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14
The Great Commission Matthew 28:16-20
Ms. Gottfried Schmer
The last sermon of Jesus Christ before he ascended up to heaven is called ‘The Great Commission’. His command to spread his teaching to all four corners of the world shows us his burning love for us. Understanding the Gospel is a matter of the heart. The burning heart for saving us summarize Jesus’ ministry in just four sentences at the end of Matthew. Today we focus on his apt words, which get to the heart of it all. The Gospel passage is one of great hope: you and I as disciples of Jesus Christ are called to participa -te in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We are the ambassadors of this great commission: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 르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강론은 ‘대위임 명령’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세계 온 구석구석에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향한 그 분 의 불타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 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불타는 마음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 끝 부분 에 나오는 4개의 문장에서 예 수님의 사역으로 요약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지당한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 전체에 걸쳐있는 그 마음을 이 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의 여정은 위대한 소망 중에서 한가지로, 예수 님의 제자로서 여러분과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일컬어집니다. 우리는 ‘대위임 명령’의 사절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 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Unfortunately, many Christians shy away from this command -ment to proclaim the Gospel and to baptize, to evangelize – we have handed that word to others. Sometimes we lack evangelistic zeal. The only words of Jesus we seem to follow these days are the ones our Lord said to a leper upon healing him: “See that you say nothing to anyone!” But to declare Christ’s peace, to share Christ’s compassion, to spread this Gospel to the world is what we do as followers of Jesus. Our ‘marching orders’ are very clear: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release to the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불행하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 고, 전도하라는 이 명령을 따 르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때때로 우리는 복음적 열정이 부족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굳게 지키는 예수님의 유일한 말씀이 라고는 주님이 치유하신 문둥병자 에게 주신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 고”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안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누고, 이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행진 명령’은 명백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 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And the good news of the Gospel, has, through the ages, set the hearts of people free to love and serve. Jesus has brought healings to millions. The teachings of Jesus rightly preached has freed us from the bonds of slavery, it has shattered age-old hatred and prejudice. The teachings of Jesus has empowered sisters and brothers in every walk of life to live the kingdom life and witness to the kingdom’s new age. You see, the command “Go therefore and baptize” is not just some command, it is rather like being invited to dance with God as we become partners in the dance of creation, or stewardship, of reconciliation, witnessing to the Kingdom of God in the here and now.
그리고 복음의 좋은 소식은 모 든 연령층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백만 명을 치유했습니다. 올바르게 전 파한 예수님 의 가르침은 노예의 매임 상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었으며, 해 묵 은 미움과 편견을 타파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 왕국시대를 향한 왕국의 증거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여정에서 형제와 자매 들에게 용 기를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가서 세례를 주고”라는 명령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그것은 현재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 한 창조와 섭리, 화목과 증거의 무도 회에 하나님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춤을 추어주기를 청함 받은 것과 같습니다.
For Jesus said, “the kingdom of God has drawn close, it is passing by, it is in the midst.” Our Lord echoed the words of Moses in Deuteronomy “No, the word is very near to you; it is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for you to do it.”
Jesus’ words should ring in your ears filled with hope for the hopeless, mercy for the unlovable and richly endowed for the poor. Indeed, a passage of great hope.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그것은 임하였으며,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신명기에 서 모세를 통하여 “그 말씀이 네게 심 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 니라.”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귀에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으로, 사랑할 수 없는 자들에게 자비로, 가난한 자들에게 풍성한 나눔으로 가득 채워져 울려야겠습니다. 진실로 원대한 소망의 여 정인 것입니다.
And yet there is danger in this passage; a grave danger of misinterpretation. And I fear that this danger, this misinterpretation, is holding sway, perhaps in Korea. The danger, of course is, confusing Christ’s commission with some other commission; Christ’s vision, with some other vision; blurring the Kingdom of God with some other lesser kingdom until eyes can’t see and ears can’t hear, and we miss the mark of the Kingdom’s goal.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여 정에는 오해라는 중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오해라는 위험은 아마도 한국 내에서도 동요하 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위험은 그리스도의 사 명과 다른 사명과의 혼동, 그리스도의 비전과 다른 비전의 혼동으로, ‘하 나님 나라’를 다른 저급한 수준의 나라로 비하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게 하며, 결국 우리는 ‘왕국의 목표’라는 표적을 잃어버 리게 됩니다.
