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스이신 예수님 (요1:1-3)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것이 무엇을 이야기하는 것이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 잘 믿는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한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도원은 신학공부를 하기도 하고 앞으로 수도사가 되겠다
고 훈련받는 신앙인들, 전문신학생들이 모인 곳이 수도원입니다.

이 수도원에서 훈련받는 학생들에게 한가지 불평이 생겼습니다. 그것은 수도원 원장님이 한
학생만을 특별히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원장님에게 "왜 이 학생만 사랑하고, 이 학생만
더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까? 다른 사람들은 뭡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원장님은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어느날 학생들을 다 불러서, 학생들에게 새 한 마리씩을 주
었습니다. 그리고는 학생들에게 "내가 너희들에게 새 한 마리씩을 주었는데, 아무도 보지 않
는 곳에 가서 이 새를 죽여 가지고 오너라."하고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학생들은 그까짓 것이 무슨 어려운 일이냐며 새를 죽여서 약속 시간에 다 왔습니다. 원장님
이 학생들에게 어느 곳에서 새를 죽였느냐고 묻자, 각자 이렇게 대답합니다.

"저는 들판에 나가서 죽였습니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산 속에 가서 죽였습니다. 그 산에는 정말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캄캄한 밤중에 으슥한 곳에 가서 새를 죽였습니다. 그 곳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우리집 골방에 들어가 새를 죽였습니다. 문을 닫고 했기 때문에 정말 아무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원장님이 사랑하는 그 학생만은 약속 시간에 오지를 않는 것입니다. 학생들은 웅
성거리며 "원장님이 그토록 아끼는데도 약속도 안 지키고 뭐하는 거야." 라고 한마디씩 합
니다.

날이 으슥해져 어두워 지자, 이 학생은 돌아왔습니다. 얼굴엔 지치고 피곤한 모습이 역력합
니다. 그런데 웬일입니까? 그 손엔 아직도 새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
고 학생들은 "원장님 말씀도 안 듣고 새를 살려 갖고 오다니." 하며 그를 조롱하고 불평을
늘어놓는 것이었습니다.

원장님은 그 학생에게 "너는 왜 내 말을 안 듣고 그 새를 산채로 갖고 왔느냐?" 고 물었습
니다.

"원장님께서는 이 새를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 가서 죽이고 오라고 하셨는데, 나는 이 새를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에 가서 죽이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보고 계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높
은 산에 올라갔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나는 캄캄한 밤을 기다렸으
나, 그 캄캄한 밤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나는 깊은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았지만, 그 곳
에도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어느 곳을 가 보아도 하나님이 안 계신 곳을 찾을 수가 없었습
니다. 결국엔 이 새를 죽이지 못하고 돌아 왔습니다." 라고 학생은 대답했습니다.

특별히 사랑받는 사람은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성전 안에서는 하나님이 계신 것처럼
하고, 성전문밖을 나서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살지는 않습니까? 이 세상을 향해서 내
가 하나님을 잘 믿고 신앙 좋다는 것을 무엇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면서도 거짓말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출세하려 하고, 조금
이라도 손해 보지 않으려 하는 것이 무슨 하나님을 믿는 것이겠습니까? 진정 하나님을 믿는
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이 어디에 계시던지 그것을 믿고 그
앞에 계신 것처럼 행동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가끔, 자동차 안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습니다. 갑자기, 차가
새치기 해 들어오면 "여러분, 아시지 않습니까?" 그 안에도 하나님이 계신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오늘 성경에 보게 되면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이냐에 대해서 분명하고 확실한 대답
을 사도 요한이 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 마음 속에 생각나는 일이 있습니다. 수년 전 일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경 만드는 성서 공회, 기독교 서적을 만드는 기독교 서회, 그리고 기독교 개신교
각 교단이 모여 하나되자는 기독교 총연합회를 고소했습니다.

