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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눅12:35-59)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
다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12:42)
오늘 말씀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 현세적인 생활의 염려에 관한 교훈에서 이제는 종말적인 예언으로 이어지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 하는 성도의 자세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
다. 오늘은 3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깨어 있으라(35-48)
2. 불을 당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3. 때의 징조를 알라(54-59)
Ⅰ.깨어 있으라(35-48)
먼저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혼인집에 간 주인이고, 신자들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자세로 살 것을 비유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오는데 우리 성도들은 예
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떤 자세로 하여야 하는가 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중동 지방 사람들은 통으로 짠 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긴 옷을 허리까
지 걷어올리고 허리에 띠를 띠어야만 했습니다.(왕상 18:46)
그래서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베드로전서 1:13절에
는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 했습니다. 에베소 6:14절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했
습니다.
그리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등불을 켠다는 것은 세상에 어둠을 발하는 빛
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
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처럼 제자들이나 우리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동이며 마음을 가다듬고 착한 행실로 세상에 빛을 발하여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
과 같이 되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식은 저녁 해질 때 시작하여 밤늦게 끝납니다. 결혼식은 신랑 신
부가 퇴장하면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면 끝납니다. 그후 하객들이 모여 피로연을 하고 나
면 한 밤중이 됩니다. 그러므로 혼인집에 간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은 밤늦게까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졸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돌아올 시간이 언제일는지는 모릅니다. 밤 이경(二更)일지 (이경은 밤 9시~12시까지)
삼경(三更)일지(밤 1시~3시) 모릅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며 깨어 있
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자세를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초저녁에는 별로 힘들지 않고 누구든지 다 기다리며 졸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으나, 밤
이 이슥해지고 이경이 넘어 삼경으로 가면 졸음 속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면 종들은 안 졸려고 갖은 투쟁을 해야 합니다. 자신과 투쟁해야 합니다. 졸음이
오면 밖에 나가 찬바람도 맞고 이런 일 저런 일도 하고 또,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지지 않
나 살펴보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같아야 하겠습니
다.
종은 주인에게 소속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은 주인의 시간과 주인의 계획에 자기
의 삶을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종이 자기 시간을 가지거나 자기 계획대로 하면 종이 아닙
니다. 종은 주인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고 주인의 뜻에 행동해야 합니다. 또, 종은 허리
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서 들고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이경이 되든지 삼경이 되든지 졸지
않고 깨어 있다가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는 깨어 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종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 졸며 잘 때, 허리를 동이고 깨어 있
어 불을 밝히고 문을 열어 주는 종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놀라운 축복이 주어집니까?
3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 와 수
종 하리라" 하셨습니다.
밤이 깊도록 자지 않고 또 식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대문을 다 열어
놓고 불을 밝혀 놓고 기다리는 종을 볼 때, 주인은 기쁘고 기특하여 도리어 그들의 종이 되
어 봉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인데 그날에 그렇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최후 만찬 때,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을 반영합
니다.(요13:4,5) 하였든, 이는 보수가 아니라 은혜로 대우 할 것을 주님이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졸지 않고 깨어 늦은 밤이라도 허리를 동이고
등불을 밝히고 서서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9,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도적과 같이 오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다면 그 집을 뚫지 못하
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항상 예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등불을 켜고 사명의 띠를 띠고 깨어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졸고, 잠이나 자면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도적같이 옵니다.
초저녁에는 보통 눈이 말똥말똥하고 전부 깨어 있습니다만, 밤 이경이 지나고 삼경이 되
면 눈이 풀어지고 가물가물합니다. 졸기 쉽습니다. 졸다가 아예 쿨쿨 자는 이도 있습니
다. 새해 들어 항상 정초에는 모두 눈이 말똥말똥하고 각 기관과 각 부서에서 깨어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고 기도 생활이며 신앙에 열심을 가지는데 이경(9시~12시)이 지나면서 부터
졸기 시작합니다. 9월쯤 되면 신앙생활에 졸기 시작합니다. 슬슬 빠지니까 성가대도 십사
오명까지 내려가고 아예 자느라 새벽기도는 한 밤중입니다. 왜 그렇게 신앙에 졸음을 좁니
까? 깨어나십시오.
