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은 존재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
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말씀은 선포됩니다. 선지자를 통하여, 사도들을 통하여, 오늘날 설교자를 통하여, 교사들
을 통하여,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은 선포됩니다.
또한 말씀은 들려집니다. 이 말씀이 사람의 귀에 들리고 마음에 새겨집니다. 그래서 헬라
어에서 두 가지 용어로 이 말씀을 구분하는데, 그냥 존재하는 말씀인 로고스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믿든 안 믿든 존재하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이 사람의 귀에 들려질 때 레헤
마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는 말씀입니다. 슈퍼마켓에 아무리 식품이 많이 있
어도 그것을 사서 먹지 않으면 내게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로고스로 계
셔도 이 말씀을 듣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이 말씀이 내게 들려지지 않으면 내게 아무런 소용
이 없습니다. 존재하는 말씀이 아니라 레헤마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으로 산다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실 때 사단이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여 증거를 보
여 달라고 합니다.
그때 주님은 신명기 8장 3절을 인용하시면서 “사람이 떡으로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주님의 선포는 우리에게 대단히 중요
한 신앙생활의 원칙이 되는 것입니다. 저는 ‘말씀으로 살았는가’라는 이 주제를 3가지의
의미로 나누면서 생각해보려 합니다.

투자하고 헌신하는 삶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내가 얼마나 투자하고 헌신했는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한번 물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고 나서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성경을 일독 해 보셨습니
까?”
예수를 믿은 지 일년 정도 되신 분들은 이 질문에 큰 부담이 없을 것입니다만 한 오, 육
년 정도 신앙생활하신 분이 성경을 일독하지 않았다면 좀 부끄러운 일입니다. 저는 이렇게
또 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당신은 무엇을 믿고 있는가?”
라는 것입니다. 사랑과 집착은 다릅니다. 사랑하면 서로의 말을 들어줍니다. 그리고 믿어
줍니다. 또 약속대로 서로 실천해 줍니다. 그것이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집착은 다릅
니다. 스토커는 사랑이 아니라 집착입니다. 상대방의 말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이
무엇이라고 말하든 자기 욕심대로 하는 것이 집착입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만약 성경을 일독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다는 이 말도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 대해서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투자하고 그 말씀이
내 말씀으로 되기 위해서 얼마나 투자하며 살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말씀으로 사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사모한다면 예배를 한 시간이라도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토
시 하나를 놓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삶에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 말씀이 무엇을 강조하는지, 내가 살아가는 삶의 틀을 잡아주고 방향을 잡아주고 목표를
보게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듣기를 사모해야 하고 읽기를 좋아해야 하고 배우기를 힘써야 합니
다. 이 말씀을 향하여 내가 다가가야 합니다. 이 말씀을 귀로 듣지만 마음에 세기고 살아가
려는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밥상에 있는 반찬을 생각해 보십시오. 밥상 위에 생선
이 있다고 가정해 보면 이 생선하나가 밥상에 올라오기까지 어부들이 얼마나 수고합니까?
배를 손질합니다. 그물을 챙깁니다. 때를 기다려 출항합니다. 고기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이 말씀이 내게 은혜의 말씀, 축복의 말씀이 되기 위해서는 이렇게 다가가는 헌신과
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아침 일찍 열차를 타려고 서부역에 갔었습니다. 그곳에는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었
습니다. 채소 파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얼마 전에 상당히 추웠는데 그 꽁꽁 언 배추와 무
를 만지면서 장사하는 것을 보면서 지나왔는데 저렇게 장사하기 까지 얼마나 일찍 나왔을까
생각했습니다. 도매상에 가서 채소를 받아와야 하고 일찍 나와 그렇게 노력을 하면서 장사
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시간을 투자하고 정성을 다했는가가
중요합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했는데 말씀으로 사는 이 몸부림이 내게 얼마나 있습니까? 말씀에 대한 투자에 새로운
계획을 가지기 바랍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시간을 내어 말씀을 읽고 배우시기 바랍니다. 말
씀으로 산다는 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신앙생활의 자세입니다.