왜 고소를 했는가? 이 사람이 하는 말이 성서공회, 기독교 서회, 기독교 총연합회 등의 개신
교가 저작권법 위반을 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저작권법 위반을 했다는 말입니까?"
" `당신들이 하나님 믿으세요.`라고 하면 세상사람들은 당연히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생각한
단 말이오."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생각한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 하나님이 언제 기독교의 하나님이냐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쓸 때, 여타 종교에도 하나님이 있고, 다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
느냐 이것입니다. 그런데, 유독히 당신들만이 당신들의 하나님으로 쓰고 있으니, 이것이 될
법한 일이냐고 하며 고소를 한 것입니다.

아닌게 아니라, 개신교가 한국의 복음화를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이란 용어를 쓴 것이 큰
영향을 준 것은 사실이기도 합니다. 물론, `하나님`이란 용어는 여러 신들을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란 용어를 `기독교의 하나님`으로 만들어서 사용했습니다.

결국엔 이 일은 헤프닝으로 끝났고 말았지만, 오늘 `로고스`란 말이 이와 같았습니다.
이 `로고스`란 말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으로 해석했는데,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 헬라말로 `로고스`입니다. "태초에 `로고스`가 계시니라."

그런데, 이 말씀이 누구냐? 예수님입니다.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로고스라고 이야기를 합니
다. `로고스`라고 하는 말은 `원리, 이성, 정신` 이런 뜻을 갖고 있습니다. `로고스`라고 하는
말을 sociology 라고 하면 `logy`라고 하는 것은 원리라는 뜻입니다. `biology`의 `logy`가
로고스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의 원리`라는 말입니다.

사람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순서대로 진행되고, 겨울이 지나면 봄이 되고 한
해가 바뀌고, 아침이 되면 저녁이 되고, 저녁이 되면 아침이 되고, 봄에 씨를 뿌리면 가을
에 거두고 이런 우주의 조화들을 보면서 한 원리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리를 가리켜 `로고스`라고 했던 것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또 `로고스`를 지혜요, 능력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요
한이 `태초에 로고스가 계시니라`, 이 예수님이 로고스라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 `인
생의 원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주만물의 모든 원리는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요한이 이야기하는 로고스가 `예수님`이라고 할 때 `예수님`은 `온 우주와 만물
의 근본원리이고 능력과 지혜의 근원`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레온 모리스라고 하는 성서학자는 `로고스라고 하는 한마디가 수천수만의 선교사를 파송한
것보다 초대교회 복음 전파가 막대한 효과를 가져왔다` 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테네에 가서 사도바울이 복음을 증거할 때 이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신들을 섬기고 있었
습니다. 누군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누군가 하고 있는데, 그 신이 누군지는 모른단 말입
니다. 그 때에 사도바울이 가서 그 알지 못하는 신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 분이 바로 예수님
이다 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온 우주의 원리이고 여기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하며 그 손 안에 모든 것이 있다
라고 이야기했던 것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나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로 인해 원자폭탄을 만들고 원자로가
발명되어 세계 역사의 전환점이 되었던 것처럼, 우주의 근원이신 예수로 인해 역사가 새롭
게 쓰여지고 만들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사도요한은 예수님이 로고스라고 하면서, 로고스이신 예수님은 바로 하나님이시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단들은 예수님을 가리켜서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단들은 예수님
을 피조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피조물이라고 합니
다. 피조물은 우리 사람과 같은 질이라는 것입니다.

옆의 이슬람 사원을 가보면 최근 들어 1억을 들여 대문을 크게 바꾸었습니다. 터키의 타일
을 가져다가 문을 이쁘게 잘 만들어놓았는데, 우리는 유일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그리고
`알라는 그 분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데, 알라가 위대한 선지자
고 예수님은 그 밑의 선지자라고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이단 종파들이 그렇게 이야기를
한단 말입니다.

예수님이 피조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사도요한은 예수님은 창조주라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1-3절까지 있는 말씀이 그것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그 지은 것이 하나도 예수님이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
니다.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분으로 믿고 계십니까?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선지자로 믿는다던지, 아직까지도 예수님을 단순히 구원자로만 믿는다
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많은 기적을 베푸시지 않았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셨
습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여서 부자되게 했다는 것에 관심
을 갖지 않습니까? 그러나, 주님의 관심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창조주 하나님이
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데 있는 것입니다.