It is a danger that, throughout the ages, has led to great evil. When we focus on buying beautiful things, we spend more time at work to please the boss. Instead we should be in church praying vigilantly. When money takes center stage, we are losing our Christian purity to help others first. We are in danger of loosing our hope when Christian institutions, communities, and traditions do not put Christ first on the agenda.
그것은 여러 연령층에 걸쳐서 커다란 사악한 일을 범하게 되는 위험입니다. 우리가 호화스러운 물질을 추구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회 사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대신 우리는 교회 예배에는 소 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잡게 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타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순수함을 상실하게 됩 니다. 그리스도인의 제도, 공동체, 전통의 모든 의제 에서 그리스도를 우 선적으로 두지 않을 때, 우리는 소망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It seems to me that the lines between the Kingdom of God and its baptism of self-surrender, servant hood and reconciling love is being blurred when the focus is on materialism. We pray “Lor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we are being led into temptation, I believe, “like sheep being led to the slaughter” equating the great commission of Jesus Christ with the need to make money will produce only bad fruits. Winning the world for Christ means focusing only on Jesus Christ. Only Jesus!!!
저의 소견으로 물질 주의에 초점을 맞추게 될 때에는 하나님 나라 와 자아를 죽이는 세례, 섬 김의 자세와 화목의 사랑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시험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 위임 명령을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같이”라는 말씀에 연계시키는 것은 오 직 악한 열매만 맺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이김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춤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님뿐!!!
I believe this church has a mission to evangelize. Let us focus only on this mission. When we focus on money too much—we are close, dangerously close, to losing our soul. We are succumbing to the devil’s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to bow down and worship him, so that “in an instant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will be handed over.”(Luke 4:5) So then, what is this great commission that we are called to? What is this baptism that we are baptized with, that we are proclaiming, that we are offering to the world? What is the good news?
저는 이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 사명에만 초점을 맞춥시다. 우리가 너무 돈에만 초 점을 맞출 때 우리는 위험하게도 우리의 영혼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마 귀의 광야 시험에 지고 그에 게 절하고 경배하게 되며,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눅 4:5).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짖는 이 대 위임 명령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고, 우리가 선포하고, 우리가 세상에 전하는 이 세례는 무엇입니까? 복음은 무엇입니까?
In Luke Ch.12 and ver.50 Jesus describes his own baptism: “I have a baptism with which to be baptized, and what stress I am under until it is completed.” It is a baptism of dying to self. It is a baptism of obedience to God alone. It is the baptism of surrender and self-giving. It is the baptism that calls Jesus to stand before the powers and principalities of Rome and declare an allegiance not to a government, not to a policy, not to a party, not to an agenda, not to a cause, not to a flag but to the kingdom that calls all other kingdoms to account. It is a baptism that calls all nations to account for how they treat the poor, the imprisoned, and the hungry (Matth! ew 25:). It is a baptism of loving your neighbor. It is a baptism of radical inclusion.
눅 12:50에서 예수님은 그의 세례에 대해서 “나에게는 시행되어야 할 세례가 있으니 그것을 다 이루기까지 나 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죽음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홀로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맡기고 드리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예 수님을 로마의 권력 과 주권 앞에 서서, 정부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고, 정당도 아니고 의제도 아니고, 사건도 아니고, 국기도 아니며 모두에게 다른 왕국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불려지는 왕국에 대하여 충성을 선언하게 하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마 25:)을 어떻게 대우하는 지를 밝히게 하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여러 분의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세례 입니다. 그것은 급진성을 가지는 세례입 니다.