얼마나 잘 조는지 설교를 시작하면 같이 졸기 시작하고 같이 시작해서 용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같이 깨어납니다. 실컷 설교 시간에 자고 나서 하는 말이 "목사님! 깨는 것도 은혜
입니다" 하십니다. 그때마저 깨어나지 않으면 큰일이니까요. 창피를 면하게 되니까 은혜
라고 합니다. 이렇게 졸면 "생각지 않은 때"(46) 인자가 옵니다.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갑자기 오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혼인집에 간 주인을 비유 들어 깨어 있고 준비하라고 사니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잠이 많고 졸기를 잘하는 베드로는 깨어 있어 예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부담이
되었는지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까?
42-4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진실한 종과 진실치 못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깨어 예비하는 생활"이 어떤 것
인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이 받을 보상이 각각 어떠한가를 말
씀하여 주셨습니다.
1) 진실한 종입니다.(42-44)
4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
라 양식을 나누어 줄자가 누구냐?"
청지기란 주인을 대신하여 주인의 재산과 종들과 그 자녀 교육까지 맡아서 관리하는 종을
가리킵니다.
첫째, 지혜 있는 청지기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청지기는 무엇보다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진실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주인의 재산과
종들을 잘 관리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때를 분별하는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어떻
게 작만 해서 어떻게 먹이느냐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진실도 필요하지만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혜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습니다.(왕상
3:9) 야고보 1;5절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지혜
롭게 일하기 이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스코틀랜드에 갑자기 핍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고 특히 그리스도 인들의 성찬식은 많은 믿지 않는 사
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습니다. 살과 피를 나눈다니까 식인종인가 생각했고,또 피는 율법
으로 금하니까 대단히 멸시했습니다.
이때 어느 한 소녀가 어느 날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길을 가다가 파수하고 있는 군인
에게 붙잡혔습니다. "너 어디에 가느냐?" 는 질문을 받고 자기 마음속에서 선의의 거짓말
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성령님이 허락지 않아서 이 소녀는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께서 지혜
를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 저의 가족들이
다 모여서 큰오빠의 유언장을 읽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큰오빠를 기념하기로 한 날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자 군인은 빨리 가라고 보내 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참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여" 했습니다. 또, 이 소녀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하니까 이 소녀에겐 예수님이 큰오빠가 되는 것입니다.
큰오빠가 돌아가셨어요(십자가에) 큰오빠의 유언장인 성경을 낭독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큰
오빠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녀는 얼마나 참말을 했으며 지혜가 있었습니까!
둘째,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영어로 Faithful입니다. 곧 주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변함없이 충성합니다. 청지기가 지혜만
있고 진실하지 못하다면 주인의 재산을 빼돌리고 말 것입니다. 청지기가 진실하려면 하나
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만이 진실할 수 있습니다
셋째,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고 했습니다. 더울 때는 시원한 것을, 추울 때
는 따뜻한 것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어릴 때는 젖이나 죽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단단한
것을, 거기에 맞추어서 먹여야 합니다. 몸이 괴로울 때는 특별한 반찬을 만들어서 먹여어
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양들에게 때를 따라 꼴을 먹이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진실한 종은 양 떼들에게 때를 따라 꼴을 먹이는 것을 보면 이
렇게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하셨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①지혜를 다해서 ②진실하게 ③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을 볼 때 믿음직스러워 그 종에게 주인의 전 재산을 다 맡기리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충성한 종에게 더 큰 것을 맡기리라 했고, 마태복음 19:28절에는 주
앞에 충성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
리라" 했습니다.
2) 신실치 못한 종입니다.(45-46)
45절을 보십시오. 신실치 못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첫째,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것입니다.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깨어 있거나 준비하지 않고 이 다음에 하면 되지, 내년에 하면 되
지,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하지 하며 주인이 더디올 것으로 생각하고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고 등불을 준비 하지 않는 종이 신실치 못한 종입니다.
둘째,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고 노비(종)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신실치 못한
종이라 했습니다.
청지기로서 사명과 축복을 받았지만 사명에 충성치 않고 먹고 마시고 제멋대로 생활한다
면 44절을 보십시오. 생각지 않은 때에
46절을 보십시오. 생가지 않은 날에,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인자가 와서(종의 주인) 엄히
때린다고 했습니다. 여기 엄히 때린다는 말은 "두 부분으로 자른다"는 뜻입니다. 몸이 두
동강이 나도록 때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실치 않은 자의 받는 율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경고입니까?