풍랑이는 바다 위를 걸어가시는 예수님. 그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이다라고 생각하다
가, 하나님 외에는 이 일을 하시는 분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병든 자를 고치십니다. 죽은자를 살리십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만이 하시는 일인 것입니다.

오늘도 아침이면 저녁이 되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치면서 꽃이 피고 열매를 맺습니다.
이런 일들이 내 힘이나 내 의지로 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힘이 아니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예수님이
지으신 것이기 때문에 그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거듭나 새생명 얻습니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합니까? 예수님이 창조주 하나님
이시기 때문에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생명을 준다는 것은 살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살리는 것이 쉽습니까? 죽이는 것이 쉽습니
까? 미안한 말이지만, 죽이는 것은 저도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
명을 살리는 것은 주님만이,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
어야 합니다.

요한1서5:11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순간, 우리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는 것입
니다.

여러분, 이 세상 살고 죽는 것이 누구의 손에 있다라고 믿고 있는 것입니까? 예수님 당시
의 사람들은 누구나 한결같이 "로마사람의 손에 우리 인생의 운명이 달려 있다." 라고 이
야기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메시야는 `능력있는 메시야`입니다.
많은 군대를 거느리고 로마를 쳐 부수는 그런 메시야를 생각했던 것입니다. 다들 로마의 손
에 인생의 운명이 걸려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 미국의 손에 세계의 운명이 달려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러
분, 로마는 망했습니다. 사람은 강한 것같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약함보다 못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만이 강하십니다.

지난 주간, 최규선씨가 대통령 노벨상 로비를 했다는 뉴스가 있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사
람이 "그 사람 참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제가 정색을 하며 "그사람 대단
한 사람 아닙니다. 뭐가 대단합니까? 진짜 대단한 사람은 이 땅에서 예수 잘 믿는 사람입
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잘믿는 사람이 대단한 사람입니다.

오늘도 남.여 선교회가 모입니다. 어느 교회, 어느 모임을 가도 모이면 그렇게 잘되는 곳이
많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안되고 힘들 때에 결론이 무엇입니까? "사람이 많이 모이
면 될 텐데.", "여전도회 나눈 것을 합치면 될 터인데." 라고들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인다고 될 것 같습니까? 우리 인생은 수천 수만명이 모여도 약할 수 밖에
없습니다. 다 할수 있을 것같아도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줄로 믿습니
다. 진짜 여전도회가 잘 되고, 남선교회가 잘되기를 원하십니까? 우리 약함을 솔직히 고백하
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창조주이신 예수님 앞에 간절히 기도하고, 우리를 힘있게 하시고, 큰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교회가 부흥되기를 원하십니까? 창조주이신 예수님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무엇이 우리를 부
흥시키겠습니까? 무엇이 우리를 힘있게 하겠습니까? 사람의 힘이 아닙니다. 하나님만이 우
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우리를 살게 하시는 은혜를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 세상엔 우
리가 이해하지 못할 일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무디라고 하는 유명한 부흥사가 있습니다. 이 부흥사 목사님과 함께 찬양을 인도하는 생키
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이 하루는 찬양을 끝내고 내려왔더니, 어떤 분이 찾아와서 "
혹시 남북전쟁때 북군으로 참전했던 적이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예.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저도 남북전쟁때 참전했는데, 저는 남군으로 참전했습니다. 하루는 상부의 지시를 받아 캄
캄한 밤에 기습공격을 나갔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보초를 서고 있다가 갑자기 손을 벌
려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사람을 죽이려고 방아쇠를 조준하던 순간, 어릴 때 어머
니가 부르시던 찬송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총을 내려놓고 속으로 찬송을 불렀습니
다."
전쟁터가 어떤 곳입니까? 숨소리 하나 내지 말아야 할 곳 아닙니까? 잘못하면 죽는 자리
아닙니까?
"자세히 가서 그 분의 얼굴을 보고 놀랍구나 하고 생각했는데, 그 분이 바로 당신이었습니
다."