It is not a baptism to divide the world between the saved and the unsaved, Christian and non-Christians. Our worldview is based on love for our neighbor. And our neighbor might be our enemy. Let us not go to bed angry with someone. For a restless heart will allow Satan a stronghold in your heart. Instead make peace. Peace to love each other with the eyes of Jesus Christ. When we have Jesus Christ in our thoughts, we bow with greatest humility before the throne of God in baptism to give our allegiance once again to the God who has named us and claimed us in a particular way for his own glory.
그것은 세계를 구원 받은 사람 들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으로 나누는 세례가 아닙니다. 우리의 세계관은 우리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적일 수 밖에 없습니 다. 누구에게 분노를 품은 채 침대에 들지 맙시다. 불안정한 마음에서 사탄은 여러분의 마음을 강하게 파고 듭니다. 그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서로 사랑하는 평안, 그 평안을 누리십시오. 우리의 생각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잡게 될 때, 우리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지으시고 불러주신 하 나님께 대하여 다시 한번 더 우리의 순종을 드리는 세례 속에서 하나님의 권좌 앞에 겸손히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You see, baptism and the Great Commission are intertwined, like a shoelace with a hand. Believing in Jesus’ Great Commission means acknowledging your baptism. A commission that strives for world peace in which every child is safe, and the gifts of the earth are evenly distributed, and the prophecy of Isaiah is lived out perhaps not in my day, but in the days to come that… “the wolf shall live with the lamb, and the leopard shall lie down with the kid, the calf and the lion and the fatling together, and a little ch! ild shall lead them…They will not hurt or destroy o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wi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례와 ‘대위 임 명령’은 손으로 매는 구두 끈과 같이 서로 얽혀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위임 명령’을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세례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 다. 위임명령은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땅의 수확이 균등하게 분배되 고, 이사야의 예언이 이 때는 아니라도 오는 때까지는 실현되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사자 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릴 것이다. 그들은 나의 거 룩한 산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 땅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주 님을 아는 지혜로 충만하게 될 것이 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세계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When John the Baptist baptized Jesus in the river Jordan, John thought that Jesus was to be the political Messiah to restore the political throne of King David. He was looking for a fight, he was not very civil. In Luke’s Gospel John declares: “You brood of vipers! Who warned you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even now the ax is lying at the root of the trees.” But Jesus disappointed John and so many of his contemporaries. Jesus’ call to repentance was to repent or to be rooted like a tree in the thoughts of our Lord Jesus Christ.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주실 때, 요한은 예수님이 ‘다윗 왕’의 정치적 왕좌를 회복하는 정치적 ‘메시아’로 생갓했 던 것입니다. 그는 개화되지 못한 부류에 속하여 투쟁을 기대하 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요한은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닥쳐올 진 노로부터 피하도록 가르쳐주더냐?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비롯한 동시대의 부류들에게 낙심하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부르심은 회개하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사상의 나무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Repent means “change your mind.” “Get a new thought.” “Get a new way of seeing things.” Jesus was calling on people then and calling on us now to get new eyes to see the kingdom that is present, in a mustard seed, in a child, in the lilies of the field, in the cross of obedience, in the best wine, in the fellowship of a meal. Not to fear, but to love. John the Baptist wanted to divide the chosen from the sinners, to make it clear. Jesus saw everyone as a beloved child and invited each and all to see the kingdom in the midst and to love it and to choose to live like it was the central reality.
회개의 의미는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 각을 갖는 것 입니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겨자씨에, 어린 이와 함께, 들의 백합화에, 순종의 십자가에, 최상급의 포도에, 식사의 교제와 함께 하는 왕국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려고 찾아 오십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입니다. 세례 요한 은 죄인들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 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구분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 받아야 할 아이와 초청 받은 자로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왕국을 보 고 그것을 사모하고 그와 같이 살기를 선택하는 모두를 중심의 실체로 보 았습니다.
As you leave this sanctuary today, do you remember your own baptism? Let us live up to the words found in the Great Commission. Let your lives be good news. Just preach the message of love to everyone. Everyone who needs to know that Jesus is love and God is alive.