주님의 뜻을 알고 행치 않는 것은 모르고 행치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않는 자는 많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는 분이시오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맡은 것이 많을 수록 더욱 깨어 충성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우리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혼인집인 잔치에 가셨다가 반드시 돌아
오시는데 밤 이경일는지, 삼경일는지 모르나 그 때까지 깨어 진실한 종이 되도록 하십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고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열심히 깨어 충성하는 종이 되도록 하
십시다.
제가 신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부산 수정동에 있는 미애원이라는 고아원에 성경 선생
및 원의 총무로 약 1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어느 해보다도 더워서 광안리 해수욕장을 원생들이 모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고아원에는 주로 국민학생으로부터 18세까지의 학생들이 있고 혹 특별한 경우 청년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갇혀 있던 이들이 넓은 백사장에 자유로이 놀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한쪽에서는 모래성을 쌓고, 여학생들은 까치 집을 짓고, 또 한쪽에서는 뚝을
막고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 흉내를 내고, 다른 쪽에서는 위통을 벗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노는데는 일반 아이들과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두 패가 되더니 큰 싸움이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호루라기를 불
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 신호를 따라 삽시간에 모두 다 모여들었습니다. 결국 모래성을
쌓아 놓고, 땅을 차지하려다 싸우게 되었는데 다 불러 세우니까 툴툴 털고 돌아서 보며 다
모래성인걸 저것을 가지고 싸웠다고 아주 멋쩍어 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싸워서 옷이 찢어진 채 서 있는 아이도, 피를 흘리고
서 있는 아이도, 그 모습들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물 속에서 알몸으로 나와
서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 주님이 생각지
않은 때 재림해 오시면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그때 나는 신실한 종일까? 신실치 못한
종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우리 예수님이 일러 준 말씀대로 신실한 종이 되어 주 오실 때
"오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나 계
시록 6:15-16절에 있는 이들같이 굴과 산과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
다.
Ⅱ.불을 땅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참평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러하다고 하셨습니다.
49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은 땅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불이란 더러운 것을 태우고 깨끗하게 합
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은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악
을 성령의 불로 태우사 깨끗께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이 오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전에 예수님이 완성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
은 50절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은 성령의 불을 던지시기 전에 먼저 죽음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짐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입니다.(사53:4-6)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고통 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
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은 죄와 죽음
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서 우리 인생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진정한 영적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이런 평화를 주기 이전에 이 평화를 주기 위해 먼저 주는 것이 있다고 하셨
습니다.
51-5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함이로다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와 딸과 딸과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
와 분쟁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은 왜 화평을 주시지 않고 분쟁케 하십니까?
예수님은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서 참평화를 주셨습
니다.(50) 그래서 이제 십자가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참 평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는 개인이나 가정에게는 이로 인해 오히려 분쟁이 있게 됩니다. 이
분쟁은 거짓 평화가 파괴되고 그리스도를 중심한 새로운 평화가 형성되기 위한 과정에서 당
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인하여 가정에 분쟁이 있을 때 조금도 이상히 생각하고 슬퍼하거나 낙
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평화에로 나아가는 길이므로 꾸준히 빛 가운데 걸어가도록 기
도하시기 바랍니다.
Ⅲ.때의 징조를 알라(54-59)
예수님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하면서도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는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과 그의 하신 일을 통해서 얼마든지 메시아임을 알 수 있는데도 고
의로 영접하지 않는 외식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5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또 남풍이
붊을 보면" 여기 남풍은 아라비아 사막 쪽에서 불어오는 '시룩코'라는 열풍입니다. 이런
열풍이 불어오면 "너희들은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말하니 과연 그러하니라 그런데 너희
들은 이런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는 분별치 못하느냐? 어찌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못하느냐?" 고 책망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복
음을 전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A.D
70년 예루살렘 멸망)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온 줄을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
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던 사람들 같았습니다.(17:27) 이렇게 깨어 있지 못한 이들이었습니
다.
58,59절을 보십시오.
