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5:9-10

   은혜 많이 받으십시오, 은혜 많이 받았습니다 라는 말은 듣기 좋은 인사말입니다. 바울은 본문 10절에 은혜에 대하여 세 가지를 고백합니다. 첫째로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둘째로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 셋째로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그러면 은혜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 것입니까? 은혜란 헬라어로 카라스 라고 합니다. 이 말이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은혜의 여러 의미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2:52). ‘사랑스러워’라는 말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가 곧 은혜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매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행2:47). ‘칭송’이 은혜라는 말입니다. 칭송은 격려 또는 칭찬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은 두 렙돈을 헌금한 가난한 과부를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태를 지내서 보르기오 베스도가 벨릭스의 소임을 대신하니 벨릭스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을 구류하여 두니라”(행24:27). ‘마음을 얻는다’는 말이 은혜를 받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골3:16). 감사하는 마음이 은혜 받은 마음입니다. 감사는 “무화가 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합3:17-18). 하박국 선지자의 기쁨이 은혜입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벧전2:19). 은혜받음은 아름답습니다. 슬픔은 고통스러우나 참는 모습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감동과 은혜는 다르다

   마돈나는 팝 가수 중에는 최고의 미모를 타고난 여인입니다. 그 뛰어난 미모에 뛰어난 가창력을 지닌 마돈나의 노래는 인기, 부, 명예, 영광을 보장했습니다. 그의 음반판매는 상상을 초월하며 그의 인기는 말로 못합니다. 한 무대의 개런티만 해도 백만불이 넘는 때가 있다고 합니다. 마돈나는 공연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을 감동시켰습니다.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습니다. 이런 마돈나를 두고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평하지 않습니다. 마돈나는 몇 번의 이혼을 했고, 우리 앞에 추한 뉴스를 많이 전해준 여인입니다. 마돈나는 타고난 미모와 탁월한 노래 솜씨를 가지고 있었지만 창녀의 이미지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은혜 받은 성도의 모습은 슬픔 중에도, 고난 중에도 아름다운 것입니다. 이 아름다움을 지니고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제가 미국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필라델피아를 열광시킨 행사가 있었습니다. 롤링 스톤즈라는 가수가 공연을 했습니다. 뉴스에서 보도된 자료에 의하면 20만명이 모였다고 했습니다. 한 지역에서만 온 것이 아니라 구라파, 동양, 세계에서 모인 열광적인 팝 팬들이 20만명이 모였습니다. 이 열광의 분위기는 무아지경에 빠지는 공연 모습을 텔레비전에서 방영했습니다.
   여러분, 감동과 은혜는 다릅니다. 연주를 통해서 감동받을 수 있고, 스포츠 관람을 통해서 감동 받을 수 있고, 영화 한 편 잘 보고 감동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월드컵 4강을 해도 광화문에서 죄를 회개하고 거듭났다는 소식을 한마디도 듣지 못했습니다. 감동은 인간의 감정의 영역입니다. 그 이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감동은 사람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오히려 사람이 감동받고, 감동을 컨트롤 하지 못해서 2, 3차 사고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이 감동은 오히려 사람을 혼란시킵니다. 여러분은 오늘 감동을 받기 위해서 설교를 듣지 마시기 바랍니다. 감동받기 위해서 예배드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변화받기 위해서 은혜 받으십시오. 주님이 쓰시는 사람으로 변화되기 위해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삶을 살기 위해서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은혜를 받으면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이웃을 생각합니다. 돈 밖에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돈을 사용할 줄 압니다. 자기 밖에 모르던 사람이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할 줄 압니다. 이와 같은 변화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입니다.