여러분은 오늘 이 성전을 떠나면서 당신의 여러분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십니까? ‘대위임 명령’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말씀을 따 라서 살아갑시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단지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강론합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두셔야 할 것은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Live that word, spread that word. Go forth and baptize!
It is the heart of it all! Hallelujah! Now Go! AMEN.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가서 세례를 주십시오.
그것이 오늘 강론의 요점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곧장 가십시오. 아멘
Ms. Gottfried Schmer
The last sermon of Jesus Christ before he ascended up to heaven is called ‘The Great Commission’. His command to spread his teaching to all four corners of the world shows us his burning love for us. Understanding the Gospel is a matter of the heart. The burning heart for saving us summarize Jesus’ ministry in just four sentences at the end of Matthew. Today we focus on his apt words, which get to the heart of it all. The Gospel passage is one of great hope: you and I as disciples of Jesus Christ are called to participa -te in the transformation of the world. We are the ambassadors of this great commission: make disciples of all nations, baptizing them in the name of the Father, Son and Holy Spirit.
예수님께서 하늘로 오 르시기 전에 하신 마지막 강론은 ‘대위임 명령’이라고 일컬어집니다. 세계 온 구석구석에 그분의 가르침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우리에게 향한 그 분 의 불타는 사랑을 보여줍니다. 복음을 이해한다는 것은 마음의 문제입니 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한 불타는 마음은 마태복음의 마지막 장 끝 부분 에 나오는 4개의 문장에서 예 수님의 사역으로 요약됩니다. 오늘 우리는 그분의 지당한 말씀에 초점을 맞추고 그것 전체에 걸쳐있는 그 마음을 이 해하도록 하겠습니다. 복음의 여정은 위대한 소망 중에서 한가지로, 예수 님의 제자로서 여러분과 저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일컬어집니다. 우리는 ‘대위임 명령’의 사절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 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Unfortunately, many Christians shy away from this command -ment to proclaim the Gospel and to baptize, to evangelize – we have handed that word to others. Sometimes we lack evangelistic zeal. The only words of Jesus we seem to follow these days are the ones our Lord said to a leper upon healing him: “See that you say nothing to anyone!” But to declare Christ’s peace, to share Christ’s compassion, to spread this Gospel to the world is what we do as followers of Jesus. Our ‘marching orders’ are very clear: “The Spirit of the Lord is upon me, because he has anointed me to bring good news to the poor. He has sent me to proclaim release to the captives and recovery of sight to the blind, to let the oppressed go free, to proclaim the year of the Lord’s favor.”
불행하게도 많은 기독교인들은 복음을 전파하고, 세례를 주 고, 전도하라는 이 명령을 따 르기를 부끄러워합니다. 이 말을 달리 표현하면, 때때로 우리는 복음적 열정이 부족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굳게 지키는 예수님의 유일한 말씀이 라고는 주님이 치유하신 문둥병자 에게 주신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 고”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안을 선언하고, 그리스도의 사 랑을 나누고, 이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의 ‘행진 명령’은 명백합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 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And the good news of the Gospel, has, through the ages, set the hearts of people free to love and serve. Jesus has brought healings to millions. The teachings of Jesus rightly preached has freed us from the bonds of slavery, it has shattered age-old hatred and prejudice. The teachings of Jesus has empowered sisters and brothers in every walk of life to live the kingdom life and witness to the kingdom’s new age. You see, the command “Go therefore and baptize” is not just some command, it is rather like being invited to dance with God as we become partners in the dance of creation, or stewardship, of reconciliation, witnessing to the Kingdom of God in the here and now.
그리고 복음의 좋은 소식은 모 든 연령층을 통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열어 서로 사랑하고 섬길 수 있도록 했습니다. 예수님은 수백만 명을 치유했습니다. 올바르게 전 파한 예수님 의 가르침은 노예의 매임 상태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해주었으며, 해 묵 은 미움과 편견을 타파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새 왕국시대를 향한 왕국의 증거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 가지 여정에서 형제와 자매 들에게 용 기를 북돋아주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가서 세례를 주고”라는 명령은 단순한 명령이 아니라, 그것은 현재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를 향 한 창조와 섭리, 화목과 증거의 무도 회에 하나님과 파트너가 되어 함께 춤을 추어주기를 청함 받은 것과 같습니다.