약속을 지키는 삶

두번째는 말씀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이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성경에
는 한 이천가지의 약속이 있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이 약속대로 지키는 것이 말씀대로 사
는 것입니다. 약속 중에 최고의 약속은 바로 이것입니다.
레위기 26장 12절에 보면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
성이 될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백성이 되겠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메
시야의 약속입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내가 네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이 약속 안에서 오늘도 우리는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하
나님의 은혜 안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천 가지가 넘는 이 약속이 우리에게 복으로 다가
옵니다.
성경은 헤리포터 정도가 아닙니다, 세익스피어 작품 정도가 아닙니다. 삼국지 정도가 아
닙니다. 소설을 읽고 거듭났다는 사람을 한번도 본적이 없습니다. 우리 주변에 영화보고 하
나님을 믿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 성경만 믿으면 구원에 이르는 약속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는 약속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언약이라고 말합니다. 테스트먼트는 언약이
라는 말입니다. 약속은 상호적입니다. 약속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하는 것입니다.
짝사랑하는 것은 상호하는 것이 아닙니다. 짝사랑은 시작은 있으나 열매가 없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사랑은 시작도 있고 열매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상호적이기 때문입니다. 상호응
답하기 때문에 열매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상호적입니다.
제네바 핵 협약이 지금 파기되었습니다. 핵을 동결하고 경수로를 건설한다는 것이 북한
과 국제원자력기구와의 협약입니다. 그러나 핵 개발이 북한에서 진행되고 있고 그 증거가
나타나고 국제적으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의심을 받기 때문에 제네바 조약이 깨어지고 말았
습니다. 북한이 약속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약속이행은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2절에 “네 하나님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게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때로는 고통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전쟁을, 때로는 불뱀
으로 물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들을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다스린 것은 말씀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러분이 말씀대로 살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삶을 말합니다.

보이는 약속부터 지키자

대한한공 국제선을 타보신 분은 다 아십니다. 기내에 에어컨이 나오면 추우니까 덮으라
고 담요를 줍니다. 그 담요가 가볍고 부드러운 고급담요입니다. 그런데 그 담요가 자꾸 없어
진다고 합니다. 누가 가지고 가냐 하면 대한민국 국민들이 가지고 간다는 것입니다. 그 중에
크리스천도 포함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런 안내문이 붙어 있습니다. “사용 후 기내에 두고
가시기 바랍니다. 이 담요는 기내용입니다. 가져가지 마십시오.”
저도 다른 나라 비행기를 타보았지만 이런 문구가 있는 곳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문구가 우리 나라 비행기에만 있습니다. 왜 이것을 가지고 가느냐면 화투치는데 깔개로
쓴답니다. 혹시 손님이 올 때 대한항공 담요를 내어놓지 마세요. 특히 내가 심방갈 때 내어
놓지 마세요.
담요를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은 공동의 약속입니다. 거기에 보면 가지고 갈 것은 따로
있습니다. 조그마한 책자가 있는데 그것은 안 가지고 가고 가지고 가지 말라는 것을 가지고
가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러분, 그 안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 믿는 사람도
비행기를 많이 탑니다. 그 담요 훔치는데 승무원 몰래 훔치겠습니까? 옆 사람도 모르게 훔
칠 것입니다. 그 담요가 부피가 적어서 옆 사람도 알지 못하게 슬쩍 넣을 것입니다. 그렇게
몰래 도적질을 해 놓고 조금 지나면 도적질을 했다는 가책도 없습니다.
저는 여기서 이런 문제를 삼고 싶습니다. ‘그 사람의 행동이나 양심이 담요 한 장으로
끝날 것인가?’ 저는 분명히 이렇게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 담요 한 장을 아무도 모르게 훔
치는 그런 그리스도인이라면, 어떻게 안 보는데서 하나님을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그
사람이 아무도 안보는 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겠습니까?
여러분, 적어도 사람끼리 약속을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언약을 지킬 수 있
는 능력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약속이라는 것은 양쪽이 어겨서 파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한쪽이 어기면, 양쪽이 다 상처를 받는 것이 약속입니다. 양쪽이 ‘준비’ 하고 함께 약속을
어기는 것이 아니고, 한쪽에서 어기면 약속을 지키고 있는 쪽도 손해를 보고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계는 모두 약속의 관계입니다. 우리가 국가에 대해서는 국민으로서 약속을 지
켜야 합니다. 가정에 가면 가족으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사회에 가면 친구로서 직장동료
로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거래 당사자들과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일상생활에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
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말씀으로 산다는 것은 말씀이 명하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약속
을 지키고 눈에 보이지 않는 약속도 지켜야 합니다, 성경은 이것에 대해서 절대로 그냥 지
나치지 않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신명기는 가장 특징있는 책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설
교다’라고 보시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말
씀하시는 하나님의 당부입니다. 그러므로 신명기를 읽어보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이 성경의 어떤 말씀보다 강합니다. 계속 반복해서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네가 내 모든
명령을 지키면, 혹은 내 계명을 지키면, 너희가 평탄하리라, 장수하리라, 적군을 물리쳐 주리
라, 내가 높이 너를 들리라”는 약속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에게 약속을 주
셨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주목하여 보신다고 하십니다.