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은혜와 감동을 혼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 세속적인 감동을 구하는 예배를 드리고 있고, 감동을 구하는 집회가 있습니다. 현혹되면 안 됩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여호와는 네게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여기에서 하나님은 세 가지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여호와는 복을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는 하나님, 평강 주시기를 원하는 하나님이다. 이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네가 축복기도를 하라.”고 지시를 했습니다. 이 말씀만 보면 ‘아, 하나님은 은혜주시기를 원하는 분이구나!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은혜가 넘치겠구나!’라고 오해하시면 안 됩니다.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은혜 베푼다는 말씀을 거듭거듭 하시면서 똑같이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수 천대까지 은혜를 베풀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은혜는 공짜 원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지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이 은혜가 더욱 넘치고 천대까지 지속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잠언 11장 27절에 보면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는 은총을 얻으려니와 악을 더듬어 찾는 자에게 악이 임하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을 간절히 구하는 자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신다고 했습니다. 야고보서 4장 6절에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5장 29절에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은 세 구절을 통해 보면 은혜의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은혜 받고 은혜 받은 대로 살면 더 큰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나 은혜 받은 것을 응답하지 못하면 있는 은혜도 빼앗아 버린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 성경은 경고합니다. 은혜는 받고 더 받고, 이 은혜가 풍성하여 넘치는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은혜의 세계는 부익부 빈익빈의 세계입니다. 우리는 은혜받는 욕심을 가져야 합니다.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야구와 신앙원리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이 있었습니다. 경기 중에서 야구만큼 재미있는 경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야구에 담긴 묘미가 우리 인생살이와 우리 신앙생활에 너무 오묘하게 적용이 됩니다. 그래서 경기를 보다가 ‘저 대목은 바로 우리 교회생활에 해당된다.’ ‘저 대목은 우리 인생살이에 해당된다’는 것을 연결하면서 보면 게임이 재미있습니다.
   야구는 선수들이 공을 칠 때 3할 대만 쳐도 일급 선수입니다. 3할 대만 치면 그 선수의 수명이 10, 20, 30년이 됩니다. 40대가 되어도 그 선수는 팀에서 쫓아내지 않습니다. 10번 쳐서 7번 실수하고, 3번만 히트를 쳐도 일급 선수가 되는 것이 야구선수입니다. 세상은 7개 실패하고 3개만 성공하면 다 실패합니다. 세상은 그렇습니다. 그러나 야구는 그렇지 않습니다. 7번 실수해도 3번만 치면 일급선수가 됩니다. 여기에 인생의 원리가 있습니다. 팀도 마찬가지입니다. 야구팀은 아무리 훌륭한 선수만 모아도 전 게임을 다 이기는 팀이 없습니다. 졌다가 이겼다가 합니다. 6할만 이기면 우승합니다. 5할만 이겨도 그 팀은 현상유지가 됩니다. 6할만 이겨도 그 팀은 잘하는 팀입니다. 부부싸움을 할 때도 6할만 이겨도 승자입니다. 100% 이기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3할 인생이 야구인생에서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 야구에는 홈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선수가 나가서 한 바퀴 돌아서 홈으로 들어오면 1점을 얻습니다. 야구의 홈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홈은 가정이라는 말입니다. 가정이 중요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가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교회에 와서 예배를 바로 드리는 것입니다. 가정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점수가 올라가야 합니다. 아무리 잘해도 홈을 밟지 못하면 점수를 얻지 못합니다.
   또 야구에서는 희생 플라이가 있습니다. 희생 플라이라는 것은 내가 아웃되면서 우리 팀이 점수를 얻는 것입니다. 아주 묘합니다. 다른 게임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나는 아웃되는데도 우리 팀은 점수를 얻습니다. 이것이 희생플라이입니다.
   또 희생펀드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아웃되지만 우리 팀 선수는 삽니다. 나는 아웃되고 다른 선수는 살려 내는 것이 희생펀드입니다.