죄 문제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까지 가지고 가지 말고 이 땅에서 회개하고 화해해야 합
니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게 되면 호리라도 다 갚지 못하고는 결단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호리'는 당시 유대 나라에 통용되는 화폐단위 중에 가장 낮은 단위입니다. 그러므로 은
혜의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2)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
다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눅12:42)
오늘 말씀은 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세가 어떠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지난 시간 현세적인 생활의 염려에 관한 교훈에서 이제는 종말적인 예언으로 이어지면서
주의 재림을 대망 하는 성도의 자세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할 것을 말씀합니
다. 오늘은 3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깨어 있으라(35-48)
2. 불을 당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3. 때의 징조를 알라(54-59)
Ⅰ.깨어 있으라(35-48)
먼저 전체 내용을 살펴보면 예수님은 혼인집에 간 주인이고, 신자들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자세로 살 것을 비유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반드시 오는데 우리 성도들은 예
수님을 맞이할 준비를 어떤 자세로 하여야 하는가 입니다.
35절을 보십시오.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중동 지방 사람들은 통으로 짠 긴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긴 옷을 허리까
지 걷어올리고 허리에 띠를 띠어야만 했습니다.(왕상 18:46)
그래서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일할 준비를 하고 있는 자세입니다. 베드로전서 1:13절에
는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 했습니다. 에베소 6:14절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했
습니다.
그리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했습니다. 등불을 켠다는 것은 세상에 어둠을 발하는 빛
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
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 이처럼 제자들이나 우리
성도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허리를 동이며 마음을 가다듬고 착한 행실로 세상에 빛을 발하여
주님 오실 날을 사모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36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
과 같이 되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결혼식은 저녁 해질 때 시작하여 밤늦게 끝납니다. 결혼식은 신랑 신
부가 퇴장하면서 곧바로 침실로 들어가면 끝납니다. 그후 하객들이 모여 피로연을 하고 나
면 한 밤중이 됩니다. 그러므로 혼인집에 간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은 밤늦게까지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졸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기다려야 합니다.
그 돌아올 시간이 언제일는지는 모릅니다. 밤 이경(二更)일지 (이경은 밤 9시~12시까지)
삼경(三更)일지(밤 1시~3시) 모릅니다.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자지 않고 기다리며 깨어 있
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우리 성도들의 자세를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초저녁에는 별로 힘들지 않고 누구든지 다 기다리며 졸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으나, 밤
이 이슥해지고 이경이 넘어 삼경으로 가면 졸음 속에서 깨어 있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때면 종들은 안 졸려고 갖은 투쟁을 해야 합니다. 자신과 투쟁해야 합니다. 졸음이
오면 밖에 나가 찬바람도 맞고 이런 일 저런 일도 하고 또, 기름이 떨어져 불이 꺼지지 않
나 살펴보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다섯 처녀 같아야 하겠습니
다.
종은 주인에게 소속된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은 주인의 시간과 주인의 계획에 자기
의 삶을 맞추어 살아야 합니다. 종이 자기 시간을 가지거나 자기 계획대로 하면 종이 아닙
니다. 종은 주인의 시간에 맞추어 움직이고 주인의 뜻에 행동해야 합니다. 또, 종은 허리
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서 들고 주인이 돌아올 때까지 이경이 되든지 삼경이 되든지 졸지
않고 깨어 있다가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는 깨어 있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종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다 졸며 잘 때, 허리를 동이고 깨어 있
어 불을 밝히고 문을 열어 주는 종이 복이 있습니다. 어떤 놀라운 축복이 주어집니까?
37절을 보십시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 와 수
종 하리라" 하셨습니다.
밤이 깊도록 자지 않고 또 식사도 하지 않고 주인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대문을 다 열어
놓고 불을 밝혀 놓고 기다리는 종을 볼 때, 주인은 기쁘고 기특하여 도리어 그들의 종이 되
어 봉사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이 친히 하신 말씀인데 그날에 그렇게 하시리라
하셨습니다. 이는 마치 최후 만찬 때, 예수님이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을 반영합
니다.(요13:4,5) 하였든, 이는 보수가 아니라 은혜로 대우 할 것을 주님이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졸지 않고 깨어 늦은 밤이라도 허리를 동이고
등불을 밝히고 서서 기다리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39, 40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도적과 같이 오실 것을 예언하셨습니다.
"너희도 아는 바니 집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다면 그 집을 뚫지 못하
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의 재림은 도적같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항상 예비
하고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진리의 등불을 켜고 사명의 띠를 띠고 깨어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졸고, 잠이나 자면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도적같이 옵니다.
