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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하나님 앞에서 (마 6:1-6.)
우리가 신앙의 생활을 살아갈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인관계와 대신관계일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아름답게 맺을 것이냐 하는 사실입니
다.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도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는 볼 수가 없으며, 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여도 우리의 신앙은 정상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참 좋은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는 엉망으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
질 받고 인정받지 못하며, 반면 사람과는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서로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데 하나님에게는 성실치 못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형편없는 사람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올바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은 이 두가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는 본문에 보면 이 두가지의 아름다운 삶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과의 관계는 구제한다는 말로서 즉,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의와 선을 행하는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도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수있는데로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거나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오히
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남에게 나누면서 의를 행하고 할수있는데로 구
제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은헤를 얻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늦추지 말아야하
며,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필요를 아뢰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행해 갈 때 아주 조심하여야 할 사항을 강조하시
며 세가지의 교훈을 주십니다.
그 첫째는,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5절,16절에 걸쳐서 강조하시는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촉구하십니다.
우리의 행하는 의를 조용히 뒤돌아보면 참으로 이 말씀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하나님께 보이려는 그러한 자세보다는 사람에게보이므로 사람에게서 칭찬듣고 사람에게서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드라 이 말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는 기도하는 것 조차, 헌금하는 것 조차,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조
차 사람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사람앞에서 칭찬을 은근히 기다리면서 행했던 우리의 모습을 다
시 한번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소유욕입니다. 가능한한 많이 가지
고 싶어하는 욕심입니다. 또 하나는 되고 싶어하는 본능입니다. 정치적인 욕망이 여기에 속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입니다. 인정받으려하고,칭찬받고자하고,존
경받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대단히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어느책에 아주 재미있는 글을 썼습니다.'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 사
건이 만약에 후미진 여리고로가는 골짜기가 아니라 예루살렘거리 한 복판에 일어난 사건이라
면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갔겠느냐 하는 말입니다.사람들이 안보는 곳이
었기에 모른 척하고 지나갔지 많은 사람이 보고있었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도와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이 보지 않는 곳이었기에 할것을 안하거나 하지말아야 할 것
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사람들이 보니까 하는척하면서 행세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
다시말하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채근담>에 보면 "당자앞에서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며,사람이 보는데서 선행을 베푸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영국정부는 국가적으로 크게 공헌을 한 고든(Gorden,C.G.) 장군을 치하하려고 했습니다. 동상
을 세우고 기념비를 건립하려고 했지만 장군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작위 (爵位)를 수여
하고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여도 거절합니다. 그는 전후 33회나 전진을 누비면서 혁혁한
공을 세워온터라 영국정부는 어떻하던 기념을 하고 싶어서 조그마한 금메달에 그 공을 기록하
여 증정했습니다. 그후 장군이 죽은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메달이 안 보였
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궁금하여 수소문하여 보았더니 가슴뭉클한 곡절이 숨어있었습니다.
멘체스터에 대 흉년이 들었을 때 장군은 그 메달을 녹여 팔아서 굶주리는 자들을 구제하였던
것입니다. 장군의 일기장에는 이 사실에 대해 단지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세
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선물을 그리스도께 바쳤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행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들려 줄려고 하는 것이아니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아뢰는 사랑의 비
밀한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행을 행할 때나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우리의
육신적 유혹을 이기고. 다만 감사로, 기쁨으로, 그것을 할 수있다는 사실을 즐거워 하면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가르치시는 교훈은 '아버지께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본다는 말은 '안다'는 말
로도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하는 일을 즉, 구제하고 기도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
께서 보시고 다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
이 아신다는 말처럼 감동스럽고 위로가 되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야 무어라 하든,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만 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
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욥은 욥기 23:10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람들은 그를 몰라주었
습니다. 친구도, 아내도,모두가 그를 멸시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자신
을 아신다고 말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신다는 사실입니
다. 우리의 모든 처지와 형편중에서도 그 분은 살피고 계시며,우리가 행하는 모든 믿음의 일
들을 그 분은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앞에서 진실해야만 하고 오직 그분께 인정받는 믿음의 행위를 살아가
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의식하십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자세보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를 더 고민하시며 사
십시다. 남들에게 잘보이려하다가 피곤하고 시험에 들지말고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나를 보
시고 계심을 알고 그 분 앞에서 믿음의 행위를 살아갑시다.
죤 칼빈목사의 신앙의 좌우명은 "코람 데오(CORAM DEO)" 즉,하나님앞에서 입니다. 항상 하나
님앞에서,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신앙의 삶을 살므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분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하나님만 보면서 행하는 자를 다 보시고 아시면서 반드시 갚아 보상하
시고 축복하시며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웃을 사랑하여 구제
하시면 그것을 보상하십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
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말씀하셨으며,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
에게 안겨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는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갚아주
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진실하게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 145:18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하므로서 기도의 자세를 강조하시면서 응답을 약속하시
고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시리라."