전쟁터에서도 내가 사는 길은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알고 찬송하는 사람. 그 사람을 하나님
이 보호해 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아브라함 링컨. 미국의 16대 대통령입니다.
그런데, 어디를 보아도 대통령 될만한 구석이 없는 사람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습니
다. 조실부모했습니다. 중학교 중퇴입니다. 장사한 것이 파산해서 빚 갚는데 15년이 넘었습
니다. 그가 한 직업이 열가지가 넘습니다. 농부, 뱃사공, 장사꾼, 군인, 우체국 직원 등.. 결
혼하려 약혼했는데 첫 약혼자가 죽고, 두 번째 결혼에서 얻은 두 아이가 다 죽었습니다. 그
가 60도 못 살고 57에 죽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의 인생을 가리켜서 가난한 사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는 성경에 있어서만은 신학자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그는 자기 방에서 무릎 꿇고, 통성 기도하며, 매일 묵상하며 감사기도의 삶을 살았다
는 것입니다.

게티스버그 연설은 2분밖에 되지 않지만, 미국사에 남는 명연설입니다. 그 연설의 마지막 부
분이 이렇습니다. "주님의 품 안에서 자유의 국가가 될 것입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
을 위한 정부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만 이야기하고 그 앞에 있는 "주님의 품 안에
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민주화하려 해도 되지 않습니다. 주님이 은혜주
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 링컨의 고백입니다.
16대 대통령 취임연설의 시작이 이렇게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저는 결코 직
면해 있는 이 큰 어려움을 성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가지고 있던 인생의 최대 유산
은 성경책 한 권이었습니다. 그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을 믿는 일 밖에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때에 우리의 창조주로 역사한다는 사실을 믿으
시길 바랍니다. 그러기 때문에 성경은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눈이 나쁩니다. 엄마를 닮았으면 눈이 좋았을텐데. 우리 아이들이 둘다 아빠
를 닮았습니다. 큰 아이가 초등학교를 들어갔는데, 아이가 공부하는 것도 시원찮고 머리도
아프다고 합니다. 그래서, 안과에 데리고 갔더니, 눈이 나쁘다는 것입니다. 안경점에 데리고
가서 안경을 맞춰 줬더니, 이 아이의 첫마디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엄마, 세상이 이렇게
밝은거야?" 눈이 나쁘니까, 세상이 뿌옇게 보이다가 안경을 끼고 나서 밝게 보이는 것입니
다.

우리 인생을 소망있게 하고 빛으로 이 세상을 밝게 볼 수 있는 렌즈가 여러분에게 있습니
까? 공부많이 하면 됩니까? 유학보내면 될 것 같습니까? 유명한 의사를 찾아가면 소망이
보일 것 같습니까? 여러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소망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 있으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삶의 통찰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마당에 있는 화분을 거실로 옮기라고 했습니다. 이 아이는 아버지의 말
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화분들을 옮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제일 큰 화분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힘을 써도 안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옆에 계시다가 "다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들이 "다 했는데, 이것만은 못 옮기
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하시는 말이 " 넌 다 하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아들은 "아네요. 다 해보았습니다. 하지만 더 이상 할 수가 없습니다." 하자 아버지는 "너는
이 아빠한테 도와달란 말을 하지 않았잖니."

내 힘, 내 능력으로 해 보았지만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참 신앙인이 아닌 것입니다. 내가 좋은 의사를 만날 수도 있고, 좋은 약을 먹을 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이 우리의 빛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여러분의 빛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1장18-19절에
18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
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의 눈이 밝아지게 되면, 세상사람처럼 내 힘, 내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
님이 주신 은혜대로 사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최선으로 생각하고 거기에 소망을 걸고 살아
가는 우리들이 마땅히 되야 될 줄로 믿습니다.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예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너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
지 않을 터이요 내 손에서 저희를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주님이 우리를 붙잡아 주시고 주
님이 우리를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처럼 악한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공산당입니다.
지난 금요일, 러시아 선교사 강태원 목사님의 말씀에도 소개되었지만, 러시아 공산당은 대학
졸업논문을 쓸 때,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이유를 쓰지 않으면 그 논문이 통과가 되지 않는
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망한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이 공산당보다 더 악한 신자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악하고 음란한 세대라고 했습니다. 음란하다는 것이 무엇입
니까? 창녀라는 것입니다. 악하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마귀와 같다는 것입니다. 이 사람들을
바리새인들이라고 합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악하고 음란한 세대입니까? 이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날때마다 `표적을 보
여달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면서 `내려와 봐라, 그러면 믿겠다.`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하면서도 그 표적을 보여 주면 믿지 않는 악한 세대들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니까, 내가 요구한 것을 못 받았다는 것입니다. 표적은 구하면서도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표적을 보여 주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 모르고 감사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순종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표적을 보여 주시지 않았습니까?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는 기적적인 역사를 이루지 않았습니까? 병든자를 살리고, 눈먼자를 눈 뜨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표적만을 구합니다. 그리고 주님을 믿지 않습니다.