초저녁에는 보통 눈이 말똥말똥하고 전부 깨어 있습니다만, 밤 이경이 지나고 삼경이 되
면 눈이 풀어지고 가물가물합니다. 졸기 쉽습니다. 졸다가 아예 쿨쿨 자는 이도 있습니
다. 새해 들어 항상 정초에는 모두 눈이 말똥말똥하고 각 기관과 각 부서에서 깨어 충성도
하고 봉사도 하고 기도 생활이며 신앙에 열심을 가지는데 이경(9시~12시)이 지나면서 부터
졸기 시작합니다. 9월쯤 되면 신앙생활에 졸기 시작합니다. 슬슬 빠지니까 성가대도 십사
오명까지 내려가고 아예 자느라 새벽기도는 한 밤중입니다. 왜 그렇게 신앙에 졸음을 좁니
까? 깨어나십시오.
얼마나 잘 조는지 설교를 시작하면 같이 졸기 시작하고 같이 시작해서 용하게도 설교가
끝나면 같이 깨어납니다. 실컷 설교 시간에 자고 나서 하는 말이 "목사님! 깨는 것도 은혜
입니다" 하십니다. 그때마저 깨어나지 않으면 큰일이니까요. 창피를 면하게 되니까 은혜
라고 합니다. 이렇게 졸면 "생각지 않은 때"(46) 인자가 옵니다. 생각지 않은 때 인자가
갑자기 오시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님께서 혼인집에 간 주인을 비유 들어 깨어 있고 준비하라고 사니까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있다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잠이 많고 졸기를 잘하는 베드로는 깨어 있어 예비하고 있으라는 말씀을 하시니까 부담이
되었는지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까?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셨습니까?
42-48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진실한 종과 진실치 못한 종의 비유를 통하여 "깨어 예비하는 생활"이 어떤 것
인가를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종들이 받을 보상이 각각 어떠한가를 말
씀하여 주셨습니다.
1) 진실한 종입니다.(42-44)
42절을 보십시오.
"주께서 가라사대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
라 양식을 나누어 줄자가 누구냐?"
청지기란 주인을 대신하여 주인의 재산과 종들과 그 자녀 교육까지 맡아서 관리하는 종을
가리킵니다.
첫째, 지혜 있는 청지기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청지기는 무엇보다도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진실하지만 지혜가 없으면 주인의 재산과
종들을 잘 관리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청지기 사명을 감당하는데 가장 큰 문제는 지혜가
부족한 것입니다. 때를 분별하는데도 지혜가 필요합니다.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어떻
게 작만 해서 어떻게 먹이느냐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교회를 섬기는데 진실도 필요하지만 지혜가 더 필요합니다. 솔로몬은 나라를 다스리는데
지혜롭게 다스렸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부귀영화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구했습니다.(왕상
3:9) 야고보 1;5절에 "지혜가 부족하거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구하라"고 했습니다. 지혜
롭게 일하기 이해 지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종교개혁 시대에 스코틀랜드에 갑자기 핍박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가는 것이 금지되고 특히 그리스도 인들의 성찬식은 많은 믿지 않는 사
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습니다. 살과 피를 나눈다니까 식인종인가 생각했고,또 피는 율법
으로 금하니까 대단히 멸시했습니다.
이때 어느 한 소녀가 어느 날 성찬식에 참여하기 위해서 길을 가다가 파수하고 있는 군인
에게 붙잡혔습니다. "너 어디에 가느냐?" 는 질문을 받고 자기 마음속에서 선의의 거짓말
을 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지만 선의의 거짓말까지도 성령님이 허락지 않아서 이 소녀는
잠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대답을 하면 좋겠습니까?" 이 때 하나님께서 지혜
를 주셨습니다. "얼마 전에 저의 오빠가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오늘 저녁 저의 가족들이
다 모여서 큰오빠의 유언장을 읽기로 했습니다. 오늘은 큰오빠를 기념하기로 한 날입니다"
라고 대답을 하자 군인은 빨리 가라고 보내 주었습니다. 이 소녀는 참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마다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여" 했습니다. 또, 이 소녀가 기도할
때도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고 하니까 이 소녀에겐 예수님이 큰오빠가 되는 것입니다.
큰오빠가 돌아가셨어요(십자가에) 큰오빠의 유언장인 성경을 낭독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큰
오빠의 죽음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녀는 얼마나 참말을 했으며 지혜가 있었습니까!
