 피어나려 하옴을, 그리고 저의 삶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의 샘물을 마시고 충만해 있사옴을. 당신의 노래는, 눈에 싸여 적막한 나라로부터 날아온 세처럼 저의 마음에 둥지를 틀고, 그 속에서 제 마음의 '4월'의 따스한 보살핌을 받고 있사옵니다. 그래 제 마음은 흡족하여, 행복된 계절을 기다리게 되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행복된 순간들과 복된 시간들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드리지 못하고 놓쳐버림으로 거기서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맙니다.
그러면 주님은 다른 방법으로 우리 영혼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이번에는 좀더 강열한 두드림입니다. 치료받기 어려운 암 같은 병이나 혹은 자동
차 사고 또는 사업의 실패, 사랑하는 이의 죽음, 옥중 고통 등을 통하여 문을 열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이 두드림을 다 듣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죽음을 통하여 영혼의 문을 열도록 재촉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죽음 앞에서는 이 땅 위에서의 모든 것의 허무함을 깨닫게 되고, 영원을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돌아갈 고향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자일수록 책망도 하고 징계도 한다. 그러므로 너는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죽음이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최후의 두드림인데 불행하게도 이 죽음 앞에서도 영혼의 문을 열지 못하고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이 문 두드리실 때 얼른 열어서 영접할 수 있도록 우리의 영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하여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네게 권한다. 네가 부자가 되려거든 불로 제련된 금을 내게서 사고, 네 벌거벗은 수치를 가리워 드러내지 않으려거든 흰옷을 사서 입고, 네 눈이 밝아지려거든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
마지막으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의 문을 두드 리심은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선포하혀 하심이며 우리와 더불어 사귀고자 하심이지 결코 심판하려 하심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는 마치 내가 이긴 후에 내 아버지와 함께 아버지의 보좌에 앉은 것같이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도록 해주겠다."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주님을 영접한 사람은 실패한 사람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은 놀라운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멘이시요 신실하시고 참되신 증인이시며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 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을 것이요, 두려울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잃었던 영원한 생명을 주시며,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기쁨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는 이 세상 어느 것과도 바꿀 수 없는 하늘의 은총을 우리에게 부어주시는 분입니다. "예수께 문 열기를 거절하는 자는 쏟아져 들어오는 복을 막는 것"(트렌취)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영혼의 문을 활짝 열고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분명 우리의 생애는 바뀌어지고 영광으로 빛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보라,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리고 있다." 이 세상의 요란함과 광란하는 물질문명의 유혹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의 영혼의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어 주님을 영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막혔던 영혼의 숨통이 터지고 멀었던 눈이 떠져, 하늘의 빛난 영광을 바라보게 될 것이며, 새 생명의 기쁨이 우리 속에 가득차고 넘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