오늘, 우리 가운데도 이런 악한 신앙인들이 있어서는 안 될줄로 믿습니다. 내가 병낫기를 원
합니다. 우리 가운데도 `내가 하나님이 계시면 왜 병이 나?`, `하나님이 계시는데, 내가 왜
어려움을 겪어야 하나?` 하지 않습니까? 여러분, 어려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닙니다. 기도하
면 하나님이 문제 해결해 주시고 승리케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은혜를 알아야 합니다. 은
혜를 모르는 사람처럼 악한 사람들이 없습니다.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님은 로고스` 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물을 만
드신 창조주 하나님, 이 시대의 원리란 말입니다. 그 하나님이기 때문에 내게 생명도 주셨습
니다. 그 하나님이기 때문에 나를 살게 하는 은혜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세상 어느 것에 소망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만이 나의 소망의 빛 되심을 믿으시길 바
랍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주신 놀라운 능력을 바라보고, 늘 기도하고 힘쓰는 우리들이 마
땅히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작년 1월에 있었던 일입니다. 경북 영덕에 구개 교회가 있는데, 이 교회가 20년이 넘도록 수
리한번 못해서 다 낡았습니다. 이 교회에 가난한 김상태 집사님이 마음속에 늘 `하나님, 우
리 교회는 이렇게 낡습니까? 왜 다른 교회는 멋있게 잘 지었는데.` 하고 원망하다가 그 마
음에 은혜를 받아서 `하나님, 저를 통해서 이 교회를 수리케 해 주시길 원합니다.`하고 기도
했습니다.

남들은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갈 때에 돼지 머리를 얹어놓고 고사를 합니다. "하나님만이 나
를 살게 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고 그냥 고기를 잡으러 나갔습니다. 이 집사님이 고기잡
은 것이 신문 사회면에 `한국판 베드로의 기적`이란 제목으로 크게 났습니다.

여러 사람이 고기 잡으러 나갔는데, 같이 간 사람들은 더 큰 배에 많은 사람이 있었지만 고
기를 잡지 못했습니다. 이 집사님만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10㎏짜리 광어를 2370마리 잡
았는데 한 마리에 169,000원을 받았습니다. 다 합쳐서 4억 7천만원 받았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자기의 꿈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우리 교회 수리가 아니라 새로 짓
게 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나를 통해서 이 일을 감당케 하여 주시옵소서.` 그 날 고기 잡으
러 나가서 5m짜리 밍크고래를 잡았습니다. 5천만원에 팔았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이 시대 속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 이것을 누가 움직입니까? 이 움직임
속에서 이 은혜를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냐? 기도하고 사모하는 사람만이 이 은혜를 받고
감사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얼마나 이 시대가 악합니까? 하나님이 이 자연을 역사하고 섭리함에도 불구하고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 믿지도 않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런 일이 있어서는 절대 안 될 줄로 믿
습니다.

누구에게나 다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고 시련이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 하나님은 역사하
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그 주님 앞에 서서, 주님이 생명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케 해주신다는 사실을 믿으면서 우리가 이 믿음안에서 승리하면서 살게 될수 있기
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고급 종교입니다. 단순히 예수 잘 믿고, 도덕적으로 죄 짓지 않는 것만이 아
닙니다.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감으로, 이 시대에 하나님을 잘 믿는 자
로 승리하는 한 주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출처/오찬우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