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25:31-33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가 종말에 대한 재미있는 비유를 이야기했습니다. 관객이 초만원을 이루고 있는 어느 극장 뒤에서 불이 났습니다. 관객들은 재미있는 연극에 온통 정신이 팔려 있었습니다. 극장 주인은 갑자기 불난 사실을 성급하게 알릴 경우에 벌어질 큰 혼잡을 예상하고 조용한 설득을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배우들 중에서 가장 인기 있는 배우를 한 사람 불러 자초지종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가서 관객이 당황하지 않도록 잘 설명을 하고 모두 차분하게 이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도록 유도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 인기 있는 배우는 막중한 사명을 띠고 무대 위에 서서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이러저러해서 불이 났는데 모두 차례를 지켜 대피하시기 바랍니다. 그랬더니 관객들은 이것이 연극인 줄 알고 모두들 박수만 칩니다. 아주 재미있어 합니다. 무척 실감나게 한다는 것이죠. 당황한 연극 배우가 이것은 연극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곧 불길이 번져 올 것이라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관객들은 더 열심히 박수만 칩니다. 아무도 믿어 주지를 않습니다. 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얼마쯤 지나자 극장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아우성을 칩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인생살이는 연극이 아닙니다. 인생살이는 연습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실제 상황입니다. 몇 년 전 북한의 이웅평 소령이 전투기를 손수 몰고 우리 나라로 귀순했을 때 서울 전역에는 요란한 공습 경보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리고 같은 시간에 TV에서는 "국민 여러분 지금 울려 퍼지는 사이렌 소리는 연습이 아니고 실제 상황입니다"라고 계속 방송이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 삶에서 연습이란 결코 없습니다. 모든 것이 실제 상황입니다. 혹시 연극이나 영화 같은 데서는 준비를 다 끝낸 후 총연습을 하면서 준비를 다시 점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여정에서는 그런 연습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상의 종말에 심판 주로 오실 주님께서 양과 염소를 가려서 분별하듯이 세상을 자기 백성과 백성이 아닌 사람들로 구별하는 심판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러분 말세다 말세다 하니까 무슨 연극인 줄 아십니까? 농담이 아니라 진담입니다. 먼 훗날의 이야기로 듣지 마십시오. 그렇게 듣고 넘길 일이 아닙니다. 세상 끝이 정말 왔습니다. 그러므로 종말에 대한 우리의 바른 자세가 필요합니다. '인자의 날'에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니라고 했는데 그래서 오늘은 '인자의 날'에 어떤 일들이 일어 날것인가를 생각하면서 은혜를 나누기로 하겠습니다.              

⑴,자기 영광으로 오심
예수 님께서 처음 이 세상에 오셨을 때는 정말로 초라하고 천한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낮은 자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세상 사람들의 외면 가운데 오셨습니다. 얼마나 외면 당했으면 있을 곳이 없어서 말구유에서 나섰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그분이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는 주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가지고 천군 천사들과 함께 오신다고 했습니다. 전에는 강보에 싸인 채 오셔서, 멸시와 천대를 받으면서 오셨지만 그의 재림 때에는 구름을 타시고 영광의 면류관을 쓰시고 오실 것입니다. 주님은 그때 오셔서 마치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려 놓듯이 모든 민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딤후4:1-2 "하나님 앞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는 말씀에서 주님께서 심판 주로 오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롬2:16 절에서는 "곧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라고 했습니다. 심판하는 그 날은 세상의 끝날 입니다.

역사를 보는 관점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역사를 하나의 돌고 도는 원형으로 생각하는 시각이 있습니다. 역사를 하나의 싸이클로 보아 반복, 순환한다고 생각하는 사관입니다. 그런가 하면 역사를 하나의 나선형으로 생각해서 돌고 돌면서 전진해 나간다고 생각하는 사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적인 사관은 직선적인 흐름으로 보는 시각입니다. 시작이 있고 끝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관입니다. 창1:1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선언을 합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창조하심에서 시작됩니다. 나아가 성경의 맨 마지막 부분인 계22:20에 가보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그리고 그에 대한 응답으로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하는 말로 끝이 납니다. 이와 같이 역사는 하나님께서 시작하셨고 주님께서 다시 오심으로 끝나게 될 것입니다. 창조로 시작되고 최후의 심판으로 끝이 납니다. 처음부터 끝을 향해서 시작한 것입니다. 이미 화살은 시위를 떠나 출발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마지막, 끝이 있을 뿐입니다. 모르든, 알든, 믿든, 믿지 않든 간에 분명 마지막은 있습니다. 아무튼 우리는 그 마지막 때가 꾀 궁금합니다. 그런데 예수 님의 교훈을 들으며 3년 동안 따라 다닌 제자들이 바로 이러한 문제를 놓고 그들이 들은 바에 따라 응답하면서 예수 님께 질문했습니다. 마24:3에 보면, 세상 끝에 무슨 징조가 있겠느냐고 제자들이 질문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 님께서는 마24:에서부터 3장에 걸쳐 세상 끝에 대한 말씀을 하고 계십니다. 어떤 징조가 있겠느냐고 질문한 제자들의 내심에는 다분히 기회주의적인 생각이 깔려 있는 것 같습니다. "어느 때쯤에 끝이 있습니까?" "무엇을 보고 끝이 왔다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습니까?" 이런 것을 미리 알아두고, 세상을 그럭저럭 기분대로 살다가, 끝이 올 때쯤 가서 정신을 차리고 바로 믿으면 되겠지 하는 속셈이 엿보입니다. 마치 우리 학생들 가운데 시험을 치르는 날을 미리 알고 싶어 안달하는 학생들과도 같습니다. 시험을 언제 보든지 그것이 무슨 상관입니까? 평소에 당연히 해야 될 공부를 꾸준히 해 나간다면, 어느 때에 시험을 치르든지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굳이 시험 날짜를 미리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되는대로 빈둥거리다가 시험 날이 코앞에 닥치면 '벼락치기'로 공부하겠다는 속셈입니다. 결코 바람직한 자세가 못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그렇고, 인생을 사는 것도 그렇습니다. 무슨 징조가 있든지, 어느 때쯤 종말이 올른지, 물을 것이 없습니다. 언제나 오늘을 나의 마지막 날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끝날 이 눈앞에 왔다는 생각으로 나날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한 자세입니다. 그것이 바른 신앙입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그 입장으로 한 번씩 생각을 돌려서 죽는 연습을 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주일 지키는 것도 일종의 죽는 연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주일만 되면 모든 것을 전부 중단하고(All STOP)하고 교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어차피 부르시면 다 중단하고 가야 하지 않습니까? 주일 지키는 것이 세상일을 중단하는 훈련이니 죽는 연습을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해야 합니다. 그래야 인자의 날에 구원의 반열에 설수 있기 때문입니다.