For Jesus said, “the kingdom of God has drawn close, it is passing by, it is in the midst.” Our Lord echoed the words of Moses in Deuteronomy “No, the word is very near to you; it is in your mouth and in your heart for you to do it.”
Jesus’ words should ring in your ears filled with hope for the hopeless, mercy for the unlovable and richly endowed for the poor. Indeed, a passage of great hope.
때문에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느니라, 그것은 임하였으며, 너희 안에 있느니라.”라고 말씀하 셨습니다. 우리의 주님은 신명기에 서 모세를 통하여 “그 말씀이 네게 심 히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 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 니라.”라고 말씀해주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여러분의 귀에 소망이 없는 자들에게 소망으로, 사랑할 수 없는 자들에게 자비로, 가난한 자들에게 풍성한 나눔으로 가득 채워져 울려야겠습니다. 진실로 원대한 소망의 여 정인 것입니다.
And yet there is danger in this passage; a grave danger of misinterpretation. And I fear that this danger, this misinterpretation, is holding sway, perhaps in Korea. The danger, of course is, confusing Christ’s commission with some other commission; Christ’s vision, with some other vision; blurring the Kingdom of God with some other lesser kingdom until eyes can’t see and ears can’t hear, and we miss the mark of the Kingdom’s goal.
그리고 아직까지도 이 여 정에는 오해라는 중대한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오해라는 위험은 아마도 한국 내에서도 동요하 고 있지 않나 하는 우려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위험은 그리스도의 사 명과 다른 사명과의 혼동, 그리스도의 비전과 다른 비전의 혼동으로, ‘하 나님 나라’를 다른 저급한 수준의 나라로 비하하여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게 하며, 결국 우리는 ‘왕국의 목표’라는 표적을 잃어버 리게 됩니다.
It is a danger that, throughout the ages, has led to great evil. When we focus on buying beautiful things, we spend more time at work to please the boss. Instead we should be in church praying vigilantly. When money takes center stage, we are losing our Christian purity to help others first. We are in danger of loosing our hope when Christian institutions, communities, and traditions do not put Christ first on the agenda.
그것은 여러 연령층에 걸쳐서 커다란 사악한 일을 범하게 되는 위험입니다. 우리가 호화스러운 물질을 추구하려는 것에 초점을 맞출 때, 우리는 직장 상사의 비위를 맞추어 회 사 일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됩니다. 대신 우리는 교회 예배에는 소 홀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질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잡게 될 때, 우리는 우선적으로 타인들을 도와야 한다는 그리스도인의 순수함을 상실하게 됩 니다. 그리스도인의 제도, 공동체, 전통의 모든 의제 에서 그리스도를 우 선적으로 두지 않을 때, 우리는 소망을 상실하게 되는 위험에 직면하게 됩니다.
It seems to me that the lines between the Kingdom of God and its baptism of self-surrender, servant hood and reconciling love is being blurred when the focus is on materialism. We pray “Lord, lead us not into temptation” but we are being led into temptation, I believe, “like sheep being led to the slaughter” equating the great commission of Jesus Christ with the need to make money will produce only bad fruits. Winning the world for Christ means focusing only on Jesus Christ. Only Jesus!!!
저의 소견으로 물질 주의에 초점을 맞추게 될 때에는 하나님 나라 와 자아를 죽이는 세례, 섬 김의 자세와 화목의 사랑 사이의 간격은 더욱 벌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주여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시험에 빠져 들고 있습니다. 저는 돈을 벌기 위한 필요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 위임 명령을 “도수장에 끌려가는 양같이”라는 말씀에 연계시키는 것은 오 직 악한 열매만 맺게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세상을 이김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초점을 맞춤을 의미합니다. 오직 예수님뿐!!!