   3할만 치는데도 3할 대 선수가 다 모인 팀이 없습니다. 그만큼 전 선수가 3할 대를 친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3할 대 선수가 많은 팀이 이기는 팀입니다. 2할 대만 치면 항상 감독의 눈치를 봅니다. “너 정신 차리지 않으면 퇴출당해.” 그러나 3할 대를 치면 잘한다고 합니다. 4할을 치면 그선수는 영웅입니다. 우리나라에서 4할 대를 친 선수는 백인천 선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야구인생은 3할 인생입니다. 그런데 3할만 치는데도 왜 게임이 되는가? 7번은 안되고 3번만 치는데도 왜 게임이 되느냐 하면 3할 친 9명 선수들의 팀웍이 이기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웃되면서도 남을 살려내고, 내가 아웃되면서도 점수가 올라가는 이 오묘한 게임을 할 줄 아는 팀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은혜의 부익부

   저는 솔직하게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앞에 신앙생활 하는 것이 3할 이상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 모습을 볼 때는 ‘나는 3할이 안 되는 목사구나! 나는 1할 5푼 밖에 못 치는 목사구나!’라고 자책할 때가 많습니다. 야구인생의 원리로 보면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3할 대 타자로 사는 것이 최선입니다. 우리가 3할 대만 살아도 하나님 앞에 떳떳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 3할 대 신자들만 많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못할 일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시간, 재능, 물질을 3할만 하나님 앞에 드려 보십시오. 하나님 앞에 못할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야구 인생의 오묘한 원리는 우리 인생을 말하고, 성경의 진리를 말해줍니다. 다른 운동경기는 사람이 만들었는지 몰라도 희생플라이, 희생펀드 같은 규칙이 있는 야구는 하나님이 창조한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은혜의 부익부 빈익빈의 원리에서 부익부의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받았습니까? 더 큰 은혜를 사모하십시오. 하나님은 은혜의 한계를 정하지 않았습니다. 시편 18편에 하늘에 쌓아둔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어느 정도 많습니까? 하늘에 쌓아둔 은혜입니다. 이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된 은혜입니다. 이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의도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오늘 우리에게 고백을 하면서 이런 것을 남겨 줍니다. 본문 8절부터 보면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사도 바울은 자기를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라”는 인생으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함으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즉 내가 하나님 교회를 핍박했던 자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사도를 세웠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10절에 보면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내가 은혜를 받았는데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모든 사도 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했습니다. 이 은혜를 받은 자는 더 많이 수고하는 것이 함께 있습니다.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더 많이 수고하는 것입니다. 더 많이 수고함으로 더 큰 은혜를 받습니다. 이 원리를 바울이 강조합니다.

   맺는 말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미국의 메이저 리그에 가서 활동하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다섯 명은 금년에 성적이 오르지 않습니다. 박찬호를 비롯해서 김병현까지 바닥을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한 사람, 최희섭은 플로리다 팀에서 잘하고 있습니다. 홈런 14개를 전반기에 치고, 타율이 2할 7푼 6리입니다. 그래서 그 팀에서 3번째로 성적이 좋은 선수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선수가 메이저 리그에서 타자로서 그런 자리에 섰다는 것은 굉장히 놀라운 성적입니다. 그래서 최희섭을 그 팀에서는 3할 대 타자가 될 것이라는 예상으로 굉장히 아낍니다.
   최희섭의 성공스토리 뒷이야기를 보면 감동적입니다. 이 사람은 미국이라는 무대에 와서 야구로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 하루에 천 번 이상씩 혼자서 공을 친 것입니다. 백악관의 만찬초청도 거절을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 인터뷰, 신문사 인터뷰를 대부분 거절했습니다. 이 사람은 홈런을 치고, 타율이 높아가고 동양인인데 두각을 나타냅니다. 몸집도 미국인 못지 않습니다. 얼마나 덩치가 좋은지 유망한 선수라 해서 사방에서 인터뷰하자고 하지만 전부 거절합니다. 내가 홈런을 쳤다고 그런 데에 쫓아다니면 내 관리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희섭은 자기관리를 위해서 대접 받는 것은 전부 절제하고, 연습해서 전반기에 그런 성적을 올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큰 은혜를 사모는 할 줄 알면서 은혜 받고 더 수고할 줄 모릅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주신 하나님 은혜가 헛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여러분, 은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더 많이 수고하시기 바랍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