⑵,모든 것이 드러남
인자의 날에는 모든 백성들의 생각과 태도가 다 드러납니다. 사건과 사물의 大小가 다 드러납니다. 감추어진 것도 드러나고 어두운 것도 드러납니다. 고전4:5절에 보면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 했으니 자랑 할 만한 것도 드러나고 부끄러운 비밀도 모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양과 염소가 목자에 의해 갈라지듯 심판 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서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로 완전히 나눠지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는 것 같이 명백하고 확실하게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은 양과 염소가 섞여서 살수 있지만 그때에는 함께 살수가 없고 갈라져서 살아야 합니다. 지금은 가라지 와 알곡이 섞여져서 살수 있지만 그때에는 알곡은 곡간에 가라지는 불 속에 넣게 될 것입니다. 지금 가라지를 뽑지 않는 것은 가라지를 뽑으려다가 좋은 곡식이 뽑힐 것 같아서 뽑지 않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인자의 날에는 모든 것이 확연히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영광 중에 오시는 날은 인간 세상의 마지막 날입니다. 이 날은 하나님의 강권적인 역사로서 전 우주적으로 임하게 되는 최후의 날이며 땅위의 모든 백성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나타나시는 날인바, 이 날 이전에 예수 님은 공중에 재림하시고 지상의 성도들을 끌어 올려 공중에서 즐거운 잔치를 베풀며 휴거 되지 못한 사람들은 지상에서 칠 년 대 환란을 겪고, 심판을 받은 후 1000년 왕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날에 대하여는 예수 님도 모르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만 그 때에 임박하여 일어날 시대적 징조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노아의 홍수 때와 같고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 때와 같다고 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 노아와 그 식구들은 배를 만들어 타고 물위 높이 공중에서 머물며 생명을 구하고 새 하늘 새 땅의 주인이 되었으며 롯도 소돔과 고모라가 유황불 심판으로 전멸되었을 때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으로 구출되었습니다. 그 때와 지금의 시간적인 격차는 있지만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라는 차원에서 보면, 별 차이가 없는 것이 종말과 구원(휴거)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사람마다 보는 시각에 따라 그 원인이나 의미를 다르게 말할 수 있겠지만 노아나 롯의 경우를 보면 구원에는 다음과 같은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어떤 준비를 해야 합니까?

첫째,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분의 경륜과 섭리를 이해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하는 유일한 수단입니다. 기도하는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섭리에 슬기롭게 대비할 수가 있습니다. 노아는 기도하는 사람이 였으며 롯도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심판의 날에 대비하였습니다.

둘째,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일상 생활에서 정직하고 진실하게 그리고 순수하게 하나님의 공의와 질서를 따라 모든 유혹과 불의한 위협에 굴복하지 않고 의의 최후의 승리를 확신하며 에녹 처럼 엘리야 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즉 하나님과 화목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셋째,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노아나 롯은 현재로서는 전혀 짐작도 못할 무관한 일로 밖에 생각할 수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꼭 그렇게 되리라고 믿고 행동하였습니다. 히11:1에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라고 하였습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노아의 순종은 하나님께서 배를 지을 때 장은 얼마, 고는 얼마, 창은 몇 개, 칸은 어떻게 하라고 하신 말씀대로 치수하나 어김없이 순종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순종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덕이며 순종에는 이유나 변명할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이 특징입니다.

다섯째, 인내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120년 동안 아라랏 산에서 배를 짓는 동안 세상에 노아를 이해하는 사람은 그의 가족 이외에 한사람도 없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아는 바보나 정신병자 취급을 받는 외로움과 모멸을 참고 견디지 못하였다면 세상의 풍요롭고 향락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하였다면 노아는 배를 짓는 일이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면서 현재의 적은 고난이 장차 받을 엄청난 영광에 비교될 수 없음을 믿고 있었습니다.

여섯째, 모든 삶이 주님의 뜻을 따라 구원을 예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구원(휴거)의 날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그 때와 시간을 계산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허물과 죄로 말미암아 죽게 된 것을 대신하여 고난 당하신 주님을 생각하며 회개의 눈물을 뿌리며 용서를 비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맡겨질 일에 최선을 다 하며 하루하루를 경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주님이 언제 오시던지 당연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영접하게 되며 놀라거나 당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을 만나게 될 사람은 만날 시간을 계산하는 약삭빠른 사람이 아니라 항상 기도하고 의로우며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순종으로 모든 유혹과 의협을 참고 견디면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그 날을 충실히 준비하는 사람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심판 날에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루가 천년같이 천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긴급 명령은 "회개하라" 는 것입니다.


출저/이석권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