이것은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
고 더욱 더 열심으로 우리의 행할 바를 말없이 행할 수있어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헛되고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제 발견하십시다.
왜, 그토록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었는지, 많은 봉사와 충성을 한다고 하여도 열매가 없었는
지, 사랑과 구제를 하여도 기쁨과 은혜가 없었는지, 도리어 주의 일을 하면서도 시험에 들고,
다툼이 생기고,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를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의 일에 열매가 맺히고 축복의 결과를 가져오며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는 삶을 위하여서 우리의 신앙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가슴깊이 새기십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랑과 칭찬을 위하여서 그리고 세상의 허영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
님앞에 하나님이 보시고 계심을 믿고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알아주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겸손
히 더욱 열심과 성실히 행하십시다. 하나님은 갚아주십니다.보상하시는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
의 행위를 보상하셔서 더욱 큰 축복의 삶과 열매맺고 은혜있는 영광의 삶을 살아 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된 일을 하시게 하실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
아주시리라." 아멘.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2)
우리가 신앙의 생활을 살아갈 때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대인관계와 대신관계일 것입니다.
다시말하면 사람과의 관계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아름답게 맺을 것이냐 하는 사실입니
다.
사람과의 관계를 올바르게 하지 못하는 것도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는 볼 수가 없으며, 반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올바르지 못하여도 우리의 신앙은 정상적이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은 참 좋은 것 같은데 사람과의 관계는 엉망으로서 사람들에게 손가락
질 받고 인정받지 못하며, 반면 사람과는 좋은 유대관계를 가지고 서로가 참 좋은 사람이라고
칭찬하는데 하나님에게는 성실치 못하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형편없는 사람을 봅니다.
이 모든 것이 올바르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의 삶은 이 두가지가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면
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는 본문에 보면 이 두가지의 아름다운 삶을 무엇으로 표현하고 있느냐 하면,
사람과의 관계는 구제한다는 말로서 즉,사람에게 악을 행하지 않고 의와 선을 행하는 삶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관계는 기도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할수있는데로 사람들에게 악을 행하거나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해서는 안됩니다. 오히
려 우리는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받은바 은혜를 남에게 나누면서 의를 행하고 할수있는데로 구
제를 행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는 끊임없이 기도하면서 은헤를 얻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늦추지 말아야하
며, 하나님에게 우리의 삶의 모든 필요를 아뢰며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삶을 행해 갈 때 아주 조심하여야 할 사항을 강조하시
며 세가지의 교훈을 주십니다.
그 첫째는, '은밀하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1절,5절,16절에 걸쳐서 강조하시는데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라고 촉구하십니다.
우리의 행하는 의를 조용히 뒤돌아보면 참으로 이 말씀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하나님께 보이려는 그러한 자세보다는 사람에게보이므로 사람에게서 칭찬듣고 사람에게서 인
정받고 존경받는 부분에 신경을 많이 썼드라 이 말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에게 돌려드리는 기도하는 것 조차, 헌금하는 것 조차, 봉사하고 구제하는 것조
차 사람이 보아주기를 바라고 사람앞에서 칭찬을 은근히 기다리면서 행했던 우리의 모습을 다
시 한번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에게는 세 가지의 본능이 있다고 합니다. 그 첫째가 소유욕입니다. 가능한한 많이 가지
고 싶어하는 욕심입니다. 또 하나는 되고 싶어하는 본능입니다. 정치적인 욕망이 여기에 속
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욕망입니다. 인정받으려하고,칭찬받고자하고,존
경받고자 하는 본능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대단히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우리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어느책에 아주 재미있는 글을 썼습니다.'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에 관하여 말하기를 그 사
건이 만약에 후미진 여리고로가는 골짜기가 아니라 예루살렘거리 한 복판에 일어난 사건이라
면 제사장과 레위인이 그것을 보고 그냥 지나갔겠느냐 하는 말입니다.사람들이 안보는 곳이
었기에 모른 척하고 지나갔지 많은 사람이 보고있었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 사람을 도와
주었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사람이 보지 않는 곳이었기에 할것을 안하거나 하지말아야 할 것
을 하지는 않았습니까? 반대로 사람들이 보니까 하는척하면서 행세하지는 않았습니까?