I believe this church has a mission to evangelize. Let us focus only on this mission. When we focus on money too much—we are close, dangerously close, to losing our soul. We are succumbing to the devil’s temptation in the wilderness to bow down and worship him, so that “in an instant all the kingdoms of the world” will be handed over.”(Luke 4:5) So then, what is this great commission that we are called to? What is this baptism that we are baptized with, that we are proclaiming, that we are offering to the world? What is the good news?
저는 이 교회가 전도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이 사명에만 초점을 맞춥시다. 우리가 너무 돈에만 초 점을 맞출 때 우리는 위험하게도 우리의 영혼을 잃게 됩니다. 우리는 마 귀의 광야 시험에 지고 그에 게 절하고 경배하게 되며, “순식간에 천하 만국”을 넘겨주게 될 것입니다(눅 4:5). 그렇다면 우리가 부르짖는 이 대 위임 명령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세례를 받고, 우리가 선포하고, 우리가 세상에 전하는 이 세례는 무엇입니까? 복음은 무엇입니까?
In Luke Ch.12 and ver.50 Jesus describes his own baptism: “I have a baptism with which to be baptized, and what stress I am under until it is completed.” It is a baptism of dying to self. It is a baptism of obedience to God alone. It is the baptism of surrender and self-giving. It is the baptism that calls Jesus to stand before the powers and principalities of Rome and declare an allegiance not to a government, not to a policy, not to a party, not to an agenda, not to a cause, not to a flag but to the kingdom that calls all other kingdoms to account. It is a baptism that calls all nations to account for how they treat the poor, the imprisoned, and the hungry (Matth! ew 25:). It is a baptism of loving your neighbor. It is a baptism of radical inclusion.
눅 12:50에서 예수님은 그의 세례에 대해서 “나에게는 시행되어야 할 세례가 있으니 그것을 다 이루기까지 나 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죽음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홀로 하나님께 드리는 순종의 세례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맡기고 드리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예 수님을 로마의 권력 과 주권 앞에 서서, 정부도 아니고, 정책도 아니고, 정당도 아니고 의제도 아니고, 사건도 아니고, 국기도 아니며 모두에게 다른 왕국으로 간주되는 것으로 불려지는 왕국에 대하여 충성을 선언하게 하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모든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배고픈 사람들 (마 25:)을 어떻게 대우하는 지를 밝히게 하는 세례입니다. 그것은 여러 분의 이웃을 사랑하게 하는 세례 입니다. 그것은 급진성을 가지는 세례입 니다.
It is not a baptism to divide the world between the saved and the unsaved, Christian and non-Christians. Our worldview is based on love for our neighbor. And our neighbor might be our enemy. Let us not go to bed angry with someone. For a restless heart will allow Satan a stronghold in your heart. Instead make peace. Peace to love each other with the eyes of Jesus Christ. When we have Jesus Christ in our thoughts, we bow with greatest humility before the throne of God in baptism to give our allegiance once again to the God who has named us and claimed us in a particular way for his own glory.
그것은 세계를 구원 받은 사람 들과 구원 받지 못한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으로 나누는 세례가 아닙니다. 우리의 세계관은 우리의 이웃을 향한 사랑을 기초로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적일 수 밖에 없습니 다. 누구에게 분노를 품은 채 침대에 들지 맙시다. 불안정한 마음에서 사탄은 여러분의 마음을 강하게 파고 듭니다. 그대신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서로 사랑하는 평안, 그 평안을 누리십시오. 우리의 생각 속에 예수 그리스도가 자리잡게 될 때, 우리를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지으시고 불러주신 하 나님께 대하여 다시 한번 더 우리의 순종을 드리는 세례 속에서 하나님의 권좌 앞에 겸손히 예배를 드리게 됩니다.