둘째,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하다는 말은 영어로 Faithful입니다. 곧 주인에 대한 변함없는 충성심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진실한 사람은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변함없이 충성합니다. 청지기가 지혜만
있고 진실하지 못하다면 주인의 재산을 빼돌리고 말 것입니다. 청지기가 진실하려면 하나
님 앞에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는 사람만이 진실할 수 있습니다
셋째,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진실한 종은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준다고 했습니다. 더울 때는 시원한 것을, 추울 때
는 따뜻한 것을 먹여야 할 것입니다. 어릴 때는 젖이나 죽으로, 어른이 되어서는 단단한
것을, 거기에 맞추어서 먹여야 합니다. 몸이 괴로울 때는 특별한 반찬을 만들어서 먹여어
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제자들이 양들에게 때를 따라 꼴을 먹이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진실한 종은 양 떼들에게 때를 따라 꼴을 먹이는 것을 보면 이
렇게 하신다고 약속했습니다.
44절을 보십시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하셨습니다.
주인이 돌아왔을 때 ①지혜를 다해서 ②진실하게 ③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을 볼 때 믿음직스러워 그 종에게 주인의 전 재산을 다 맡기리라
하셨습니다.
마태복음 25장에는 충성한 종에게 더 큰 것을 맡기리라 했고, 마태복음 19:28절에는 주
앞에 충성한 사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12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12지파를 심판하
리라" 했습니다.
2) 신실치 못한 종입니다.(45-46)
45절을 보십시오. 신실치 못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첫째, 주인이 더디 오리라는 것입니다.
더디 오리라 생각하고 깨어 있거나 준비하지 않고 이 다음에 하면 되지, 내년에 하면 되
지, 이 다음에 돈을 많이 벌어서 하지 하며 주인이 더디올 것으로 생각하고 할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게으름을 피우고 등불을 준비 하지 않는 종이 신실치 못한 종입니다.
둘째,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고 노비(종)를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신실치 못한
종이라 했습니다.
청지기로서 사명과 축복을 받았지만 사명에 충성치 않고 먹고 마시고 제멋대로 생활한다
면 44절을 보십시오. 생각지 않은 때에
46절을 보십시오. 생가지 않은 날에, 알지 못하는 시간에 인자가 와서(종의 주인) 엄히
때린다고 했습니다. 여기 엄히 때린다는 말은 "두 부분으로 자른다"는 뜻입니다. 몸이 두
동강이 나도록 때린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신실치 않은 자의 받는 율에 처한다고 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운 경고입니까?
주님의 뜻을 알고 행치 않는 것은 모르고 행치 않는 것보다 더 큰 죄입니다.(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않는 자는 많이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으시는 분이시오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맡은 것이 많을 수록 더욱 깨어 충성해야 합니다.
이상에서 우리는 우리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혼인집인 잔치에 가셨다가 반드시 돌아
오시는데 밤 이경일는지, 삼경일는지 모르나 그 때까지 깨어 진실한 종이 되도록 하십니다.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고 마음에 허리를 동이고 열심히 깨어 충성하는 종이 되도록 하
십시다.
제가 신학교 들어가기 바로 전에 부산 수정동에 있는 미애원이라는 고아원에 성경 선생
및 원의 총무로 약 1년 가까이 있었습니다.
그 해 여름은 어느 해보다도 더워서 광안리 해수욕장을 원생들이 모두 가게 되었습니다.
그 고아원에는 주로 국민학생으로부터 18세까지의 학생들이 있고 혹 특별한 경우 청년들도
몇몇 있었습니다. 갇혀 있던 이들이 넓은 백사장에 자유로이 놀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겠습니까! 한쪽에서는 모래성을 쌓고, 여학생들은 까치 집을 짓고, 또 한쪽에서는 뚝을
막고 논에 물을 대고 모내기 흉내를 내고, 다른 쪽에서는 위통을 벗고 배구도 하고 축구도
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노는데는 일반 아이들과 좀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어쩌다가 싸움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두 패가 되더니 큰 싸움이 되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호루라기를 불
고 방송을 했습니다. 그 신호를 따라 삽시간에 모두 다 모여들었습니다. 결국 모래성을
쌓아 놓고, 땅을 차지하려다 싸우게 되었는데 다 불러 세우니까 툴툴 털고 돌아서 보며 다
모래성인걸 저것을 가지고 싸웠다고 아주 멋쩍어 하는 아이들도 있는가 하면 아직도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싸워서 옷이 찢어진 채 서 있는 아이도, 피를 흘리고
서 있는 아이도, 그 모습들이 천차만별이었습니다. 어떤 학생은 물 속에서 알몸으로 나와
서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모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우리 주님이 생각지
않은 때 재림해 오시면 우리의 모습이 어떨까? 그때 나는 신실한 종일까? 신실치 못한
종일까? 하는 생각을 해 봤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이여 우리 예수님이 일러 준 말씀대로 신실한 종이 되어 주 오실 때
"오 주 예수여 어서오시옵소서" 할 수 있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여나 계
시록 6:15-16절에 있는 이들같이 굴과 산과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
다.
