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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2:14-21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각양 은사와 복을 주신 것은 썩어질 육신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 주를 섬기며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해서 봉사하라고 주셨습니다.
눅15장에 나오는 탕자를 생각을 생각해봅시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귀한 유산을 받았지만 가치 있게 사용하지 않고, 허랑 방탕하여 그 모든 재산을 다 허비하고 말았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좋은 은사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그 귀한 은사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반성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서, 그리고 헛된 것을 위해서 낭비하고 있다면 영적인 면에 있어서 탕자와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또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땅에 묻어두고 일하지 않고 있다면 주님께 책망과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사람처럼 바로 사용하여 크게 칭찬과 상급을 받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은사를 바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이는 아무리 귀한 은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고전13장에 보면 사랑이 없으면 믿음도 헛되다고 했습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다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은사를 소유하고 있다할지라도 바로 사용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자신도 잘못되기 쉬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처럼 보배로운 것이 없고, 사랑처럼 아름다운 것이 없는 것입니다.
사랑은 사람들이 스스로 만들어낸 산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요일4:7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라고 했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으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모든 우주를 질서정연하게 운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사랑을 제해버린다면 우주 만물은 순식간에 그리고 완전히 파괴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떠난다면 어떤 생명체도 존재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것을 온전케 하며, 아름답게 하며, 기적을 이루며, 모든 것을 복되게 하는 것입니다. 풀 포기 하나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려주시는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물과 깨끗한 공기 속에서 아름답게 자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존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깨닫고, 그 사랑을 소유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복된 사람이요, 가장 부요한 사람이요, 가장 능력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사랑을 일지도 못하고 그 사랑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은 가장 불행한 자요, 가장 가난한 자요, 가장 무능한 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성도가 복있는 성도요, 사랑이 있는 가정이 복된 가정이요, 사랑이 있는 교회가 천국과 같은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어떤 문제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사랑이 있으면 어떤 불행도 불행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랑이 있으면 모든 것을 가능케 합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나를 핍박하고 멸시하는 자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14절에서 무어라고 명하십니까?
14절에 보면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오히려 축복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해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을 받은 스데반 집사님을 보세요. 그가 원수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되어 지금 죽어 가는 가운데서도 원망하거나 그들을 저주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들의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고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사람의 힘으로는 절대적으로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봉사도 그렇습니다. 사람의 힘으로 하면 피곤해지고, 짜증나고, 또 어려운 일을 당하면 낙심하고 맙니다. 그래서 오래 지속하지 못하고 도중에 중단하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힘으로 할 때에는 새 힘이 넘칩니다. 즐거움으로 하게됩니다. 그리고 아무리 어려워도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를 지배할 때에 우리가 어떤 어려움과 핍박을 당하던지 참고 용서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15절에 보면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함께 즐거워하는 것’과 ‘함께 우는 것’ 어떤 것이 쉬울까요?
사실 함께 우는 것이 훨씬 쉬울 것입니다. 비참한 재난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고 울지 않을 정도로 굳은 마음을 가진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는 것만 가지고는 다되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웃고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촌이 논을 사서 즐거워하면 배가 아파 죽어갑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면 함께 즐거워하고, 함께 울며 동거동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람 사는 기쁨과 즐거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을 같이하게 됩니다.
16절에 보면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라고 했습니다. 오늘 날 왜 사람들이 하나가 되지 못하고 싸웁니까? 왜 교회가 하나되지 못합니까? 왜 나라가 하나되지 못합니까?
