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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8:28-34
이 말씀에는 예수님이 “가다라” 지역에서 귀신들린 자들의 귀신을 쫓아내신 사실이 기록되었고 또 이 사실은 막 5:1-20과 눅 8:26-39 에도 기록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본문에 기록된 말씀이 비교적 간단한 편이며 또 “가다라”를 “거라사”로(막 5:1), “귀신들린 자 둘” 이 “귀신들린 자 하나”(눅 8:27)로 다르게 기록된 사실도 있지만 이것은 착오된 말씀이 아니고, 기자의 개성적 관찰에 따른 근거 있는 표현임을 아셔야 합니다. 더 자세한 해설은 그 본문을 강론할 때 부언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의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지만 ① 귀신의 역사와 귀신들린 자의 형편 ② 귀신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 문제 ③ 돼지 떼가 피해를 보는 문제 ④ 시내 사람들이 예수님을 배척하는 일등에서 상당한 설명과 교훈이 요구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1. 귀신들린 자 둘을 만나심(18절)
1) 예수님이 가다라 지방에 가셨을 때 귀신들린 자 두 사람을 만나셨습니다. “귀신들렸다” 는 것은 쉽게 표현하여 “미친 사람” 을 뜻하며 미친 사람의 행동은 정상인답지 않게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친 사람의 미친 언행은 귀신의 역할 따라 다르게 나타납니다. 미친 사람은 귀신의 조정에 의하여 자기의 인격을 상실 당한 사람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귀신들린 사람들은 ① 매우 사나운 상태였으며 ②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섭게 하였고 ③ 또 소리를 지르며 예수님께 나와 자기의 입장을 소원하기도 하였습니다(28절,31절).
2) 건전한 사람이 귀신에 사로잡히면 마치 술 취함에 끌리듯이 귀신의 지배를 받게 되므로 그의 모든 언행이 자기 아닌 귀신의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사람이 어떤 사고로 부상을 입어 뇌의 기능이 정상적이 못될 때도 헛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으나 이런 것은 귀신의 역사가 아닌 정신적 기능 불완전의 결과라 할 것입니다.)
2. 귀신들린 자들이 예수님께 취한 태도(29절,31절)
1)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여”라고 호칭하였는데 이 지식은 귀신이 알고 있는 바른 지식입니다. 따라서 귀신도 바른 지식을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행 19:15에서도 악귀가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안다”하였고, 고후 11:14에서는 마귀도 “빛의 사자로 가장한다” 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귀신은 완전한 지식의 소유자도 아니며 증언자도 아니고 오히려 거짓으로 꾀이는 자이기 때문에 “한마디 증언이 바르다”하여 그 증언을 의존하거나 따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2) “우리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하였으니 이 말은 “그 당시에 귀신들린 자가 예수님을 해코저 하지 않았으니 아무런 제제를 하지 말아 달라”는 뜻이요
3) “때가 이르기 전에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습니까?” 하였는데 여기에 “때가 이르기 전” 이란 “사탄을 심판 하실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작정하신 때에 자기들을 심판 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탄에 대한 심판은 1차,2차로 단행하십니다. 1차 심판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이요(창 3:15) 2차 심판은 종말 심판인데(계20:10) 사탄은 그때가 되기 전에 자기들을 괴롭힐 것을 퍽 두려워하였습니다.
4) 그러자 그 주위에 많은 돼지 떼(2,000마리;막 5:13) 가 있는 것을 보고 “만일 우리를 (이 사람에게서) 쫓아내실진대 저 돼지 떼들에게로 들여보내 달라” 고 간구하였습니다. 귀신들도 사는 거처가 있어야 했습니다. 주로 사람의 마음속이나(마12:44) 짐승에게나 아니면 두루 돌아다니는 생활 (욥 1:7) 을 하는데 예수님이 자신들을 그 사람의 마음에서 쫓아내려 하시니까 다음 처소인 “돼지 떼에게로 들어 갈 것이니 그것을 용납해 달라”는 뜻으로 “들여보내소서”(31절)한 것입니다. 귀신이 어떤 사람이나 짐승에게 범접할 때도 하나님의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신28:28). 따라서 하나님은 귀신의 고삐를 잡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욥 1:12).