Ⅱ.불을 땅에 던지러 오신 예수님(49-53)
예수님은 이 땅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참평화가 이루어지기까지는 이러하다고 하셨습니다.
49절을 보십시오.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예수님은 땅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불이란 더러운 것을 태우고 깨끗하게 합
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세상은 죄악으로 더러워져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죄악
을 성령의 불로 태우사 깨끗께 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그 날이 오기를
안타깝게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나 그전에 예수님이 완성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
은 50절입니다.
"나는 받을 세례가 있으니 그 이루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
예수님은 성령의 불을 던지시기 전에 먼저 죽음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죄짐을 담당하시기 위해서 입니다.(사53:4-6)
그리고 부활하심으로 사망의 권세를 파하시고 승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고통 하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진정한 평화를 주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
수님은 평화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세상에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은 죄와 죽음
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서 우리 인생들의 근본 문제를 해결해 주심으로 진정한 영적 평안을 선물로 주십니다. 그
러나 예수님은 이런 평화를 주기 이전에 이 평화를 주기 위해 먼저 주는 것이 있다고 하셨
습니다.
51-53절을 보십시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온 줄로 생각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함이로다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와 딸과 딸과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
와 분쟁하리라"
그러면 예수님은 왜 화평을 주시지 않고 분쟁케 하십니까?
예수님은 진정한 평화가 없는 것에 평화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셔서 참평화를 주셨습
니다.(50) 그래서 이제 십자가를 영접하는 자에게는 참 평화가 있게 됩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는 개인이나 가정에게는 이로 인해 오히려 분쟁이 있게 됩니다. 이
분쟁은 거짓 평화가 파괴되고 그리스도를 중심한 새로운 평화가 형성되기 위한 과정에서 당
연히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인하여 가정에 분쟁이 있을 때 조금도 이상히 생각하고 슬퍼하거나 낙
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평화에로 나아가는 길이므로 꾸준히 빛 가운데 걸어가도록 기
도하시기 바랍니다.
Ⅲ.때의 징조를 알라(54-59)
예수님은 천지의 기상은 분별하면서도 시대를 분별치 못하는 자들을 책망하셨습니다. 이
는 예수님의 인격과 말씀과 그의 하신 일을 통해서 얼마든지 메시아임을 알 수 있는데도 고
의로 영접하지 않는 외식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54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구름이 서에서 일어남을 보면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또 남풍이
붊을 보면" 여기 남풍은 아라비아 사막 쪽에서 불어오는 '시룩코'라는 열풍입니다. 이런
열풍이 불어오면 "너희들은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말하니 과연 그러하니라 그런데 너희
들은 이런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어찌하여 시대는 분별치 못하느냐? 어찌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치 못하느냐?" 고 책망하셨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시대를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복
음을 전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A.D
70년 예루살렘 멸망)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이 온 줄을 깨닫지 못하고 먹고 마
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던 사람들 같았습니다.(17:27) 이렇게 깨어 있지 못한 이들이었습니
다.
58,59절을 보십시오.
죄 문제를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까지 가지고 가지 말고 이 땅에서 회개하고 화해해야 합
니다. 이 땅에서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게 되면 호리라도 다 갚지 못하고는 결단코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호리'는 당시 유대 나라에 통용되는 화폐단위 중에 가장 낮은 단위입니다. 그러므로 은
혜의 때에 예수님을 영접하므로 죄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
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주는 종들이 되시기를 축원합
니다.
* 콜슨영스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7-11-03 1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