주님은 그러한 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이미 자기 상을 받았느니라"
다시말하면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은 인정하시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채근담>에 보면 "당자앞에서 칭찬하는 것은 칭찬이 아니며,사람이 보는데서 선행을 베푸는
것은 선행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영국정부는 국가적으로 크게 공헌을 한 고든(Gorden,C.G.) 장군을 치하하려고 했습니다. 동상
을 세우고 기념비를 건립하려고 했지만 장군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작위 (爵位)를 수여
하고 포상금을 지급하겠다고 하여도 거절합니다. 그는 전후 33회나 전진을 누비면서 혁혁한
공을 세워온터라 영국정부는 어떻하던 기념을 하고 싶어서 조그마한 금메달에 그 공을 기록하
여 증정했습니다. 그후 장군이 죽은 후 유품을 정리하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메달이 안 보였
습니다. 사람들은 그것이 궁금하여 수소문하여 보았더니 가슴뭉클한 곡절이 숨어있었습니다.
멘체스터에 대 흉년이 들었을 때 장군은 그 메달을 녹여 팔아서 굶주리는 자들을 구제하였던
것입니다. 장군의 일기장에는 이 사실에 대해 단지 이렇게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세
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던 선물을 그리스도께 바쳤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선행은 사람에게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하는 것이며, 우리의
기도는 사람에게 들려 줄려고 하는 것이아니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며 아뢰는 사랑의 비
밀한 언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행을 행할 때나 기도할 때에 무엇보다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우리의
육신적 유혹을 이기고. 다만 감사로, 기쁨으로, 그것을 할 수있다는 사실을 즐거워 하면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가르치시는 교훈은 '아버지께서 보신다.'는 것입니다. 이 본다는 말은 '안다'는 말
로도 번역할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행하는 일을 즉, 구제하고 기도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
께서 보시고 다 알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있어서 하나님
이 아신다는 말처럼 감동스럽고 위로가 되는 말이 어디에 있습니까? 사람들이야 무어라 하든,
남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알아만 주신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큰 축복
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욥은 욥기 23:10에서 하나님께 이렇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사람들은 그를 몰라주었
습니다. 친구도, 아내도,모두가 그를 멸시하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러나 욥은 하나님이 자신
을 아신다고 말하면서 위로를 받으며 힘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 분을 보지 못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보신다는 사실입니
다. 우리의 모든 처지와 형편중에서도 그 분은 살피고 계시며,우리가 행하는 모든 믿음의 일
들을 그 분은 보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앞에서 진실해야만 하고 오직 그분께 인정받는 믿음의 행위를 살아가
야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람의 눈을 의식하기보다 하나님의 불꽃같은 눈을 의식하십시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하는 자세보다 하나님은 나를 어떻게 보실까를 더 고민하시며 사
십시다. 남들에게 잘보이려하다가 피곤하고 시험에 들지말고 하나님이 은밀한 중에 나를 보
시고 계심을 알고 그 분 앞에서 믿음의 행위를 살아갑시다.
죤 칼빈목사의 신앙의 좌우명은 "코람 데오(CORAM DEO)" 즉,하나님앞에서 입니다. 항상 하나
님앞에서,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신앙의 삶을 살므로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그 분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은밀히 하나님만 보면서 행하는 자를 다 보시고 아시면서 반드시 갚아 보상하
시고 축복하시며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이 이웃을 사랑하여 구제
하시면 그것을 보상하십니다. 잠 19:17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
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말씀하셨으며,
눅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
에게 안겨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는 진실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갚아주
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하여 항상 진실하게 올려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시 145:18에 보면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라고 하므로서 기도의 자세를 강조하시면서 응답을 약속하시
고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시리라."
이것은 주님의 분명한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약속을 믿고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
고 더욱 더 열심으로 우리의 행할 바를 말없이 행할 수있어야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헛되고 무의미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이제 발견하십시다.
왜, 그토록 기도하여도 응답이 없었는지, 많은 봉사와 충성을 한다고 하여도 열매가 없었는
지, 사랑과 구제를 하여도 기쁨과 은혜가 없었는지, 도리어 주의 일을 하면서도 시험에 들고,
다툼이 생기고, 안하니만 못한 결과를 만들어 냈는지를 우리는 발견해야 합니다.
진정, 우리의 일에 열매가 맺히고 축복의 결과를 가져오며 은혜가운데 하나님의 영광이 들어
나는 삶을 위하여서 우리의 신앙의 삶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가슴깊이 새기십시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랑과 칭찬을 위하여서 그리고 세상의 허영을 위하여서가 아니라, 하나
님앞에 하나님이 보시고 계심을 믿고 무엇보다 하나님만이 알아주시면 된다는 믿음으로 겸손
히 더욱 열심과 성실히 행하십시다. 하나님은 갚아주십니다.보상하시는 하나님은 그러한 자들
의 행위를 보상하셔서 더욱 큰 축복의 삶과 열매맺고 은혜있는 영광의 삶을 살아 더 놀라운
하나님의 영광된 일을 하시게 하실 것입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
아주시리라." 아멘.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