말씀응답에 반복하는 삶

세번째로 말씀의 응답에 대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말씀은 한번 듣는 것이 아니고, 한번 읽는 것이 아니고, 한번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설 때까지 반복하는 응답이 우리에게 있어야 합니다.
시편 1편 1-2절에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
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
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했습니다.
즐거워하고 묵상한다는 것은 매일 반복하여 적용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프로야구 선수는
시합을 하지 않습니다. 내년 4월 시즌오픈 때까지 시합을 안 합니다. 그러나 매일 매일 연습
을 합니다. 산악인이 히말라야 산을 오른다는 계획을 하면 매일 매일 국내에서 산을 오르는
연습을 합니다. 군인들이 전투를 하지 않을지라도 매일 기본 훈련을 합니다. 우리가 타는 자
동차도 매일 시동을 걸고 차를 타야 합니다. 만약 6개월 정도 타지 않으면 그대로 망가집니
다. 그래서 장기 출장 가는 사람들이 그 차를 부리기 위해서 친구들에게 맡기는 경우가 있
습니다. 피스톤이 반복해서 돌아가고 바퀴가 돌아가야 합니다. 세상 이치와 우리의 신앙 이
치는 똑같은 것입니다.
시편 1편 3-4절에 보면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
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
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라고 했습니다.
겨는 히브리말로 왕겨입니다. 겨는 면적이 넓을수록 바람을 많이 탑니다. 손바닥만한 종
이보다 면적이 넓은 종이가 더 바람을 많이 탑니다. 그냥 부스러기 겨가 아닙니다. 왕겨입니
다. 악인은 왕겨가 바람에 날듯이 잡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사는 자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아서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청청하겠다는 하나님
의 약속입니다. 말씀으로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계산대에 가서는 왕겨와 같은 계산이 나올
것을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금년 한해를 이미 살았습니다. 반성할 것이 많이 있겠지만 내가 과연 말씀으로 살았는
가? 이 로고스의 말씀이 레헤마의 말씀이 되었는가? 슈퍼마켓에 있는 말씀인가? 아니면 내
가 사서 우리 집에서 요리해서 맛있게 먹은 식품인가? 말씀을 듣기만 하고 구경만 하는 신
앙생활이 아니라 이 말씀을 지키는, 약속이행이 이뤄지는 신앙생활을 했는가를 점검해 보는
연말이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 응답해야 합니다. 반복해야 합니다. 이 말씀으로 즐거워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매일 매일 적용해야 합니다. 시냇가에 심어진 가뭄을 타지 않는
나무의 모습처럼 말씀으로 살아가는 이 시대의 건강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다 되시기를 축원
합니다.


       출처/이용호목사 설교 중에서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