간단합니다.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고, 뜻과, 싸우고, 피흘리는 역사가 계속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결핍증 환자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부족은 인간 최대의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건강과 부를 구하기보다는 사랑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구하기보다는 먼저 주의 사랑으로 충만하기를 구해야 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세상 적인 것, 육신 적인 것을 먼저 구하지 아니하고 먼저 하나님 앞에 성령 충만, 사랑 충만을 위해서 일심으로 하나님께 구하였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습니다. 능력 있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세상이 칭송하며 부러워하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면에 부족함이 없이 차고 넘쳤습니다. 여러분, 사랑이 보배입니다. 사랑이 넘치는 곳에는 언제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리고 16절하반절에 보면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데 처하여 스스로 지혜있는 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다 교만하지 말고, 아는 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랑은 말구유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심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죄인들의 자리에까지 낮아지셨습니다. 그래서 낮고 천한 자리에 오셨습니다. 사랑은 자랑하지 않고, 아는 체 하지 않고, 높은 체 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랑은 언제나 겸손한 마음에만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이 임하는 곳에 겸손이 있고, 겸손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겸손해지고, 겸손하면 사랑이 꽃피는 것입니다. 사랑 따로 있고, 겸손 따로 있는 것입니다.
사랑은 물과 같고 겸손은 그것을 담는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사랑을 공급하실 때에 사랑을 담을 겸손의 그릇도 겸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들은 낮은데 처하여 서로 봉사하기를 즐거워하며 끝까지 겸손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더 풍성이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겸손으로 모이고,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존경하고, 귀히 여길 때에 서로 한 마음을 이룰 수 있으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주의 사랑과 겸손으로 하나가 될 때에 17-18절 말씀과 같이 아무에게도 악으로 대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선으로 대하여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한번 17절, 18절 말씀을 한 목소리로 읽어봅시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여러분, 사랑은 언제나 선을 이룹니다. 사랑은 언제나 화평을 이루는 것입니다.
여기서 ‘할 수 있거든’이란 말은 가능성을 다하라는 뜻으로써 진리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 힘쓰라는 것입니다.
Ruskin(루스킨)은 말하기를 ‘화평은 그저 저절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는 승리로만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화평이란 그저 남을 좋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서로 진리 가운데 거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화를 일으키는 사람은 벌써 그 심령이 진리를 떠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사람이 주안에, 그리고 진리 안에 거할 때에 주님의 사랑 안에서 하나를 이루며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바로 설 때에 하나님과 화평을 이룰 수 있으며, 그리고 진리에 거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이란 그저 남에게 비유를 맞추고 좋게만 한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진리 가운데 거할 때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엡4:2-3절에 보면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엡4:13절에 보면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바로 배우고, 바로 깨달아서 같은 마음을 가질 때에 성도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철저히 배우고, 바로 알아야 합니다.
이제 사도 바울은 결론적으로 말씀하십니다.
19-20절에 보면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고 했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의무는 서로 사랑하는 일밖에는 없습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에 속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저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실 것을 주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여러분,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해하고 용서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잡아먹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아해서 사랑한다면 언제가는 잡아먹을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좋아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도 무조건 용서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 좋을 수가 있습니다. 내게 맞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이 더 많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좋아서 사랑한다면 얼마가지 않아서 끝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가려주고, 이해하고, 용서하기 때문에 끝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 내게 해를 끼치는 사람에게도 선으로 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나를 이기고 세상을 이기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오늘 마지막 2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사랑입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말씀이 바로 그 뜻입니다.
여러분들께 지금 원수가 있습니까? 성도라고 해서 원수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사랑 앞에 원수가 있겠는가 생각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에 보면 이 세상에 마귀의 자식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은 마귀와 똑같이 행동하는 자들이라고 요8:39-47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진리를 따라 살려고 하는 성도들을 대적합니다. 이때 성도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 곧 사랑으로 대하기만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처리하시는 것입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라는 말은 악한 자들과 맞서 싸우라는 뜻이 아니라 사랑으로 끝까지 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를 양보하면서까지 화목주의로 나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불의의 동참하는 것이요, 비겁한 불 신앙의 행동임을 알아야 합니다.
악에게 지지말고 끝까지 사랑과 진리와 선으로 나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모 든 일을 승리로 이끌어주시며 공의롭게 처리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 그 사랑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겸손으로 허리띠를 동이고 서로 하나가되어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봉사의 사명, 선교의 사명을 힘차게 감당하여 하나님 앞에 칭찬 받고 자자손손 크게 복을 받고 귀하게 쓰임 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8: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