You see, baptism and the Great Commission are intertwined, like a shoelace with a hand. Believing in Jesus’ Great Commission means acknowledging your baptism. A commission that strives for world peace in which every child is safe, and the gifts of the earth are evenly distributed, and the prophecy of Isaiah is lived out perhaps not in my day, but in the days to come that… “the wolf shall live with the lamb, and the leopard shall lie down with the kid, the calf and the lion and the fatling together, and a little ch! ild shall lead them…They will not hurt or destroy o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wi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세례와 ‘대위 임 명령’은 손으로 매는 구두 끈과 같이 서로 얽혀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대위임 명령’을 믿는다는 것은 여러분의 세례를 인정하는 것을 의미합니 다. 위임명령은 모든 어린이들이 안전하고, 땅의 수확이 균등하게 분배되 고, 이사야의 예언이 이 때는 아니라도 오는 때까지는 실현되며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사자 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릴 것이다. 그들은 나의 거 룩한 산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다. 땅은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주 님을 아는 지혜로 충만하게 될 것이 다.”라고 말할 수 있도록 세계 평화를 위하여 노력하는 것입니다.
When John the Baptist baptized Jesus in the river Jordan, John thought that Jesus was to be the political Messiah to restore the political throne of King David. He was looking for a fight, he was not very civil. In Luke’s Gospel John declares: “You brood of vipers! Who warned you to flee from the wrath to come? …even now the ax is lying at the root of the trees.” But Jesus disappointed John and so many of his contemporaries. Jesus’ call to repentance was to repent or to be rooted like a tree in the thoughts of our Lord Jesus Christ.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예수님께 세례를 주실 때, 요한은 예수님이 ‘다윗 왕’의 정치적 왕좌를 회복하는 정치적 ‘메시아’로 생갓했 던 것입니다. 그는 개화되지 못한 부류에 속하여 투쟁을 기대하 였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요한은 “너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닥쳐올 진 노로부터 피하도록 가르쳐주더냐? …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다.” 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비롯한 동시대의 부류들에게 낙심하였습니다. 회개를 촉구하는 부르심은 회개하거나 주 예수 그리스도 의 사상의 나무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Repent means “change your mind.” “Get a new thought.” “Get a new way of seeing things.” Jesus was calling on people then and calling on us now to get new eyes to see the kingdom that is present, in a mustard seed, in a child, in the lilies of the field, in the cross of obedience, in the best wine, in the fellowship of a meal. Not to fear, but to love. John the Baptist wanted to divide the chosen from the sinners, to make it clear. Jesus saw everyone as a beloved child and invited each and all to see the kingdom in the midst and to love it and to choose to live like it was the central reality.
회개의 의미는 “여러분의 마음을 바꾸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 각을 갖는 것 입니다.” “사물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 사람들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겨자씨에, 어린 이와 함께, 들의 백합화에, 순종의 십자가에, 최상급의 포도에, 식사의 교제와 함께 하는 왕국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려고 찾아 오십니다. 두려움이 아닌 사랑입니다. 세례 요한 은 죄인들로부터 택함을 받은 사람 들을 분명히 하기 위하여 구분하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을 사랑 받아야 할 아이와 초청 받은 자로 보았습니다. 그 중에서 왕국을 보 고 그것을 사모하고 그와 같이 살기를 선택하는 모두를 중심의 실체로 보 았습니다.
As you leave this sanctuary today, do you remember your own baptism? Let us live up to the words found in the Great Commission. Let your lives be good news. Just preach the message of love to everyone. Everyone who needs to know that Jesus is love and God is alive.
여러분은 오늘 이 성전을 떠나면서 당신의 여러분이 받은 세례를 기억하십니까? ‘대위임 명령’에서 발견 할 수 있는 말씀을 따 라서 살아갑시다. 여러분의 삶 자체가 복음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단지 여러분들을 향한 사랑의 메시지를 강론합니다. 여러분들이 알아두셔야 할 것은 예수님은 사랑이시고, 하나님은 오늘도 살아계신다는 것입니다.
Live that word, spread that word. Go forth and baptize!
It is the heart of it all! Hallelujah! Now Go! AMEN.
말씀으로 살고, 말씀을 전파하십시오. 가서 세례를 주십시오.
그것이 오늘 강론의 요점입니다! 할렐루야!
지금 곧장 가십시오. 아멘