3. 귀신의 간구에 대한 예수님의 허락(32절)
1) 귀신이 그런 간청을 하게 된 동기는 예수님이 이미 그 귀신들린 자를 치유해 주시려는 긍휼로서 능력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귀신이 그 압력을 받고 갈 곳을 찾아 간구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 귀신 병 들린 자가 치유를 받은 것은 오직 예수님의 긍휼에 근거한 일방적 은혜로 된 것입니다. 지금도 많은 환난 당한 자들이 이런 경우로 회복되는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어떤 환난이 있든지 기도로 구할 책임을 주셨습니다(시 50:15, 막 9:29).
2) 귀신의 간구를 예수님이 들어 주실 수 있는가? 에 대하여
① 예수님은 귀신의 지배자이시고 심판자이시므로 그만한 주권이 있음이 사실이고
② 또 이 허락은 공의를 굽히시거나
③ 귀신의 목적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④ 그것이 예수님의 뜻을 이루시는 섭리에 속하는 것입니다
3) 그 허락의 결과로 돼지 떼가 비탈로 내리달아 바닷물에 몰사 하였으니 이는 동편 갈릴리 바다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4) 예수님이 귀신의 간구를 허락 하신 데는
① 귀신을 쫓아내는 동시에 미친 사람을 낫게 해 주시기 위함이고
② 사탄의 간청(자기의 살길을 위한)은 그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간청했지만 결국은 이루지 못한 것이며
③ 예수님은 귀신과 짐승을 다 다스리시는 분임을 나타내셨고,
④ 시내 사람들의 재산을(돼지 떼 2,000마리)없애려는데 목적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탄의 간구가 결국은 용납이 안 된 것과 예수님이 귀신이나 자연이나 모든 생물까지 통치하시는 분임을 나타내신 것을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4.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을 기회로 타인의 돼지 떼를 죽게 하셨을까에 대하여 상상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1) 예수님은 귀신과 미친 사람과 돼지 떼와 그 주인들을 함께 연결하여 통치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마치 가나안 거민의 죄악과 이스라엘의 출애굽과 연관되고 바울사도 개인과 로마행에 동행한 선객들과 로마시민을 연관시켜 통치하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예수님은 물질만 의지하고 생명을 존중시하지 않는 돼지 떼 주인들에게 “생명의 주”를 나타내시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3) 돼지 떼가 바다에 들어가 죽은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만유의 주인이신즉(시 50:) 그렇게 하실 수 있고 또 이것은 영적능력으로 나타내신 것일 뿐 육체의 힘으로 몰아넣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람으로부터 혐의를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돼지 떼를 막대기로 몰아넣으셨다면 반드시 변상하셨어야 할 것입니다.
5. 돼지 떼를 잃은 시내 사람들의 태도(33절,34절)
1) 돼지 떼를 치던 자들이 이 사실을 “가다라”지역의 작은 성읍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그래서 온 시내(많은 성읍 사람들) 가 성밖으로 나와서 예수님을 보고 그곳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하였으니
2) 이들은 ① 예수님이 귀신들린 자들을 고치신 사실과 ② 그와 동시에 돼지 떼가 몰사한 것을 알았고 ③ 또 예수님의 여러 가지 소문을 들었을 것이지만 여전히 마음 문을 열지 못한채 생명의 주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3) 그들은 “귀신 병은 고쳐도 돼지 떼가 죽거나 재산의 피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영접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입니다. 그들은 바로 사람의 생명을 돼지(재산)보다 귀하게 여기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생명보다 재산을 귀하게 여길 때 진리는 수납할 수 없습니다(마6:24, 19:22).
결론적으로 이 말씀은 ① 예수님의 절대적인 권세와 통치 ② 긍휼과 치유의 은혜 ③ 물질과 관련한 생명의 가치를 깨우치심 ④ 바른 선택을 촉구하시는 전도의 방법 등을 교훈하신 것입니다.
출처/지영근 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